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투표인단(44명)
임근배, 위성우, 박정은, 김완수, 구나단, 김도완, 전주원, 변연하, 임영희, 정미란, 허윤자, 정진경, 김보미, 배혜윤, 한채진, 박혜진, 양인영, 김한별, 염윤아, 한치영, 정장훈, 정상호, 김병천, 김일구, 임태규, 최기욱, 손대범, 최용석, 허재원, 김기웅, 남정석, 김일두, 안덕수, 김연주, 김은혜, 박상혁, 박진호, 정지욱, 한필상, 이재범, 최창환, 배승열, 서호민, 조영두
점수 산정은?
44명의 투표자가 각 1위~10위까지 10명 선수를 선정. 순위별로 1위 10점, 2위 9점, 3위 8점순으로 점수를 부여해 산정. 1~5위까지는 점수를 공개하며 나머지 20명의 선수는 순위, 점수 공개 없이 무작위로 공개.
티나 톰슨
1975년 2월 10일생/187cm/포워드/금호생명-KB스타즈-우리은행-KDB생명
정규리그 통산 1221점 610리바운드 78어시스트 62스틸 64블록슛
WKBL에서 인상적인 커리어를 쌓은 또 한 명의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전설이다. 미국에서는 캐칭못지 않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WKBL에서는 4시즌을 소화했다. 가장 빛난 순간은 우리은행에서 뛴 2012-2013시즌이다. 당시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 체제에서 맞은 첫 시즌이었다. 몇 년간 최하위권을 맴돌았던 우리은행은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통합우승의 영광을 이뤄냈다.
톰슨은 해결사가 필요했던 팀에 꼭 맞는 카드였다. 개막 이전 외인 드래프트 때 만해도 전성기를 지났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규리그에서 평균 21.6점 11.3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파이널에서는 더 위력적이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포를 가동해 삼성생명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3경기에서 평균 23.0점 12.7리바운드 3.7어시스트의 전천후 활약을 펼치면서 이름값을 했다. 파이널 MVP는 임영희에게 돌아갔지만 톰슨이 사실상 MVP 퍼포먼스를 펼쳤다. 우리은행 선수들이 ‘티나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코트 위에서 의지할 수 있는 선수였다.
이듬해에는 당시 최악의 팀 중 하나였던 KDB생명에 드래프트 됐는데, 매 경기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군분투하다가 시즌 도중 부상으로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2018년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현재는 버지니아 대학교 여자농구부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1971년 11월 23일생/178cm/포워드/삼성생명
정규리그통산 640점 273리바운드 136어시스트 52스틸 39블록슛
베스트5 1회, 자유투상 1회
한국여자농구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포워드다. 현역시절 파워넘치는 플레이에 내외곽 공격을 모두 겸비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로 주목을 받았다. 사실 유영주는 WKBL에서 남긴 업적 자체는 뚜렷하지 않다. 전성기를 지난 시점에 WKBL이 출범했기 때문에 누적기록, 개인상 수상 면에서도 커리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유영주가 WKBL 출범 후에는 줄곧 삼성생명에서만 뛰다 은퇴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팬들이 대부분이다.
농구대잔치 시절 선경(SKC)의 에이스 이미지로 남아있다. 또한 오랜 기간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이 워낙 강렬해 이를 기억하고 있는 연령대에서 표가 나왔다. 선경은 WKBL 출범 직전 팀이 해체됐는데, 이때 유영주는 삼성생명으로 이적했다. 출범 첫 시즌이었던 1998 여름리그 8경기에서 평균 17.1점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 한몫했다. 인성여고 동창이자 실업 시절 내내 경쟁 관계였던 정은순과 삼성생명에서 만나 함께 이룬 우승이었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74년 3월 4일생/168cm/가드/현대-우리은행-KB스타즈
정규리그 통산 425경기 6164점(7위) 1166리바운드 1594어시스트(10위) 661스틸(6위) 3점슛 921개(3위)
정규리그 및 플레이오프 MVP 각 2회 베스트5 6회 3득점상 5회 3점 야투상 2회 2점 야투상 1회
‘총알낭자’ 김영옥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공을 잡았다. 농구에만 매진한 건 아니다. 중학교 때까지 농구와 육상을 병행했다. 춘천여고 시절 팀 창단 44년 만에 우승을 안긴 김영옥은 92-93 농구대잔치부터 태평양화학 유니폼을 입었다. 태평양화학이 1997년 팀을 해체하자 신세계가 이어받았다. 그렇지만, 김영옥이 신세계에서 뛸 자리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 김영옥은 전주원을 만나 기량을 제대로 꽃피웠다.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는 “김영옥은 워낙 빨라서 볼을 날려주면 속공 레이업을 올려놨다. 슛까지 좋아서 막기 까다로운 선수였다”며 “농구는 키가 커야 유리한 종목인데 스피드와 힘을 갖추고 공격력이 뛰어나서 2번(슈팅가드)을 주로 봤다”고 김영옥의 설명했다. 고향 팀이었던 우리은행에서 전성기를 보낸 김영옥은 KB스타즈에서 2010~2011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KB스타즈 시절 김영옥을 지켜봤던 BNK 정상호 사무국장은 “태백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다. 로드워크를 하면 국가대표 중 제일 빠른 기록이 권투 선수의 36분이었는데 김영옥은 43분 정도에 올라왔다. 다 올라와서도 호흡이 안 가쁘다. 심호흡 한 번이면 끝이었다. 체력은 최고였다”고 김영옥의 일화를 들려줬다. WKBL 올스타게임에서 최초로 MVP에 2회 선정되었던 김영옥은 은퇴 후 중국리그에서도 활약하는 농구 열정을 보여줬다.

