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기찬은 본투비 ‘체육인’이었다. 운동을 사랑한 그는 열심히 초등학교 운동장을 누볐고, 자연스레 운동부 코치의 레이더에 들어오게 되었다. 특히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큰 윤기찬은 타 학교 농구부 코치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연가초 농구부 코치님께서 제가 다니던 녹번초에 방문하신 날이 있었어요. 여름방학 농구 캠프 참가 학생을 모집하려고 녹번초까지 오셨더라고요. 반마다 키 큰 친구들이 대다수였고, 저도 그중 하나였죠. 당시에 운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농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저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농구 캠프에 갔어요.”
단순히 농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참가했던 농구 캠프. 이는 농구 선수 윤기찬으로서의 시작점이 되었다. “캠프 일정이 다 끝나고, 코치님이 저한테 오셔서 그러시더라고요. ‘농구 정식으로 배워보지 않을래?’ 캠프를 통해 농구에 대한 흥미가 더 생겼기도 하고, 큰 고민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녹번초에서 연가초로 둥지를 옮긴 이후 윤기찬의 삶에는 농구가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본기를 크게 이야기한 연가초 코치의 세밀화된 훈련은 곧, 일찍이 그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승리의 과정은 농구 선수의 꿈을 더욱 확고히 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코치님은 기본기를 중요시하게 여기셨어요. 한 주는 드리블, 또 한 주는 슈팅, 한 주는 패스까지 이렇게 기본기 훈련만 세부적으로 나눠서 훈련을 진행하실 정도였죠. 일찌감치 기본기가 잘 잡힌 것이 지금 농구를 하는 데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고려대를 오고, 프로 무대에 도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공부와 병행하면서 언제든 맞지 않으면 학업으로 노선을 변경할 수 있게 하려 했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협회장기에서 우승을 하는 기쁨도 즐겼고, 키도 날이 갈수록 커지니까 좀 더 마음이 농구 선수 쪽으로 기울고 있더라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78cm였어요. 더 진지하게 농구 선수에 대한 꿈을 키워보기로 하고 초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강한 다짐을 한 채 명지중으로 진학한 윤기찬. 그의 농구 능력은 단 두 학년 만에 12cm가 자란 그의 키처럼 ‘폭풍 성장’한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 갈고 닦은 탄탄한 윤기찬의 기본기에는 늘어나는 출전 시간 속 훌륭한 임기응변이 더해졌다. 그 결과 윤기찬은 2019년, 명지중의 첫 주말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이끄는 주역으로 올라섰다. 대회 내내 보여준 쉴 틈 없는 활동량은 곧 대회 MVP와 수비상 수상이라는 개인적인 성과로도 이어졌다. “기본기를 열심히 닦은 것이 중학교 시절에 크게 도움이 되었어요. 좀 더 플레이할 때 수월하게 할 수 있던 힘이 된 것 같아요. 특히 저는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경기를 뛰는 날이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경기 감각도 자연스레 끌어올리고, 많이 익힐 수가 있었어요. 그게 팀의 성적으로도 이어져서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어요.”
“수비상은 공수 모두 착실하게 했던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수비에서 1:1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슛, 스틸까지 여러 방면에서 집중하려 했어요. 그렇다 보니 개인적으로도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명지고도 좋지만,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저만의 농구, 주로 혼자 하는 농구를 중점적으로 했어요. 그런데 용산고는 저보다 농구를 잘하는 형들이 많았어요. (여)준석이 형, (신)주영이 형, (박)정환이 형까지 정말 잘하는 형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나열하다 보니 다 고려대 형들이네요(웃음). 이렇게 뛰어난 형들이 많은 용산고를 택한 이유는 분명했어요. 그 형들을 본받아서 농구 실력도 더 키우고, 주전 경쟁과 자리싸움이라는 큰 벽에 부딪혀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중학교 때는 전 포지션을 다 보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용산고에서는 제가 굳이 포인트가드나 센터 포지션 수행을 하지 않아도 그 포지션에 잘하는 형들이 많았죠. 그러면서 저는 제 포지션(포워드)에서 특화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을 연습할 수 있었어요. 그만큼 더 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죠. 한 포지션만 연구하면서 3점슛 연습도 그때부터 더 많이 했는데 슛 감각 면에서 확실히 더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장을 위한 목마름이 만든 선택. 보상은 빠르게 찾아왔다. 윤기찬은 용산고 이세범 코치의 세심한 지도를 빠르게 몸에 익혔다. 중고농구연맹 주최 대회가 아닌 종별대회와 전국체전부터 차근차근 출전, 전학 징계로 인한 공백도 슬기롭게 이겨냈다. 