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돌아보는 창원 LG 20년

손대범 기자 / 기사승인 : 2017-03-10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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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기자] 창원 LG가 공식 창단식을 가진 건 1997년 3월 11일이었다. 1994년 금성농구단이 창단을 발표한 이래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끝에 LG 농구단이 등장했다. 1997-1998시즌에 참가한 LG는 빠른 공격농구와 과감한 트레이드, 다양한 홈구장 이벤트 등으로 프로농구史에 이름을 남겨왔다. 아직 챔프전 우승이 없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는 많다. 숫자로 정리해보았다.

1 / 농구의 메카
LG는 1997-1998시즌부터 리그에 참가했다. 한 시즌 늦었지만 10개 구단 중 가장 빨리 홈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2014년 1월 23일, KCC와의 홈 경기에서 누적관중 200만 명을 돌파했다. 100만 관중을 가장 먼저 돌파한 구단도 LG였다. 2006년 12월 2일 KTF전에서 그 기록을 세웠다. 한편 현재 KBL에서 홈 200만 관중을 돌파한 구단은 모두 4팀으로 LG, SK, 삼성, 전자랜드 등이다.


2 / MVP
LG가 배출한 정규리그 MVP는 두 명이다. 2000-2001시즌 조성원이 25.7득점으로 LG를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고 MVP에 선정됐다. 그 시즌 LG는 챔피언결정전에도 올랐지만 우승에는 실패했다. 25.7득점은 역대 국내선수가 올린 평균 점수 중 가장 높은 기록이다. 2013-2014시즌에는 문태종이 MVP가 됐다. LG를 사상 첫 정규리그 1위에 올려놓은 덕분이었다. 13.5득점을 기록한 문태종과 김종규, 김시래 등의 활약에 힘입어 LG는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때도 우승 트로피는 품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아직까지 LG가 품은 챔피언십 트로피는 없다. 한편 LG에서 올스타전 MVP가 된 선수도 2명이다. 2007년에는 조상현이, 2012년에는 문태영이 LG 소속으로 올스타전에 나서 MVP가 됐다.


3 / LG의 신인상
LG에서는 신인상 수상자가 3명 있었다. 2006-2007시즌에는 3순위로 뽑혔던 경희대 출신 이현민이 LG 최초의 신인상 수상자가 됐다. 2013-2014시즌에는 1순위 김종규가 예상대로 신인왕을 품었다. 그 해 LG는 문태종도 MVP가 되고, 김진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겹경사를 누렸다. 김종규는 2001년 송영진에 이어 LG가 품은 2번째 1순위 지명선수였다. 2015-2016시즌에는 정성우가 이 상의 주인공이 됐다. LG는 기량발전상(조우현, 2001년), 식스맨상(박규현, 2003년), 수비상(박규현, 2003년) 등 개인상 부문에서 모두 수상자를 1번씩은 배출했지만, 외국선수 부문에서는 아직까지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4 /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
LG의 역대 외국선수 중에는 돌아오지 못할 선수가 4명있다. 퍼비스 파스코는 에너지와 탄력은 기가 막힌 선수였다. 2006-2007시즌에 데뷔해 그 시즌 올스타전 덩크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심판을 밀어 넘어뜨리는 사고를 쳤다. 집중견제와 판정에 대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다. LG는 3차전은 이겼지만 바로 다음날 파스코를 방출했다. LG의 플레이오프 승리도 더이상 없었다. 이에 앞서 1999-2000시즌 개막을 앞두고 블런트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LG 전력에 타격을 입혔다. 1998-1999시즌 그레그 콜버트 사건과 함께 ‘도주’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일화다. 나머지 2명은 데이본 제퍼슨과 트로이 길렌워터다. 제퍼슨은 2015년 플레이오프 경기를 앞두고 국민의례 중 스트레칭을 하는 등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 비난 받았다. LG는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아울러 구단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퇴출을 결정했다. 2015-2016시즌에는 트로이 길렌워터가 뜨거운 감자였다. 한 시즌동안 6번이나 재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사유도 각각 달랐다. 돈을 세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거나 물병을 투척하기도 했다. 그래서 낸 벌금만 1,420만원. 단일시즌 최고액이었다. 그런데 그 뒤 KBL의 조치는 팬들을 분노케 했다. 길렌워터의 트라이아웃 참가자격을 제한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행위에 대해서는 벌금으로 제재를 했던 만큼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월권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5 / 득점왕
LG를 거친 외국선수 중에는 기술과 화려함, 득점력을 겸한 선수가 많았다. 그 중 득점왕이 된 선수는 모두 5명이었다. 1998-1999시즌 버나드 블런트는 29.9득점으로 KBL 출범 후 3번째 득점왕이 된 바 있다. 최근에는 2014-2015시즌에 데이본 제퍼슨, 2015-2016시즌에 트로이 길렌워터가 LG 유니폼을 입고 득점왕 자리에 올랐다. 2011-2012시즌에는 KBL 최초로 외국선수, 국내선수가 나란히 득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애런 헤인즈(27.6점)와 문태영(18.0점)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애석하게도 이 시즌 LG는 ‘조화’의 해법을 찾지 못해 플레이오프에는 못 올랐다. 문태영은 2009-2010시즌에 21.8득점으로 1위에 올랐다. 국내선수 뿐 아니라 외국선수까지 포함한 1위였다.

