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BL 25주년 특집’ Greatest Of All Time 25 ①

점프볼 / 기사승인 : 2022-04-18 10: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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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편집부] 한국프로농구는 1997년 2월1일 ‘JUMP FOR THE DREAM’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출범을 알렸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명승부를 연출하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점프볼은 KBL 출범 25주년을 맞아 50명의 설문을 통해 최고의 선수 25명을 조명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프로농구 관계자 및 전문가 50명의 선택을 받은 최고의 선수들을 공개한다.(1~5위를 제외한 나머지 순서는 순위와 관계없이 무작위로 배열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기사는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50명 투표인단
프로농구 10개 구단 감독·주장
유재학, 전희철, 강을준, 서동철, 조성원, 이규섭(대행), 전창진, 이상범, 김승기, 유도훈, 양희종, 차바위, 김종규, 강병현, 김시래, 이정현, 김강선, 함지훈, 최부경, 김영환
김성기(KGC 사무국장), 이흥섭(DB 사무국장), 구본근(현대모비스 사무국장), 손종오(LG 사무국장), 이재호(SK 홍보팀장) 추일승, 이상윤, 추승균, 신기성(이상 스포티비 해설위원), 김태술(은퇴선수·점프볼 자문위원), 손대범(KBSN 해설위원), 최용석(스포츠동아), 허재원(YTN), 김동찬(연합뉴스), 박세운, 김동욱(CBS노컷뉴스), 박지혁(뉴시스), 서정환(OSEN), 박상혁, 이동환, 민준구(루키), 손동환(바스켓코리아), 문복주, 정지욱, 한필상, 최창환, 이재범, 배승열, 서호민, 조영두(점프볼·이상 기자단)

1위 서장훈(433점)
1974년 6월3일생/207cm/센터
SK-삼성-KCC-전자랜드-LG-KT
통산 득점 1위(1만 3231점), 리바운드 2위(5235개), 필드골 성공 1위(5285개), 자유투 성공 2위(2223개), 정규리그 MVP 2회, 플레이오프 MVP 1회, 베스트5 7회


최고 퍼포먼스
1998-1999 정규리그 34경기 평균 25.4점 14.0리바운드
1999-2000 정규리그 45경기 평균 24.2점 10.0리바운드
2000-2001 PO 6경기 평균 27.7점(FG 55.7%) 9.7리바운드

‘국보센터’ 서장훈은 KBL의 카림 압둘자바와 같은 존재다. 센터의 영역을 넘어 KBL 역대 최고의 스코어러다. 정규리그 688경기 출전해 세운 통산 1만 3231점(평균 19.2점)의 금자탑은 아직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현역 선수 중 1만 점을 넘은 선수가 없는 현재 당분간은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대중들에게 ‘농구선수 출신 예능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장훈은 KBL을 넘어 한국농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1998-1999시즌부터 2004-2005시즌까지 7시즌 연속 평균 20점 이상을 기록했으며 평균 20점-10리바운드 시즌도 4시즌이나 된다. 오직 서장훈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1998-1999시즌 평균 14.0리바운드로 1위에 올랐다. 이는 프로농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국내선수 리바운드 1위다. 그밖에 필드골 성공 1위(5285개), 자유투 성공 2위(2223개), 리바운드 2위(5235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서장훈의 전성기는 청주 SK(현 서울 SK)와 서울 삼성에서 뛴 9시즌이다. 1999-2000시즌에는 정규리그 MVP, 플레이오프 MVP를 독식하며 SK에 우승을 안겼다. 이후 전주 KCC, 인천 전자랜드(현 한국가스공사), 창원 LG, 부산 KT에 몸담았다. 2011-2012시즌 LG에서는 35경기 평균 7.5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15시즌 중 유일한 한 자리 수 득점이다. 야투 성공률도 유일하게 40%대에 머물렀다. 서장훈 자신도 최악으로 꼽는 시즌이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위력이 반감되기는 했지만, 은퇴하기 직전까지 공격에 있어서는 리그 최고 수준의 능력을 보여줬을 정도로 오랜 기간 꾸준한 기량을 유지했다. 공격 범위도 점점 넓어져 2005-2006시즌부터는 3점슛이 주요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는데 전자랜드 시절이었던 2006-2007시즌에는 성공률 40.8%를 기록, 전문 슈터 못지않은 실력을 뽐냈다.