누구보다 빠르게 용산고 농구에 녹아든 윤기찬은 2022년, 용산고의 3관왕(춘계연맹전, 협회장기, 연맹회장기) 주역으로 활약했다. “전학 초기에 느낀 것이 있어요. 이세범 코치님은 ‘와 이렇게나 수비 운동을 많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수비를 중점적으로 생각하시는 지도자이세요. 그만큼 저도 수비에 더 신경을 쓰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수비를 신경 쓰고, 열심히 한 것이 추후 연령별 대표팀이나 대학에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코치님은 출전할 수 있는 대회에서는 출전 기회도 많이 주셨어요. 차근차근 소중한 기회를 잡은 것이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사실 4강 중국전을 기점으로 위기가 있었어요. 워낙 슛 컨디션도 좋았고, 극적으로 결승 진출을 만들어내서 감동이 컸던 4강전이지만, 경기가 끝나고 선수단 대다수가 컨디션이 다운됐어요. 대회 기간 이란 현지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밥도 거의 못 먹고, 한국에서 챙겨온 부식들도 거의 다 소진된 상태였던 것이 그대로 탈이 난 것이었죠. 다들 결승전은 어떤 정신으로 치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몸이 좋지 못했죠. 그나마 다행인 건지 저와 (이)주영이만 멀쩡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주영이랑 ‘컨디션 좋은 우리가 동료들 몫까지 더 힘내야겠다’라고 의기투합하고 결승전에 나갔죠. 정말 열심히 달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보니까 4쿼터 들어 리드를 잡더라고요. 정말 좋았지만, 그만큼 정신없이 지나간 결승전이자 저의 첫 대표팀 무대였어요.”

윤기찬은 3&D인 플레이 스타일처럼 과감하고, 대담하다. 유리한 환경이 있어도 도전해야 하는 환경을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며 이를 성장의 계기로 만들어낸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윤기찬은 오로지 ‘도전 정신’ 하나로 고려대 진학을 선택한다.
“농구 선수로 진로를 설정한 후로는 항상 고려대나 연세대같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꿈꿔왔어요. 여기에 용산고 형들이 대다수 고려대로 진학했는데, 이것이 또 다른 도전의 생각을 가져다주었어요. 명지고에서 용산고로 갔을 때와 같이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그만큼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고려대 진학을 결정했죠. 출전 기회가 적고, 물 당번하고 이래도 좋으니까 열심히만 하려 했어요.”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1학년 생활. 그러나 윤기찬이 주축으로 자리 잡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교 데뷔 경기에서 팀 내 최다 득점(14점)을 기록하며 눈도장을 찍은 그는 점차 주희정 감독의 신임을 얻었고, 꾸준함과 안정감 있는 경기 내용을 바탕으로 2학년부터 완전한 고려대의 주축으로 자리 잡는다. “1학년 때는 그저 고려대생이라는 자부심에 뛰는 것만으로도 재밌었어요. 긴장이 되고, 부담이 되는 것도 없었죠.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다 한 것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아요.”
특히 가드는 물론 센터까지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하고, 활동량 많은 수비 반경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수비 능력은 주희정 감독의 큰 박수를 불러일으켰다. 현재까지 윤기찬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수비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는 것에 있다. “주희정 감독님은 에너지, 열정, 수비 이 세 가지를 크게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그래도 그것들을 다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코트에서 그것을 보여드리면서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전 포지션을 수비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제가 수비를 해주면 누군가 공격에서 충분히 몫을 해준다고 생각해요. 수비에서의 역할이 기록지에는 잘 나타나지 않잖아요? 그래도 수비에서 에너지를 뿜어내야 프로 관계자분들은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봐요.”


“올 한 해는 저에게 있어서 최고의 한해라고 생각해요.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이것을 이상백배에서 어느 정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죠.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은 견문을 넓혀주었습니다. WUBS는 각 나라에서 최고의 대학만 나가는 대회잖아요? 고려대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어요. 높은 무대에서 제가 뭘 더 잘해야 하는지 정립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9월 5일, 고려대와 연세대의 경기가 끝난 직후 드래프트 판도를 바꿀 소식이 들려왔다. 주인공은 윤기찬이었다. 3학년인 그가 당당히 얼리 엔트리에 도전, 1년 일찍 프로 무대에 노크하게 된 것을 알린 것이다. 대학 무대 최고의 3&D인 윤기찬의 얼리 엔트리 선언은 큰 주목을 받았고, 많은 프로 구단 관계자들의 관심 역시 불러일으켰다.