6 / 플레이오프 공백
긴 역사동안 LG가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한 횟수는 모두 6번이다. 1999-2000시즌 보너드 블런트의 야반도주로 7위(20승 25패)에 그쳐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탈락했다. 이후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2004-2005시즌, 2005-2006시즌에는 또 진출에 실패했다. 2006-2007시즌에는 32승 22패로 리그 2위에 올라 우승을 노렸다. 찰스 민렌드와 현주엽, 이현민, 조상현 등이 골고루 건재했던 시즌이었다. 그러나 4강 PO에서 퍼비스 파스코가 심판을 밀치면서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됐다. 한편 가장 최근 플레이오프에 못 나간 시즌은 2015-2016시즌이다. 21승 33패로 8위에 그쳤다. 올 시즌은 아직 결론이 안 났다.

8 / 트레이드
LG는 팬들이 놀랄 만한 트레이드를 많이 단행한 팀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2001년 12월 12일에 단행한 ‘빅 딜’이 화제였다. 8명이 팀을 옮긴 4대4 트레이드였다. 김태환 감독은 우승 도전을 위해 마이클 매덕스, 칼 보이드, 김병천, 김동환을 받았고, 에릭 이버츠와 말릭 에반스, 황진원, 이홍수를 코리아텐더로 보냈다. 높이와 득점력 보강 차원에서 이뤄진 트레이드였지만 빅 딜 직후 LG는 18승 18패에 그쳤다. 정규리그 최종순위도 5위에 불과했고, 고득점 경기도 줄어 ‘성공한 트레이드’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그 외 시간차 트레이드(2006년), 김시래-로드 벤슨(2013년), 조성민-김영환(2017년) 등이 있었다.


16 / 휘센컵 3on3 대회
LG는 10개 구단 중 가장 꾸준히 길거리 농구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1년부터 매년 5월 무렵에 창원실내체육관 앞 만남의 광장에서 ‘휘센컵 3on3 길거리 농구대회’를 열고 있다. 2016년으로 16회를 맞았으며, 중고등부 뿐 아니라 여성부까지 개최하여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2016년에는 여건이 되지 않았지만, 매년 LG 선수들이 함께 해왔다는 점도 참가자들에게는 또 다른 볼거리였다.


312 / 프랜차이저
1985년생인 기승호는 동국대 출신으로, 2008년 드래프트에서 LG가 9순위로 지명한 선수였다. 그 해 이지운(현 동부)과 함께 데뷔했다. 기승호는 이후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줄곧 LG에서만 뛰고 있다. LG 선수로서 치른 정규경기는 312경기로, 현역만 놓고보면 LG 1위다. 은퇴선수까지 포함하면 역대 1위는 ‘거미손’ 박규현이다. 고려대 출신으로 끈질긴 수비가 장점이었던 그는 LG 소속으로만 353경기를 뛰었다. LG 창단이래 첫 주장이기도 했다. 1997-1998시즌을 시작으로 기승호가 데뷔하던 2008-2009시즌까지 뛰었다. 모비스, 전자랜드에서 3시즌을 뛰긴 했지만 448경기 중 353경기를 LG에서 보냈다.


103.3 / 평균득점
LG는 만족도 103.3을 기록한 적이 있다. 2000-2001시즌에 LG는 평균 103.3득점으로 이 부문 1위였다. 리그에서 평균 100점 이상을 올린 마지막 팀이었다. 김태환 감독(현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이 지휘봉을 잡아던 LG는 에릭 이버츠, 조우현, 조성원 등의 3점슛을 앞세운 화끈한 공격농구로 사랑을 받았다. 경기당 꽂은 3점슛만 11.4개. 성공률도 40.3%로 높았다. LG는 3번이나 128점 이상을 뽑아냈다.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점수다. 한편 LG가 공격만 잘 했던 건 아니다. 1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70점대 실점을 기록한 팀이었다. 이충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던 시절만 해도 LG는 조직적인 수비를 잘 하는 팀이란 인식이 강했다.

7177 / 3점슛
20년간 LG가 성공시킨 3점슛은 7,177개로 역대 3위(역대 1위는 오리온, 2위는 KCC+현대)다. 20,452개를 던져 35.1% 성공률을 기록했다.



8734 / LG의 역대 최다관중
2014년 3월 9일 창원실내체육관을 찾은 LG팬들이라면 그날 분위기가 생생할 것이다. 이날은 2013-2014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이었다. KT를 95-85로 꺾으면서 팀 역대 최다연승(13연승)을 기록한 동시에 울산 모비스를 따돌리고 정규리그 우승까지 확정지었다. 그 장면을 보기 위해 8,734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LG 역대 홈경기 최다 관중이었다. 당시 모비스와 LG는 40승 14패로 동률이었고, 3승 3패로 상대전적도 같았지만 득실 마진에서 9점 앞서 덕분에 트로피를 품었다.

680,000,000 / 역대 최고 연봉
서면상 LG의 역대 최고 연봉은 6억 8천만원이다. 2013-2014시즌 문태종이 LG 역사상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선수였다. 그 시즌 문태종은 연봉값을 했다. MVP가 되고 팀도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으나 모비스와의 격전 끝에 우승을 놓쳤다. LG에서 최초로 1억원대 연봉을 받은 선수는 양희승이었다.

# 사진=점프볼 DB(문복주, 유용우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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