2위 김주성(372점)
1979년 11월 9일생/205cm/센터
TG삼보(DB 전신)-DB
통산득점 4위(1만288점), 자유투성공 3위(2129개), 리바운드 4위(4425개), 블록슛 1위(1037개)
정규리그 MVP 2회, PO MVP 2회, 베스트5 8회, 신인상(2002-2003), 수비5걸 4회, 우수수비상 2회, 우수후보선수상 1회


최고 퍼포먼스
2003-2004 정규리그 54경기 평균 18.4점(FG 61.8%) 8.9리바운드 2.4어시스트
2007-2008 정규리그 54경기 평균 14.3점 5.9리바운드 2.6어시스트 2.2블록슛
2007-2008 PO 9경기 평균 25.2점 6.4리바운드 3.8어시스트 1.1스틸 1.3블록슛
2009-2010 정규리그 50경기 평균 16.3점(FG 62.3%) 6.6리바운드 3.9어시스트 1.5블록슛

서장훈이 KBL 역사상 최고의 ‘창’이었다면 김주성은 최고의 ‘방패’이자 한국농구에 흔치 않은 ‘림프로텍터’다. 김주성 뛴 기간 동안 DB는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갖춘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생긴 수식어가 ‘DB산성’이다. 정규리그 742경기를 뛰었으며 역대 최고 림프로텍터답게 정규리그 통산 1037개의 블록슛(통산1위)을 기록했다. KBL 역사상 1000개 이상의 블록슛을 기록한 선수는 김주성 뿐이다.

역대 최고의 방패라고 하지만 득점력도 무시할 수 없다. 평균 20점 시즌이 없었기 때문에 서장훈에 비해 득점력이 떨어져 보일 뿐이다. 선수 말년에 치른 2시즌을 제외하고는 16시즌 중 14시즌 연속으로 평균 10점 이상 올렸다. 2003-2004시즌 평균18.4점이 가장 높은 기록이다. 평균 17점 시즌도 3차례나 있었다. 통산 1만 점을 넘긴 4명(서장훈, 애런 헤인즈, 김주성, 추승균) 중 1명이다. 통산 1만 288점은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김주성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뽐낸 것은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2007-2008시즌이다. 플레이오프 9경기에서 평균 25.2점을 기록, 외국선수급 포스를 자랑하며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다.
선수 말년에는 외곽에서 던지는 3점슛도 쏠쏠했다. 2002년 프로 데뷔 후 13시즌 동안 경기당 3점슛 시도가 1개를 넘긴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2015-2016시즌부터 3점슛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16-2017시즌에는 경기당 4.2개까지 증가했다. 2015-2016시즌에는 3점슛 성공률 48.5%를 기록했다. 자유투성공 3위(2129개), 리바운드 4위(4425개)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2-2003시즌 신인상을 시작으로 2번의 정규리그 MVP, 2번의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으며 식스맨으로 내려선 2017-2018시즌에는 우수후보선수상(식스맨상)을 받았다. KBL 역사상 MVP와 식스맨상을 모두 받은 선수는 김주성과 주희정 뿐이다.

DB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로 선수 시절 사용했던 32번은 DB의 영구결번이다. 2009-2010시즌에는 5번을 달고 뛰기도 했다. 현재는 DB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 중이다.

3위 양동근(357점)
1981년 9월14일생/180cm/가드
울산 현대모비스
통산 득점 9위(7875점), 어시스트 3위(3344개), 스틸 2위(981개), 필드골 성공 9위(2936개), 정규리그 MVP 4회, 플레이오프 MVP 3회, 베스트5 9회, 우수수비선수상 2회, 수비5걸 3회


최고 퍼포먼스
2006-2007 정규리그 40경기 평균 15.7점(필드골 51.5%) 3.6리바운드 5.9어시스트 1.9스틸
2006-2007 PO 10경기 평균 19.7점(필드골 53.1%) 4.1리바운드 7.4어시스트 1.6스틸
2010-2011 정규리그 45경기 평균 16.5점 3.0리바운드 5.5어시스트 1.6스틸
2011-2012 정규리그 54경기 평균 14.9점 3.2리바운드 6.0어시스트 1.5스틸
2014-2015 PO 9경기 평균 19.0점(필드골 52.1%, 3점슛 50%) 3.9리바운드 4.0어시스트
2015-2016 정규리그 45경기 평균 13.6점(3점슛 42.5%) 3.3리바운드 5.6어시스트 1.4스틸

