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_Scan. 005번 참가자: 김준영
김준영의 농구는 유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시작됐다. 주말이면 집 앞 농구장에서 둘이 함께 뛰는 시간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때는 또래 애들이 거의 다 축구를 했거든요. 열 명 있으면 열 명 다 축구를 했는데 저는 아버지랑 농구하는 게 너무 재밌었거든요.”
선수까지 꿈꿔 초등학교 때 엘리트 농구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됐다. 운동선수 출신의 부모님은 그 길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농구에 대한 갈증을 안고 중학교에 입학한 김준영은 우연히 농구부 선배들을 따라 클럽 농구에 참여하게 됐고, 전주남중에서 열린 클럽 대회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클럽 대회 때 상대가 강팀이었거든요. 솔직히 다 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경기에서 제가 혼자 거의 20점을 넣으면서 이겨버린 거예요. 저희 팀 애들이랑 기뻐서 분위기 난리 났던 상황이었어요.”
그 순간이었다. 경기를 지켜본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잠깐만 이리 와볼래?”라며 김준영의 손목을 잡고 구석진 곳으로 끌고갔다. 그 의문의 남성(?)은 겁먹은 김준영에게 인생을 바꿀 제안을 건넸다. “나는 전주남중 농구부 감독이다. 네가 경기하는 걸 봤는데 혹시 농구 선수 해볼 생각 없니?”
김준영은 이 질문에 마음속으로는 당장 ‘YES’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떠올라 확답을 줄 수 없었다. 대신 김준영은 정중하게 말했다. “우선 저를 좋게 평가해주시고, 제안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모님과 상의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이 사실을 전했지만 처음엔 거짓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감독의 전화번호를 건네며 진심임을 알렸고 결국 감독과 아버지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후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이라 늦게 시작하는데, 전국에는 날고 기고 하는 선수가 많다.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걱정을 전했지만, 최선을 다한다면 끝까지 지원하겠다는 든든한 약속을 건넸다.
그 말에 김준영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저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허락을 내렸고 그 순간이 농구 선수로서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꿈에 부풀었던 시작과 달리 곧 높은 벽과 마주했다. 김준영은 전주고에 입학한 뒤, 비로소 농구 인생의 무게를 실감하게 됐다.
“제 농구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요즘 말로 하면 벽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이게 진짜 농구인가?’ 싶었어요. 중학교 때는 농구가 뭔지 모르고 열심히만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고등학교도 그냥 신입생답게 하려 했는데, 열심히만 하면 안 된다는 걸 느껴버렸어요. 형들은 농구를 알고 한다고 해야 되나…. 농구 이해도(BQ)가 되게 높고 농구하는 게 너무 쉬워 보였어요. 제가 농구를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농구의 길을 잘 몰랐거든요.”

낯선 세계 속에서 그는 수없이 혼나고, 때로는 울기도 했다. 하지만 윤병학 코치의 지도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농구를 공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야와 감각이 조금씩 열렸고, 코트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혼자 농구 공부라는 걸 한번 해봤어요. 그러다 보니까 농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농구 지식이나 센스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그 시기를 이겨내다 보니까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 실력이 늘면서 벽을 깬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시기에 빨리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버텨낸 시간은 곧 성장으로 이어졌다. 2학년 무렵부터 스스로 기량이 달라진 걸 체감했고 3학년 첫 대회에서 그 증거를 남겼다. 2021년 전국체전에서 8강 전력으로 평가받던 전주고를 결승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비록 동료 김보배(DB)의 부상과 용산고의 강력한 전력 앞에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김준영에게는 값진 성과였다. 제46회 협회장기에서는 ‘수비상’과 ‘감투상’을 수상하며 헌신과 성실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해 추계연맹전에서도 팀을 결승 무대로 이끌었다. 공격과 수비, 연결과 마무리를 모두 해내며 코트를 지배하는 만능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 밑바탕은 코로나로 대회가 멈춘 2020년에 쌓은 고독한 노력에 있었다.
“혼자 운동 많이 했어요. 항상 체육관이 비어있었거든요. 제가 남동생이 두 명 있는데, 동생들 데리고 볼 잡아달라고 시키면서 슛 연습을 했거든요(웃음).”
화려한 기록으로도 나타났다. 2021년 협회장기에서 김준영은 ‘31점 9리바운드 21어시스트’라는 진귀한 수치를 남겼다. 마지막 리바운드 하나만 잡았더라면 중·고농구 최다 어시스트 트리플더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리바운드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데, 코치님이 혹시 다칠까 봐 ‘점프하지 마!’라고 하셨어요. 근데 그게 제 기록에 반영된 거죠. 코치님이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괜찮다고 했어요(웃음). 팀이 이겼으니까요.”
![]() |
| ▲왼쪽부터 건국대 백경, 김준영 |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고등학교 시절을 통과하며 그는 공격형, 득점형 선수에서 점차 팀을 이끄는 리더로 변화해갔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자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엔 이미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가득했고 김준영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했다.
“항상 저는 신입생 때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것 같아요. 대학교에 오니까 공격을 잘하는 형들이 워낙 많더라고요. 코치님께서 저한테는 경기 운영, 리딩, 디펜스 같은 부분에 더 신경을 쓰라고 하셨어요.”
