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곽현 기자] 지난 시즌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을 우승으로 이끈 추일승(53) 감독.
그는 농구계에서 ‘비주류’로 불린 인물이다. 선수 시절 스타플레이어도 아니었고,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 출신도 아니다. 그런 그가 지도자로서 프로농구 정상에 우뚝 선 것은 농구계, 그리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깊은 메시지를 전해줬다.
지도자로서의 추일승은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6-2007시즌 KTF 감독 시절 팀을 창단 첫 챔프전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알렸다. 이후 2011년부터 오리온 감독을 맡아 꾸준히 팀을 리빌딩 했고, 결국 지난 시즌 14년 만에 우승이라는 큰 결실을 맺었다.
지도자로서의 추일승은 잘 알려져 있지만, 선수 시절 추일승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선수 시절부터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의 발자취를 들어보았다.
▲남보다 늦게 시작한 농구 “포기하려 했는데…”
그가 처음 농구를 시작한 건 홍대부고 2학년 시절이라고 한다. 보통 초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한 이들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시작이었다.
“지금 이맘때였어요. 고2 10월에 농구를 시작했죠. 중간고사 성적을 보니까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겠나 싶었죠.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거예요. 학교에 농구부가 있어서 농구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학교 경기에 응원을 가면 열기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농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더니 교감선생님이 아버지를 열심히 설득했어요. 유명한 대학에 갈 수 있다면서요.”
또래보다 큰 키였던 그에게 농구부의 러브콜이 있었던 것은 당연했다. 이전까지 그는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농구를 즐기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시작한 농구선수로서의 길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그 키로 센터를 보라고 해가지고…. 기초가 없으니 힘들더라고요. 홍익대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매년 감독님이 바뀌는 거예요. 연습도 제대로 안 됐죠. 3학년 때는 농구를 관둘 생각도 했어요.”
졸업반이 됐을 때 마침 실업팀 기아자동차가 창단을 했다. 중앙대 출신의 한기범, 강정수, 연세대 출신의 유재학, 정덕화가 중심이 됐고, 마침 졸업예정자인 그도 기아자동차의 창단 멤버로 입단을 하게 됐다.
“기아에 가서 보니 다들 농구를 너무 잘 하는 거예요. 훈련도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였죠. 1년 만 하고 상무에 입대를 했어요. 전역한 후에 바로 은퇴를 했죠. 농구를 계속 하는 것보다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그렇게 그의 농구선수로서의 인생은 일찍 마감을 하게 됐다. 농구를 늦게 시작했다보니 한계는 분명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기아자동차 지방 공장에서 업무를 보며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농구와의 인연이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 날 회사 관계자가 그를 부르더니 농구단 매니저 일을 제안했다. 처음 제안을 들었을 때 그는 거절을 했다고 한다. 농구단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회사에서 자리를 잡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회사의 입장은 강경했다. 1990년 그를 농구단 매니저로 발령을 보냈다.
당시 최인선 감독이 감독을 맡고 있었고, 코치 자리가 공석이었다. 그는 매니저와 보조 코치 역할을 하며 감독을 보좌했다고 한다. 당시 기아는 호화멤버를 갖춰 현대와 삼성이 양분하던 실업농구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던 시기다. 허재, 김유택, 유재학, 한기범, 강동희, 정덕화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회사에서는 제가 창단멤버기도 하고, 당시 기아가 중대와 연대 선수들로 구성돼 있었는데, 파가 나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두 학교 출신이 아니니 중간에서 조율을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의도치 않은 상황에 그는 다시 농구에 대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와 보조코치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하다 보니 몸이 2개여도 모자랐다고 기억했다. “연습경기를 하면 심판도 하고, 누가 다치면 병원에도 데려가야지, 간식 사야지, 훈련 준비해야지, 그걸 혼자 다 했는데, 정말 바빴어요. 그렇게 3년이 지나면서 트레이너도 뽑고 팀에 틀이 잡혀져갔죠.”
점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는 계속해서 매니저를 하는 것보다는 본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상무 농구단에서 코치 제의를 한 것이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추 감독은 자신의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회사원으로 돌아가느냐, 농구로 승부를 보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달린 선택의 순간이었다. 1997년 프로 원년 시즌 기아가 우승을 한 직후 그는 상무로 갈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지도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공부하는 지도자, 연구하는 지도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상무는 각 연령대별 가장 좋은 기량의 선수들이 모이는 팀이었다. 그런 팀의 선수들을 가르친다는 건 행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고 한다.
