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은 기록이 되어야 하고, 기록이 쌓여야 역사가 된다. ‘예능공룡’부터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외국선수까지. 잠실체육관을 논할 때 빼놓아선 안 될 농구인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잠실은 어떤 의미였나요?”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잠실체육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만든 선수를 제일 먼저 다루는 게 인지상정. KBL 역대 최다득점(1만 3231점)의 주인공인 서장훈은 잠실체육관 최다득점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전체 득점의 31.3%에 해당하는 4144점을 잠실체육관에서 올렸다. 2위는 이규섭의 2634점. 잠실체육관 최다 리바운드(1632개), 블록슛(167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SK는 연고지를 청주에서 서울로 옮긴 2001-2002시즌부터 2003-2004시즌까지 잠실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며, 이전 첫 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할 때 에이스로 활약했던 선수가 바로 서장훈이었다. 서장훈은 2001-2002시즌 종료 후 FA 협상을 통해 삼성으로 이적, 2006-2007시즌까지도 잠실체육관에서 홈경기를 치렀다.
“뒤가 넓은 체육관을 선호하진 않았지만, 홈구장으로 계속 쓰다 보니 적응됐다. 적응을 마친 이후부터는 괜찮았다. 잠실체육관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KCC 시절 삼성과의 경기에서 넣었던 버저비터(2008년 2월 24일)다. 상대가 삼성이라서가 아니라 팀이 버저비터 덕분에 이긴 자체가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삼성에서 우승했던 챔피언결정전(2005-2006시즌)도 빼놓을 수 없다. 나를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어설프게 들은 얘기만 가지고 많이 못 뛰었다고 할 뿐 마지막 경기 빼곤 다 제대로 치렀다. 공동 수상이긴 했지만 심지어 정규시즌 MVP까지 받은 사람이 우승에 기여를 안 한 거면 누가 기여한 건가. 플레이오프에서 위닝샷 넣은 적도 있었다. 삼성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으며 이적했는데 한 번은 우승했다는 게 기억에 남아있다. 최근 ‘열혈농구단’ 촬영 차 필리핀 마닐라의 몰 오브 아시아 아레나에 다녀왔는데 충격을 받았다. 필리핀도 NBA급 체육관이 있는데 세계적인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는 없다니…. 아직도 의문이다. 우리나라도, 특히 서울이라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체육관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일본 치바, 오키나와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농구장이 있다. 신축 야구장, 축구장도 잘 짓고 있는 만큼 농구장도 국제대회를 유치할 수 있으면서 콘서트도 열릴 수 있는 수준의 체육관으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삼성이 KBL 출범 후 첫 우승을 차지했던 2000-2001시즌 플레이오프 MVP다. 신인상 수상 직후인 1998년 원주 나래(현 DB)에서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으로 트레이드됐고, 2004-2005시즌까지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이후 안양 KT&G(현 정관장)-서울 SK를 거쳐 2015년 삼성으로 돌아와 2016-2017시즌까지 뛰었다. 2016-2017시즌은 주희정의 은퇴 시즌이자 삼성이 잠실체육관에서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은 시즌이 됐다. 잠실체육관 최다 어시스트(1279개), 스틸(358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워낙 많은 경기를 치러서인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긴 어렵다. 사실 선수 때 어떻게 뛰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안 난다(웃음). 통합우승할 때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지만, 그땐 홈이 아닌 중립이었다.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한 후 삼성의 우승을 함께했던 (서)장훈이 형이나 (이)규섭이에게 더 의미가 있는 체육관이지 않을까 싶다.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필리핀도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체육관이 있다. 이제는 우리도 NBA 경기를 유치할 수 있는 수준의 체육관이 있어야 한다. 관중도 잠실체육관보다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는 규모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김동광 감독은 1998년 최경덕 감독에 이은 2대 감독으로 삼성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연고지는 수원이었지만, 첫 우승의 감격은 잠실체육관에서 누렸다. 