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삼성
2000-2001시즌 : 34승 11패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4승 1패(vs LG)
2001-2002시즌 : 24승 30패 정규리그 8위
2001년, 삼성은 마침내 KBL 출범 후 첫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하와이로 우승 여행을 떠났다. 우승의 기쁨을 만끽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김동광 당시 삼성 감독은 간판스타 문경은의 트레이드 요청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 첫 시즌을 앞두고 있던 터라 핵심 전력에 변화를 주는 건 위험 부담이 큰일이었지만, 문경은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불화가 있거나 감독님의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는 아니었어요. 새롭게 떠오르는 주희정에게 이목이 집중됐고, 마침 유재학 감독님도 저를 원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새롭게 출발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하와이에서 빌다시피 해서 트레이드 승낙을 받았어요.” 문경은의 회고다.
김동광 감독 역시 “저야 엄청 붙잡았죠. 하와이에서도 무작정 보내달라고 하는데…. 마음 떠난 선수 붙잡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삼성에서 은퇴하면 감독까지 할 수 있는데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돌아봤다.
그렇게 ‘서울 삼성’이라는 이름으로 맞이한 첫 시즌. 삼성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디펜딩 챔피언 최초의 개막 3연패에 빠지며 시즌을 시작했다. 삼성은 이후 13경기에서 11승 2패를 거두며 본격적으로 타이틀 방어에 나서는 듯했지만, 시즌 중반 거짓말처럼 8연패에 빠지며 다시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최종 순위는 8위. 문경은을 대신해 영입한 우지원 역시 날카로운 슈터였지만, 승부처에서의 무게감은 선배 문경은에 비할 수 없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고 했던가. 무스타파 호프의 장기 결장도 삼성으로선 악재였다. 삼성은 호프가 뛴 37경기에서 20승 17패를 기록했지만, 결장한 17경기에서는 4승 13패에 그쳤다. 반면, 사실상 1옵션이라 할 수 있었던 맥클래리가 출전한 경기의 승률은 5할 미만(22승 25패 승률 .468)이었다.
당시 주축 가운데 1명이었던 이규섭은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아팠어요. 그 중에서도 호프는 팀 사정을 알았는지 일찍 복귀를 시도했는데 결과적으로 상태가 더 악화됐죠.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자존심에 금이 간 삼성은 2001-2002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 의욕적으로 나섰다. FA 최대어이자 최고의 선수였던 서장훈을 영입했고, 2002-2003시즌부터 2010-2011시즌까지 플레이오프에 개근하며 강팀의 면모를 되찾았다. 문경은을 내주며 영입했던 우지원은 한 시즌 만에 서장훈의 보상선수로 삼성을 떠났다.

모비스
2006-2007시즌 : 36승 18패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4승 3패(vs KTF)
2007-2008시즌 : 14승 40패 정규리그 9위
2007-2008시즌 플레이오프 탈락을 ‘디펜딩 챔피언의 몰락’ 사례로 꼽는 건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 입장에서 꽤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들에겐 면죄부 삼을만한 속사정이 있었다. 2006-2007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산 KTF(현 수원 KT)와 7차전까지 가는 사투 끝에 통합우승을 달성한 모비스는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MVP를 싹쓸이했던 양동근이 입대하며 2년 후를 기약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선수 제도마저 자유계약제에서 드래프트 제도로 회귀, 종전 외국선수와의 재계약이 불가능해졌다. 양동근과 영혼의 단짝이었던 크리스 윌리엄스, 골밑에 무게감을 더해줬던 크리스 버지스까지 떠났으니 전력 약화는 불 보듯 뻔했다. 실제 모비스는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2006-2007시즌보다 22승이나 적은 14승을 따내는 데에 그쳤다. 이는 2012-2013시즌 원주 동부(현 DB)가 2011-2012시즌 대비 –24승에 그치기 전까지 정규리그 우승 팀이 차기 시즌에 남긴 가장 큰 폭의 하락세였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양동근의 뒤를 잇는 간판스타 함지훈을 발굴했다는 점이었다. 2007 신인 드래프트 10순위로 선발됐던 함지훈은 신인임에도 방성윤, 서장훈에 이어 국내선수 득점 3위(16.1점)에 오르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이후 모비스의 행보까지 돌아본다면, 2007-2008시즌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모비스는 양동근이 공백기를 갖는 동안 원투펀치로 자리매김한 김효범, 함지훈이 성장세를 이어갔고, 2008-2009시즌에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파란을 일으키며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모비스
2009-2010시즌 : 40승 14패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4승 2패(vs KCC)
2010-2011시즌 : 20승 34패 정규리그 8위
운명의 장난일까. 모비스는 양동근이 제대, 완전체를 이룬 2009-2010시즌 통합우승 직후 다시 전력이 약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2년 전 양동근이 그랬듯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MVP를 독식한 함지훈이 입대했고, 브라이언 던스톤은 재계약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NBA 무대에 도전했다. 김효범도 FA 자격을 취득, SK로 이적했다.
