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걸음마 끝, 제주농구가 달린다

배승열 / 기사승인 : 2024-12-17 16: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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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배승열 기자] 한국농구의 뿌리가 되는 중·고교 아마농구를 찾아가는 코너다. 2024년 아홉 번째로 찾은 학교는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었다. 바로 제주특별자치도에 있는 제주동중. 2012년 창단된 제주동중 농구부는 2024년 오랜만에 전국 대회에서 결선 무대를 밟았다. 그동안 걸음마를 하던 제주동중 농구부가 이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연계육성을 위해, 제주동중 농구부 창단
제주동중 농구부는 2012년 1월에 창단했다.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학교 농구부 역사에 비해 제주도 초등학교 두 엘리트 농구부의 역사는 깊다. 먼저 함덕초는 1969년에 창단했고, 일도초는 1973년 창단했지만, 1988년 재창단하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제주 농구의 희망인 두 학교지만, 이들이 계속 농구를 하기 위해서는 육지로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제주도농구협회는 오랜 시간 초중고 연계 육성을 위한 팀 창단에 노력과 정성을 쏟았다. 그 결과 제주동중 농구부가 2012년 창단되며 제주 농구의 초-중 연계가 만들어졌다.

현재 제주동중은 장기동 코치가 2023년 6월부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장 코치는 지금은 해체된 중문초, 중문중, 중문고에서 12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다. 이후 서귀포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서귀포시농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장기동 코치는 “두 엘리트 초등학교가 있어서 제주도 농구인들이 중학교 농구부 창단을 갈망했다. 제주동중이 생겼고, 이제는 고등학교 창단을 갈망하는 데 쉽지가 않다. 있던 팀도 없어지는 상황에서 운동부가 만들어지는 것이 어렵다. 언젠가 고등학교 팀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제주도 엘리트 농구를 말했다.

1994년, 7년 만에 당시 중문상고 농구부가 재창단됐다. 그렇게 당시 제주도 내에는 세화고, 제주사대부고, 함덕정보산업과학고와 중문상고까지 4개의 농구부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선수 수급의 어려움으로 하나, 둘 농구부가 해체되고 더이상 제주도에는 고교 엘리트 농구부를 볼 수 없게 됐다. 현재 제주동중 장기동 코치를 비롯해 많은 제주 농구인과 제주특별자치도 농구협회 임병주 회장은 선수들의 진로 고민을 덜어 줄 수 있는 고등학교 농구부 창단에 힘을 쏟고 있다.

제주농구 발전을 위해 희생과 봉사
많은 엘리트 지도자처럼 장기동 코치는 제주동중에 부임하면서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장기동 코치는 1984년 당시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소년체전에서 동메달을 손에 쥐었다. 그는 “아마 제주에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후 중학교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왔다. 당시 육지로 간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래서 중학교는 제주도에서 나오고 고등학교를 육지로 진학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유학 생활이 이어졌다. 잦은 전학으로 운동과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광주고에서 테스트를 봤지만 전북으로 옮겼고, 창단 4년 차 전북 기계공고에서 운동했다. 하지만 2학년 때 해체를 겪고 군산고에서 체육 특기생으로 운동했지만, 다시 기계공고로 돌아와 대회를 나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대학에 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20대 중반 다시 서귀포로 돌아와 초, 중, 고를 다 맡으며 12~13년간 지도자로 생활했다. 그때는 열정이 넘쳤기에 제주도에서는 다 이겼다”며 “하지만 지도라는 게 이겨야만 더 열심히 하려는 어떤 의욕이 생긴다. 10여 년간 잘 다녔는데 조금씩 힘이 들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렇게 농구와 인연을 끊겠다고 돌아섰던 그가 어떻게 다시 힘든 지도자의 세계로 돌아왔을까? 그것도 가정이 있고 아직 자녀에게 서포트가 필요한 시점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이어진 장기동 코치의 선택에 놀라움과 응원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장기동 코치는 “체육진흥과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맥이 쌓였다. 전지 훈련이라는 단어와 가까워졌고 그렇게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까지 제주도로 동계 훈련을 내려왔다. 자연스럽게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동계 훈련을 찾은 지도자들과 가까워졌다. 나이를 먹어가니 스스로 뒤를 돌아봤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보자는 마음으로 사표를 썼다”고 했다.

사표를 쓴 시점에서 장기동 코치의 첫째와 둘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당연히 가족들은 반대했지만, 자녀들이 아버지의 도전을 지지하며 다시 농구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 도전에는 가족의 희생과 응원이 있었다. 장기동 코치는 “당시 체육관도 없는 농구부였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운동했고, 시에서 운영하는 체육관을 일주일에 두 번씩 이용하며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 2024년 여름, 교내 체육관이 지어지며 좀 더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제주동중 양성순 교장 선생님 또한 농구부에 애정을 가지고 계시며, 농구를 좋아한다. 지난 수학여행 때는 스케줄에 프로농구 관람을 넣으며 제주동중 학생들이 서울 SK 홈경기를 다녀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장기동 코치의 행보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젊은 지도자가 새롭게 제주도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 당연히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다. 장기동 코치는 “나는 이제 50을 훨씬 넘은 나이다.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았고 굳이 지도자를 안 해도 된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학교 지도자를 뽑는데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의식주. 젊은 지도자가 여기 오기까지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봉사해야 하는데, 이제 나는 봉사할 수 있는 위치다”라고 전했다.

제주 농구의 꿈. 육지로, 프로로
처음 제주동중 농구부의 시작은 동아리와 같았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고, 동계 훈련 없이 대회를 준비했다. 등록되지 않은 일반 학생도 함께 했다. 그렇게 제주동중은 그저 상대에게 승리를 내주는 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장기동 코치 부임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장기동 코치는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키가 큰 학생이 보이면 “너 농구하지 않을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제주동중은 우리 학교에도 지는 팀이잖아요”였다.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실제로 제주도 유소년 농구 인프라는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인재 발굴과 양성하기에 충분했다.

현재 3학년 김현진, 오광, 이주찬, 이지후 등 장 코치가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를 오가며 찾은 선수들이다. 이들과 함께한 장 코치는 4월 협회장기 대회에서 3년 만에 공식 경기 승리는 물론이고 3년 만에 전국 대회 결선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나아가 종별 대회, 추계 연맹전도 결선 무대를 밟으며 달라진 제주동중 농구를 알렸다. 앞으로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제주 농구다. 유소년 인프라부터 엘리트 선수까지 제주도에는 충분한 농구 새싹이 있다.

장기동 코치는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더 많은 아이가 보인다.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을 뿐이다”이라며 “이왕 봉사할 거면 누군가는 정말로 절실하게 꿈이 있는 선수들을 키워서 육지로 보내고, 대학을 보내고 나아가 프로까지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주 출신 1호, 2호, 3호…. 몇 호까지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매년 제주 출신 프로 선수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늙어가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걸음마를 뗀 제주동중, 창단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이제 꿈을 위해 달릴 준비를 마쳤다.

제주동중 주장 이지후
“새로운 기록도 만들고 싶었지만, 솔직히 동계 훈련 때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 말을 잘 듣고 따르니 결선도 세 번이나 밟았다.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될 것이다. 1년 넘게 함께한 친구들과 이제 다른 팀으로 향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대회에서 만나면 새로운 기분일 것 같다.”

#사진_배승열 기자, 제주동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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