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 번의 겨울을 지나, 다시 피어나는 유승희

홍성한 기자 / 기사승인 : 2025-12-13 08: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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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홍성한 기자] 겨울이 참 길었다. 하지만 길었던 만큼 더 많은 것을 보고, 내려놓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시간도 됐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상처 사이로 새로운 꽃이 피기 시작했다. 유승희(31, 175cm)가 다시 피어나기까지의 여정을 조심스레 들여다봤다. (인터뷰는 11월 5일 진행됐습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이번 오프시즌 건강하게 잘 보냈는데?
만족? 사실 잘 모르겠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웃음). 오프시즌은 항상 잘 참석했다. 프로 선수라는 게 결국 결과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그 결과를 목표로 하는 선수라 과정에 만족했다는 건 나에게 큰 의미 없다.

프로 선수라면 욕심 많은 건 당연하다. 누구보다 그랬던 선수인 것도 알고 있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이 기준이 조금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선수라면 당연히 욕심 많아야 한다. 그게 맞는 거다. 진짜 욕심 많은 선수였다. 그런데 애쓴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더라. 지금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가장 큰 욕심은 그냥 시즌 치르는 거. 선수로서 너무 소박한 욕심이라 화도 나지만, 현실이 그렇다. 시즌을 치르는 게 목표가 됐다.

정신적으로도 참 힘들었던 시간(십자인대 3번 수술 후 재활)이었을 것 같다.
너무 지치고 지겨웠다. 진짜 그냥 지겨웠다. 그렇긴 한데 위성우 감독님이 가끔 말씀해주신다. 요즘은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라고. 많이 지치지만, 어떻게 보면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주위는 물론이고 우리 엄마도 나한테 사람 됐다고 이야기한다(웃음). 길게 보면 나한테 너무 나쁜 기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농구가 싫었던 적은 없었는지?
농구? 이거 나중에 편집 가능한가(웃음)? 친한 선수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농구 XX라고. 뒤에건 밝히지 않는 걸로 해줬으면. 순화하자면 애증의 관계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 직업이고 내가 선택한 길이니 어쩔 수 없다.

긴 재활 기간에 경기는 좀 챙겨봤는지? 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난 시즌에는 우리 팀 경기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봤다. 안 보고 싶은데 보면 재밌고, 보고 나면 부럽고 이런 감정들이 들었다. 사실 더 전에 다쳤을 땐 정말 보기 싫었다.



재활은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 세월을 버텼는지 궁금하다.
첫 번째는 정말 열심히 했다. 두 번째 다치고 나서는 조금 내려놨다. 흐름을 알아갔다. 이쯤 되면 내가 좀 지쳤구나. 그런 날이면 마음을 편하게 내려놨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있더라.

부상과 관련된 질문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받고 있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라는 선수를 나타내는 게 부상 극복한 선수? 이런 타이틀 싫었다. 앞서 언급했듯 욕심 많았던 나였다. 그래서 이렇게 타이틀이 굳혀지는 게 내 마음속으로 너무 아쉬웠다. 어떻게 보면 지겨운 질문인 것도 맞다. 하지만 나를 표현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

위로로 가득했던 주변,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도 있었을 것 같은데.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3명이 하면 각자는 1번뿐이었겠지만, 나한텐 3번이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게 괴로웠다. 어느날 오랜만에 홈경기를 가는데 나를 모르는 팬이 있었다. 내가 우리은행 와서 첫 경기에서 바로 또 다쳤기 때문에. 저 선수는 누구야? 라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상처받았던 게 이적해서 첫 경기 만에 다친 선수라고 알려주더라. 상황을 설명한 건데 그게 좀 상처가 됐다. 그 후로 홈경기장 찾아가는데 솔직한 말로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난 감정이 얼굴에 티 나는 스타일이다. 표정 관리 못할 바에는 그냥 빨리 지나가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팬들이 유승희, 유승희! 부르는데 장난치며 그냥 지나간 적 있다. 어떻게 보면 예의 없는 행동인데 내 딴에는 개그로 소화하고자 귀를 와와 이러면서 스쳐 간 거다. 물론 지금은 괜찮아졌다.



