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편집부] 꽤 오랫동안, 주희정이 코트를 밟을 때마다 어시스트, 스틸, 출전경기, 출전시간 등 각종 KBL 통산 기록들이 새롭게 작성되어왔다. 그러나 2017-2018시즌이 시작되면 이 기록들의 숫자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주희정이 은퇴한다. 자유계약선수(이하 FA) 1차 협상 마감일인 2017년 5월 16일. 주희정은 서울 삼성과 이야기 끝에 선수 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팬들 기억에서 가장 빛날 때, 영예롭게 코트를 떠나는 셈이다.
주희정은 플레이오프에서도 여느 젊은 선수 못지 않은 활동량에, 노련미까지 더해 삼성을 이끌었다. 그렇기에 이번 은퇴는 벌써부터 많은 팬들을 아쉽게 하고 있다.
주희정은 ‘꾸준함’의 상징이었다. 20시즌 동안 정규경기 1,029경기를 뛴 주희정은 겨우 15경기만 결장했다. 물론 잔부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속된 몸 관리 덕분에 부상과 나이로 인한 노화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가 평균 10분미만을 뛴 시즌은 2016-2017시즌이 처음일 정도였다.
사실, 주희정이 농구를 시작한 계기는 굉장히 엉뚱했다.
“맨 뒷줄에서 벌을 서고 있는데 농구부 선생님이 오셔서 맨 뒷줄 학생들을 모두 체육관으로 불러 모으셨다. 대개 키 큰 선수들이 뒤에 앉다보니 선생님도 뒷줄 학생들 중에 농구할 만한 애를 뽑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키가 작은 내가 있으니 ‘넌 왜왔냐’라 묻더라. 나는 ‘뒷줄에 앉은 사람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라고 했고, 그렇게 테스트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제일 빠르더라. 그걸 계기로 농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웃음).” - 점프볼 인터뷰 中
주희정은 스스로 돌아봐도 말도 안 되게 기회가 찾아왔다고 돌아봤다. 그 시기의 타임라인을 돌아보자.
1997년(프로원년)
가정형편 때문에 만 21세에 고려대를 중퇴, 연습생 신분으로 나래에 입단했다. 그때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무명 가드였다. 당시만 해도 목표가 크지 않았다. “그저 ‘식스맨으로만 뛰어도 영광이겠다’라는 바람이었다.” 주희정의 말이다.
1997-1998시즌
개막전을 하루 앞두고 주전가드 이인규가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최명룡 감독은 주저 없이 주희정을 선발로 내세웠다. 데뷔전부터 잠재력을 뽐낸 그는 1997-1998시즌 전 경기에 출전했다. 45경기, 평균 36분 15초 동안 남긴 성적은 12.7득점 4.1리바운드 4.2어시스트 2.9스틸. 사상 첫 신인상 수상자로 부족함 없는 기록이었다.
“사실 프로 원년 시즌(1997년)에도 선수로는 등록이 되어 있었다. 경기는 뛰지 않았지만 말이다. 첫 시즌 때 이상민 감독님과 수상과 관련해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상민 감독님 활약이 워낙 좋다보니 MVP와 신인상을 모두 줘야 하는지, 아니면 MVP로만 선정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했을 때였다. 그러다 결국 신인상은 제가 받고, 감독님은 MVP가 됐다. 1997-1998시즌에 내가 뛸 자리가 없었는데, 그 때 주전 가드였던 (이)인규 형이 다치면서 나에게 기회가 왔다.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게 찾아온 기회였다.” - 2015년 점프볼 인터뷰 中
1998-1999시즌
강병수와 함께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맞상대는 김승기, 양경민. 만일 최명룡 감독이 욕심을 냈다면 주희정, 신기성을 다 끌어안고 시즌을 치르는 것도 가능했지만, 최 감독은 주희정이 보다 많은 기회를 얻길 바랐다. 삼성은 문경은, 주희정, 버넬 싱글턴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를 구축해 프로 출범 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다.

2000-2001시즌
삼성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MVP는 주희정을 위한 타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더 높은 무대에서 빛났다. 챔프전 5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전, 10.8득점 4리바운드 11.8어시스트로 삼성의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역대 최연소 챔프전 MVP(만 24세 2개월) 기록까지 덤으로 챙겼다.
“그 때 멤버가 정말 화려했다. 김희선, 노기석 선배도 있었고, 팀워크도 정말 좋았다. 정규리그도 그렇고, LG와의 챔프전도 손쉽게 이겼던 것 같다. 그 때 아티머스 맥클래리가 조니 맥도웰보다 키는 좀 작지만, 외곽 능력이 좋았다. 스피드와 순발력도 좋아 속공에서 따라올 선수가 없다. 이규섭 코치는 슛이 굉장히 좋았다. 뒤에 있어도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았다.” - 점프볼 인터뷰 中
삼성에서 첫 우승 후에도 주희정의 활약은 계속됐다. 2003-2004시즌에는 KBL 최초로 300경기에 나선 선수가 됐다(2003년 11월 22일). 이때부터 주희정은 100경기 단위로 계속해서 ‘최초’로 이름을 남겨왔다. 그러나 마냥 잘 달린 것만은 아니었다. 2004년 2월 28일. 전자랜드 전에서 로데릭 하니발의 발에 목을 맞아 갑상선이 찢어졌다. 그는 곧장 수술대에 올랐고, 시즌아웃 됐다. 주희정이 4경기 연속 결장한 최초의 사례였다. 또한 그는 플레이오프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결장기간은 짧지만, 중요한 기간에 입은 부상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2005-2006시즌
이정석,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 함께 KT&G로 트레이드됐다. 주희정의 경기력(9득점 7.8어시스트)은 여전했지만, KT&G 전력은 썩 좋지 않았다. 장단점이 파악된 단테 존스의 파괴력이 예년 같지 않았고, 남은 외국선수 한 자리도 자주 바뀌어 경기력이 꾸준하지 못했다. 주희정이 데뷔 후 두 번째로 플레이오프에 못 오른 시즌이다. 한편 주희정은 2006년 1월 15일 모비스 전에서 통산 어시스트 1위에 올라섰다. 이날 그는 어시스트 15개를 기록했다.

