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_성정아 정리_김종수 컬럼니스트
※ 본 기사는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자’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인생을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은지라 하나의 사건에 너무 기뻐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는 소리다. 이는 우리같은 농구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나 싶다. 농구는 장기레이스다. 학창시절이든 혹은 실업, 프로에서 뛰던지간에 리그라는 것이 존재하고 많은 경기를 치러가면서 최종 승자를 결정한다. 그러다보면 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상황이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다. 끊임없이 경기하고 훈련 하는 등 거기에 대한 준비과정도 필요하고…. 매일 같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면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좋아서 뭘해도 펄펄 날 때도 있는 반면 별다른 이유 없이도 몸이 축쳐지며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생긴다. 운동선수들을 보면 이른바 자신만의 루틴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싶은 바람이 강하게 녹아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 역시 운동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늘 자신과 싸워왔던 기억이 난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다. 열심히 훈련하면 기량이 느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노력을 가능하게 하고 독려해주는 것은 마음에서부터다. 내가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간절함을 끌어내느냐에 따라 몸이 움직이는 것이 다르다.
부상, 개인사정 등 여러 가지 변수와 싸우는 것도 마음이다. 세상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운동하던 시절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참 많았다. 학창 시절 갑자기 앞이 안보여서 ‘이러다 실명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떨었던 적도 있었고 실업 초창기 시절에는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어차피 결과론일 수도 있다. 걱정했던 것만큼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잘 해결된 문제들인지라 지금에 와서는 추억이 됐지만 그 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 시절 나는 ‘다 잘될거야. 이것도 과정의 한 부분이야’는 말을 속으로 수없이 되새겼다.
부모님께서는 늘 ‘세상 살다보면 힘든 일도 많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고 노력해서 극복하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듣고 배워서 몸에 밴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내 삶의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좋은 것은 나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부모님께 받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우리 자식들에게도 나눠주려고 노력했다. 말보다는 평소 행동과 생활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부족한 엄마임에도 (이)리나, (이)현중이 모두 밝고 긍정적인 아이들로 자라서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앞으로의 성공 여부를 떠나 그러한 사고를 가졌다는 게 제일 기쁘다.
‘현중이의 부진’ 기사에도 크게 동요되지 않는 이유?
최근 현중이가 부진하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글쓴 시점: 2월초~중순) 득점이 다소 줄어든 것은 물론 무엇보다 3점슛 성공률이 하락한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솔직히 말하면 나나 현중이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나같은 경우 현중이가 잘하든 못하든 늘 걱정이 많은 편이다. 현중이 경기를 지켜보면서 몰입을 심하게 할 때가 잦은지라 보고 나면 뒷머리가 땡길 정도다. 체력소모도 심하다. 마치 내가 경기를 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나친 걱정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그렇게 된다. 언론에서 부진하다는 기사가 나오든, 현중이가 다른 때에 비해서 활약이 저조했든지 간에 특별히 더 동요될 것도 없다. 쓰다 보니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현중이가 이 글을 보면 걱정할 것 같으니 이제는 나도 지나친 과몰입은 자제하고 좀 내려 놓아가면서 경기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중아 이제 걱정하지마. 엄마 즐기면서 보도록 노력할게(웃음).”