삼성이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2000-2001시즌은 챔피언결정전 5~7차전이 잠실체육관에서 중립경기 형식으로 열리던 시절이었다. 2003-2004시즌까지 삼성을 이끌었던 김동광 감독은 이후 안양 SBS(현 정관장) 감독-해설위원-KBL 경기위원장 등을 거쳐 2012년 5대 감독으로 삼성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건넨 안부 전화에도 “암흑기가 너무 길어져서 걱정”이라며 삼성을 향한 여전한 애정을 드러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 현장에서 해설위원으로 중계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 애정이 있는 체육관이다. 지도자가 된 후에는 아무래도 통합우승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중립경기로 챔피언결정전이 열리던 시절이긴 했지만, 삼성의 첫 우승이었으니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아티머스 맥클래리 뿐만 아니라 무스타파 호프의 활약도 기대보다 쏠쏠했다. 문경은, 이규섭, 주희정도 기복 없이 제 역할을 잘해줬으니 모든 면에서 LG를 압도할 수 있었다. 체육관이 워낙 넓어서 추웠다는 것만 빼면 시설 면에서 크게 아쉬울 건 없었다. 새로운 체육관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실학생체육관도 곧 있으면 철거된다고 들었다. 새 체육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삼성, SK가 많은 시즌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팬들도 프로농구 경기를 관전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대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2000-2001시즌 통합우승부터 2005-2006시즌에 달성한 KBL 역대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스윕까지. 삼성의 2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모두 지도자로 함께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2000-2001시즌은 수석코치로 김동광 감독을 보좌했고, 삼성 감독 부임 2년 차였던 2005-2006시즌에는 4강-챔피언결정전에 걸쳐 플레이오프 7전승 우승을 만들었다. 안준호 감독은 사령탑을 맡았던 2004-2005시즌부터 2010-2011시즌에 이르기까지 삼성을 역대 최초 7시즌 연속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203승 역시 삼성 역대 감독 최다승으로 남아있다.
“2005-2006시즌 챔피언결정전은 울산에서 치르는 1, 2차전이 매우 중요했는데 2경기 모두 이기고 홈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기세를 몰아 4차전에서 끝낼 수 있었다. 파워, 높이에서 우리가 모비스(현 현대모비스)를 압도했다. 네이트 존슨과 강혁의 2대2, 이규섭의 3점슛, 올루미데 오예데지의 파워에 국보급 센터 서장훈까지. 단연 10개 팀 중 최강의 전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을 연고지로 둔 데다 좌석도 많았지만, 콘서트로 인해 연말에 홈경기를 많이 치르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새로운 체육관이 한국의 랜드마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튜이트 돔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LA 레이커스, LA 클리퍼스가 함께 시즌을 치렀다. 두 팀은 홈경기를 치를 때마다 조립식으로 된 코트를 싹 바꿨다. 그래서 각자의 특색을 살려 홈경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반면, 잠실체육관을 함께 쓰던 시절 삼성과 SK는 로고가 함께 코트에 들어갔다. KCC, BNK가 같이 쓰고 있는 부산사직체육관도 두 기업의 로고가 다 새겨져 있다. 새로운 체육관도 삼성, SK가 같이 쓰는 걸로 알고 있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홈경기를 세팅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야구장 근처에 호텔도 건설된다고 하니까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육관이 갖춰지면 여러모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체육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귀화혼혈 선수였다. 외국선수 신분으로 KBL에 데뷔했던 이승준은 2009년 신설된 귀화혼혈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선발되며 삼성과 연이 닿았다. 2009-2010시즌부터 2011-2012시즌까지 삼성에서 뛰었다. 비록 기대했던 강팀으로 이끌진 못했지만, 이승준이 뛰던 시절 삼성의 농구는 ‘볼 맛’이 났다. 이승준은 어마어마한 탄력을 바탕으로 잠실체육관에서 가장 많은 덩크슛(76경기 95개)을 터뜨렸다. 하승진을 상대로 만든 인유어 페이스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명장면이다. 