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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한 김민규의 시그니처가 된 마멋 표정. 흔쾌히 지어주는 그야말로 일류다. |
특히 체육교육을 전공으로 하는 선수들은 부지런히 농구를 이어 오다 리프레쉬를 한 번 하게 된다. 바로 교생 실습이다. 졸업을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이기에, 피로감만으로 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을 보면서 얻는 에너지는 생각 이상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김민규가 전한 교생 실습의 기억은 굉장히 과격하고 짜릿했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 나아가 반 대항전의 추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할까. 게다가 김민규가 교생 실습으로 몸담은 학교는, 남고였다. 여기서 사실 말 다했다.

수비수 강등(?)에 아쉬움만을 느끼고 있던 승부사 김민규. 그러나 다음날 잠에서 깬 그를 맞이해주는 건 짜릿하디 짜릿한 종아리 통증이었다.
“그런데 수비수 좌천을 아쉬워할 게 아니었어요. 다음 날에 통증이 몰려오면서 아예 못 걷겠는 거예요. 최대한 안 절뚝거리면서 교생실습에 나서야 했는데 정말 짜릿했어요.” 교생 실습 퇴근 후 안암으로 운동을 하러 가야 한 그에게는 축구가 참 웬수 같았을 것이다. 승부욕이 뭐라고.
다행히 주발인 오른발에 입은 부상은 아니었다. 이는 김민규의 정상적인 출근을 도왔다고 한다. 만약 오른쪽 종아리 부상이었다면, 팀 운동 뿐만 아니라 교생 실습에도 차질이 생길 뻔 했다고 하는데… 왜였을까. “왼쪽 종아리여서 정말 다행이었던 게, 그때 부모님 차를 빌려 타서 학교를 왔다 갔다 했었거든요. 오른발을 다쳤다면, 페달과 브레이크 밟는 데 지장이 가서 지하철을 타고 다녔을 거예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출근 시간 지하철? 저는 못 견뎌요.” 지옥철은 인정.


양우혁을 번쩍 안은 김민규는, 동생의 덩크슛을 도왔다. 종아리 메디컬 체크를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하다니… 대구의 화사 그리고 마멋은 참으로 건강했다.

#사진_이상준, 정다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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