그래도 힘이 됐던 순간들을 돌아본다면?
당연히 힘이 돼 주는 사례가 더 많다(웃음). 방금 말한 건 일부분이다. 팬들이 다 잘 챙겨주신다. 내가 벤치에 앉아 있는데도 나만 봐주는 팬도 있다. 편지도 써주시는데 그냥 힘내요? 이런 게 아니다. 써준 편지들은 모아놨다가 힘들 때 열어서 쭉 본다. 보면서 아, 해야지 이런 마음이 든다.

한 선수는 유승희 선수를 보고 용기를 얻는다고 하더라. 사실 좋은 키워드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다른 의미로 후배들에게 영향을 준 건데 드는 생각이 궁금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만을 생각했을 때는 농구선수로서 아쉬운 길이었지만, 상황이 어떻게 되든 누구한테 힘이 됐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조금 늦은 질문이다. 3번째에 일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봐도 팀 자체로 봐도 그만해야 했던 상황이 맞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그냥 농구선수 유승희로서 조금의 기회를 더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감사한 마음이다. 사실 주위에서 달콤한 말로 나를 설득했는데 난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수술해 주신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전주원 코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코치님은 선수 시절 출산까지 하고 돌아왔다. 여기에 십자인대 부상도 있었다. 코치님은 당시 마지막 인사를 하더라도 코트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다시 하셨다고 했다. 그게 맞는 말이다. 나도 은퇴하더라도 코트를 밟고 은퇴하는 게 보답, 아니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분들이 합쳐져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재충전이 필요할 땐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따릉이(자전거) 타는 거 좋아한다. 조용한 카페 가서 혼자 책 읽는 거. 거짓말 아니다(웃음). 내가 만든 게임(?)이 있다. 선수끼리 서로 장점이나 부러운 점을 이야기하는 게임이다. 요즘 서로에게 칭찬을 잘 안 하니까 좋은 이야기 주고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예진이가 나한테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낸다고 했다. 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랑 있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여러 명이 같이 있으면 피곤한 게 있지 않나.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김단비 선수와 있으면 심오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들었는데?
(김)단비 언니한테 부러운 점을 이야기하면 남편 있는 게 부럽다고 한다. 진짜 부러우니까(웃음). 현실적인 부분들이다. 단비 언니도 나도 앞으로 농구한 날보다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선수다. 이건 확실하니까 농구 그만두면 어떤 일 할까? 이런 식의 다양한 주제를 나눠서 그런 것 같다.

답을 찾았는지도 궁금한데?
진짜 어려운 문제더라.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만 했으니까. 아직 답을 못 정했다. 이거 하나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사계절을 온전히 느껴보는 거? 가을 겨울은 시즌 때라. 난 남들이 하는 거 다 해보고 싶은 사람이다. 겨울에 일본 삿포로 많이 가지 않나. 이렇게 생각보다 별건 아니다(웃음).



작은 식당을 차려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하고 싶은 거 진짜 많다. 언니한테 툭툭 던졌던 말 중 하나다. 단순히 식당을 하자? 이런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먹는 거 좋아하고 작게 차리면 손님들이 무슨 이야기 하는지 들을 수 있어서(웃음). 난 어릴 때부터 농구만 해왔으니까. 밖에 사회생활도 똑같다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다른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이런 궁금증이 있다. 그래서 작게 차려서 하면 재밌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이 생각을 접었다. 내가 음식을 생각보다 너무 못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다(눈물).