농구는 개인이 아닌 팀 스포츠다. 팀 스포츠의 단위에서 볼 때 양동근은 KBL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낸 선수다. 팬들의 기억 속에 그가 남긴 이미지는 ‘챔피언’ 이다. 6번의 플레이오프 우승이 이를 증명한다. 우승 반지가 한 손에 모자란다. KBL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을 경험한 선수다. 4번의 정규리그 MVP, 3번의 플레이오프 MVP까지 수상했다. 30대 중반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을 걷는 대부분의 선수들과 달리 양동근은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리그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했다. 선수로 활약한 14시즌 모두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2017시즌부터 2018-2019시즌까지는 팀의 중심이 이대성(오리온)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역할이 줄어 기록상으로 평균 득점이 한 자리 수에 그쳤지만, 팀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했다. 팀의 에이스로서도, 후배들의 도우미 역할로서도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뽐냈다.

그는 최고의 공격수인 동시에 최고의 수비수이기도 했다. 한국농구 역사상 그보다 득점을 잘하는 가드, 패스를 잘하는 가드는 있었지만 공격을 하면서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력까지 뽐낸 선수는 없었다. 2014-2105시즌에는 정규리그 MVP, 플레이오프 MVP에 우수수비선수상, 수비5걸까지 독식했다. KBL 역사상 아무도 이뤄내지 못한 기록이다. 선수 경력 자체가 곧 전성기였던 양동근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뽐낸 시즌이기도 하다.

‘영혼의 파트너’ 크리스 윌리엄스(작고)와 함께한 2005-2006, 2006-2007시즌에는 가드임에도 필드골 성공률 50%를 넘기기도 했다. 정규리그 통산 득점 9위(7875점), 어시스트 3위(3344개), 스틸 2위(981개), 필드골 성공 9위(2936개)에 랭크되어 있다.

현대모비스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로 등번호 6번은 영구결번이다. 2019-2020시즌 마지막 라운드 9경기를 오랜 친구 크리스 윌리엄스의 등번호 33번을 달고 뛸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리그가 조기 중단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은퇴 투어도 할 수 없었다. 은퇴 후 1년을 쉰 뒤 2021-2022시즌부터 현대모비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았다.

4위 이상민(275점)
1972년 11월 11일생/183cm/가드
전주 KCC(대전 현대)-서울 삼성
통산 어시스트 2위(3538개), 스틸 4위(881개), 정규리그 MVP 2회, 플레이오프 MVP 1회, 베스트5 4회


최고 퍼포먼스
1997-1998 정규리그 43경기 평균 14.3점 5.0리바운드 6.2어시스트 2.2스틸
1997-1998 PO 10경기 평균 16.6점 5.1리바운드 5.9어시스트 2.2스틸
1998-1999 정규리그 34경기 평균 14.4점 4.9리바운드 7.9어시스트 2.1스틸
2003-2004 PO 10경기 평균 10.5점(FG51.5%) 5.9리바운드 6.8어시스트 1.6스틸

이상민은 ‘KBL의 아이콘’ 현역선수 생활하는 동안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코치, 감독을 하는 동안에도 선수 이상의 인기를 누린 한국농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다. KBL 출범 두 번째 시즌이었던 1997-1998시즌 대전 현대(KCC 전신)의 간판스타로 활약하며 팀을 2시즌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2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도 그의 몫이었다.

