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활력 불어넣는 신인 선수들
2024년 11월 15일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2024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총 26명이 선발되었다. 많은 이야기거리가 쏟아졌다. 고교생이 드래프트 1,2순위를 차지하는 등 3명이나 선발되었고, 엘리트 농구를 경험하지 않은 정성조도 고양 소노 유니폼을 입었다.
일부 신인 선수들은 프로 무대에 데뷔해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양한 기록도 나온다. 이찬영(KCC)은 최연소 데뷔, 박정웅(정관장)은 최연소 선발 출전 기록을 세웠다. 이근준(소노)은 두 번째로 어린 선수로 10점 이상 기록을 작성했다. 16점을 기록한 정성조는 3라운더 가운데 정병국 이후 역대 두 번째로 20점 이상 올릴 가능성을 보여줬다.
역대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선수는 총 614명이다. 2군 드래프트나 한 때 존재했던 수련선수로 계약한 선수들까지 고려하면 지금까지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은 700명에 육박할 것이다. 이들이 프로 선수로 첫 발을 내민 처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데뷔 경기에서도 다양한 기록들이 만들어졌다.
신인 선수 데뷔 경기 최다 득점
1999년 드래프트 1순위 조상현 LG 감독은 광주 골드뱅크(현 수원 KT) 유니폼을 입고 1999년 11월 11일 군산월명체육관에서 열린 대전 현대(현 부산 KCC)와 맞대결에서 데뷔했다. 조상현 감독은 3점슛 4개 포함 27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조상현 감독의 27점은 드래프트를 통해 데뷔한 신인 선수 기준 데뷔 경기 최다 득점이다.
자신이 27점을 넣었다는 걸 알고 있는 조상현 감독은 “우리 팀에는 이버츠와 그레이, 정진영 형, 김용식 형 등이 있었다.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자신감도 있었다. 지금처럼 수비가 대단하지 않았다”며 “공격에 대한 자신감이 있고, 포스트업 능력도 있었다. 3점슛도 4개(4/8) 정도 넣었을 거다. 근데 졌다(88-101). 현대가 좋을 때였다”고 기억했다.
데뷔 경기 최다 득점을 올린 원동력을 묻자 조상현 감독은 “수비를 못했지만, 공격에서는 골밑 득점도 가능하고, 슛도 던지고, 돌파도 할 수 있어서 공격 옵션이 많았다. (현대가) 방심했나 보다”며 웃은 뒤 “저는 (프로와 대학의 차이를) 못 느꼈다. 왜냐하면 농구대잔치를 같이 뛰던 형들이었다. 지금과 달리 운동량도 많아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프로와 대학이 완전히 분리되고, 훈련 체계나 시간이 완전 달라졌다. 지금 올라오는 신인 선수들은 부족한 게 많지만, 당시에는 프로 출범 초기라서 부족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KBL 첫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데뷔한 건 1998~1999시즌이다. 프로농구는 1997시즌부터 시작되었다. 1997시즌과 1997~1998시즌에 데뷔한 선수들도 있다. 이 때 데뷔 경기 최다 득점은 문경은 tvN 해설위원의 37점과 전희철 SK 감독의 35점이다. 다만, 두 명 모두 데뷔 경기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문경은 해설위원은 1997~1998시즌 데뷔 경기에서 37점을 넣었다고 하자 “많이 넣었네”라며 웃은 뒤 “팀이 9위를 했는데 저는 신인 아닌 신인이었다. 그 때 주희정이 신인왕을 받았다. 그게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데뷔 시즌 때 평균 득점이 20점(25.0점)을 넘었을 거다. 외국선수 수준이었다. 신인왕을 못 탄 게 아쉽다”고 했다. 문경은 해설위원은 대신 프로농구 출범 당시 분위기를 꺼냈다.
“상무에 있을 때 프로농구가 개막했다. 그 때 정말 뛰고 싶었고, 부대 안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데도 (프로농구는) 다른 세계에서 농구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 상무 동기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다. 치어리더도 있고, 팬들도 많았다. 보기 힘든 덩크슛이 쾅쾅 나오고, 스피드도 너무 빨랐다.
프로가 출범한 뒤 관중들도 젊어지고, 스피드 있는 경기를 하니까 빨리 뛰고 싶었다. 실제로 경기를 하니까 힘들지 않고 너무 재미있었다. 농구대잔치 시절과 프로는 달랐다. 또 팀 내 최고 연봉을 받았다. 책임감도 달라지고, 한만큼 대우를 받으니까 많이 바뀐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외국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준비 자체가 다르니까 기대가 되었다.”