한편으로는 부진하다는 기사가 계속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는 한다. 현중이는 기본적으로 슈터 스타일이다. 큰 키에 정확한 슈팅력을 갖추고 있다는 부분이 최고 장점이 아닌가. 그런 선수가 3점슛 성공률이 뚝 떨어졌으니 언론에서는 부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매 경기 결과에 대해 보도를 해야 하기도 하고…. 현중이가 활약이 좋아지다보니 상대 팀에서도 이제 전담 마크맨을 붙일 정도로 경계 대상이 됐다. 현중이의 슈팅 컨디션에 따라 데이비슨대의 경기력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여기에 대한 수비가 보강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내가 감독이라고해도 ‘저 선수가 편하게 슈팅하지 못하도록 괴롭혀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괴롭혀야 할까? 현중이처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슈팅이 완성된 선수는 어지간해서는 슈팅 컨디션이 들쭉날쭉하지 않는다. 컨디션에 따라 기복은 있겠지만 기본적인 사이클이 완성된 상태인지라 몇 개 안들어가다가도 금세 슛 감이 돌아온다. 때문에 슈터를 막으려면 슛을 던지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서 마음부터 흔들어 놓아야 한다. 야구의 투수도 마찬가지지만 심리적으로 동요가 되면 오픈찬스에서도 슛이 안들어가는 등 리듬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슈터를 괴롭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강한 밀착수비로 슛을 마음 놓고 못 던지게 방해를 하는 게 첫 번째다. 그 과정에서 슈터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기 마련이다. 더불어 요새는 분석 시스템이 너무 잘 되어 있다. 단순히 붙어서 열심히 막는 그런 수준이 아닌 방대하게 쌓인 해당 선수의 데이터를 놓고 치밀하게 분석이 들어간다. 선수의 슈팅 타이밍이나 속도는 패스를 받고 움직이는 동선이나 스크린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분석이 된다. 그 정도로 분석이 되면 상대는 선수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미리 알고 수비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슛을 던지는 것을 떠나 시도 자체부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경기를 보면 현중이를 맡는 선수는 그런 세세한 습관까지도 체크해가면서 수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미국선수들은 쿨한 성향이 강하다. 솔직히 말하면 쿨한 것인지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경기중에는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수비를 하다가도 경기가 끝난 후에는 현중이에게 다가가서 ‘오늘 너 열심히 수비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하더라. 막기 힘들었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칭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내 선수들같은 경우 경기 중 신경전이 치열하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감정의 여운이 남아서 쉽게 그러질 못한다. 현중이 역시 이제는 그런 방식에 적응해서 상대가 그렇게 나오면 ‘고맙다. 너 역시 아까 그 플레이는 정말 멋있었다’며 답례를 건넨다. 밥 맥킬롭 감독은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해당 선수가 어떤 기록을 올렸냐보다는 팀에 도움 되는 플레이를 가져갔는지를 먼저 체크한다. 때문에 최근 현중이가 다소 기록적으로 부진했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소 의기소침해 질 수 있는 현중이에게 다가가 ‘오늘 네가 수비수를 몰고다닌 덕분에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 슈터는 단순히 슛을 많이 넣는 자리가 아닌 상대 수비를 긴장시키고 끌어내야 한다. 그로 인해 다른 동료들이 찬스를 볼 수 있다’고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를 자주 건네신 것으로 알고 있다. 맥킬롭 감독은 상남자 스타일의 이미지와 달리 사적으로는 매우 섬세하고 자상하다. 보지 않는 척하면서도 제자들을 일일이 지켜보며 관심을 둔다. 현중이에게도 경기 후 잘한 점, 고쳐야 될 부분 등을 따로 문자로 얘기하는 것은 물론, 우리 가족에게도 그간 활약상과 현지 기사들을 묶어서 이메일을 보낸다. 아이들 가르치면서 그럴 시간이 있을까 싶은데도 정말 꼼꼼하시고 배려가 깊다. 현중이가 ‘우리 할아버지같아’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최근 현중이가 3점슛은 물론이고 자유투까지 흔들린 적이 있다. 나도 좀 불안했다. 3점슛은 ‘집중마크에 시달렸기 때문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유투는 수비 방해도 없이 혼자 쏘는 것인데 왜 안들어가는 것일까. 현중이를 믿으면서도 살짝 초조한 마음도 들었다. 언론에서도 3점슛과 더불어 자유투 문제를 묶어서 슬럼프라고 연일 보도하는 모습이었다.
자유투도 심리적인 영향을 꽤 탄다. 얼핏보면 ‘앞에 아무도 없이 슛을 던지는 것 일 뿐이잖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은근히 슬럼프가 잘 찾아오는 영역이다. 슛 잘 던지기로 유명한 슈터들이 자유투로 고생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 이런 경우다. 현중이도 여기에 있어서는 신경을 좀 쓴 듯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은 단순히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자유투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자 데이비슨대 농구부 매니저들과 함께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슛을 던져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 방안까지 찾았다. 이후 걱정할 엄마를 위해서 ‘나 이제 슛감 찾아갈 것 같아. 자유투가 부진했던 이유를 돌아보다보니 미드레인지도 함께 잘 들어가네’라고 문자도 보내주었다. 현중이 말처럼 이후 슛감이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실제로 보이고 있고 덕분에 나도 한시름 덜었다. 최근의 슈팅 난조는 오히려 현중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았던 듯 싶다. 실제 경기를 지켜보면 알겠지만 현중이는 슛 성공률이 다소 흔들렸지만 경기력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뛰고 영리한 플레이도 많이 했다. 언제나처럼 부지런한 리바운드 참여도 좋았으며 패싱플레이도 유기적으로 잘 펼쳤다. 거기에 돌파나 미드레인지를 통해 3점으로 못 올린 득점도 많이 커버하는 모습이었다.