‘컴퓨터가드’는 날카로운 그의 패스를 잘 설명하는 수식어다. 동료들의 찬스를 놓치지 않고 찔러주는 패스에 그와 함께 뛴 선수들은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득점을 올리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다. 해외 농구 시장에서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조니 맥도웰이 KBL에서 전성기를 누린 것도 이상민의 영향이 컸다. 현대, KCC에서 이상민과 함께 왕조를 구축했던 조성원, 추승균 등도 최고의 가드로 이상민을 주저 없이 꼽는다. 통산 581경기를 뛰면서 3583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주희정(5381개)에 이어 역대 2위의 기록이다. 수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상대 흐름을 끊는 스틸에 이은 재빠른 패스로 손쉬운 속공 득점을 생산했다. 통산 스틸에서도 881개로 통산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상민은 팬들을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실속있는 플레이에 화려함까지 겸비했다. 183cm의 신장으로 덩크슛도 꽂았다. 1997-19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두 차례나 투핸드 덩크슛을 성공시켜 오빠부대의 엄청난 환호성을 이끌어 냈다. 덩크슛을 구사할 수 있는 선수가 한정적이었던 당시 183cm 포인트가드의 덩크슛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팀이 원하는 역할은 뭐든지 해냈다. 2000-2001시즌 6강 플레이오프는 이상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시리즈였다. 당시 맥도웰의 위력이 반감되면서 전력이 떨어진 현대는 SK에 내리 2패를 당하면서 탈락했는데 이상민만은 빛났다. 득점까지 가세하며 엄청난 경기력을 뽐냈다. 2경기에서 평균 22.0점 8.5리바운드 4.0어시스트 2.0스틸을 기록했다. 3점슛 성공률은 50%였다. 비록 팀의 조기탈락으로 빛이 바랬지만 이상민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퍼포먼스였다. 2007-2008시즌을 앞두고 삼성으로 이적해 2010년 은퇴했다. 최고 스타답게 그의 은퇴 기자회견장에는 수많은 팬들이 몰려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선수시절 등번호 11번은 그의 전성기를 보낸 KCC의 영구결번이다.

5위 허재(201점)
1965년 9월 28일생/188cm/가드
기아(현 현대모비스)-나래-TG삼보(이상 현 DB)
플레이오프 MVP 1회, 베스트5 1회

최고 퍼포먼스
1997-1998 챔피언결정전 7경기 평균 23.0점 4.3리바운드 6.4어시스트 3.6스틸
1998-1999 정규리그 45경기 평균 17.1점 4.8리바운드 5.0어시스트 2.2스틸
2002-2003 4강 PO 5경기 평균 14.6점 3.8리바운드 6.0어시스트 1.4스틸

‘농구대통령’ 허재는 한국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프로 출범이었던 1997년 허재의 나이는 32세. 지금이야 한창 전성기를 누릴 나이지만 당시에는 체계적인 몸 관리가 되지 않았던 시기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30대 중반에 은퇴를 했다. 그의 전성기가 지나서 프로출범이 됐기 때문에 기록상으로는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허재의 전성기는 사실상 농구대잔치 시절이었지만, 프로무대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97-19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의 활약은 아직까지도 농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장면이다. 허재는 현대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7경기 평균 23.0점 4.3리바운드 6.4어시스트 3.6스틸을 기록했다. 비록 우승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현대에게 넘어갔지만 허재의 활약은 상대 선수, 팬들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오른 손등이 부러지고 이마가 찢어지고 발목도 성치 않았음에도 시리즈를 지배했다. 7경기 중 5경기에서 20점 이상을 넣었다. 현대에서 그를 막기 위해 전 선수가 달려들어 수비에 나섰지만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6차전에서는 위닝샷까지 책임졌다. 앞서 PO까지 합치면 11경기 연속 두 자리 수 득점이었다. 플레이오프 MVP는 그의 몫이었다. 전무후무한 준우승팀 MVP다.

프로무대에서 뛴 8시즌 중 6시즌 동안 평균 10점 이상을 올리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나래(현 DB)로 이적한 1998-1999시즌에는 두 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2-2003시즌 LG와의 4강 PO도 빼놓을 수 없는 시리즈다. 4차전에서 39분28초를 뛰면서 25점을 올리는 등 5경기에 평균 14.6점을 올리며 불꽃을 태웠다. 이 시리즈는 기아(현 현대모비스) 시절 단짝이자 친형제처럼 지내 온 강동희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PO 맞대결이기도 했다. 허재의 활약으로 LG를 3승2패로 꺾고 파이널에 진출한 TG삼보는 창단 첫 우승의 영광까지 맛봤다. 허재의 상징과도 같았던 등번호 9번은 DB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원주종합체육관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 사진_점프볼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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