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Q. 어떻게 농구를 시작하게 됐나요?
중학교 2학년 때 계성중 농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사실 초등학생 때 야구를 하려고 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꿈을 접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농구를 너무 좋아해서 길거리에서 많이 하기도 했고요. 막상 해보니 제가 즐기던 농구와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기 위해 엄청 노력했어요. 새벽 훈련하고 야간에도 남아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나머지 연습을 했죠.
Q. 다소 작은 신장(192cm)에도 파워포워드로 뛰었는데요. 학창 시절에는 어떤 선수였나요?
솔직히 뭘 잘했다고 말씀드리긴 그렇고요. 다른 건 몰라도 근성 하나는 누구한테도 안 진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식상한 이야기지만 경기 들어가서 어떤 선수와 매치업이 되면 ‘쟤 죽이고, 나도 같이 죽겠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뛰었어요(웃음). 제가 슛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슛 던지는 역할도 많이 받았고요. 계성고 진학 후에 우승 경험도 하면서 주목을 받은 것 같아요.
Q. 농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고비는 없었나요?
아마 저 때는 모두가 한 번쯤은 도망간 적이 있을 거예요(웃음). 건국대 1학년 시절에 지금 마산고 코치인 이영준과 함께 학교에서 주는 아침밥을 안 먹은 적이 있어요. 근데 감독님께 걸린 거예요. 감독님께서 ‘운동선수가 아침밥 안 먹을 거면 집에 가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짐 싸서 진짜 집에 왔어요. 집에 오니까 다시 오라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학교로 돌아갔는데 400m 트랙을 50바퀴 넘게 뛰었어요. 장마철이라 비가 엄청 오는데 그때 그만두고 싶더라고요(웃음).

사실 SBS 말고 다른 팀에서 저를 뽑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어요. 높은 순위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명을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건국대 4학년 때 목을 다쳐서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다가 드래프트에 참가한 거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당시 SBS의 강정수 감독님과 장일 코치님이 악랄하다는 소문이 많아서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근데 다행인건지 제가 팀에 합류하자마자 김인건 감독님이 새로 부임하셔서 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Q. 프로 무대에서는 주전급 선수들에 밀려 많이 뛰지 못했는데 아쉽지 않았나요?
그때는 마냥 희망만 갖고 있었어요. 혼자서 미친놈처럼 개인훈련을 했죠. 근데 그 누구도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혼자서 달리기, 근력 운동, 슛 연습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저는 슈터가 아니었는데 방향성이 완전 틀린 거죠. 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 당시 경험이 제가 지금 코치 생활하는데 생각의 전환을 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무릎 부상으로 긴 시간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개인훈련을 열심히 하니까 팀에서 인정을 해주시더라고요. 2001년 오프시즌에 연습경기 뛰는데 두각을 나타냈어요. 출전시간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제 욕심이 과했는지 무릎에 과부하가 온 거예요. 무릎에서 제일 큰 인대에 부상을 입었어요. 부상당하기 전에는 ‘이제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재활하면서 의지가 한풀 꺾였던 것 같아요.
Q. 2002-2003시즌이 끝난 후 현역 은퇴를 했습니다. 이른 시기에 은퇴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무릎 부상 회복 후 감독님이 또 바뀌셨어요. 정덕화 감독님이 오셨죠. 감독님 눈에 들기 위해 열심히 했고, 오프시즌 연습경기에서 제가 중용됐어요. 하지만 막상 시즌에 돌입하니까 재활하던 주전들이 다시 자리를 차지하더라고요. 시즌 들어가면서 은퇴를 결심했어요.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이 노력을 차라리 다른 곳에 쏟아붓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팀에 은퇴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죠.
“KBL 최초의 전력분석? 어쩔 수 없이 시작했어요”
지금은 모든 팀에 전력분석이 있지만 과거엔 아니었다. 코칭스태프가 전력분석 업무까지 같이 했기 때문. 손창환 코치는 KBL 최초의 전력분석이다. 현역 은퇴 후 SBS 프런트로 변신한 그는 2005년 새롭게 생긴 전력분석으로 보직을 옮겼다. 이후 10년 동안 경험을 쌓으며 지도자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

원래 은퇴하고 유학을 가려고 했어요. 그때 SBS 코치였던 이상범 감독님이 “유학 가려면 엑셀 같은 걸 할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이 걸릴 텐데 계약 기간 1년 남았으니 구단에서 프런트 일을 해봐라”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처음엔 안 하려고 했는데 집에 가서 이야기해보니 다들 괜찮은 것 같다고 해주셨어요. 그래서 하기로 결심했죠. 처음엔 유소년 농구교실 업무를 맡았는데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홍보, 마케팅 쪽 일을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1년이 지났는데 생각보다 제 적성에 잘 맞아서 눌러앉게 됐죠.
Q. KBL 최초로 전력분석 업무를 맡게 됐는데 어떻게 하게 됐나요?
프런트 일을 3년 하고 나서 2005년에 단장님이 바뀌셨어요. 단장님이 “다른 종목은 올림픽 같은 대회를 준비하면 전력분석이 따로 있는데 농구는 왜 없나?”라는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감독, 코치들이 전력분석까지 했거든요. 뼈 때리는 질문이었지만 아무 답을 못했죠. 이후에 단장님께서 전력분석이라는 자리를 만드셨어요. 그때 또 한 번 이상범 감독님이 저를 추천하신 거죠(웃음). 사실 저는 싫다고 몇 번 거절했는데 어느 날 제 책상이 옮겨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에 SBS 뉴스텍으로 파견을 갔는데 다른 팀에서도 전력분석을 만든다는 소문이 들리더라고요. 제 뒤로 지금 LG에 있는 박도경 책임부터 줄줄이 전력분석이 생겨났어요.
