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너와의 인연은 대학까지인 것 같다” FA시장 뒤흔들었던 이슈들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3-05-30 06: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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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2023년 FA시장은 대어가 즐비했던 만큼 이슈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못지않게 많은 스타가 이동해 눈길을 끈 가운데, 안양 KGC의 상징과도 같았던 오세근 역시 전격적으로 서울 SK와 계약했다. KGC 팬들이 허탈해하는 모습을 보며 ‘라떼’ 얘기를 안 할 수 없었다. 10여년 전 KBL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상민의 이적부터 시간 차 트레이드, 진실게임에 이르기까지 FA시장에서 있었던 이슈들을 돌아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랑의 3점 슈터’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최근까지 숭의여고 코치를 맡았던 정인교는 현역 시절 뛰어난 슈팅능력을 뽐낸 슈터였다. KBL 원년인 1997시즌 21경기 평균 4.3개의 3점슛을 터뜨렸으며, 성공률은 48.1%에 달했다. 그의 별명은 ‘사랑의 3점 슈터’였다. 3점슛을 1개 성공할 때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1만 원을 기부해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7-1998시즌 종료 후에는 ‘농구대통령’ 허재와 트레이드되며 부산 기아(현 울산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어 화제를 모았다.

2000년 여수 골드뱅크(현 수원 KT)로 이적한 정인교는 2000-2001시즌 종료 후 ‘FA 1세대’가 됐다. 2001년은 KBL이 FA 제도를 도입한 첫해였으며, 정인교 포함 총 29명이 FA 자격을 얻었다. 강동희, 김영만(이상 기아), 허재(삼보), 오성식(LG) 등이 원소속팀과 억대 연봉에 재계약했으나 정인교는 골드뱅크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정인교는 이전 시즌 연봉 1억 1000만 원을 받았지만, 협상에서 제시받은 연봉은 5000만 원이었다. 33경기 평균 7.2점에 그치는 등 기량이 하락세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정인교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조건이었다.

보상 규정도 정인교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연봉 30위 내 FA를 영입한 팀은 원소속팀에 해당 선수의 당해 연봉에 계약기간을 곱한 선수 연봉의 30%, 보상선수(보호선수 4명 제외)를 넘겨줘야 했다. 당시 정인교의 연봉 랭킹은 19위였다. 백업 슈터로서 활용도는 여전했지만, 보상을 감수하며 정인교 영입을 추진한 팀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협상 기간이었다. 당시 FA의 원소속팀 우선 협상 기간은 5월 1일부터 31일에 이르기까지 무려 한 달이었다. 합의점을 못 찾은 선수는 타 팀과 6월 한 달 동안 협상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도 러브콜을 받지 못한 선수에 대한 원소속팀 재협상은 없었다. 타 팀의 제안을 받지 못한 정인교는 졸지에 은퇴 위기에 몰렸다. “당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성적이 안 좋았던 건 인정하지만, 골드뱅크에게 처음 받았던 제안은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조건이었다.” 정인교의 회고다.정인교가 선수 생활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수련선수였다. 즉 연습생 신분이었으며, 당시 수련선수의 연봉은 최대 1800만 원이었다. 골드뱅크의 수련선수 제의 역시 받아들이지 않은 정인교는 잠정적으로 은퇴를 결정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새 출발을 결심했다. 정인교는 “FA 제도가 시행된 후 첫 시즌부터 잘못된 규정으로 은퇴선수가 나오는 건 리그 발전 차원에서 좋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선배들도 수련선수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 많은 격려와 조언을 해주셨다. 자존심은 수련선수 계약 맺으러 가는 길에 버렸다”라고 말했다.

어렵사리 현역 생활을 연장한 정인교는 2002년 최희암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모비스와 연봉 6000만 원에 계약했고, 이후 서울 삼성을 거쳐 2004년 은퇴했다. KBL 역시 정인교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 처하자 이사회를 개최, 원소속팀과의 2차 협상 기간을 추가하는 등 FA 제도에 첫 손질을 가했다. ‘사랑의 3점 슈터’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따로 있었던 셈이다.