“준비된 게 없었잖아요. 기아 시절 어깨 너머로 방열 감독님, 최인선 감독님 하는 걸 본 건 있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땐 농구 관련 책도 없었어요. 선수들은 계속 우수한 선수들이 오고 있었어요. 첫 해 온 선수들이 위성우, 최명도, 이무진 등이었어요. 전국체전에 나갔는데 대학교한테 진 거에요. 이게 참 큰일났다 싶었죠. 선수 숫자가 6~7명밖에 안 됐는데, 협회에서는 농구대잔치에 나오지 말라고 할 정도였죠. 너희 때문에 파울도 제대로 못 불 것 같다고요.”
그는 상무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농구 코치를 하는데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했음은 물론, 참고하고 싶어도 우리 말로 된 책 한권이 없다는 점이었다.
“농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볼 수 있는 책이 없었어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외국책을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2001년에 번역한 책이 델 해리스가 쓴 ‘위닝디펜스’에요.”
델 해리스는 NBA 휴스턴, 밀워키, LA 등에서 감독과 코치로 40여년 간 활동한 인물이다. 1995년에는 NBA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별히 영어 공부를 하지 않은 그가 책 한권을 번역한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 쉽게 번역을 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결국 지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책을 만드는데 4년이 걸렸어요. 처음 생각했던 게 하루에 1페이지씩만 해도 1년이면 하겠다고 생각했죠. 영어가 부족하니까 번역기를 사서 스캔을 해보기도 하고, 영어를 잘 하는 친구들한테 검수를 부탁했어요. 원본은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반응이 있어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초부터 전술, 연습 방법 등을 알기 쉽게 다루려고 했어요. 책이 발간됐을 땐 보람 됐죠. 나중에 포츠머스 캠프에 갔는데 델 해리스가 있는 거예요. 그 분한테 내가 당신 책을 번역해서 출판했다고 하니까 엄청 좋아하더군요.”
책 발간에 대한 욕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9년에는 ‘맨투맨 디펜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프로 감독생활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맨투맨 디펜스의 기본 자세, 훈련법, 전술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올 해 3번째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번 책에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소양과 덕목, 선수 지도 방법에 관한 그의 노-하우가 담겨 있다. “책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이에요”라는 그는 농구 지도자들이 후배들을 위한 다양한 지식들을 많이 전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리나라에 좋은 지도자들이 참 많아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후배들을 위해 책도 내고 그러면 좋겠는데, 그런 게 너무 없지 않나 싶어요. 프로농구가 20년이 됐는데, 그런 부분은 아쉽죠.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선수 시절에 비해 지도자로서 늦게 꽃을 피운 만큼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도 있다고 했다.
“일단 지도자는 천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나 누굴 가르친다고 하는 건 자신이 준비돼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은 선수들도 지식이 해박해요. 내가 선수들보다 모르면서 가르치면 누가 따르겠습니까. 하다못해 외국선수들도 감독을 얕잡아볼 수 있거든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수 시절 운동 잘 했다는 걸로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진짜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봅니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선수 때 잘 해서 명장이 아니라 그만큼 노력하고 열정을 쏟았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봐요. 우승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팀을 잘 만드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2연패의 가장 큰 장애물은?
2015-2016시즌 개막이 다가오면서 오리온의 준비 상황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디펜딩챔피언으로서 상대팀들의 강한 도전에 맞서야 한다.
“상당히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요. 비시즌 (이)승현이, (허)일영이, (최)진수가 대표팀에 나가면서 시작되서, 예비엔트리에 없던 (장)재석이까지 나가면서 훈련을 많이 못 했어요. 들어와서 계획대로 클럽 챔피언십을 준비했는데, 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긴장감 있게 맞춰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죠. 혼란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지난 시즌과 멤버 변화가 크게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 다만 대표팀에 다녀온 선수들 컨디션이 빨리 안 올라오는 게 걱정이에요. 특히 이번 시즌은 좋은 신인들이 참여하면서 강한 도전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시즌 챔프전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한 게 다소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시즌은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 등 ‘BIG3’로 불리는 신인 선수들이 데뷔하면서 이들을 선발한 구단들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새로이 가세한 외국선수들의 기량도 변수다. 추 감독은 2연패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을 뭐라고 생각할까?
“외부에 의한 요인보다는 내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만심과 매너리즘이죠. 선수들의 자신감이 중요해요. 최고는 우리라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어야죠. 선수들이 지금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좀 더 신발끈을 조여 메는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디펜딩챔피언으로서 개막을 앞두고 닥친 악재들, 그리고 상대팀들의 거센 도전은 그가 준비해야 할 과제다. 한편으로는 성적 외에 전반적인 농구 인기에 대한 걱정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KBL에서 매년 챔피언은 나와요. 하지만 우리끼리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농구가 인기가 더 늘고, 대중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1등보다 사람들이 재밌게 농구를 접할 수 있는 게 중요하죠. 아무도 관심을 안 갖는데 우리끼리 1등을 정하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게 힘들겠지만, 정말 재밌는 농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농구가 예전 인기를 회복하고, 대중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점프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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