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차기 시즌까지 농구가 열린다 해도 잠실체육관과 작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철거를 앞둔 잠실체육관은 왜 ‘농구의 메카’라 불렸으며, 그동안 한국 농구와 함께 어떤 추억을 쌓아왔을까.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잠실체육관은 1976년 10월 건설 계획이 세워진 후 약 2년 6개월 만이었던 1979년 4월 18일 개장했다. 국내 최초로 1만 석 이상의 좌석이 설치된 체육관이었으며, 장충체육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기 전 웜업을 위한 보조 경기장도 마련됐다.
대통령 취임식, 콘서트, e스포츠, 풋살 대회, 김연경 배구 국가대표팀 은퇴경기 등 그동안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지만 뭐니 뭐니해도 메인은 농구였다. 잠실체육관 개장을 기념해 1979 FIBA(국제농구연맹) 여자 농구 월드컵(당시 세계선수권)이 열렸으며, 한국은 여자 농구 월드컵을 개최한 최초의 아시아 국가였다.
개최국의 자존심도 지켰다. 한국은 박찬숙, 조영란 등을 앞세워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여자 농구 월드컵은 토너먼트 방식이 아닌 조별리그 전적과 파이널 라운드 전적을 합산, 동률일 경우 골득실을 통해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한국은 파이널 라운드에서 미국을 94-82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켰지만, 조별리그에서 캐나다에 63-76으로 패한 게 발목을 잡았다. 한국은 미국, 캐나다와 5승 1패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에서 밀려 미국에 우승을 넘겨줬다.
개장 기념대회부터 한국 대표팀이 남긴 의미 깊은 성과를 함께했던 잠실체육관은 이어 1986 서울 아시안게임, 1988 서울 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특히 서울 올림픽은 NBA 선수의 출전이 제한된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대학 선수들로 팀을 꾸린 미국은 동메달에 그치자 1989년 FIBA에 제한 폐지를 건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드림팀을 탄생시켰다.
서울 올림픽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는 소련이 유고슬라비아를 76-63으로 꺾으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에 열렸던 올림픽으로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소련 소속이었다. 현재 NBA 팬들은 도만타스 사보니스(새크라멘토)의 아버지 정도로 알고 있겠지만, 사보니스는 현역 시절 유럽 최고의 선수였다. 221cm-132kg의 육중한 몸을 앞세운 포스트 플레이가 위력적이었고 간간이 던지는 3점슛도 준수했다.
1990년대 연세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희암 전 감독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 농구선수이기도 했다. 당시 연세대 감독 3년 차였던 최희암 전 감독은 서울 올림픽 자원봉사를 맡으면서 남녀 농구 전 경기를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관계자들의 ID 카드를 확인하는 일을 맡아서 어려울 건 없었다. 무엇보다 수준 높은 경기를 공짜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혜택이었다”라는 게 최희암 전 감독의 회고다.
최희암 전 감독은 “연세대 감독 부임 후 수비를 많이 강조했는데 올림픽을 보며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걸 느꼈다. 속공 득점을 성공한 포인트가드가 곧바로 압박수비를 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지연시킨 게 인상적이었다. 풀코트 프레스는 모든 선수를 활용해야 쓸 수 있는 전술인데 선수 1명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걸 느꼈다”라고 말했다.
또한 “서장훈이 1994년에 3점슛 던진다고 욕먹었는데 1980년대는 어땠겠나. 센터가 3점슛 던지면 난리 나던 시절이었는데 사보니스는 그 신장으로 3점슛도 던졌다. 지금이야 센터가 3점슛을 던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때만 해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선진농구를 많이 접해 내가 감독 커리어를 쌓는 데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던 대회로 남아있다”라고 회고했다. 한편, 개최국 한국은 허재, 이충희, 김현준을 앞세워 9위에 올랐다.

