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맹봉주 기자] 이번 대학 4학년 중에는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로 대표되는 황금세대 외에도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1라운드 후반에서 2라운드에 어느 선수를 뽑아야 할지 고민”이라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 프로팀 관계자들이 많은 이유도 대학리그 경기가 거듭할수록 예상치 못한 새 얼굴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4학년 한준영(23, 203cm)도 그 중 하나. 대학 2학년 때까지 평범한 선수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대학리그 최고 빅맨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 대학리그 최초의 40-20
지난 5월 30일 한양대와 중앙대의 대학리그 경기. 이날 한준영은 37분 3초를 뛰며 정확히 40득점 2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야투 성공률 73%(16/22), 자유투 성공률 89%(8/9) 등 경기 내용도 좋았다. 한준영의 활약 덕분에 한양대도 3위 중앙대를 물리치고 상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40득점 20리바운드를 올리기 전까진 이슈가 된 게 없어요. 그저 그런 선수였죠. 그날은 제가 미쳐서 대기록을 세운 것 같아요(웃음). 중앙대전 때는 컨디션이나 슛 감각 모두 좋았어요. 경기 직후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이 생겼죠.”
2010년 시작된 대학리그 역사상 처음 있는 40-20이었다. 자연스레 한준영의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한준영은 올 시즌 평균 16.17득점 9.75리바운드로 한양대 골밑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큰 키(203cm)와 긴 윙스펜(209cm)을 활용한 골밑 움직임이 좋고 포스트에서의 피벗이나 훅슛 등 센터로서 지녀야할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저는 분명 ‘큰 키’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좋은 신체조건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잖아요. 키가 크면 농구할 때 얼마나 플러스가 되는지 다들 아실 거 에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이만 먹어가고 실력은 그대로 멈춰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장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동안은 ‘큰 키’와 적극적인 수비를 빼면 별다른 게 없는 선수였어요.”
한준영이 키만 갖고 농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골밑에서 득점할 수 있는 마무리 능력이 있기에 그의 키도 빛을 발했다. “키만 갖고 농구한다”라는 주위의 평가를 깨기 위해 그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개인기술 연마에 힘썼다.
“고3때 훅슛을 처음 배웠어요. NBA와 유로바스켓을 포함해 다양한 국제대회 영상을 찾아보며 이미지트레이닝도 했고요. 개인연습도 열심히 했죠. 그동안은 힘이 안 되니까 습득한 기술을 보여줄 수 없었어요. 농구는 기본적으로 기술을 쓸 수 있는 힘이 필요하거든요. 몸이 좋아지니까 골밑에서의 일대일 공격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감독님도 골밑에 있는 저한테 공을 주고 게임을 하라고 주문하시더라고요.”
▲ 시작은 이종현 전담수비수
한준영은 늦게 농구를 시작했다. 친한 형들 따라 취미로 하던 길거리 농구가 처음이었다. 이후 용산고 진학을 결정하며 농구선수의 길을 간다. 늦게 농구를 시작했음에도 명문 용산고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큰 키 덕분이었다. 당시 용산고는 중등부 랭킹 1위 이종현 영입을 놓고 경복고와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을 펼쳤다. 결과는 경복고의 승. 용산고는 결국 이종현의 대항마로 한준영을 데려온다.
“당시 용산고에는 이미 중학교 시절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애들로 채워졌어요. 다들 중등부에서 포지션별 랭킹 1, 2위를 다투던 친구들이었죠. 저는 단지 키 큰 거 하나 때문에 들어왔어요. 경복고의 (이)종현이를 막기 위해서였죠. 당시만 해도 전국대회에 나가면 결승은 용산고와 경복고가 맞붙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결승에서 경복고를 만나게 될 경우 저에게는 이종현을 막아야 한다는 특명이 내려졌죠.”
