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81mm 박격포 매 봤어?” 연습생에서 대체 불가 된 ‘인덕션’ 정인덕의 농구 이야기

이상준 기자 / 기사승인 : 2025-04-16 0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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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상준 인터넷기자] “나는 칭찬에 인색한 지도자다.” 창원 LG 조상현 감독이 인터뷰에서 매번 언급하는 말이다. 그만큼 조상현 감독은 칭찬보다 강한 채찍질을 통한 동기부여로 선수들의 성장을 이끄는 지도자다. 이런 그도 유일하게 매 순간 칭찬을 이어가는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정인덕. 은퇴 후 연습생 다시 프로무대에 돌아와 주전 선수로 자리 잡기까지. 숱한 역경과 좌절을 딛고 LG에 없어서는 안 될 자원으로 우뚝 선 정인덕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3월 11일에 진행됐습니다.

데뷔 후 두 시즌 만에 은퇴를 선언했는데, 큰 이유는 무엇이었나?

프로에 지명된 이후의 삶이 내 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이 컸다. 나름대로 출전 기회를 얻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내 포지션에 워낙 잘하는 선수가 많기도 했지만, 경기를 아예 뛸 기회가 없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인이다 보니 더욱 불안하기도 했고, 스스로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등 힘든 부분이 너무 많았다. 너무나도 많았던 스트레스와 마음고생 때문에 은퇴를 결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12인 엔트리 한 자리를 뚫지 못했고, 프로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에 불과했다.

은퇴 후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아는 선배의 소개를 받아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한 시행사 업체에 들어가 일을 잠깐 했다. 사실 시행사에서의 경험은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일도 나름 재미있었고, 그 형도 워낙 나를 잘 챙겨준 고마운 분이다. 이전에는 본가 근처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부품 조립을 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한평생 운동만 하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해볼 시간이 없다. 아르바이트 경험도 당연히 없었다. 은퇴 후 이것저것 해보자는 생각에 여러 일을 해봤던 것 같다. 그러던 중 2019년 7월,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시기, 군 생활은 어땠나?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했다. 주특기는 81mm 박격포였는데…. 워낙 무거운 장비를 들고 뛰고, 근무를 서다 보니까 허리에 무리가 왔다. 허리디스크가 터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은 다행히 전혀 운동하는 데 있어서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진짜…. 기억하고 싶지 않다(웃음).

군 생활 역시 농구공을 다시 잡게 된 계기를 준 것 같다.
맞다. 한평생 해왔던 것을 바로 잊기는 쉽지 않더라. 게다가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군대에서의 삶은 늘 농구 생각이 나게 만들었다. 주변 지인들도 항상 ‘이대로 농구를 내려놓는 것은 아깝지 않냐?’라는 말을 많이 했다. 고민을 많이 했고, 전역 직전에 다시 한번 농구 선수로 삶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전역 후 지금은 단장님인 손종오 당시 사무국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농구를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다행히도! 정말 잘 받아주셔서 연습생 신분으로 LG에 들어올 수 있었다. 단장님 감사합니다!

연습생이라는 신분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일과와 그때 당시 마음가짐은 어땠나?
동행 여부를 결정하는 한달간의 테스트 과정을 거쳤다. 연습생 시절은 정말 하루하루가 간절했다. 구단에서 나를 좋게 보지 않으면, 바로 다시 험난한 사회로 나가야 했다. 은퇴하기 전의 삶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 생각보다 내가 많은 혜택을 받고 있음을 느꼈다. 좋은 운동 환경과 쾌적한 경기장, 맛있는 식사와 심지어 음료수 같은 구단에서 제공해주는 각종 복지까지 농구 선수로서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다. 당연하게 느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았으니 ‘간절함’ 말고는 어떠한 자세로도 연습생 시절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죽기 살기로 입단 테스트를 준비했고, 그 덕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은퇴 후 복귀 첫 경기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2021년 12월 25일 vs 원주 DB)
오랫동안 떠나있던 곳에 다시 들어서는 게 사실 많이 어색했다. 설레기도 했지만, 어색하고 긴장됐던 마음이 주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멤버 체인지 이후 처음 창원체육관 코트를 밟는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큰 체육관 속 농구 코트 하나는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작은 공간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몇백 명의 농구 선수가 다 뛸 수 없는 곳이 농구 코트다. 나에게는 엄청나게 알 수 없는 큰 감정으로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그 당시 기회를 주셨던 조성원 감독님과 관계자분들께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은퇴 후 복귀 첫 시즌 6경기 출전 평균 0.3점 0.7리바운드의 기록을 남긴 정인덕은 2022-2023시즌, 농구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을 맞는다. 바로 조상현 감독의 LG 사령탑 부임이다. 부임 전에는 정인덕의 이름조차 몰랐던 조상현 감독은 슈팅과 수비에 강점을 갖춘 정인덕을 적극 활용, 정인덕이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조상현 감독과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면?