데뷔 경기에서 35점을 기록한 전희철 감독은 “기억이 아예 나지 않는다. 그 시즌(1997시즌) 득점 1위(평균 23.1점/전체 9위/국내선수 1위)를 했을 거다. 기록을 찾아줘서 고맙다”며 웃었다. 참고로 문경은 해설위원은 데뷔 경기에서 연장 승부를 펼쳤는데 연장전에서 7점을 추가했다. 이를 고려하면 4쿼터 종료 기준 데뷔 경기 최다 득점은 전희철 감독의 35점이다.

데뷔 경기에서 더블더블을 작성한 최초의 신인 선수는 24점 14리바운드를 기록한 서장훈이다. 서장훈은 드래프트 출신이 아니다. 드래프트 출신 중에서는 2001~2002시즌 데뷔한 김승현이다. 김승현은 데뷔 경기에서 15점 10어시스트로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김주성 DB 감독이 19점 11리바운드로 그 뒤를 이었다.
김주성 감독은 데뷔 경기를 언급하자 “기억이 난다. LG와 원정 경기였다”며 “공격에서 첫 슛이 잘 들어가서 긴장이 풀리지 않았나 싶다. 그 때 베테랑 선수들이 많아서 도움을 줬다. 허재 감독님도 힘을 많이 실어줬다. 데뷔 경기 때 잘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11리바운드를 잡은 김주성 감독은 “센터 출신이고, 신인이라서 더 열심히 뛰어서 (리바운드를) 많이 잡을 수 있었다”며 “첫 경기에서 첫 슛이 들어가서 긴장이 풀렸다. 그런 기록이 좋은 선수 생활을 하는 시발점이었다”고 했다.

“더블더블 한 걸로 기억한다. 첫 득점을 노마크 3점슛으로 넣었다. 그걸 하면서 몸이 완전히 풀렸다. 신인들은 시야가 한정되는데 그게 깨끗하게 들어간 뒤 시야가 트였다. 그래서 득점과 어시스트가 잘 되었다. 오프 시즌 때 열심히 준비했지만, 그 정도로 활약할 거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때는 시즌 개막 전에 시범경기를 했다. 삼성과 경기에서 20점 4어시스트(정확한 기록은 20점 3리바운드 5어시스트 2스틸)를 기록했는데 이상민 코치님은 7점 8어시스트(8점 5리바운드 8어시스트 4스틸)를 한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우리가 박살 났다(경기결과 87-94). 그 때 ‘가드는 만들어줘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가드는 만들어주고, 패스로 팀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먹어서 데뷔 경기도 잘 할 수 있었다.
3점슛을 넣어서 더 많이 넣고 싶을 수 있는데 어시스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뛰었기에 어시스트 11개가 나올 수 있었다. 프로 선수의 출발점에서 생각을 바꾼 거다. ‘아, 득점이 아니구나. 득점은 7점 밖에 하지 않았는데 어시스트 8개로 팀을 다 살아날 수 있다’는 게 알고 있었지만, 실제 경험하니까 더 와닿았다.
사실 기록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기분은 좋았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상민 코치님과 맞대결에서 제가 확실히 포인트가드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지금은 득점을 많이 하는 가드가 많지만, 그 당시에는 (패스를) 나눠줘야 했다. 그 때 문경은, 방성윤이란 쌍포가 있었다. 제가 슛을 던지면 그들의 슛 시도 기회를 떨어뜨리는 게 된다. 저는 만들어주고, 스타 크래프트의 탱크처럼 한 방씩 팡팡 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눈앞에서 (이상민 코치의) 패스가 지나가는 걸 봤을 때 느꼈다. 그냥 패스가 아니었다. 틈이 나지 않았는데 0.001초의 타이밍이 날 때 역동작에 걸려서 패스를 줬다. 저는 그날 경기에서 득점을 많이 하고 싶었다. 결국 20점을 넣었지만, 팀이 졌다. 또 나머지 선수들이 슛을 그만큼 못 던졌다. 그걸 보면서 ‘생각을 완전 바꿔야겠다, 생각을 완전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최근 창원 LG에서 1순위에 뽑힌 박정현과 양준석은 데뷔 경기에서 각각 2분 53초와 4분 43초 뛰었다. 팀 사정이 있겠지만, 1순위답지 않은 데뷔 출전 시간이다. 문성곤(KT)도 데뷔 경기에서 8분 1초 출전했다. 1순위에 뽑힌 선수들은 보통 데뷔 경기에서 20분 이상 출전하는 편이었는데 이를 깬 선수는 김시래(DB)다. 2011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 선발된 김시래는 KBL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양동근과 한솥밥을 먹었다.