개장 이후 잠실체육관은 ‘농구의 메카’로 입지를 다졌다. 1983년 세미프로리그라 할 수 있는 농구대잔치 초대 시즌이 개최됐고, 유재학 KBL 경기운영본부장은 이때 연세대 소속으로 출전했다. 초대 시즌에서는 현대전자와 코오롱이 각각 남녀부 우승을 차지했고, 득점왕은 이충희(28.1점, 현대)와 김영희(31.1점, 한국화장품)였다. 초대 대회명은 점보시리즈였다. 정부의 한글 사용 권장에 따라 2년 차 시즌부터 명칭이 농구대잔치로 바뀌었고,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고려대와 연세대(오해 살까 봐 밝히는데 가나다 순으로 썼다)가 치르는 정기전도 빼놓을 수 없다. 양교 재학생들의 열기와 응원전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체육관이었고, 정기전을 보며 농구선수의 꿈을 키우거나 양교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선수도 적지 않았다.
코치, 감독으로 모두 정기전을 경험했던 박건연 전 연세대 감독은 “농구 열기가 어마어마하던 시기였다. 입장이 시작되면 서로 좋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하다 문 부서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라고 회상했다.
잠실체육관에서 열렸던 최초의 KBL 정규리그 경기는 1997년 11월 8일 부산 기아(현 울산 현대모비스)와 안양 SBS(현 정관장)의 1997-1998시즌 공식 개막전이었다. 기아의 외국선수 저스틴 피닉스가 덩크슛으로 잠실체육관 1호 득점을 올렸고, 1호 어시스트의 주인공은 강동희였다. 기아도 103-94로 승리하며 잠실체육관에서 승리한 최초의 팀으로 이름을 남겼다.
농구대잔치의 인기에 힘입어 닻을 올린 KBL은 출범 초기 전국 각지에 프로팀을 배치해 프로농구의 출범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KBL 출범 초기 한국의 수도 서울이 특정 팀의 연고지가 아니었던 이유다. KBL은 대신 중립경기를 배정해 서울 팬들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 잠실체육관을 비롯해 올림픽 제2체육관에서도 중립경기가 열렸으며, 하루에 2경기가 진행되는 날도 많았다.
박건연 전 감독은 청주 SK(현 서울 SK) 코치로도 잠실체육관 벤치에 앉은 경험이 있는 지도자다. 박건연 전 감독은 “중립경기라 해서 특별히 불편한 건 없었다. 선수들 모두 서울이나 수도권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중립경기를 반겼다. 가족, 친구들이 더 많이 올 수 있어서 중립경기만 기다리던 선수도 있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2023년 11월호 ‘꼬꼬농’에서 다뤘듯, 잠실체육관이 삼성의 홈구장이 된 건 2001년의 일이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서울을 연고지로 둔 팀의 필요성을 실감한 KBL은 발전기금 100억 원을 복수의 팀이 납부하는 것을 조건으로 희망하는 팀들로부터 신청서를 받았고, 삼성과 SK가 각각 50억 원을 납부하며 서울의 주인이 됐다.

SK가 2004-2005시즌에 홈구장을 잠실학생체육관으로 이전하며 삼성만의 홈구장이 됐지만, 챔피언결정전에 한해서는 중립경기가 유지됐다. 삼성이 진출하는 경우만 제외한 시리즈의 5~7차전은 잠실체육관에서 열렸던 것. 서울에 위치한 데다 1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인 만큼 농구 팬들의 접근성, 수익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 원년 시즌부터 이어져 왔던 챔피언결정전 5~7차전 중립 개최는 원주 동부(현 DB)와 KGC(현 정관장)가 맞붙었던 2011-2012시즌에 폐지됐다.

2006년 8월 15일은 잠실체육관 개장 이후 최고의 호화 라인업이 출격했던 날로 기억되지 않을까. 대한민국농구협회가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잠실체육관에서 한국, 미국, 리투아니아, 이탈리아, 튀르키예가 출전하는 친선 대회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 2006’을 개최했는데 미국은 드림팀을 구축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푸에르토리코에 패하는 등 자존심을 구겼던 미국이 명예 회복을 위해 벼르고 있던 대회가 8월 19일부터 9월 3일까지 일본에서 열리는 2006 남자 농구 월드컵이었다. WBC는 미국이 적응훈련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대회였던 셈이다. 면면은 화려했다. 르브론 제임스를 비롯해 카멜로 앤서니, 드웨인 웨이드, 드와이트 하워드 등 NBA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월드컵 진출권을 따내지 못했지만, 한국 역시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을 4개월 앞두고 있었던 터라 대표팀이 손발을 맞출 대회가 필요했다. 최부영 대표팀 감독은 당시 대회를 앞두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팀은 없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의 장신들에 대비하는 차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의 경기가 열렸던 날은 광복절, 8월 15일이었다. 한국도 NBA리거 하승진을 비롯해 방성윤, 김승현 등이 출전했으나 세계 최강의 벽은 예상대로 높았다. 116-63, 미국의 완승이었다. 르브론 제임스는 19분 46초만 뛰고도 23점 야투율 83%를 기록하며 MVP로 선정됐고, 하워드는 3점슛을 시도한 이규섭 현 IB SPORTS 해설위원을 상대로 보고도 믿기 힘든 블록슛을 만들었다.

하워드의 블록슛에 대해서도 “패스 방향이 안 좋긴 했지만, 내 감각으로 봤을 때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전혀 흑역사가 아니다. 하워드가 대단한 블록슛을 한 것이었고, 함께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손대범 본지 편집인은 점프볼 기자 가운데 당시에도 취재기자로 활동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손대범 편집인은 “한국 선수가 득점할 때보다 미국 선수가 득점할 때 환호가 더 컸다. 신기한 경험이었고, 미국 선수들에게도 홈팀보다 큰 환호를 받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압도적 경기력은 놀랍지 않은 일이었지만, 미국 방식이었던 취재 환경은 낯선 경험이었다. KBL 경기가 열릴 때 1층은 기자들의 놀이터지만 미국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훗날 NBA 취재를 다니다 보니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깐깐하게 느껴지긴 했다. 애초 계획에 있던 건지 모르지만, 미군이 관중으로 많이 동원됐다. 매진된 경기는 아니었다”라고 회고했다.