희대의 시간 차 트레이드
2005-2006시즌이 종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6년 4월 30일, 창원 LG와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LG는 현금 3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조우현, 정종선, 정선규를 전자랜드에 넘겨줬다. 조우현은 2005-2006시즌 전 경기에서 평균 30분 이상을 소화한 LG의 주전 포워드였고, 정종선과 정선규(당시 상무)도 벤치멤버로 꾸준히 출전 기회를 받은 롤플레이어였다. 지금으로 예를 들면 이관희, 윤원상, 이동희를 현금만 받고 넘겨준 셈이다.

의문은 FA시장이 막을 내린 이후 풀렸다. LG는 부산 KTF(현 수원 KT)에서 활약했던 슈터 조상현을 영입했고, 조상현은 보상 규정이 적용되는 대어 가운데 1명이었다. 하지만 LG가 FA시장 개장 전 전자랜드에 선수들을 대거 넘겨주며 현금만 받아 KTF가 택할 수 있는 보상선수는 한정적이었다. 결국 KTF는 이전 시즌 19경기 평균 3분 4초를 소화하는 데에 그친 임영훈을 지명하는 데에 그쳤다.

FA시장이 막을 내리자, LG는 전자랜드와 또 한 건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전자랜드에 황성인과 현금 3억 원을 넘겨주며 박지현, 박규현, 박훈근, 임효성을 받은 것. 박지현은 제대를 앞둔 주전급 포인트가드였고, 이외의 3명도 벤치멤버로서 활용도가 높았다. 1차 트레이드에서 받은 현금 3억 원은 사실상 공수표나 다름없었다.

LG는 로스터를 텅텅 비워둔 상태에서 FA 조상현을 영입해 보상 제도에 따른 전력 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보상선수 지명이 끝난 후 2차 트레이드를 진행해 알짜들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 주전과 벤치에 걸쳐 탄탄한 전력을 구성한 LG는 2005-2006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딛고 2006-2007시즌에 정규리그 준우승을 달성했다.

LG가 제도의 허점을 전략적으로 노린 걸까, 일종의 편법인 걸까.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KBL은 이와 같은 제도의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FA 협상 기간인 매년 5월은 공식적으로 트레이드가 불가하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KCC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7년 FA시장에서는 KBL 역사상 전례 없었던, 앞으로도 없을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2006-2007시즌 종료 후 2번째 FA 자격을 얻은 서장훈(당시 삼성)은 연세대 재학 시절부터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왔던 이상민(당시 KCC)과 함께 뛰길 원했다. 최하위에 머물러 자존심을 구겼던 KCC 역시 전력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의욕적으로 FA시장에 나선 KCC는 서장훈과 임재현(당시 SK)을 동시에 영입, 전력을 강화했다.

서장훈은 KCC와 계약을 체결한 2007년 5월 27일 KBL 센터에서 열린 인터뷰를 통해 “(이)상민이 형과 농담처럼 ‘은퇴하기 전 다시 함께 뛰어야 할 텐데…’라고 했는데 기회가 와서 기쁘다. 신입생의 자세로 뛰겠다”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점프볼 역시 일찌감치 2007년 7월호 커버스토리 제목을 ‘다시 만난 콤비 : 이상민과 서장훈’으로 정하고 기획 회의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팬들의 새로운 관심사가 떠올랐다. KCC가 누구를 보호선수로 묶을 것이냐였다.

당시 FA 보상 규정은 해당 선수의 전 시즌 연봉 100%와 보상선수 또는 전 시즌 연봉 300%였는데 보상선수에서 제외되는 보호선수는 단 3명이었다. KCC에는 이상민과 더불어 또 다른 간판스타인 추승균이 있었다. FA로 영입한 선수도 포함해야 하는 만큼 서장훈, 임재현, 이상민, 추승균 가운데 1명은 보호선수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임재현이 보호선수에서 제외될 것이며, 삼성은 임재현을 지명한 후 또 다른 팀과 트레이드를 진행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서장훈의 기자회견이 끝난 이튿날 KCC는 이상민이 보호선수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상민의 팬들은 “삼성이 보상선수로 데려가지 않는다 해도 팀에 10년 넘게 헌신한 선수를 어린아이 강가에 내놓듯 내밀 수 있느냐”라며 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장훈 역시 “삼성이 처음부터 상민이 형을 원했던 건 아니지 않는가. 잘 풀렸으면 좋겠다”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민은 30대 후반을 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리그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스타였다. 라이벌 현대-KCC 이미지가 강하다는 부담도 따랐으나 기량과 티켓파워를 겸비한 이상민이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다면, 이를 마다할 팀은 없었다. 5월 30일 오전, 삼성은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이상민을 영입할 기회가 왔는데 그걸 활용 안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프랜차이즈 스타’, ‘나이가 많다’라는 말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이상민을 영입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굉장히 만족한다.” 조승연 당시 삼성 단장의 코멘트였다.