베스트5 가운데 세 자리가 바뀐 데다 외국선수 드래프트 순위도 10, 11순위였으니 수준급 외국선수를 선발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랐다. ‘제2의 던스톤’을 기대했던 로렌스 엑페리건은 경기력도, 감정도 기복이 컸다. 예년의 경쟁력을 잃은 마이카 브랜드는 11경기 만에 짐을 쌌다.
양동근이 베스트5에 선정되는 등 변함없는 활약상을 보여줬지만, 모비스는 두 라운드나 1승에 그치는 등 2010-2011시즌 내내 하위권을 맴돈 끝에 8위로 시즌을 마쳤다. MVP, 듬직했던 외국선수의 부재 등 부진의 요인을 꼽자면 줄줄이 나열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 모비스 사령탑을 맡았던 유재학 KBL 경기본부장은 과거를 냉정히 돌아봤다.
“던스톤과의 재계약 불발, 입대(함지훈) 등 핑계 삼을 수 있는 상황들은 있었죠.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게을러졌다고 해야 할까…. ‘정신줄을 놨다’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전력에 변화가 있다면 그만큼 더 착실히 시즌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이전 시즌에 좋은 성과를 거둬서인지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거죠. 선수들뿐만 아니라 저도 그랬으니까요. 낮은 순위에서 외국선수를 선발해야 한다면 더 발품 팔아서 어떻게든 경쟁력 있는 외국선수를 찾았어야죠. 만약 2009-2010시즌 성적이 안 좋았다면, 2010-2011시즌에는 적어도 8위보단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겁니다.” 유재학 경기본부장의 회고다.

유재학 경기본부장은 “우승하면 아무래도 긴장감이 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느슨해지지 않게 이끌었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죠. 2010-2011시즌의 실패가 있었기에 쓰리핏도 가능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SK
2017-2018시즌 : 36승 18패 정규리그 2위,
챔피언결정전 4승 2패(vs DB)
2018-2019시즌 : 20승 34패 정규리그 9위
“우승은 어제 내린 눈과 같다”라고 했던가. 18년 만에 따낸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기쁨은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졌다. SK에 2018-2019시즌은 악명 높았던 ‘롤러코스터’의 시작과도 같았다. 출발은 순탄했다. 개막 후 11경기에서 7승 4패 2위를 기록했고, 무릎수술 후 재활을 거쳤던 애런 헤인즈의 복귀전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SK는 헤인즈와 함께한 두 번째 경기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2라운드 중반부터 5라운드 초반에 이르기까지 25경기에서 3승 22패 승률 .120에 그친 것. 김선형이 개인 최다인 49점을 올리며 10연패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SK는 이후 다시 연패의 늪에 빠지는 등 힘겨운 1승-기나긴 연패를 반복했다. 마치 호성적-플레이오프 탈락을 반복하며 ‘롤러코스터’라 불렸던 나날처럼 말이다.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SK는 팀 전력을 구성하는 데에 근간이 되는 외국선수 농사에서 큰 실패를 맛봤다. 2018-2019시즌에 SK 소속으로 뛴 외국선수만 7명에 달했다. 최준용(32경기)과 안영준(39경기)도 자주 자리를 비웠고, 50경기 이상 소화한 선수는 최원혁(54경기)과 최부경(50경기)뿐이었다.

