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20th] 1997년 2월 1일. 그날 우리가 처음 본 것들

손대범 기자 / 기사승인 : 2017-02-01 0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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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기자] 1997년 2월 1일은 한국농구연맹(KBL)이 공식적으로 첫 경기를 치른 날이다. 올림픽제2체육관에서 대우증권과 SBS의 점프볼로 긴 여정을 시작했다. 농구대잔치의 열기를 이어가고자 탄생한 리그였지만, 토대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농구에 기반을 두었다. 이렇다보니 기존 아마추어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날 농구 팬들, 관계자들이 처음 접한 광경을 정리했다.




외국선수
외국선수 제도는 프로출범과 함께 도입됐다. 팀별로 2명을 보유했으며 2명 모두 40분 내내 언제든 출전이 가능했다. 선수들은 LA에서 열린 드래프트로 뽑았다. 첫 경기 최다득점자도 외국선수였다. 대우증권의 마이클 엘리어트가 31득점으로 활약했다. 원년 득점왕은 칼레이 해리스(나래)로 32.29점을 기록했다.




심판이 3명
아마추어는 아직 2심제를 쓰던 시절이다. KBL은 NBA에 기반을 두면서 삼심제로 운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프로농구 출범을 두고 갈등을 빚은 대한농구협회(현 대한민국농구협회)가 심판 협조를 거절하면서 자체적으로 심판을 뽑아 교육해야 했다. 2월 1일 주심은 KBL 심판위원장을 역임했던 신현수 씨가 맡았다. 당시 유일하게 국제심판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쿼터제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쿼터제 역시 프로출범 후 처음 시행됐다. 본래 전, 후반 20분씩 진행됐으나 KBL은 한 쿼터 10분씩 4쿼터로 경기를 진행했다. 하프타임은 15분. 당사자들은 "어색하지만 재밌었다"는 반응. 김훈(대우증권)은 "길게 느껴졌다"고도 회고했다.




지역방어 금지
프로농구 경기에서는 지역방어가 금지됐다. 당시 NBA처럼 일리걸 디펜스가 존재했던 것. 이는 자유로운 돌파와 공격을 권장하기 위한 것으로, 덕분에 외국선수들의 돌파가 수월했다.




덩크슛
농구대잔치 시절에도 서장훈과 전희철, 문경은 등이 종종 선보였던 덩크슛이지만, 외국선수들이 선사하는 덩크슛과는 느낌이 달랐다. 개막전부터 데이먼 존슨, 제럴드 워커 등의 덩크슛이 펑펑 터졌다. 아쉽게도 원년 기록지에는 덩크슛 횟수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작은 가드부터 빅맨까지, 다양한 유형의 외국선수들이 선사하는 덩크슛은 프로농구에 새 볼거리를 제공했다.




공격제한시간
공격제한시간은 24초였다. 당시 24초 제도에 대한 설명이 재밌었다. "관중들은 결코 한눈을 팔 수 없을 것이다. 옆사람과 잠시 농담을 즐기는 사이, 스코어는 저만큼 도망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쉬엄쉬엄하던 모습은 이제 KBL에서 종적을 감출 것이다", "선수들도 이제 정신없게 됐다. 공을 잡은 뒤 24초면 공격시간이 끝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 시즌 페이스는 빠른 편이었다. 7, 8위에 머무른 삼성과 현대를 제외한 모든 팀들이 90점대 이상을 기록했고, 나래와 SBS는 각각 104.9점과 101.7점으로 1, 2위에 올랐다.




홈-앤드-어웨이
첫 경기 중계를 맡은 SBS 박영만 아나운서는 대우팀을 '방문팀'이라 불렀다. 그리고는 프로농구에서는 방문팀이 짙은 색 유니폼을 입는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KBL 출범 후 처음 만나는 광경이었다. 원주(나래), 부산(기아), 수원(삼성), 인천(대우), 대구(동양), 광주(나산), 대전(현대), 안양(SBS)등 8개 도시에서 프로농구경기가 열렸다. (SBS는 당시 체육관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하며 홈 경기를 치렀다.) 이러면서 '우리팀'만 응원하는 치어리더 시스템도 도입됐다. 치어리더팀의 안무와 이벤트는 중국, 일본에서도 배워갈 정도로 KBL 이상의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 사진=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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