사실 한준영은 용산고가 아닌 부산중앙고로의 진학이 예정돼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연세대의 천기범, 단국대의 홍순규와 함께 부산중앙고의 부흥기를 이끈 주역이 됐을 터. 하지만 부모님의 결정에 의해 그는 예정에 없던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원래는 부산중앙고에 가는 거였어요. 당시 부산중앙고는 경남권에서 농구 꽤나 한다는 선수들을 모집하고 있을 때였어요. (천)기범이도 그 중 하나였죠. 김해에 잘하는 애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친구가 기범이었어요. (홍)순규는 길거리 농구를 통해 알게 됐어요. 제가 직접 부산중앙고로 데려왔죠. 그런데 어느 날 교회를 갔는데 용산고 코치님이 계신 거 에요. 그날 바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요. 알고 보니 이미 부모님과 용산고 코치님 사이에 얘기가 끝난 상태였더라고요. 부산중앙고 코치님께 정말 죄송했죠. 아들처럼 대해줬거든요. 부모님에게 반항 안 해봤냐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에게 순종적인 아들이었어요. 부모님도 다 저를 위해 선택한 결정이셨을 거 에요. 부산중앙고에 나와서 1부 리그 대학에 진출한 선수가 거의 없었거든요. 반면 용산고는 조금만 활약하면 대학 진학이 쉬우니까 부모님이 용산고행을 결정한 것 같아요.”
하지만 용산고에서의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짧은 구력으로 기본기가 약해 팀이 기대했던 모습에 미치지 못했고 처음 경험하는 서울 생활도 낯설었다. 이런 한준영에게 손을 내민 건 현재 고양 오리온에서 뛰고 있는 이승현이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이)승현이 형네서 며칠 얹혀 지내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형이 그러더라고요. ‘이왕 서울까지 왔는데 다 포기하고 부산에 내려간다면 넌 바보밖에 더 되지 않는다. 용산고에 온 걸 환영한다.’ 형이 장난도 많이 쳐주면서 적응을 빨리 한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용산고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서울과 지방 팀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거든요. 여기는 틈만 나면 대학 형들과 연습경기를 하는데 지방 팀들은 여름과 겨울에 각각 한번 할 뿐이에요. 그 전까진 모두 개인연습이고요. 또 용산고의 훈련 강도 자체가 워낙 쌔서 다른 생각을 못하게 잡아준 것도 지금 보면 좋았던 것 같아요.”
▲ 농구 인생의 반환점, 아시아 퍼시픽 대회
“대학 1학년 땐 주로 승부에 영향이 없는 가비지 타임에 나섰어요. 2학년이 돼서야 서서히 출전시간이 늘어났죠. 하지만 한양대 농구가 앞선에 맞춰져있어서 저에게는 제한된 공격기회만 왔어요. 지금도 육상농구를 하지만 예전에는 더 빨랐거든요. 실점하고 3초면 득점을 했죠. 또 웨이트나 개인 기술이 전혀 없다보니 저 때문에 진 경기가 많았어요.”
한준영의 말대로 대학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개인기량도 부족했지만 빠른 농구를 추구하는 한양대에게 빅맨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3학년,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나간 국제대회가 그의 농구인생을 바꿔 놨다. 2015 아시아 퍼시픽 대회였다.
“작년 아시아 퍼시픽 대회가 제 농구인생에 터닝 포인트에요. 미국, 러시아 선수들과 맞붙으면서 리바운드와 수비, 특히 웨이트에서 많이 배우고 느꼈어요. 그 이후로 웨이트트레이닝에 열중했죠. 농구선수로서 자아가 생긴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수동적으로 경기를 했거든요. ‘너 이거해’ 하면 그대로 하는 아이였죠. 하지만 아시아 퍼시픽에 갔다 오고부턴 달라졌어요. ‘팀에서 내가 도움이 되고 쓸모 있는 선수가 되자’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몸을 새로 만들어 보자고 결심해서 1년이 지난 지금 180도 달라진 몸을 갖게 됐어요. 만약 1년 전 제 몸 상태였으면 몇 분 뛰지도 못했을 걸요? 제공권의 개념도 없고 몸싸움 시도도 안 했겠죠.”