전희철 감독은 또한 “우승하면 오프시즌이 짧고 바쁘긴 하지만, 훈련량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외국선수 2명이 함께 뛸 수 있었는데 계속 바뀌다 보니 팀도 안정감을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랐죠”라고 덧붙였다.
2019-2020시즌에 DB와 정규리그 공동 우승을 차지했으나 2020-2021시즌에 다시 8위로 내려앉자, SK는 결단을 내렸다. 10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문경은 감독의 뒤를 이어 전희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이후 팀 역사상 최초로 네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오르며 롤러코스터 구간에서 벗어났다.
이 기간에 정규리그 우승 2회, 챔피언결정전 진출 2회를 달성하는 등 전희철 감독 체제에서 남긴 업적도 화려했다. 2021-2022시즌에는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루기도 했다. 전희철 감독은 “우승하면 오프시즌이 짧아서 팀을 준비하는 과정이 미약할 수밖에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변화의 폭이 적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최근의 SK는 워니가 계속해서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정관장
2022-2023시즌 : 37승 17패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4승 3패(vs SK)
2023-2024시즌 : 18승 36패 정규리그 9위
“82승을 해도 더 이상의 연장 계약은 없어. 당신은 이제 끝이야!” 갈등이 극에 달했던 제리 크라우스 단장으로부터 모욕적인 한마디를 들은 후, 필 잭슨 시카고 불스 감독은 표지에 ‘라스트 댄스’라고 적힌 다이어리를 선수들에게 나눠주며 1997-1998시즌을 시작했다.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시카고는 파이널에서 유타 재즈를 꺾고 쓰리핏을 달성, 유종의 미를 거뒀다.
우승 직후 마이클 조던은 예고대로 통산 2호 은퇴를 선언했고, 스카티 피펜과 데니스 로드맨도 시카고를 떠났다. 천하를 호령했던 시카고는 화려한 마침표를 찍은 이후 전력이 급격히 약화됐고, 1998-1999시즌 13승 37패 승률 .260 동부 컨퍼런스 최하위에 머물렀다.
‘KBL판 라스트 댄스’를 만든 팀이 2022-2023시즌의 안양 KGC였다. 정규리그 우승을 향해 순항하던 2023년 2월, 계약 만료까지 2년 더 남아있던 주장 양희종은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다. 우승 가능성이 높은 시즌에 홀가분하게 은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며 지도자를 준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KGC는 양희종이 팀의 역사와 수비에서 상징적인 존재였다는 점에서 착안, ‘라스트 디펜스’를 플레이오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SK와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이후 행보도 시카고와 흡사했다. 시카고처럼 예고된 이별은 아니었지만, 양희종에 이어 오세근과 문성곤마저 FA 협상을 거쳐 팀을 떠난 것. 변준형의 입대 외엔 예기치 않았던 전력 이탈을 연달아 겪은 KGC는 2023년 오프시즌 팀명까지 정관장으로 바뀌며 연고지와 모기업 외엔 모든 게 바뀐 팀이 됐다.

일시 대체 외국선슈 듀반 맥스웰과 함께할 때까지만 해도 경쟁력을 보여줬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함께했던 두 시즌 모두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올려놓았던 오마리 스펠맨은 ‘스팸맨’이 되어 돌아왔고, 정관장은 2023-2024시즌 스펠맨이 뛴 5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스펠맨으로 인해 시즌 플랜이 꼬인 정관장은 이후 발 빠르게 외국선수 교체를 진행했지만, 무너진 팀을 추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정관장은 시즌 막판 팀 최다인 10연패에 빠지는 등 세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 2회 우승의 영광을 뒤로 하고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혀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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