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책임 져!" 감독의 농담 한마디, 10년지기 김선형에게는 왜 다르게 들렸나

잠실/정다윤 기자 / 기사승인 : 2026-03-30 07: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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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잠실/정다윤 기자] 태양은 지지 않는 '플래시 썬' 김선형(37, 187cm)은 승부처에서 다시 증명했다. 


베테랑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지 않았다. 흐름이 흔들리던 순간에 직접 득점으로 물꼬를 텄고, 동료를 살리는 패스로 판을 뒤집었다. 그렇게 김선형은 29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LG전자 프로농구 정규시즌 서울 삼성과의 맞대결에서 승리(83-78)를 품에 안겼다.

전반을 38-40으로 근소하게 뒤진 KT는 3쿼터 들어 김선형의 손끝에서 반전을 만들었다. 추격의 문을 연 것은 3점슛이었다. 이어 특유의 스피드를 앞세운 속공으로 연속 득점을 올리며 코트를 단숨에 뒤흔들었다. 여기에 박준영의 외곽포를 이끈 패스까지 더해지며 KT는 마침내 리드를 움켜쥐었다. 한동안 팽팽하던 경기는 김선형이 템포를 끌어올린 그 시점부터 결이 달라졌다.

3쿼터에만 9점을 몰아친 김선형은 후반 승부처 16분 25초동안 16점을 책임졌다. 특히 접전의 한복판에서 팀이 기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또렷하게 보여준 활약이었다.

경기 후 김선형은 “한 경기 한 경기가 정말 중요한 시기다. 감독님께서 잘 준비해주신 플랜대로 경기가 잘 흘러갔다. 선수들이 매 순간 집중해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연승까지 이어갔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라고 승리 소감을 전했다.

이날 조나단 윌리엄스가 22점 10리바운드로 골밑을 지탱했고, 김선형은 그 존재감을 누구보다 잘 읽고 있었다. 베테랑 가드의 시선은 자신의 득점보다 함께 맞물린 호흡에 더 오래 머물렀다.

윌리엄스의 활약에 대해 “조나단(윌리엄스)이 많은 연구를 해왔다는 게 느껴졌다. 공수에서 모두 좋은 역할을 해줬고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구심점 역할도 인상적이었다. 연습 때부터 소통을 많이 하려는 선수인데 나와도 2대2 플레이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부분이 실제 경기에서 플레이로 이어지는 모습이 나왔다. 앞으로 더 호흡을 맞춰가면 한층 좋은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승리로 KT는 2연승을 달렸다. 그 한가운데에는 또 김선형이 있었다. 지난 KCC전에서도 4쿼터 막판 상대의 추격에 찬물을 끼얹는 해결사 역할을 해냈고, 이날 역시 살얼음판 같은 흐름 위에 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팀이 힘들 때마다 중심을 세우는 일은 늘 가장 신뢰받는 이의 몫인데, 문경은 감독이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도 그 무게를 잘 보여준다.

이에 김선형은 “지난 경기 감독님께서 장난스럽게 ‘네가 책임져’라고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그 한마디가 나를 그만큼 믿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10년 동안 함께한 시간이 있다 보니 결국에는 ‘너를 믿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 신뢰 덕분에 나 역시 더 자신 있게 내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승부의 마침표를 찍은 장면도 김선형다웠다. 4점 차로 쫓기던 경기 종료 1분 39초 전, 그는 주저 없이 딥쓰리를 꽂아 넣었다. 쫓기던 팀에는 숨통을 틔우는 한 방이었고 상대에게는 사실상 추격 의지를 걷어내는 비수였다. 그리고 그 직후 코트에는 김선형다운 유쾌함까지 번졌다. 권총 세리머니에 기관총 세리머니까지 더해지며 긴장으로 팽팽하던 공기를 단숨에 풀어냈다.