NBA에서 난다긴다하는 뛰어난 슈터도 늘 한결같이 외곽슛을 잘 던지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스테픈 커리 조차 기복이 있다. 특급 슈터와 일반 슈터의 차이는 그럴 때 갈린다고 생각한다. 일반 슈터는 자신의 주무기인 3점슛이 안들어가면 거기에 온통 신경이 꽂힌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왜 안 될까, 왜 안 될까’하면서 신경을 과하게 쓰다보면 오히려 더 안되는 경우도 많다. 노련한 특급 슈터들은 한템포 내려놓을 줄도 안다. 슛 사이클이 있는데 지금 잠시 하락중이구나하는 마음가짐으로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 수비참여 등 다른 쪽에서 팀 공헌도를 가져가며 스스로 부담감을 줄여나간다. 득점 역시 그렇다. 아무리 현재 슛감이 안좋다해도 상대 수비가 바라보는 자신은 슈터다. 자신이 외곽슛을 던지는데 수비의 초점이 몰려있을 것을 역으로 이용해 골밑돌파나 미드레인지를 던지면서 부족한 득점을 채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상대의 외곽에 대한 경계도 자연스레 느슨해지면서 3점슛을 편하게 던질 찬스까지 오게 된다. 현중이가 참 보기좋은 것은 현재 그렇게 플레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되는 쪽에 골머리를 앓기보다는 방향을 바꿔가면서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현중이는 다른 좋은 슈터들이 거친 과정을 배워가고 있다. 이런 경험이 쌓여 노하우가 되고 자신만의 슬럼프 탈출법이나 개인 전략이 만들어지는 단계가 아닐까 싶다. 운동선수에게 슬럼프는 무서운 적이다. 현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이 살아있다면 그것은 슬럼프가 아니다. ‘단순한 고민보다 해법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현중이의 현재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현중이가 어릴 때 가장 많이 신경썼던 것 중 하나는 ‘칭찬’이었다. 어린 시절 현중이는 사이즈도 좋지 않았고 운동능력이 눈에 띄는 선수도 아니었다. 농구센스는 번뜩였으나 사이즈와 운동능력 좋은 선수들에게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마다 “현중아, 너는 키가 늦게 크는 타입이다. 때가 되면 신장도 좋아지고 파워도 붙을거야. 지금은 이런저런 것 신경쓰지 말고 지금 배워야 될 것을 확실하게 너의 것으로 만들어놓아”라고 격려해주었다.
특히 경기력이 안좋았던 날은 잘한 부분을 찾아서 칭찬해주려고 노력했다. 상당수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경기에서 부진하면 혼을 내는 경우도 꽤 있다. 개인적으로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도 내 자식이 못하면 속이 상하겠지만 직접 코트에서 뛰는 아이들 역시 그 이상으로 속이 상해있다. 거기서 뭐라고하면 의기소침하게 되거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얼마나 잘하고 싶었겠는가. 이미 코치님들에게 지적받고혼도 났을텐데 거기서 부모까지 그런다면 두 번 죽이는 것이다. 훈련은 지도자에게 맡기고 부모는 자식의 마음을 다독거려주는게 맞는 것 같다. 스승의 역할, 부모의 역할은 분명 다르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경기에서 부진하면 하고 싶은 말은 많을 것이다. 칭찬을 하라고 권하고싶다. 예전에 현중이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슛을 난사했던 적이 있다. ‘왜 그렇게 슛을 난사했어?’라고 물어보려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현중이는 슈터였다. 슈터는 그만한 자신감도 있어야하지 않은가. 슈터에게 슛 많이 쐈다고 질책하면 다음번에 생각이 많아질 수 있다. “현중아, 오늘은 전체적으로 슛감이 좋지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쏜 슛은 정말 멋졌다. 그런 상황에서 배짱있게 쏘는 것도 능력이야. 비록 안들어갔지만 엄마는 현중이의 그런 자신감을 인정한다”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현중이가 “엄마, 마지막에 림이 크게 보였어. 들어갈 것 같았는데 아쉽게 안들어갔네”하면서 재잘재잘 말을 이어갔다. 현중이의 반응을 보면서 ‘잘된 부분으로 돌려서 얘기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예전보다도 더 경기 얘기를 안하는 편이다. ‘잘 봤다’, ‘정말 멋있었다’ 정도는 표현하지만 플레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은 없다. 예전에는 살짝 참은 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습관이 되어서 안하게 된다. 뛰어난 선수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엄마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 정도로 성장해준 것만 해도 대견하고 고맙다. 감독, 코치를 비롯해 외부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는 분들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조언을 해주겠는가. 엄마는 그저 내 새끼 힘든 일 없는지 살피고 잘했을 때 칭찬하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남편도 마찬가지인데 본인이 슈터 출신이라서 슈팅에 대해서는 유심히 지켜보는 듯 하다. 실제로 슈팅폼이 흔들리거나 성공률이 떨어질 때는 연락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웃음).
사진_유용우 기자, 데이비슨대학 홈페이지, 성정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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