국제대회에서 자신보다 키 크고 힘이 쌘 선수들과 자리싸움을 하며 절실히 깨달은 건 웨이트의 중요성이었다. 빼빼 마른 필자를 보고 “예전 저를 보는 것 같네요”라던 한준영은 아시아 퍼시픽이 끝난 후 골밑에서 강력하게 버틸 수 있는 몸부터 만들었다.
“살이 안찌는 체질이에요. 식습관을 바꾸고 기본적인 웨이트 운동부터 차근차근 하며 몸을 바꿨어요. 지금의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 이틀 노력한 게 아니에요. 1년이 걸렸죠. 1년 동안 외박, 외출 줄이면서 몸을 만드는데 투자했어요. 그렇게 고생하며 웨이트를 한 효과를 이제야 보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끝난 2016 아시아 퍼시픽 대회. 두 번째 참가한 대회에서 한준영은 달라진 모습으로 현장에 있던 농구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지막 러이아전에선 팀 내 최다인 23득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당연히 드래프트를 앞둔 한준영의 주가도 크게 올랐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안에는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어요. 앞으로 프로아마최강전과 대학리그 후반기가 남아 있잖아요. 드래프트 전까지는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걸 다 쏟아내고 싶어요. 최근에 몸은 좋아졌는데 둔해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보완할 부분은 보완해서 포스트에서 밀리지 않으면서도 속공참여에도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 “빅3와 경쟁하고 싶다.”
올 시즌 한준영은 개인 기록 뿐 아니라 소속 팀 한양대의 성적까지,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다. 현재 한양대는 8승 5패를 기록, 단독 4위로 다가오는 프로아마최강전 출전 티켓을 따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한양대 돌풍은 강력한 신인왕 후보인 1학년 유현준과 골밑에서 파괴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한준영이 있어 가능했다.
“잘 풀린 것 같아요. 우리는 갈 길을 가는데 반대 조에서 서로 물리고 물리는 형국이 진행되다보니 어느새 4위까지 올랐네요.”
인터뷰가 끝을 향해 달려가던 중, 한준영은 “두 가지 오해를 풀고 싶다”고 필자에게 요청했다. 웨이트를 시작한 후 오히려 “살이 쪄 둔해졌다”라고 말하는 주위의 시선이 그 첫 번째였다.
“예전엔 뛰는 것 밖에 못했어요. 그러다 최근 센터로서의 원초적인 역할에 충실히 하고 있는 중이에요. 리바운드 싸움이나 골밑에서의 몸싸움이 그 중 하나죠. 이 부분을 게을리 한다면 빅맨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웨이트에 더욱 신경 쓴 거 에요. 그런데 웨이트를 하고 체중이 증가하면서 ‘느리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요즘 (김)종규 형이나 (이)종현이처럼 국내에서도 벌크업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잖아요. 그 대세에 맞춰 따른 건데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있어 안타까워요.”
두 번째는 “슛 없는 빅맨”이라는 꼬리표다. 한준영은 “슛 없는 빅맨이라는 오해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 대학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골 넣는 방법이라곤 골밑에서 받아먹는 것과 중거리 슛이 다일 정도로 슛에 자신이 있어요”라며 억울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오해와 편견도 모두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며 당찬 각오를 밝혔다.
“결국 제가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요. 위기가 클수록 반전 또한 큰 법이잖아요. 사람들에게 저는 불과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선수였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셈이에요. 사람들은 결과만 주목하지 제가 여기까지 온 과정은 몰라요. 그래도 제 가고자 하는 길만 열심히 가다보면 어느 순간 훌륭한 선수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드래프트까지 100여일 남았는데 그 기간 동안 계속 발전하고 싶어요. 빅3와도 경쟁할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사진_신승규 기자,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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