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삼성생명] “울던 신인에서 참는 지금까지”…이주연의 시간은 물건에 남았다 ②

용인/정다윤 기자 / 기사승인 : 2026-03-22 10: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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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용인/정다윤 기자] 어떤 선수는 기록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어떤 선수는 물건으로 자신의 시간을 보여준다. 삼성생명 이주연은 후자에 가까웠다. 오래 입은 옷 하나, 끈을 바꿔 단 농구화 한 켤레, 그리고 차곡차곡 감정을 눌러 담은 다이어리까지.
 

이주연의 애착템마다 생활의 흔적이 배어 있었고 그 조각들이 모여 이주연이라는 사람의 결을 가만히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은 사복이었다. 숙소 생활을 하는 선수에게 사복은 생각보다 귀한 품목일 때가 있다. 겨울 시즌에는 더 그렇다. 자주 입을 일도 없고, 새 옷을 자주 장만할 이유도 크지 않다. 그런데 이주연이 보여준 옷은 ‘그냥 오래 입은 옷’이라기보다 시간이 눌어붙은 물건에 가까웠다.

"지금 숙소에 사복이 정말 없어요. 본가에 많거든요. 이 옷은 정말 오래된 옷이자 사연이 있는 옷이에요. 엄마가 고등학교 때 선물해 준 옷이에요. 10년도 더 됐죠. 오래됐지만 아직도 잘 입고 있어요."

10년이 넘은 옷이라니. 이 옷은 아직도 이주연의 옷장 한 칸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보관만 잘한 추억용이 아니라 여전히 손이 가는 옷이었다.

"저희가 겨울에는 거의 못 나가니까 입을 수 있는 날이 몇 안 되거든요. 보관이 되게 잘 되어 있어요. 심지어 어디 구멍이 났어서 바늘로 꼬맸어요. 제가 꼬맨 건 아니지만(웃음). 그렇게 오래된 옷인데 너무 예뻐서 애장품이에요."

한 번 해어진 자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꿰매 가며 입는 옷. 쉽게 사서 쉽게 바꾸는 시대에 오히려 더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었다. 오래됐다는 말이 낡았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옷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팀 내 패션 감각 이야기도 이어졌다. 이주연은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후배들의 센스를 먼저 꺼냈다.

"저희 팀은 어린 선수들이 꾸미는 것을 굉장히 잘해요. 에겐스타일은 방지온이에요. 옷 스타일만요(웃음). 꾸미는 걸 잘해요. 화장도 잘하는 것 같고요. 저는 화려한 걸 휴가 때 가끔 입는 편이에요. 겨울 옷을 안 산 지 오래됐고 거의 없기도 해요. 하나 사서 오래오래 입는 편이죠."

그다음으로 꺼내든 것은 농구화였다. 코트 위에서 가장 오랫동안 몸과 닿아 있는 물건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무기다. 선수에게 농구화는 멋(?)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이 농구화(나이키 자3)는 소보로예요. 제가 이걸 흰색으로 신었는데 언니들이 소보로 올라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발이 예민하지 않은 줄 알았거든요. 찾다 보니까 이걸 신게 됐어요. 이게 되게 편하더라고요. 여자농구는 많이 안 신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편해서 잘 신습니다."

선수들에게 농구화는 소모품에 가깝다. 약 두 달에 한 번 갈아 신어야 하고, 성능이 떨어지면 바로 체감된다. 거기다 자기만의 손질도 더했다. 갈색 신발끈이 너무 어둡다는 주변 반응에 아예 끈을 다시 사서 바꿔 달았다. 당사자에게는 꽤 중요한 디테일이다.

"원래 이 농구화도 신발끈이 갈색이었어요. 근데 다들 주변에서 너무 어둡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끈을 새로 사서 색을 깔맞춤했습니다. 근데 예쁘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주변에서 '너 신발이 왜 그래'라고도 하죠. 정말. 다들 흰색을 선호하잖아요. 그게 빨리 품절되고 은근 구하기가 어려워요."

주변의 평가는 박했지만(?), 본인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편하면 그만이다. 화려한 취향을 내세우는 대신, 조용히 자기 식으로 완성하는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이주연의 다이어리

이주연의 개인 시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몸을 쉬게 하는 시간과 별개로,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도 따로 있었다. 그 방식은 의외로 아날로그에 가까웠다. 기록하는 습관이다.

"제가 기록을 하는 게 세 개가 있어요. 가계부, 매일 쓰는 일기, 다이어리 꾸미기(다꾸)용. 문득 떠오르는 말이나 생각, 하루 있었던 일 중에 특별한 걸 적는 편이에요. 일기에는 글이 많고 다꾸용은 스티커 같은 게 많은 거죠."