그 순간 또 한 번 농구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문혁주 코치의 “프로를 꿈꾼다면 고등학교 때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말에 김준영은 정통 포인트가드의 옷을 입게 됐다. 강한 득점 본능을 내려놓고 패스와 운영에 초점을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빠른 대학 농구의 리듬과 강한 피지컬 속에서 그는 수없이 혼나며 배우기를 반복했다.
“제가 원래 공격을 많이 하던 선수였잖아요. 근데 갑자기 패스 플레이 위주로 하려니까 타이밍도 모르겠고 운영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문혁주 코치님 스타일을 맞추려고 많이 혼나기도 하고 공부도 기본으로 했죠. 그 중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정말 많이 했어요. 자기 전은 물론 시간 날 때마다 생각을 계속 했죠.”

그렇게 김준영의 성장곡선은 누구보다 뚜렷했다. 지도자가 원하는 방향을 곧바로 자기 것으로 흡수했고 이를 경기에서 흔들림 없이 수행했다. 팀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수,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유형이었다.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코트에 나섰고, 2학년부터 지금까지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동시에 어시스트 수치는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팀의 운영을 책임졌다.
올해는 그 성장이 절정에 달했다. 13경기에서 평균 16점(전체 9위), 11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경기당 ‘평균 어시스트 9개’로 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최근 3년간 대학 리그 전체 어시스트 1위를 지켜낸 유일한 선수였고, 2위 기록인 7.3개와도 뚜렷한 격차를 보였다. 압도적인 경기 조율 능력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가드로 자리매김했다.
김준영의 진짜 무기는 끈질긴 준비였다. 매일의 훈련 속에서 운영자로서의 감각을 갈고닦았고, 무엇보다 코치의 지도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자신의 플레이를 완성시켰다. “감독님, 코치님 말씀을 완전 신뢰했죠. 말해주시는 거는 일단 되든 안 되든 먼저 하려고 했고, 저는 그냥 ‘코치님의 말씀이 정답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원래 스타일을 내려놓고 플레이가 더 세련되고 안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김준영은 종별대회에서 2년 연속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결승전에서는 18점 5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더블더블을 작성하며 ‘2025년 남대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다. 이어 한일대표팀에 발탁되며 입지를 넓혔고, AUBL(아시아대학농구리그)에서도 건국대가 6위에 그쳤지만 김준영은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렸다. 평균 18점 8.3어시스트라는 기록을 남겼고, 특히 칭화대와의 8강전에서는 무려 35점으로 폭발했다. 그러나 김준영은 오히려 더 큰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뚜렷하게 깨달았다.
“AUBL 대회는 각국의 정상 레벨에 있는 팀들이고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 모였잖아요. 거기서도 느꼈지만 제가 아무래도 신장이 작다 보니 피지컬적인 부분을 보완해야죠. 단신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플로터나 외곽을 먼 거리에서 쏘는 슛, 페이더웨이 같은 것들이요. 제가 키 큰 선수들을 상대할 수 있을 때 ‘저만의 무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프로 가면 외국 선수도 있고 높이도 좋다 보니, 그런 점들을 프로 가기 전에 개인 연습을 통해 제 걸로 만들어 보려고요.”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멘탈적인 부분이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긍정적이고 좋은 멘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농구 스타일로는 팬들이 보시기에 제가 조금 재미없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화려하지는 않아서요. 근데 저는 안정적이고 정확한 농구를 많이 하다 보니까, 오히려 그런 부분을 좋아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보기에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농구를 하고 싶어요. 또 경기 조율이나 센터 선수와 하는 2대2 플레이도 타이밍 맞춰서 잘할 자신이 있고요. 1대1 디펜스나 팀 디펜스 이해도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대1 디펜스에서는 누구한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김준영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감독님과 형들한테 예쁨 많이 받는 선수요.”
“형들 사이에서 궂은일 같은 걸 많이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물도 따라드리고 형들 수건도 챙기고, 열심히 할 자신 있어요(웃음). 그리고 프로에 가면 정말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형들이 많지만 거기서도 기죽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만약 제가 코트에 들어가게 된다면, 형들을 공격적으로 도와주면서 찬스를 더 많이 살려줄 수 있게끔요. ‘얘랑 뛰면 편하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벌써 막내 역할까지 고민하는 사회생활 만렙, 김준영의 장점은 코트 위의 기량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말과 행동, 태도만 봐도 팀의 무게를 덜어내고 곁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하는 선수다. 사회성과 인성을 겸비한 그는 아마농구, 아니 프로 무대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자질을 지녔다. 무엇보다 ‘감사’를 먼저 떠올리는 마음이 그를 더 특별하게 했다.
“감독님, 코치님한테 정말 감사해요. 성장도 많이 하고, 1학년 때 생각해 보면 제가 이렇게 많이 늘 거라고 생각을 못 했거든요. 옆에서 도와주시고 항상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정말 4년이 이렇게 훅 지나간 것 같은데 정도 쌓였고요. 감독님, 코치님께서 저를 많이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준영은 언제나 고난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고, 역경을 기회로 바꿔내며 기록으로 자신을 증명해왔다. 지도자가 원하는 방향을 곧바로 자기 것으로 흡수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한 그가 더 특별한 이유는 ‘사람됨’에 있었다. 타고난 인성과 진심 어린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의 바람처럼 ‘예뻐할 수밖에 없는 선수’가 될 것 같다. 이제 프로의 문 앞에 선 김준영, 한 번 더 자신만의 답을 써 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사진_김준영, AUBL 제공, 점프볼DB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