위성우 감독에게 한 끼 대접한다면 어떤 음식을? 하면 맛이 없을 테니 사드리는 걸로(웃음).
감독님 생각하면 기억에 남는 게 떡볶이다. 우리은행 오고 첫 오프시즌 때 유명한 떡볶이집에서 선수들 먹으라고 포장해 오신 적 있다. 즉석 떡볶이는 아니었다. 떡볶이가 당도 많고 탄수화물도 많아서 감독님은 웬만하면 피하라고 하신다. 몸에 좋은 음식만 먹으라고. 그 떡볶이집에 가서 식지 않은 떡볶이를 같이 먹고 싶다. 금지된 콜라와 함께 말이다. 약간 반항인가(웃음)? 모르겠다!

선수들한테 패션에 관심 많다고도 들었는데, 이번 콘셉트는?
나 놀리는 것 같은데… 아니 내 장점으로 요즘 추세를 잘 안다고 하는데, 단점으로 요즘 젊은 친구들이 하는 걸 다 하려고 한다고 꼽았다. 결국 젊은 척하는 늙은이 느낌이라는 건데(웃음). 일단 이번에는 12월호 잡지에 들어간다고 해서 연말 느낌을 내보려 했다.

반대로 꼽아보자. 우리은행에서 가장 웃긴 선수는?
아 누가 있지. 근데 내 성격 자체가 빵빵 터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명관이 떠오르는데 나랑 웃음 코드가 좀 다르다. 2절까지만 하면 웃긴 데 (이)명관이는 3, 4절까지 한다. 내가 지친다. (이)혜미도 웃기고 (강)계리 언니도 그렇다. 그런데 계리 언니는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선배로서의 체통을 지켜주세요(웃음).



이제 슬슬 마무리해 보려고 한다. 굴곡 있었던 인생 그래프,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것 같은데.
올라갈 일만 남았으면 좋겠다. 오프시즌 힘들게 준비했는데 우리가 이걸 보상받는 법은 결국 좋은 성적이다. 팀 전체가 부담 가지지 않고 잘 해냈으면 한다.

부상 이야기 빼고 팬들에게 유승희는 어떤 선수로 기억됐으면 하는지?
근데 내가 생각해도 십자인대 부상 3번은 이길 수 없다(웃음). 이미 이쪽 노선을 탔다. 팬들이나 후배들에게 나중에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그 언니도 했는데… 인생에 한 번쯤은 이 생각으로 후배들을 버티게 만든 선수로 말이다.

힘들 때 위로해 줬던 사람들에게 반대로 한 마디 남겨주자면?
우리 팀원들한테도 그렇고 팬들에게도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내가 고생한 만큼 고생하셨다고 전하고 싶다.



“우리 유승희는요”
김단비와 유승희는 과거 인천 신한은행 시절부터 함께했던 동료다. 누구보다 유승희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김단비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보시기에 승희가 인상을 써서 화가 되게 많을 것 같이 느낀다(웃음). 그런데 되게 예의 바르고 언니들한테 선 넘지 않고 바르게 사는 친구다. 코트에서 순간 승부욕이 강해서 그렇지 밖에선 완전 반대다”라고.

함께했던 세월이 있기에 3번의 부상을 모두 지켜본 이도 김단비다. “되게 많이 힘들어했다. 승희는 고집 있는 선수다. 농구에 대한 욕심이 정말 크다. 그래서 힘들거나 아프거나 할 때도 멈추지 않고 계속 훈련한다. 이런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승희가 오랜만에 뛰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뭉클했던 순간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메시지도 전했다.

“힘든 재활의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코트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오히려 난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승희한테 이야기한다. 시계추처럼 하라고. 욕심을 좀 버렸으면 한다는 의미다. 조금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코트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말이 조금 이상할 수 있는데 승희는 어떤 뜻인지 알 것이다. 둘이 함께할 시간이 앞으로 많지는 않을 거다. 둘 다 한 해 한 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뛴다. 같이 뛰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서로 믿고 이번 시즌 잘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사진_문복주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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