1987년 9월 7일생/179cm/포워드/신세계-KEB하나-우리은행(현재)
정규리그 통산 7747점(3위) 2596리바운드(7위) 1330어시스트 483스틸 341블록슛
플레이오프 MVP 1회 베스트5 6회 득점상 4회 모범선수상 1회 신인상
김정은은 2006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신세계에 입단했다. 1순위 답게 데뷔시즌부터 평균 35분 45초 동안 11.8점 4.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3번이나 득점왕에 오르는 등 리그 최고 스코어러로 인정받았지만 신세계와 KEB하나은행 시절에는 팀 성적이 좋지 않아 빛이 바랬다. 우승과 연이 없던 그는 리그 우승보다 금메달을 더 빨리 목에 걸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여자농구 대표팀이 20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2017~2018시즌을 앞두고 FA자격을 얻어 우리은행으로 이적했다. 우승을 위한 선택이었다. 직전 두 시즌 동안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이적 첫 시즌부터 34경기 평균 12.8점 4.5리바운드 2.9어시스트로 건재를 과시하며 정규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3경기 평균 23.3점 3.3리바운드 3.0어시스트로 활약하며 MVP까지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우리은행은 통합 6연패에 성공했다. 자신의 첫 우승 커리어이자 MVP 수상이었다. 오랜 설움에 당시 김정은은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했다.
2022~2023시즌에는 김단비의 합류로 식스맨 역할을 하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득점을 올리는 등 존재감은 여전하다.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수령님’이다.

1985년 10월 24일생/168cm/가드/현대-신한은행
정규리그 통산 366경기 2462점 1522리바운드 1447어시스트(11위) 424스틸(19위) 3점슛 236개
정규리그 MVP 1회 베스트5 4회 식스우먼상 1회 어시스트상 1회 자유투상 3회
대전에서 농구를 시작한 최윤아는 2004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정미란, 정선화에 이어 3순위로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 현대는 전주원의 백업 보강을 위해 최윤아를 뽑았는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축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했다. 2년 연속 퓨처스리그 베스트5에 선정된 최윤아는 2005 여름리그 우수후보상, 2007~2008시즌 베스트5에 이어 2008~2009시즌 정규리그 MVP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한때 우승을 휩쓸던 신한은행의 주축 선수였다.
한 농구 관계자는 “우리나라 포인트가드 중에서 전주원과 이미선 이후 최윤아가 꼽힐 정도로 경기 운영을 잘 했다”며 “최윤아는 팔이 길어 스틸도 잘하면서 두 수까지 내다봤다. 만들어주는 능력이 뛰어나 하은주 등 좋은 선수들이 많은 신한은행의 장점을 잘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는 “힘이 있고, 넓은 시야와 패스가 좋았으며 농구를 다부지게 잘했다. 최윤아는 농구에 있어서는 적극적이고, 승부욕이 뛰어나서 신장이 작아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했다”고 함께 호흡을 맞췄던 시절의 최윤아를 기억했다.
2004년 윌리엄 존스컵에 출전해 대만과 경기 후 천 웨이지안의 주먹질에 발차기로 응수해 ‘발차기 소녀’로 불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여자농구 대표팀이 8강에 오르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귀여운 외모로 이후부터 WKBL 최고스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민여동생’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바로 이때다.
그러나 전성기가 길지 못했다. 고질적인 무릎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무릎 상태가 더 악화되어 2016-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BNK에서 코치생활을 했으며 지금은 여자농구대표팀 코치로 정선민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 사진_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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