“양지의 두 번째 집” 봉사활동, 김선형에겐 선물이었다

최창환 / 기사승인 : 2015-12-23 02: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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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시간 때우러 왔다는 인식을 주기 싫었고, 귀여운 친구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정이 들었다.”

서울 SK 김선형(27, 187cm)은 한때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 SK 뿐만 아니라 KBL을 대표하는 스타였기에 팬들의 실망감도 어느 선수보다 컸다.

하지만 김선형답게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는 의무적인 게 아닌,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봉사활동에 임했다. 덕분에 봉사활동은 김선형에게 징계가 아닌 선물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강심장’도 긴장했던 첫 걸음

불법스포츠도박 파문에 휘말린 김선형은 KBL로부터 20경기 출전정지, 사회봉사 120시간 징계를 받았다. 제명을 제외한 선수들 모두 제재금이 부과됐지만, 김선형은 프로 입단 당시 불법스포츠도박 경험을 자진 신고한 게 참작돼 제재금이 없었다. 오세근(KGC인삼공사), 장재석(오리온) 등과 연탄을 나르는 봉사활동에 임했지만, 사실 김선형은 이에 앞서 SK 숙소에 인접한 장애인복지시설 「양지바른」에서 일찌감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덕분에 11월에 부여받은 봉사활동시간을 비교적 빠르게 채웠다.

하지만 김선형은 120시간을 마친 후에도 틈틈이 「양지바른」을 찾아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스스로 깨달은 바가 크고, 약 한 달 동안 얼굴을 마주본 시설 관계자 및 원생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코트에선 ‘강심장’이지만, 사실 김선형도 처음 복지시설을 찾을 땐 좀처럼 긴장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고 한다. “안 좋은 일로 봉사활동을 하는 거라 처음에는 긴장이 많이 됐다”라고 운을 뗀 김선형은 “관계자들이 나를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걱정도 됐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은 곳이더라. 덕분에 빨리 그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김선형은 「양지바른」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청소와 빨래, 주방보조뿐만 아니라 김장독도 묻었다. 제설작업에 필요한 기구들에 염화나트륨 작업을 하는 것도 김선형의 몫이었다.

“어려운 일은 다 했다고 보면 된다. 낙엽도 매일 쓸어줬고…. ‘그만 해도 된다’라고 하는데도 일을 멈추지 않고 한 선수다. 마치 평생 해야 할 봉사활동을 다 쏟아 붓는 느낌이었다.” 김순이 「양지바른」 팀장의 말이다.

이에 대해 전하자 김선형은 ‘시간 때우러 왔다’라는 인식을 주기 싫었단다. “첫날부터 정말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열심히 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분들도 조금씩 나에 대한 마음을 열어주셨다.” 김선형의 말이다.

김선형이 ‘힐링’이라 표현한 일도 있었다. 김선형은 봉사활동기간에 원생들과 함께 문경세제로 여행을 다녀왔고, 이는 친분이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

김선형은 “사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문경세제로 나들이 갔을 때도 그 친구들의 귀여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는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양지에 있는 두 번째 집”

김선형이 복귀한 후에도 연패사슬을 못 끊던 SK가 분위기를 전환한 건 지난 1일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2015-2016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홈경기였다. SK는 이날 8연승을 질주 중이던 KGC인삼공사를 81-65로 완파, 김선형 복귀 후 5번째 경기에서 첫 승을 거뒀다.

마침 이날은 김선형이 「양지바른」 식구들을 체육관에 초대한 날이기도 했다. 이날 「양지바른」 관계자 및 원생 약 30여명은 직접 응원도구를 만들어서 체육관을 찾았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공식 인터뷰 중인 김선형을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김선형은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원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김선형은 “친구들이 체육관을 와준 덕분에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매일 체육관에 초대해야 할 것 같다”라며 웃었다.

김선형은 이날 경기가 끝난 직후인 2일, 다시 「양지바른」을 찾았다. 이미 KBL이 부여한 봉사활동시간을 다 채웠지만, 김장을 도와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 120시간을 마치기 전부터 계획한 추가 봉사활동이었다.

“의무적인 게 아니라 정이 많이 든 곳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제는 「양지바른」에 있는 분들 모두 원래 알고 지낸 사이 같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비시즌에는 더 적극적으로 찾아갈 생각이다.” 김선형의 말이다.

김선형은 이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앞장서서 김장작업을 했다. 김순이 팀장은 “김장한 다음날에도 와서 우리들을 도와줬다. 김선형 선수는 잠시도 앉아있질 않는다. 밥 먹기 무섭게 앞치마를 메고 설거지하러 간다. 비록 안 좋은 일로 봉사활동 처분을 받았지만, 심성이 착하고 매사에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양지바른」 관계자들 또한 지난 12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원정경기까지 김선형을 찾아왔고, SK는 이날 시즌 첫 2연승을 달성하며 중위권으로 도약할 채비를 마쳤다. 봉사활동 할 때는 궂은일만 도맡던 김선형이 코트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자, 「양지바른」 관계자들도 금세 농구 팬이 됐다.

“김선형 선수 덕분에 농구가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인지 알게 됐다”라고 운을 뗀 김순이 팀장은 “학창시절 얘기도 나눴는데, ‘운동 끝나고 다 집에 돌아가면 2~3시간씩 개인연습을 했다’라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더 크게 될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순이 팀장은 수시로 「양지바른」을 찾아오고, 연락도 먼저 하는 김선형에 대한 격려의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양지에 있는 두 번째 집’이라고 표현하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김선형 선수는 궂은일뿐만 아니라 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크리에이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즐거움을 안겨줬다. 가족처럼 지내며 원생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선사한 김선형 선수에게 고맙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임하는 그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더 훌륭한 선수가 될 거라 믿는다. 우리 친구들도 항상 김선형 선수를 응원할 것이다.”

김선형이 “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얻은 게 더 많다. 성숙해졌고, 농구에 대한 절실함도 더 커졌다”라고 말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인생 공부했다” 허남영 코치가 본 김선형

김선형이 봉사활동을 통해 성숙해진 데에는 허남영 SK 코치의 도움도 컸다. 허남영 코치는 팀 훈련이나 경기가 있는 날을 제외하면, 항상 김선형과 함께 「양지바른」을 찾았다. “혼자 했으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 텐데, 허 코치님이 같이 해주셔서 의지가 됐다.” 김선형의 말이다.

이를 전하자 허남영 코치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내가 한 게 뭐 있나. 다 (김)선형이 스스로 잘한 거지”라고 말했다. 허남영 코치는 이어 김선형과의 봉사활동, 대화를 통해 느낀 견해도 전했다.

“선형이는 프로선수가 된 후 특급생활만 해왔는데, 봉사활동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더라. 자신보다 처한 상황이 안 좋은 분들을 보면서 느낀 부분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농구에 대한 절실함이 더 커진 게 느껴졌다. 선형이가 인생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양지바른」 관계자들이 김선형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는데 걸린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단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지인들에게 김선형을 자랑하기도 했다.

허남영 코치는 “선형이가 봉사활동 중이라는 얘기에 선생님들의 가족, 친구들이 ‘불법도박한 그 선수?’라고 되물었다더라. 선생님들이 ‘철없을 때 한 행동이고, 자진신고도 했다. 사실은 성실한 선수’라며 선형이 편을 들어주셨다”라고 말했다.

허남영 코치는 이어 “선형이가 봉사활동에 대충 임했으면, 원생들도 마음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선형이가 하루라도 안 오면 ‘빨리 불러주세요’라며 난리라고 한다”라며 웃었다.

# 사진 신승규 기자, SK 농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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