며칠 사이 마음고생이 컸던 걸까. 핼쑥해진 모습으로 삼성 입단 기자회견에 나타난 이상민은 “KCC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위의 격려가 큰 힘이 됐지만, 오랫동안 한 팀에서만 뛰어서인지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체력과 능력이 닿는 한 삼성에 기여하고 싶다”라고 힘겹게 소감을 남겼다.

KCC 역시 홍역을 앓았다. 이상민을 허무하게 넘겨준 KCC 수뇌부를 향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퇴진 운동이 일어났고, 서장훈과 임재현의 입단 기자회견은 당초 예정보다 2주 이상 연기된 6월 중순에 열렸다. 허재 당시 KCC 감독은 “이상민의 이적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안고 가겠다. 지금은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응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서장훈의 마음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 함께 뛰고 싶다는 마음으로 KCC와 계약했는데, 자신으로 인해 이상민이 KCC를 떠나게 됐으니 말이다. 서장훈은 “그동안 내가 농구선수인 줄만 알고 어느 팀에서 뛰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번 일에 대해선 다 알고 있더라. 입장이 난처해졌다”라며 쓴맛을 다셨다.

삼성에서 새 출발하게 된 이상민이 서장훈에게 남긴 한마디는 “너와의 인연은 대학까지였던 것 같다”였다. 점프볼의 2007년 7월호 커버스토리 제목도 ‘이뤄지지 않은 슈퍼스타 콤비 : 이상민, 서장훈’으로 바뀌었다. KBL은 이 사태를 계기로 보호선수를 1명 더 늘린 4명으로 바꿨다.

‘타짜’ 대신 ‘초짜’
2013년, SK는 귀화 혼혈 드래프트를 통해 혼혈선수를 지명하지 않은 유일한 팀이었다. 덕분에 2012-2013시즌 종료 후 전자랜드에서 FA 신분이 되는 슈터 문태종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갖고 있었다. 유럽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던 문태종은 뒤늦은 나이에 KBL 무대에서 데뷔, 2013년 한국나이로 39세가 됐다.

불혹을 앞두고 있었지만, 문태종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2012-2013시즌 46경기 평균 13.5점 3점슛 1.6개를 터뜨리는 등 녹슬지 않은 슛 감각을 뽐냈다. 승부처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 ‘4쿼터의 사나이’, ‘타짜’라 불리기도 했다.

SK로선 마지막 퍼즐이나 다름 없었다. SK는 최다승 타이기록(44승)을 세우며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모비스에 1승도 따내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3점슛 성공 8위, 성공률 9위였던 SK에 문태종이 가세한다면 V2에 재도전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SK는 문태종 영입을 포기했다.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문태종의 나이가 많았던 데다 정규리그 우승으로 인해 김선형, 최부경 등 주축선수들의 연봉 인상도 피할 수 없었다. 문태종에게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건 효율이 떨어진다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 당시 SK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문경은 KBL 경기본부장은 “욕심 같아선 문태종을 데려오고 싶었다. 분명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였지만, 샐러리캡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테랑 박상오, 김동우의 동기부여도 고려했다”라고 돌아봤다.

SK가 권리를 포기, 자동으로 FA 신분이 된 문태종은 무려 네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원소속팀 전자랜드를 비롯해 KT, 고양 오리온스(현 데이원)도 영입의향서를 제출했으나 최종적으로 LG가 문태종을 손에 넣었다.

사실 FA시장에서는 원소속팀과 협상이 결렬된 선수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복수의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선수는 무조건 첫 시즌 최고 연봉을 제시한 팀과 계약해야 했다. 이른바 ‘뒷돈’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었다.