Q. 전력분석은 주로 어떤 업무를 하나요?
상대 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최대한 빠르게 감독, 코치, 선수들에게 전달해야 해요. 이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임무죠. 그 안에 선수냐 전술이냐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어요. 찌라시 같은 걸 모아서 그 팀의 뒷 분위기까지도 조사를 했었죠.
Q. 오랫동안 전력분석을 하게 되면 농구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맞아요. 전력분석 2년 차만 돼도 엄청난 해안을 가지게 돼요. 근데 3, 4년 차에 자만하면 까막눈이 되어버려요. 저는 그 차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배우고자 고민하는 사람은 언젠가 다 알게 돼요. 반대로 느슨해지면 다른 길로 빠지게 되는 거죠.
Q. 외국선수 스카우트 업무도 함께 했는데 과거 대박친 외국선수가 있었나요?
2012-2013시즌 KGC에서 뛰었던 후안 파틸로요. 당시 이상범 감독님께서 1라운드 10순위로 개럿 스터츠를 뽑으셨어요. 원래는 2라운드 1순위로 다른 선수를 뽑으려고 하셨죠. 그때 제가 무조건 파틸로 뽑아야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실패하면 사표 쓴다는 말까지 했었죠. 그래서 파틸로를 지명하게 된 거예요. 오프시즌 대만 존스컵에서는 부진했는데 시즌 돌입하니까 대박을 쳤죠. 아마 말 안 해도 다 아실 거예요(웃음).
Q. 지도자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됐나요?
대부분의 농구선수 중 다수가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을 거예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죠. 코치가 되기 위해 전력분석 하면서 차곡차곡 준비를 하진 않았어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전력분석팀장이었던 손창환 코치는 2015-2016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KGC 코치로 승격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준비된 코치였던 그는 손규완 코치와 함께 김승기 감독을 훌륭하게 보좌했고, 2016-2017시즌 통합우승과 2020-2021시즌 플레이오프 전승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올 시즌에는 신생팀 캐롯으로 자리를 옮겨 선수들에게 우승 DNA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2015년 전창진 감독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갑작스럽게 KGC의 코치가 됐습니다.
전창진 감독님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김승기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치르게 됐어요. 그때 팀에서 저에게 코치 제의가 왔죠. 사실 당시에 작은 대학교에 가서 전력분석학과를 열어보려고 조용히 준비 중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안 하겠다고 거절했죠. 근데 사무국장님이 끈질기게 설득하셨고, 결국 코치가 되기로 받아들였어요.
Q.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강압적인 분위기보다 대화로 선수의 길을 만들어보려 했는데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고요. 강압적인 게 필요한 선수들도 분명 있어요. 그런 선수들한테는 나쁜 사람이 되더라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거죠. 게을러지거나 하는 척만 하고 거짓말하는 선수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모든 선수를 다 믿었는데 배신감을 느껴본 적도 있고요. 제 신념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오류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Q. 2016-2017. 2020-2021시즌 코치로 두 번의 우승을 했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솔직히 당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냥 멍했던 것 같아요. 그 경기 상황은 생각이 나는데 끝나고 기억이 없어요. 사진 찍었는지, 술을 먹었는지도요. 아마 경기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끝나고 넋을 놔버린 것 같아요. 흥분되고, 너무 좋다는 기분은 며칠 지나서 느꼈죠.
Q. 올 시즌을 앞두고 캐롯으로 팀을 옮겼습니다. 안양을 떠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상황이었나요?
계약 기간이 끝났어요. 그리고 김승기 감독님께서 강력하게 저를 원하셨죠. 저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러나 연어가 귀소본능이 있듯이 언젠가 안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가서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알이라고 낳고 죽고 싶은 마음이에요. 안양에 제가 아끼는 동생들이 있고, 약속한 것도 있거든요. 안양은 저에게 제2의 고향과 같아요.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엄마 같은 스타일이라기보다 선수들과 대화를 통해서 서로 좋은 방향을 찾아가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잘 되면 선수가 잘한 거고, 못하면 제가 부족한 거죠. 큰 도움은 못주더라도 더 갈 수 있는데 끝이라는 마음을 먹지 않게 해주려고 해요.
Q. 손창환 코치만의 지도자 철학은 무엇인가요?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기술은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체력과 기술은 선수 본인이 해야 돼요. 의지가 없으면 감독, 코치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선수의 의지를 끌어내도록 만들어주는 게 지도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Q. 선수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해도 코치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요?
운이 좋았죠. 김승기 감독님 밑에서 묻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미쳐야 된다는 거예요. 놀 때 미쳐서 놀고, 일할 때는 미쳐서 일하는 거죠. 뭘 할 거면 제대로 미쳐서 해야지 그러지 않을 거면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행정적인 부분에서 전반적으로 잘한다고 생각해요. 운영에 대해서도 자신 있고요.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농구단이나 KBL에서 운영 업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어요. 아직은 미약하지만 지금 계속 공부하고 있고요. 저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손창환 코치 프로필
생년월일
1976년 4월 30일
신장/체중
192cm/90kg
학력
동덕초-계성중-계성고-건국대
선수 경력
1999~2003 안양 SBS
지도자 경력
2015~2022 안양 KGC 코치
2022~현재 고양 캐롯 코치
# 사진_박상혁 기자, 점프볼 사진부, KBL PHOTOS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