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투표인단(44명)
임근배, 위성우, 박정은, 김완수, 구나단, 김도완, 전주원, 변연하, 임영희, 정미란, 허윤자, 정진경, 김보미, 배혜윤, 한채진, 박혜진, 양인영, 김한별, 염윤아, 한치영, 정장훈, 정상호, 김병천, 김일구, 임태규, 최기욱, 손대범, 최용석, 허재원, 김기웅, 남정석, 김일두, 안덕수, 김연주, 김은혜, 박상혁, 박진호, 정지욱, 한필상, 이재범, 최창환, 배승열, 서호민, 조영두
점수 산정은?
44명의 투표자가 각 1위~10위까지 10명 선수를 선정. 순위별로 1위 10점, 2위 9점, 3위 8점순으로 점수를 부여해 산정. 1~5위까지는 점수를 공개하며 나머지 20명의 선수는 순위, 점수 공개 없이 무작위로 공개.
이미선
1979년 2월 19일생/174cm/가드/삼성생명
정규리그 통산 5407점 2543리바운드 2264어시스트 1107스틸
정규리그 MVP 1회, 베스트5 11회, 어시스트왕 3회, 스틸왕 11회
박정은과 더불어 삼성생명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이미선의 등번호 5번 역시 영구결번됐다. WKBL 출범 초기 이미선은 뛰어난 속공 전개 능력을 겸비한 포인트가드였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3점슛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재기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20대 중반에 양쪽 무릎 십자인대가 모두 파열되는 시련을 겪었다. 당시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지만, 기나긴 재활 끝에 돌아와 화려하게 재기했다. WKBL이 단일리그를 도입한 2007~2008시즌에 복귀, 2014~2015시즌까지 매 시즌 평균 30분이 넘는 출전시간을 소화했다.
은퇴 시즌은 평균 출전시간이 20분 미만으로 내려갔지만, 단일리그 도입 후 23경기만 결장할 정도로 몸 관리에 충실했다. 3차례나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선수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스틸 1위를 11차례 차지하는 등 스틸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상대가 턴 하거나 드리블하는 방향을 유도한 후 스틸을 만들며 전개하는 원맨 속공을 자주 만들었다. WKBL 역사상 처음으로 통산 1000스틸을 돌파했으며, 여전히 통산 1위에 올라있다. 은퇴 후에는 삼성생명 코치를 맡기도 했다.

1971년 7월 18일생/185cm/센터/삼성생명
정규리그 통산 115경기 1901점 1043리바운드 420어시스트 142스틸 189블록슛
정규리그 MVP 3회, 베스트5 3회, 우수수비상 1회, 득점상 1회,
리바운드상 2회, 블록슛상 1회, 자유투상 1회
정은순은 농구대잔치에서 활약한 기간이 더 길다. 89-90 농구대잔치에서 삼성생명 선수로 성인무대에 데뷔한 정은순은 평균 17.9점 8.8리바운드 2.1블록슛을 기록하며 곧바로 주전으로 활약했다. 농구대잔치 통산 기록(예선+플레이오프)은 3340점(2위) 2082리바운드(1위) 319어시스트(9위) 216스틸(6위) 422블록슛(1위)이다. 센터이기에 3점슛을 제외한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정은순은 7시즌 연속 농구대잔치 베스트5에 선정되었다.
여자프로농구가 정식 출범한 1998 여름리그부터 은퇴할 때까지 8시즌 동안 모두 평균 30분 이상 출전했으며, 그 가운데 3번이나 정규리그 MVP의 영광을 누렸다. 프로무대에서 활약한 기간이 짧아 통산 기록에서는 농구대잔치와 달리 떨어지는 편이다. 농구대잔치에서 명성을 떨치고 고참이 되어 프로에서 활약한 허재와 비슷한 모양새다.
그럼에도 WKBL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기준 평균 기록에서는 16.5점(4위) 9.1리바운드(공동 3위) 3.7어시스트(공동 10위) 1.6블록슛(3위)으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WKBL 최초로 트리플더블(25점 14R 10A)과 30-20(32점-20R)의 주인공이다. WKBL에서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자랑한 정은순은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2회씩 우승으로 이끌어 아시아 최고의 센터로도 군림했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진출에도 기여했다.
과거 삼성생명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했던 KT 서동철 감독은 “정은순은 내가 만나본 국내 센터 중에서 으뜸인 선수다. 머리가 좋고, 농구 선수로 갖춰야 할 3박자를 다 갖췄다. 센터 치고 패스도 잘하고, 드리블 능력까지 있고, 리바운드와 득점 능력도 뛰어났다. 중거리슛이 굉장히 정확했고, 포스트에서 1대1 능력이 탁월했다.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큰 선수였다”고 정은순의 플레이를 회상했다.