김선형은 “딥 쓰리를 성공시킨 뒤 벤치를 돌아봤는데, 모든 선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플래시 썬 세리머니’를 해주고 있더라. 그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그 순간 감독님과 갑자기 눈이 마주쳤다. 원래는 권총 세리머니를 하는 편인데 감독님이 ‘람보 슈터’이지 않나. 그래서 냅다 기관총 세리머니를 감독님께 쐈다”며 웃었다.

이날은 기록까지 따라왔다. 김선형은 역대 6호 3000어시스트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마지막 잠실체육관에서 거둔 승리와 함께 새긴 기록이라 더 뜻이 깊었다. 다만 김선형의 말은 끝내 자신에게 머물지 않았다. 어시스트라는 기록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답게, 그는 공의 마지막 궤적을 완성해준 동료들에게 가장 먼저 공을 돌렸다. 자신이 연결한 패스를 누군가가 마무리해줄 때 비로소 숫자가 된다는 사실을, 김선형은 기록보다 더 선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김선형은 “어시스트는 결국 내가 패스를 건넸을 때 동료가 마무리해줘야 완성되는 기록이다. 그래서 이 기록 역시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와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최근 (박)준영이의 슛 감이 조금 올라오지 못했는데, 경기 전에도 ‘왠지 오늘(29일)은 넣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마침 내가 연결한 패스를 득점으로 마무리해줘서 더 기분이 좋았다. (문)정현이 역시 중요한 순간 내가 건넨 패스로 3점슛을 성공시켜줬다. 그래서 더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절친인 김선형과 이관희가 보여준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이팔청춘즈(88년생)’는 더는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팀이 필요로 하는 순간이면 여전히 청춘처럼 가장 앞에서 뛴다. 그렇게 두 베테랑은 이날 국내선수 중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경기 전 짧은 대화도 나눴고 몸이 부딪히는 장면에서도 서로를 일으켜 세웠다. 오래 버틴 선수들끼리만 공유하는 결이 있었다. 

이에 김선형은 “고참 선수들끼리 만나면 서로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웃음)”며 그는 “몸 상태나 컨디션 같은 부분을 오히려 더 챙기게 된다.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그만큼 서로를 리스펙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존중이다. 경기 전에도 잠깐 대화를 나눴다. 요즘 관희가 백보드를 많이 쓰길래 ‘일부러 그렇게 쏘는 거냐’고 물었더니, 피식 웃더라. 아마 영업 비밀인 것 같다”며 말했다.

문경은 감독이 구상하는 강성욱-김선형의 투가드 체제 역시 김선형이라는 축이 있기에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는 분위기다. 강성욱에게 김선형은 롤모델이고, 김선형은 그런 후배의 시행착오를 옆에서 붙들어주는 선배다.

김선형은 “감독님이 짜주신 전술은 선수라면 당연히 잘 따라야 하는 부분이다. 지금도 잘 맞춰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성욱이가 아직 신인이다 보니 경기 운영이나 세세한 부분에서 미숙할 때가 있는데, 내가 옆에서 잡아주면서 계속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런 부분도 함께 맞춰가면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특하기도 하다“며 후배 사랑을 전했다.

KT는 이제 3경기(LG-현대모비스-소노)를 남겨두고 있다. 한 번만 미끄러져도 벼랑 끝으로 몰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김선형의 말은 더 가볍지 않았다. 패배 하나가 끝이 될 수 있다는 긴장을 먼저 꺼냈다. 어쩌면 지금 KT가 붙들고 있는 희망의 끈도 그런 태도에서 더 질겨지는 것인지 모른다.

“한 경기라도 지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임할 것이다. 세 경기가 남았다고는 하지만, 나는 늘 한 경기만 남았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KCC전부터 계속 그런 마음가짐으로 뛰고 있다. 아마 선수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본다. 지금 팀 분위기는 좋지만, 결국 한 번의 패배가 끝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매 경기 임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사진_백승철 기자, 점프볼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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