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성의 눈]얼리 엔트리, ‘얼마나 빨리’ 보다 중요한 것은?

정지욱 기자 / 기사승인 : 2025-09-09 09: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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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글/신기성 tvn해설위원, 정리/정지욱 편집장]9월 7일, 24절기 중 하나인 백로가 지나며 계절은 어느덧 가을로 향하고 있다. 시원해진 바람에서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듯, 한국 농구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


U-16 아시아컵 농구대회를 시작으로, 대학 농구 후반기와 중·고등부의 마지막 대회인 추계 전국 남녀중고농구연맹전이 차례로 열리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농구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

바로 2025년 KBL 신인 드래프트다. 신청 접수가 9월 1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면서 농구계는 다시 여러 논란과 긴장 속으로 들어간다. 고등학교 3학년 선수들과 대학에 재학 중인 선수들이 ‘프로 무대 조기 진출(얼리 엔트리)’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늘 비슷하다. 프로 구단들은 좋은 선수를 한 해라도 빨리 확보해 성장시킬 기회를 갖고 팀에 필요한 선수로 키우고 싶어한다.

얼리 엔트리, 기회의 문인가 부작용의 시작인가?
프로의 문을 두드리는 건 분명 선수들에게 꿈을 앞당겨 잡을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아직 신체적·정신적으로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의 높은 경쟁 속으로 들어가면 성장의 곡선이 꺾이는 경우도 많다.

특히 얼리 엔트리를 고민하는 선수라면, 단순히 ‘프로에 빨리 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아니라 자신의 정확한 목표와 방향성을 분명히 세운 뒤 선택해야 한다. 프로에서 즉시 전력감이 되는지, 성장할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또는 대학 무대에서 조금 더 다듬은 뒤 도전하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한지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 프로 선수들은 수년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집단이다. 이 치열한 무대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선수들이 과연 경쟁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얼리 엔트리’의 현실적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물론 LG 양홍석, KCC 송교창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 무대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사례도 있다. 이들의 성공은 얼리 엔트리가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측면을 보여줬고 실제로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제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모든 선수에게 동일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 농구와 고등학교 농구 현장은 큰 타격을 받는다. 리그의 핵심 전력들이 빠져나가면서 경기력이 떨어지고, 남은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흔들린다. 팬들의 관심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농구 생태계 전체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미국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어왔다. 과거 NBA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2006년부터 제도를 바꿔 ‘최소 19세 이상, 고등학교 졸업 후 1년이 지나야 참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는 선수들이 최소한의 성숙 과정을 거친 후 프로에 입문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다.

또한 NCAA, G리그, 해외 리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선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는 선수 개인의 성장을 보호하면서도 리그 전체의 균형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한국 농구에 필요한 제도적 고민.
한국 농구계 역시 이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자유보다는 선수 보호와 농구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최소 학년 제한을 두어 고등학교 졸업 직후의 진출을 막거나 프로 구단이 조기 선발한 선수들에게 교육 프로그램·멘탈 관리·출전 시간 보장을 의무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단순히 ‘빨리 뽑아 키우겠다’는 구단의 논리가 아니라, 한국 농구의 미래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농구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한순간의 선택이 선수 개인의 커리어뿐만 아니라, 고교·대학·프로 리그 전체의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이야말로 KBL과 대한농구협회, 그리고 교육 현장이 머리를 맞대고 제도를 재정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싶다.

한국 농구의 경쟁력은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얼마나 튼튼하게’에 달려 있다. 얼리 엔트리에 대한 현명한 제도 개선이야말로 한국 농구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1998년 인천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에서 과연 나를 선택한 팀은 어디일까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그때, 전화벨 소리에 떨리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던 그 순간이 생각난다.

'여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진=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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