다시 농구공을 잡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새로웠다. 조상현 감독님의 첫 시즌이었다. 게다가 감독님이 LG에서 선수 생활을 하셨지만, 지도자로 LG에 오신 것은 처음이었다. 선수단 현황 및 개개인의 성향 파악을 하시는 시간이 길었다. 이러한 과정이 나에게는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면 눈에 들 수 있었으니까.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운동은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 정도로 감독님의 훈련은 강도가 높다. 그렇지만 운동선수가 운동을 힘들어하면 이 직업을 이어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힘들어도 해야 한다. 특히 나 같은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선수가 찬밥 더운밥을 가린다? 더욱 말이 안 된다. 내가 최대한 코트에 녹아들면서 감독님이 그리시는 방향성을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조상현 감독이 처음에는 ‘정인덕이 누구야?’라고 하기도 했다는데, 속상하지는 않았나?
에이…. 전혀 속상하고 그럴 것도 없었다. 다른 분이 오셨어도 그럴 말을 하셨을 것 같다. 난 지금도 유명한 선수가 아니고, 그때 당시에는 ‘무명’에 불과했다. 감독님이 내 이름을 처음 들어보셨다고 한 것이 자극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더 최선을 다하여 내 이름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다줬다.

누구보다 수비의 중요성을 크게 이야기하는 지도자, 조상현 감독의 수비 지도의 디테일함은 어느 정도였나?
흠… 뭐랄까? 디테일함의 끝을 보는 기분이다. 수비 전술도 경기당 3~4개 정도 사용한다. 원래 하려던 것이 안 될 때를 대비하여 예비 전술을 그만큼 많이 만들어놓으신다. 내가 여태까지 만난 지도자분들 다 훌륭하지만, 준비를 정말 많이 하시는 분은 조상현 감독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열정적인 감독님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다. 힘들기도 하지만 최대한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함께하고 있다.

한참 어린 유기상, 양준석과 함께 어린 선수로 분류되는 것은 좀 서운하지 않나?

마냥 그렇지는 않다. 나이를 많게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웃음). 한편으로는 같은 나이의 선수들보다 코트에서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물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양)준석이와 (유)기상이는 어리지만, 팀의 핵심 선수들이다. 둘과 함께 묶여서 이야기되는 건 나에게 감사한 일이다.

정인덕에게 조상현 감독이란?
‘농구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분’ 말고는 이야기할 방법이 더 있겠나? 감독님을 만나고 다시 농구를 시작했던 순간보다 더 간절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감독님도 나와 함께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셨기에 함께 성장해가는 느낌도 있다. 감독님 나름대로 연륜과 대처 능력이 늘어나게 되고, 나는 감독님이 믿고 기용해주시는 만큼 경험치가 더 쌓인다. 아 그러면… ‘동반 성장 중’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정인덕은 조상현 감독의 신뢰 속 2022-2023시즌을 마치고, 생애 첫 FA 권리를 행사하며 LG에 잔류했다. 나아가 올 시즌은 군입대한 양홍석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조상현 감독의 전략 속, 데뷔 후 가장 많은 출전 시간을 소화 중이다. 단순 많은 출전 시간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공격에서는 적재적소에 터지는 3점슛을 지원사격하는 슈터, 수비에서는 에이스 스토퍼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 중이다. 올 시즌이 커리어 하이 시즌이다. 이로 인해 상대 9개 구단 사령탑들의 입에서는 “LG에서 가장 경계되는 선수 중 한 명은 정인덕”이라는 말이 종종 나오기 시작했다.

첫 FA 최저 연봉 → 157.1% 인상. 노력에 대한 결실을 맺었다. (계약기간 3년, 보수 9000만 원)

너무 감격스러웠다. 계약 체결 후 구단에 다시 농구를 해보고 싶다고 연락을 드릴 때가 생각났다. 불안하고 막연한 마음속에 다시 농구공을 잡았던 사람이 FA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영광이었다. 감사하게도 타구단에서도 연락을 많이 해주셨다. 하지만 LG는 나에게 기회를 준 감사한 구단이다. 최대한 LG에 남는 것이 목표였고, 단장님 국장님 모두 좋은 방향으로 말씀을 잘 해주셔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늘어나는 에이스 스토퍼의 역할, 수비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선수는 누구였나?
디온테 버튼(정관장). 힘도 좋고, 돌파도 빠른데 자세도 낮아서 막기가 쉽지 않다. 수도 많은 선수다. 외국선수 중에서는 제일 막기가 힘들었다. 국내 선수로는 이우석(현대모비스)과 안영준(SK)을 뽑아야겠다. 워낙 농구를 잘하는 선수들이라 쉽게 막기가 힘들다고 느껴진다.