1979년 7월 21일생/183cm/포워드/우리은행
정규리그 통산 1373점 676리바운드 144어시스트 167스틸 69블록슛
최우수외국인선수상 2회, 플레이오프 MVP 2회, 베스트5 3회 ,
득점상 1회, 스틸상 2회, 블록상 1회
WKBL은 출범이래 외인제가 들쭉날쭉했다. 2007~2008시즌부터 2012~2013시즌, 2020~2021시즌부터 현재까지는 아예 외인 없이 시즌을 치르고 있다. 외국선수들이 꾸준한 업적을 쌓을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칭은 쟁쟁한 국내선수들을 제치고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지도자, 선수, 관계자들로부터 몰표를 받았다는 점에서 더 놀랍다.
심지어 단일리그 체제에서는 아예 뛴 적이 없다. 계절리그 3시즌(2003겨울, 2006겨울, 2007겨울)만 뛰었다. 그만큼 캐칭이 남긴 임팩트가 어마어마했다는 의미다. 2003시즌 우리은행에 합류하자마자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며 팀에 우승을 안겼고 2006년에는 시즌 중반에 급하게 수혈이 된 상황에서도 팀을 플레이오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생긴 수식어가 ‘우승청부사’다. 2003년 3월 16일 삼성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무려 45점을 쏟아부었는데 이는 아직까지 플레이오프, 파이널을 통틀어 개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미국에서도 그의 명성은 대단하다. ‘여자 코비’라고 불릴 정도다. 미국농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로 4번의 올림픽 금메달(2004, 2008, 2012, 2016)을 획득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현재는 선수 시절 몸담았던 인디애나 피버의 단장을 맡고 있다. 캐칭이 뛴 리그라는 사실 자체가 WKBL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 7월 22일생/178cm/가드/우리은행
정규리그 통산 5382점 2336리바운드 1756어시스트(7위)
526스틸(9위)
정규리그 MVP 5회, 플레이오프 MVP 3회, 베스트5 9회, 자유투상 6회
우리은행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위성우 감독, 전주원 코치를 만나면서 WKBL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성장했다. 공수 밸런스가 완벽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돌파, 패스, 슛 모두 능하며 3점슛 거리가 매우 길다. 3점슛 라인 한두 발짝 뒤에서도 외곽포를 터트릴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자유투. 통산 6번의 자유투상을 수상할 정도로 정확한 성공률을 자랑한다. 2014~2015시즌에는 WKBL 자유투 연속 성공 신기록(45개)을 세우기도 했다. 수비에서는 압도적인 활동량을 앞세워 상대 선수를 악착같이 따라다닌다. 활동량이 많다 보니 가드임에도 리바운드 수치가 높다.
박혜진의 기량이 만개한 건 위성우 감독을 만나면서부터다. 우리은행의 공수 핵심으로 거듭났고 2012~2013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팀의 통합 6연패에 앞장섰다. 2019~2020시즌에는 정규리그 27경기 평균 14.7점 5.1리바운드 5.4어시스트로 커리어하이를 작성하며 정규리그 MVP, 베스트5, 자유투상, 윤덕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박혜진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2013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호주에서 개최된 2022 FIBA 여자농구 월드컵에서는 12년 만의 본선 첫 승에 힘을 보탰다. 오랜 기간 자신을 지도한 전주원의 뒤를 이어 한국 여자농구 전설로 남을 가드다.

1983년 9월 25일생/202cm/센터/신한은행
정규리그 통산 2019점 997리바운드 133블록슛
플레이오프 MVP 3회, 2점왕 4회
통산 기록만 놓고 본다면 평범한 벤치멤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평균 출전시간도 14분 6초에 불과하다. 큰 키로 인해 몸에 무리가 가해졌던 탓일까. 하은주는 학창 시절부터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안고 있었다. 출전에 제약이 따랐던 이유다.
하지만 코트에 있는 동안 하은주의 존재감은 웬만한 슈퍼스타 이상이었다. WKBL 역사상 최장신답게 높이를 활용한 공격, 리바운드로 4쿼터를 책임졌다. 통산 2점슛 성공률은 63.1%에 달한다. 10시즌만 뛰고도 플레이오프 MVP를 3차례 차지했으며, 덕분에 신한은행도 ‘레알 신한’이라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WKBL에서 뛴 사례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농구부에 환멸을 느껴 가입을 거절했던 하은주는 당시 작성했던 농구 포기 각서로 인해 다른 학교에서도 선수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커리어를 쌓았고, 일본 대표팀 엔트리에 등록된 적도 있었다.
샹송화장품 시절에는 LA 스팍스와 입단에 합의, 정선민에 이은 한국인 2호 WNBA리거가 될 뻔했으나 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진 못했다. WNBA 진출이 무산된 후 국내 복귀를 추진한 하은주는 당시 6개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이 가운데 신한은행을 택했다. 전주원을 존경한 데다 당시 연고지였던 안산이 집(수원)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국제무대에도 꾸준히 출전하며 커리어를 쌓았으며, 2015~2016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사진_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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