2013년은 ‘경매’에 ‘프리’가 한 스푼 얹어진 후 열린 첫 FA시장이었다. 최고액을 제시한 팀 연봉의 90%를 제시한 팀에 한해선 선수가 새 팀을 고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A팀이 1억 원을 제시하고 B팀이 9000만 원을 제시했다면, 선수가 B팀을 택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LG는 경쟁 팀들의 베팅을 훌쩍 뛰어넘는 6억 8000만 원을 제시, 문태종 영입에 대한 경우의 수를 지웠다.

양동근, 김주성(이상 6억 원)을 넘어서서 2013-2104시즌 ‘연봉킹’이 된 문태종은 LG의 투자에 응답했다. 역대 최고령 MVP 수상 기록을 경신하며 LG에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안겼다.

반면, SK는 문태종을 지나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NCAA 디비전3 소속 위트먼대학 출신의 ‘초짜’ 박승리(본명 데이비드 마이클스)를 영입, 육성에 초점을 맞췄으나 그의 성장세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SK는 2013-2014시즌에 LG와 모비스에 밀려 정규리그 3위에 그쳤고, 박승리 역시 3시즌 동안 평균 22분 27초 6.2점 3.9리바운드에 머물렀다.

심지어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도 못했다. 박승리가 규정상 KBL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선 SK와의 3년 계약이 만료되기 전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 했지만, 그는 ‘3년 이상 국내 거주’라는 요건도 못 채웠다. 결국 박승리는 이렇다 할 경쟁력을 못 보여준 채 2016년 KBL을 떠났다. 반면, SK가 지나쳤던 문태종은 2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현역 마지막 시즌인 2018-2019시즌까지 경쟁력을 보여줬다.

LG와 ‘창원 아이돌’의 진실게임
김종규는 ‘창원 아이돌’이라 불릴 정도로 LG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스타였다. 2013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선발되며 LG의 빅맨 갈증을 해소해줬고, 6시즌 동안 2차례 인기상을 수상했다.

2018-2019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한 김종규는 새 출발을 원했다. LG와의 우선 협상을 뿌리치고 시장에 나갈 결심을 했다. 그런데 결별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원소속팀과의 협상이 결렬됐지만, KBL은 “김종규의 FA 공시를 보류한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힌 것.

LG가 증거라며 제시한 하나의 녹취록이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LG 관계자는 당시 현주엽 감독이 김종규와 스피커폰으로 나눈 통화를 녹취했고, 녹취록에 사전 접촉을 의심할만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정팀의 이름이 언급됐다”라는 게 LG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김종규는 FA 권리를 누리기도 전 재정위원회에 참석, 소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김종규는 재정위원회를 마친 직후 공식 인터뷰를 통해 “모든 상황에 대해 정확히 말했다. 재정위원회에서 잘 판단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할 상황은 아니지만 사전 접촉은 없었다.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전화로 소명하는 것보다는 재정위원회에 직접 나와서 얘기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KBL은 김종규의 손을 들어줬다. “김종규와 타 팀의 사전 접촉으로 인정할만한 증거라고 보기엔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라는 게 KBL의 설명이었다.

LG는 당시 김시래도 함께 FA 자격을 얻은 상황이었다. 이들을 모두 붙잡는 건 무리인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LG는 김종규와의 1차 협상에서 7억 5000만 원을 제안했다. 김종규는 이뿐만 아니라 8억 원, 9억 원 등 이후 조정된 금액도 모두 거절하며 시장의 평가를 받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LG가 KBL에 최종적으로 제출한 결렬 금액은 12억 원이었다. 김종규를 영입하기 위해선 12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FA시장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거액이었지만, 복수의 팀이 김종규 영입을 위해 사활을 걸었고 최종적으로 원주 DB가 김종규를 손에 넣었다. 김종규가 2019-2020시즌에 계약한 12억 7900만 원은 공식 발표된 역대 최고 몸값이다.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녹취록을 내세운 LG와 김종규의 진실게임은 농구계에 큰 화두를 던졌다. 사전 접촉과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원소속팀과의 우선 협상은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KBL은 결국 2019-2020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이사회를 통해 우선 협상을 폐지했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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