2011년 2월 26일 전주 KCC(현 부산 KCC)를 상대로 치러진 클래식데이에서는 개인 최다인 8개의 3점슛을 터뜨리며 삼성에 승리를 안겼고, 경기 종료 후 “사실 그분(김현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삼성에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는 들었다. 영적인 도움을 받은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1경기만 꼽기엔 너무 많은 추억이 있는데…. 3점슛 8개 넣은 것도 기억나고, 인유어 페이스를 얘기하면 (하)승진이가 화낼 것 같다(웃음). 슛 연습하려고 일찍 나가면 항상 마스코트가 볼을 잡아줬고, NBA 스타들과 이벤트 형식의 경기를 치렀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역사적인 체육관이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데이비드 로빈슨과 아비다스 사보니스, 2006년에는 르브론 제임스와 드와이트 하워드가 뛰었다. 유명한 선수가 많이 뛰었던 체육관이어서 경기를 치를 때마다 영광스러웠다. 미국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더 포럼(LA 레이커스의 이전 홈구장)처럼 한국 농구에서 가장 상징적인 체육관이라고 생각한다. 리모델링이 아닌 아예 새로운 체육관을 짓는 거라 해도 잠실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뿐만 아니라 코트, 라커룸에 있는 의자 등을 재활용해서 언제 가더라도 ‘오, 이거 아직도 있네!’라면서 추억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잠실의 역사를 알릴 수도 있는 신축 체육관이 지어졌으면 한다.”

삼성 그리고 잠실체육관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드다. 2005년 주희정의 반대급부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고, 이후 2014-2015시즌까지 10시즌 동안 삼성에서 활약했다. 삼성이 2005-2006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할 당시 주전 가드였고, 이후에는 이상민-강혁과 함께 ‘가드 왕국’을 꾸리기도 했다. 이규섭(251경기)에 이어 잠실체육관에서 2번째로 많은 237경기를 치렀고, 잠실체육관에서 만든 869어시스트는 주희정(1279개)-강혁(1059개)에 이어 3위였다.
“아무래도 정기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뛴 경기는 처음이다 보니 엄청 떨렸다. 지금 돌아보면 아시안게임 결승전보다 정기전 때 더 긴장했던 것 같다. 많은 관중을 경험해서인지 이후 챔피언결정전, 국제대회는 떨지 않고 치를 수 있었다. 5차 연장전도 기억에 남는다. 역대급 경기 아닌가. 나는 5차 연장전에서 20초 만에 파울아웃됐다.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까지 코트에 남아있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경기 흐름이 희한했다. 연장을 계속 들어가니 이기고 있어도 동점 될 거 같고, 지고 있어도 동점 만들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다. 새 체육관은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와 시설이 갖춰졌으면 한다. 일본의 신축 경기장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체육관이라 해도 관중이 많이 와야 할 텐데…. 그래도 일단 넓게, 좋게 지었으면 한다.”

뛰었던 기간은 SK가 가장 길었지만, 애런 헤인즈의 KBL 커리어가 시작된 곳은 삼성이었다. 2008-2009시즌 에반 브락의 대체 외국선수로 삼성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득점력 준수한 깡마른 외국선수’ 정도로 평가받았지만, KBL 최초 외국선수 1만 득점이라는 반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KCC와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극적인 버저비터를 터뜨린 곳이 바로 잠실체육관이었다. 모비스-창원 LG를 거쳐 삼성으로 돌아온 2010-2011시즌에는 KBL 역대 최초 2시즌 연속 득점 1위를 달성했다. 은퇴 후 미국에서 부동산 사업을 거쳐 현재는 존 F. 케네디 고교 코치로 활동 중이다.
“KCC와의 2008-2009시즌 챔피언결정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중에서도 5차전은 농구 인생에서 손꼽을 수 있는 경기였다. 나의 버저비터 덕분에 극적으로 이겼고, 결국 그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다. 가득 들어찬 관중들의 함성이 어마어마했다. 2만 명 이상이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당시 ‘마치 코비 브라이언트가 된 기분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잠실체육관이 사라진다는 얘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많은 추억을 함께했던 체육관이 사라진다니 아쉽지만 새로운 체육관은 어떻게 지어질지 궁금하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나중에 새로운 체육관에 꼭 가보고 싶다. 기회가 닿는다면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한 팀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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