정리용 기록과 감정용 기록, 그리고 꾸미는 재미가 들어간 기록이 따로 있다. 제법 본격적이다. 손으로 적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귀찮음이 이겨버리면 금세 멈추기 쉽다. 그런데도 세 종류를 나눠 쓴다는 건, 이주연이 기록에서 꽤 분명한 효용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기같은 건 되게 일상적인, 쓸데없는 걸 많이 적는 편이에요. 내용은 비밀입니다(웃음). 이 박스 안에 있는 건 다꾸 용품이에요. 동생(이채은)이 준 것도 있고 제가 테무에서 구매한 것도 있어요. 이걸로 다이어리 열심히 쓰고 있어요."
▲이주연의 다꾸템

상자 안에는 스티커와 각종 꾸미기 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농구 이야기만 하다가 갑자기 문구점의 시간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기록하는 거에 취미가 들렸어요. 글로 적다 보니까 뭔가 꾸며주고 싶은 거예요. 꾸미기를 한번 해볼까 해서 했더니 재밌고 꾸미는 맛이 있더라고요."

그러나 동생 이채은(KB스타즈)이 건넨 꾸미기용 스티커도 있었다. 이주연은 여기서만큼은 취향의 경계를 칼같이 나눴다. 이상한 건 동생 것, 센스 있고 예쁜 건 자기 것이었다. 자매다운 투닥거림이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약간 스티커들 중 이상한 것들은 동생이 준 거고요. 센스 있고 예쁜 건 제 거예요(웃음). 제가 다꾸한다니까 이채은이 자기도 있다고 준다는 거예요. 20살 때 했대요. 옛날에 사긴 했지만 키치한 건데 괜찮냐고 물어봤어요. 일단 받았어요. 이렇게 사놓고 안 쓰는 거죠."
▲동생 이채은이 건넨 스티커

"이런 스타일인데 동생이 준 건 무드가 안 맞잖아요. 딱 봐도. 추구미가 맞지 않아요. 이런 스티커를 어디에다가 붙이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취향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 이주연에게서는 괜히 더 재밌게 들렸다. 농구화 끈 색을 바꾸는 데도 기준이 있던 사람답게, 다이어리 한 페이지를 꾸미는 데도 자기만의 결이 있었다.

"다꾸는 맨날 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특별한 일이나 시간이 좀 많을 때해요. 어디 갔는데 되게 기분이 좋았다거나 카페를 혼자 갔는데 너무 분위기 좋았던 곳이요. 이럴 때 핸드폰에 써놨다가 왔을 때 다이어리에 쓰는 거예요. 저는 마음에 들게 꾸미는 것 같아요."

이주연이 기록을 붙드는 이유는 분명했다. 남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돌아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선수에게 하루는 늘 다음 훈련과 다음 경기로 밀려가곤 한다. 그 안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자신을 읽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주연은 그 시간을 글로 확보하고 있었다.

"운동을 하면서 ‘이땐 이랬고, 이땐 이런 상황이 나왔고’ 이런 걸 쓰면서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게 돼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저를 더 성장시키지 않을까...."

"기록을 한 지는 오래 되진 않았어요. 기록을 함으로써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되게 많거든요. 감정을 정리할 수 있고, 그때의 생각을 돌이켜 보면서요.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도 다이어리를 쓰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제주도에서 사온 조수아의 다꾸용 선물(마스킹테이프)

기록은 이주연에게 조금 더 성장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오랜 시간 머문 STC에도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았다. 자주 적어 내려간 만큼 돌아볼 장면도 많았고, 그 안에는 오래 마음에 남은 사연들도 켜켜이 쌓여 있었다.

어릴 때의 이주연은 지금보다 훨씬 눈물이 많았다고 했다. 지금은 삼키는 쪽에 가까워졌지만, 예전에는 서러운 순간마다 눈물이 먼저 고였다.

"이곳저곳에서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이젠 많이 안 울 거예요. 어렸을 때 좀 많이 울었거든요. 이제는 눈물이 나도 참아야 되는 나이라(웃음).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참는 거죠. 그땐 뭐가 그렇게 슬펐는지... 웨이트 트레이닝하다가 화장실 가서 울고요."

누구에게나 서툰 시절은 있지만 선수의 세계에서는 그 시간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사연이 담긴 장소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화장실인 탓에 차마 담을 수는 없었다.

"신인 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가 코치님께 혼나서 혼자 화장실에서 꺽꺽 울고 있었어요. 그때 외국 선수가 엘리사 토마스였는데 우는 제 모습을 본 거예요. 그래서 저를 달래줬던 기억이 나요. 연습 경기도 못하면 울고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젠 후배도 많은데 참아야죠."

예전에는 울던 자리에서, 지금은 참고 버티는 쪽으로 넘어왔다. 후배가 많아졌다는 말에는 시간의 무게가 있다. 선수는 시즌을 지나며 기록만 쌓는 것이 아니다. 울음을 삼키는 법도 배우고, 감정을 정리하는 자기만의 방식도 만들어간다.

#사진_정다윤, 이상준 기자, 이주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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