시즌마다 삼성의 정규리그 홈경기만 27경기, 여기에 플레이오프나 챔피언결정전뿐만 아니라 올스타게임까지 더하면 잠실체육관에서 수백 경기가 열리며 농구 팬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안겨줬다. 이 가운데 선수, 감독, 코치 뿐만 아니라 심판이나 기록원 등 모든 구성원의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는 경기는 2009년 1월 21일 삼성과 동부의 경기 아니었을까.
3연패를 당하는 등 유독 삼성만 만나면 고전했던 1위 동부는 135-132로 승, 뒤늦게 삼성전 첫 승을 신고했다. 최종점수에서 알 수 있듯, 이날 경기장에서는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모두 3차 연장이 최다 기록이었는데 이를 훌쩍 뛰어넘는 5차 연장이 치러진 것.
오후 7시에 시작된 경기는 10시 17분이 되어서야 종료됐고, 현장에 있던 한 취재기자는 “야구경기 취재하는 것 같았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안준호 당시 삼성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연장을 몇 번 갔나? 세 번?”이라며 취재진에게 되물었고, 동부 선수였던 이광재는 “챔피언결정전 우승한 것 같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중계를 맡았던 김태환 전 해설위원 역시 에피소드가 있었다. 김태환 해설위원은 “일반적으로 끝나는 시간을 고려해 9시 30분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본의 아니게 약속 장소에 한참 늦게 도착했다. 그래도 중계했던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명경기”라며 웃었다.
가장 고역을 앓았던 이들은 심판 아니었을까. 선수들은 앉아서 쉬는 시간이라도 있었지만, 심판들은 생리현상을 참기 위해 물조차 마시지 못하며 코트를 누볐기 때문이다. 현재 KBL 심판으로 활동 중인 이민영 심판의 아버지 이동인 전 심판은 당시 심판을 맡았던 이들 가운데 1명이었다.
이동인 전 심판은 “선수들만큼 심판들도 힘들었다. 마치 2경기 연속 치른 기분이었고, 소변도 참아야 했다. 경기 후 20분 정도 넉다운됐지만, 오프시즌에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소화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양 팀 도합 최다인 267점을 비롯해 역대 최다 파울(73개), 퇴장 선수(8명), 최장시간(윤호영·61분 57초) 등 갖가지 진기록이 쏟아진 만큼, KBL은 당시 이례적이었던 기념구를 만들었다. 기념구에는 양 팀의 로고를 비롯해 경기에서 세워졌던 기록도 빠짐없이 새겨졌다. KBL은 총 267점이 나온 것을 기념, 267개의 공을 만들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선수와 취재진 등 관계자들에게 배포한 후 남은 공을 팬들에게 판매했다. 공마다 1~267이 다르게 새겨져 소장 가치도 높였다.
KBL 시스템에 변화를 준 경기이기도 했다. 현재 취재진이 경기를 취재할 때 참고하는 기록 프로그램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당시 유일하게 가동 중이었던 기록 프로그램은 4차 연장까지만 갖춰진 터였다. 5차 연장을 수작업으로 진행해 기록원들이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 KBL은 언젠가 또 나올지 모를 5차 연장에 대비, 기록 프로그램에 8차 연장까지 입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했다. 참고로 NBA 최다 기록은 6차연장이다.

필자 역시 꿈을 이룬 후 기자라는 신분으로 처음 갔던 체육관이기에 15년만 오갔어도 시원섭섭한 마음이 앞서는데 안방처럼 드나들던 농구인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삼성의 원클럽맨이었던 이규섭 해설위원은 “농구를 시작하기 전 서울 올림픽 결승전을 보러 가서 사보니스를 보며 감탄했던 게 기억난다. 2005-2006시즌 우승할 때 챔피언결정전에서 많은 3점슛(평균 3.5개)을 넣기도 했다. 선수로 두 번 우승할 때도, 코치로 준우승할 때도 마지막 경기가 열린 곳이었다. 물론 B.리그 올스타게임을 중계하며 ‘우리나라도 좋은 체육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은 추억이 있는 체육관이어서 한편으로는 아쉽다”라고 말했다.
농구인으로서의 바람도 전했다. 이규섭 해설위원은 “라라 아레나(치바 제츠 홈구장)는 완벽한 경기장이다. 개인적으로 이처럼 완벽한 시설은 물론 기업명도 들어가서 판을 키울 수 있는 체육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최희암 전 감독은 “VIP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비싼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이다. 진짜 VIP를 위한 편의가 잘 갖춰졌으면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농구장은 주차한 후 한참 걸어가야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동선이 최소화돼 비싼 티켓 사서 오는 관중들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사소한 것들이 하나하나 모이게 되면 관중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농구의 인기도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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