“앞서 말했듯 올해 해외에 굉장히 많이 다녀왔잖아요? 자연스레 해외 선수들하고 매치업을 이뤄야 할 때가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여러 상대에 대비한 연구를 많이 할 수 있었고, 제가 성장했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고 확신했어요. 고려대에 남아서 졸업하는 것도 좋지만, 프로 무대에 일찍 도전하는 것도 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전처럼 일찍 더 큰 무대에 도전, 부딪히고 깨져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얼리 엔트리를 결심했습니다.”
“부모님과 감독님, 코치님들도 저의 결정을 존중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저의 인생이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셨죠. 이렇게 마음 편하게 도전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기전 승리와 전승 우승을 위해 더 뛰었던 것 같아요. 보답하고 싶었고, 보답해야 했거든요.”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던 주변의 응원과 지지. 윤기찬은 고려대생으로서의 남은 과제 두 가지, 정기전 승리와 전승 우승을 직접 나서서 해결해 냈다. 특히 7년 만에 기록한 전승 우승은 얼리 엔트리 도전을 선언한 그의 마음의 짐을 더는 역할을 했다. 이제 그는 플레이오프 우승을 목표로 고려대 생활 마무리를 준비한다.

“전승 우승이요? 절대 안 진다는 마인드였어요.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저와 (문)유현이를 믿고, 프로 진출을 응원해 주신 만큼 무조건 우승시키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플레이오프까지도 반드시 우승으로 마무리하고 프로 무대 도전에 나서겠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윤기찬을 자신을 ‘뒷바라지 잘하는 에이스 스토퍼’라고 소개했다.
“저는 뒷바라지 잘하는 선수입니다. 프로에 간다면, 주로 에이스인 선배님들이 공격을 풀어나가시잖아요? 저는 선배님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그 도와주는 역할을 누구보다 잘할 선수가 저라고 생각하고요. 수비와 리바운드는 제가 채울 자신 있습니다. 공격에서도 쏠쏠하게 30% 이상의 3점슛을 기록하며 보탬이 될 준비도 제대로 하고 있죠. 자신 있는 뒷바라지 역할,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전부터 저의 롤모델은 고려대 선배님인 문성곤(수원 KT)선배님이세요. 선배님의 플레이를 볼 때마다 정말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상대 에이스 스토퍼 역할을 잘 해내시잖아요? 저도 선배님처럼 그런 것 잘할 수 있어요. (유)기상(창원 LG)이 형 같은 에이스 선수 수비를 맡겨주시면, 코만 보고 쫓아다닐 각오로 뛰겠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윤기찬은 이에 대해 ‘파이터’라는 대답을 내놨다.
“팀원들의 사기와 열정을 돋아주는 파이터가 되고 싶어요. 지금의 저의 플레이와도 걸맞은 단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난 후에는 KBL 무대에서 주축으로 통합 우승을 하고 싶다는 장기적인 목표가 있어요. 고참이 되었을 때 새롭게 들어오는 후배들, 얼리 엔트리 출신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는 모범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크게 있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정말 커요. 특히 아버지께는 믿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해 드리고 싶어요. 아버지가 중학교 때까지 축구를 하셨는데, 운동선수의 길이 힘든 것을 아셔서 농구하는 것을 반대하셨어요. 그렇지만 저의 설득을 받아주셨고, 응원해 주셨죠. 저의 의견을 늘 존중해주고 지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 고려대 동료들, 특히 (이)동근이와 (유)민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어요. 자기들도 얼리 엔트리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 텐데 유현이와 저에게 양보해 줬죠. 저희가 먼저 가서 꼭 성공하여 동료들에게도 잘 보답해야 할 것 같아요. 고려대 고맙고 사랑합니다!”
쉬운 길을 선택하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윤기찬은 다르다. 편한 길을 걸을 기회가 있어도, 오로지 자신의 더 큰 성장을 위하여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선택에 대한 이유를 멋지게 증명하는 능력 역시 갖췄다.
공수 겸장 포워드로 대학 무대를 평정한 그는 졸업이라는 안정적인 길 대신 얼리 엔트리라는 중대한 도전을 다시 택했다.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쳤고, 안정적인 슈팅 능력과 끈질긴 수비를 갖춘 윤기찬. 그가 프로 선수 타이틀을 얻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사진_윤기찬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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