자리를 가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터지는 3점슛의 비결?
매번 느끼는 것이 프로 무대에서 슛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슈팅 능력이 있으면 공격 옵션 하나, 아니 여러가지가 늘어나는 것이지 않나? 그렇기에 은퇴 후 복귀했을 때 슛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게다가 코너로 빠져서 공간을 벌려주면 팀 동료들이 나에게 알아서 잘 빼준다. 동료들이 나를 위해 희생해주니까 슈팅 찬스에서 더욱 자신 있게 쏘자는 마음가짐이 생기더라.

팀에 많은 슈터(전성현, 허일영, 유기상)가 있는 것도 큰 도움일 것 같은데?
그렇다. 내가 셋한테 슈팅에 대해 따로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지만, 셋 다 슛을 쏘는 움직임이 다 다르다. 움직임을 연구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기상이는 같이 뛰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슛을 쏘기까지의 동선에 대해 더 많이 물어보는 것 같다.

지난해 11월 1일 서울 SK와의 맞대결이 기억나나?
당연하다.

대학 시절(2016년 9월 6일 중앙대학교 VS 건국대학교) 이후 첫 인게임 덩크슛까지 터트렸다.
사실 그 당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수비도 그날따라 더 안 풀린 감도 없지 않아 있었고, 득점도 그 덩크슛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고 있다. 마침 앞에 수비가 없기도 했고, 분위기 반전 목적으로 시도했다.

최근 들어 적장들도 본인을 경계하는 때가 많아졌는데?
내가 공격 1옵션도 아닌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 팀의 공격 1옵션은 내가 아니다. 그저 주축 선수들의 뒷받침을 잘해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시즌 전 전성현에게 등번호를 양보했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전)성현이 형이 트레이드로 우리 팀에 오는 기사를 보는 순간 바로 등번호부터 생각이 나더라. 형이 나의 23번을 쓰고 싶으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고, 생각대로 바로 전화가 오더라(웃음). 성현이 형이 23번을 양보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면서 절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니까 잘 생각해보고 연락을 달라더라. 물론 23번은 은퇴하기 전 시즌에서도 사용했던 번호라 애착은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성현이 형에게 양보할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던 거라 크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게다가 성현이 형이 양보에 대한 보답으로 직접 선물까지 줬으니까 뭐(웃음).

선물이 아주 달콤해 보이는데?
그렇다. 대가로 무려 아이폰 16 프로를 선물해줬다. 아주 잘 쓰고 있다. 선물치고는 다소 비싼 건데… 성현이 형 고마워요!

아내의 내조도 경기력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아내가 다가오는 6월 딸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정말 고마운 것이 임신 중이라 몸도 무겁고 힘들 텐데 아침밥도 늘 챙겨주는 등 내조를 정말 잘해주고 많이 해준다. 안 보이는 곳에서까지 나를 위해 헌신을 많이 해주는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이 나의 아내다. 내가 더 열심히 할 동기부여를 준다.

곧 태어나는 딸, 분유 버프로 지금 보다 더 좋은 활약을 기대해봐도 되나?
하하하. 그렇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의 삶도 지금보다는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더 큰 힘이 생길 것은 확실하니까 코트에서 더 많은 힘을 쏟아보겠다.

‘인덕션’ 별명은 마음에 드나?
말해 뭐하나? 당연히 마음에 들고 너무 좋다. 별명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나의 농구 인생도 ‘인덕션’ 같이 느껴진다. 한순간 식었다가 타오르는 것의 반복이었다. 지금은 타오르는 중이다. 앞으로는 전원이 꺼지지 않도록 해보겠다.

인터뷰 감사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 맘껏 하고 끝내보겠다.
먼저 농구계에서 나의 프로 초창기 시절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어느 상황이 오던 불평불만 하지 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는 오더라. 항상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팬들께 감사함을 꼭 전하고 싶다. 내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코트 밖에서 팬들과 인사를 할 때도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꼭! 알려 드리고 싶었다. 어린아이부터 학생, 부부는 물론 어르신들까지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창원 팬들이 나를 응원해주신다. 추운 날씨에도 항상 1~2시간을 기다려주시더라. 날이 갈수록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유니폼이 경기장에서 많이 보인다. 코트에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처음의 간절한 마음을 이어가며 선수 생활하겠다.

#사진_박상혁 기자,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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