김시래는 데뷔 경기에서 선발 출전했음에도 출전시간이 적었다고 하자 “그 때 5분 정도 뛰었다. 잘 준비하고 나간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나는 게 유재학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수비를 제가 실수 하나 하는 바람에 욕 많이 먹고 교체되어 많이 뛰지 못했다. 그 다음 경기(vs. KT 28분 29초 출전)에서 많이 뛰었다”며 “’다음 경기를 잘 할 수 있게 더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경기에서 첫 경기보다 더 나은 경기 내용을 보여줬다”고 되새겼다.
당시 모비스가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힘을 실었던 김시래는 “(오프 시즌 동안) 혹독하게 훈련했다. 훈련량도 많고, 팀에 녹아들기 위해 훈련을 많이 했다”며 “지금 말씀을 드린다면 시즌 개막할 때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훈련이 많아서 지쳐 있었다. 시즌 개막할 때 몸이 떨어진 게 느껴졌는데 아니나다를까 그게 초반에 나타났다. 시즌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출전시간도 조절되고, 따로 훈련을 하니까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했다.

2012년부터 드래프트 개최 시기가 올스타 휴식기에서 시즌 개막 전이나 초반으로 바뀌며 신인 선수들이 곧바로 프로에 데뷔할 수 있다. 이로 인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1순위에 선발된 선수도 데뷔 경기에서 10분을 뛰지 못하는 사례가 나온다. 그렇다면 가장 최근 데뷔 경기에서 40분을 다 뛴 선수는 누구일까?
2012년 12월 12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고양 오리온스(현 소노)와 LG의 맞대결은 2차 연장까지 가는 승부였다. 이날 경기에서 총 5명이 40분 이상 출전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오리온스의 신인이었던 김종범이다. 김종범은 41분 12초 출전해 11점 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김종범의 출전 시간은 드래프트 출신 가운데 데뷔 경기 최다 기록이다.
2011~2012시즌 모비스에서 데뷔한 김동량은 현역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데뷔 경기에서 40분을 뛰었다. 김동량은 “우리는 올스타 휴식기 때 드래프트가 열려서 바로 데뷔를 할 수 없었다. 오프 시즌 동안 팀 훈련을 하며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지훈 형이 군대 가 있던 시절이라서 빅맨이 많지 않았다. 유재학 감독님께서 저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다”며 “프로 첫 경기니까 얼마나 떨리겠나? 그래도 잘 풀렸다. 40분을 다 뛰었던 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당시에는 어렸으니까 체력에서 큰 문제가 없었을 거다.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데뷔 경기에서) 40분을 뛰었다는 걸 알았다. 그 당시에는 인지를 못 했다”고 했다.
2011~2012시즌은 외국선수 1명 보유 1명 출전한 유일한 시즌이었다. 김동량은 “(외국선수 제도) 그 영향도 있었던 거 같다. 국내선수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그렇게 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신인 선수가 40분을 뛰는 것 자체가 감사한 자리였다. 열심히 뛰었다. 그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김동량은 데뷔 경기에서 19점을 올렸다. 2011~2012시즌 데뷔한 선수 가운데 데뷔 경기 최다 득점이다. 김동량의 드래프트 동기는 오세근, 김선형(이상 SK), 최진수(LG) 등이다. 더불어 12시즌 동안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김동량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득점이다. 김동량은 19점을 올렸다고 하자 “젊었으니까 패기가 좋고, 몸도 좋았다. 빠릿빠릿하게 뛰었다. 출전시간을 길게 받는 게 이점이다. 다른 것보다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
BONUS ONE SHOT
시즌별 데뷔경기 최다 득점 선수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신인 선수들 가운데 데뷔 경기에서 20점 이상 기록한 선수는 현주엽(26점)과 조상현(27점), 방성윤(21점) 3명이다. 보통 누군가는 10점 이상 기록하는 편인데 데뷔 경기에서 10점 이상 올린 선수가 없었던 경우도 5시즌이다. 이 가운데 최소 득점은 2015~2016시즌의 6점이다. 6점을 기록한 강호연은 당시 24순위로 3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다. 3라운더가 데뷔 경기 최다 득점을 기록한 유일한 시즌이다. 참고로 1순위가 데뷔 경기 최다 득점을 기록한 건 9시즌이다.

#사진_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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