2008년
약점으로 지적된 3점슛까지 개선되자 국가대표의 영예도 안았다. 개혁에 나선 남자농구대표팀에서 주장 역할을 맡았고, 2009년까지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예비명단에도 포함됐지만, 아쉽게 아시안게임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이)상민이 형이나 (김)승현이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오히려 대표팀에 선발이 되지 않다 보니 더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된 것 같다. 대표팀은 모든 선수의 꿈이 아닌가. 그동안 꾸준히 몸 관리를 해오고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치러왔기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 2008년 점프볼 인터뷰 中
2008-2009시즌
32세에 커리어-하이를 새로 쓴다? 주희정이라면 가능하다. 15.1득점 3점슛 1.9개 8.3어시스트는 그의 데뷔 후 최고기록이었다.
여기서 잠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의 기록이 하나 있다. 주희정은 2월 20일 울산 모비스 전부터 3월 8일 창원 LG전까지 8경기 연속으로 20점 이상을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KBL 역사상 8경기 이상 20점을 올린 바 있는 선수는 서장훈(22경기), 문경은(12경기), 김영만, 현주엽(이상 10경기), 조성원(9경기) 뿐이며 가드 포지션에서는 주희정이 유일했다. "(양)희종이와 워너가 빠진 상황이어서 득점할 수 있는 루트가 부족했다. 내가 패스만 돌려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득점을 많이 올려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수비를 몰아서 (황)진원이나 (김)일두에게 찬스를 만들어주고자 공격적으로 임했다." 주희정의 말이다. 주희정이 20득점 이상을 올리는 동안 KT&G는 6승 2패를 기록했다.
비록 KT&G는 캘빈 워너의 마약 파문, 양희종의 부상이 겹쳐 플레이오프에 못 올랐지만, 주희정은 그 모든 아쉬움을 덮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덕분에 KBL 역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 탈락팀에서 정규리그 MVP가 배출됐다. 앞으로도 다시 나오기 힘든 기록이다.
2009-2010시즌
김태술이 포함된 빅딜을 통해 SK로 이적했다. 주희정은 “우승 전력을 갖춘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당시 이상범 감독대행은 “정식 감독이 되면 추진하겠다”라고 답했다. 실제 이상범 감독은 감독으로 임명된 후 일사천리로 트레이드 작업을 마무리했다. 리그 최고를 자랑하는 주희정의 경기운영능력이라면, 5명이 따로 팀을 나눠 뛰는 SK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SK가 주희정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오르기까지는 예상보다 많은 기간이 걸렸다. 주희정은 SK에서의 첫 세 시즌 모두 플레이오프를 못 밟았다.

2011-2012시즌
주희정이 스스로 경신해가던 최다 연속 올스타전 출전은 2011-2012시즌, ‘14’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 주희정은 “올스타전 출전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았다. 하지만 올스타전 명단에 내가 없는 걸 보며 ‘내가 그 정도로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한 바 있다. 이후 주희정이 남긴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충격도 받았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비록 아쉬움은 남았지만 이 시즌에는 남다른 성과 하나를 더 이루게 된다. 2011년 11월 23일, KCC전에서 8번째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것이다. 이날은 주희정이 가장 최근(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트리플 더블(10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을 작성한 날이다. 당시 주희정은 “국내선수 최다 트리플더블 타이기록에 있던 (현)주엽이 형을 넘어서고 싶었고, 이를 이루게 돼 기쁘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2013-2014시즌
그의 직책은 식스맨이었다. 자존심 상할 수 있는 변화였지만, 묵묵히 역할을 받아들였다. 단 10분만 뛰어도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전력으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식스맨상을 품었다. 신인상-MVP-식스맨상을 모두 섭렵한 건 주희정이 KBL 역사상 처음이다. “상이라는 상은 다 받아봤는데(웃음), 마지막으로 식스맨상까지 채워 영광이다.”
2014-2015시즌
SK 이적 후 두 번째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었지만 잔류를 택했다. 데뷔 18년차인 주희정은 지난해 12월 14일 LG와의 원정경기에서 사상 최초의 9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2015-2016시즌
10년 만에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왔다. SK는 주희정, 신재호를 삼성에 보내며 이정석, 이동준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 주희정은 “곧 있으면 마흔인 선수를 데려온 것에 대해 삼성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부담이 천배, 만배”라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실제 많은 이적을 경험했지만, 이때가 가장 많은 부담을 느낀 시기였다. 하지만 주희정은 2015-2016시즌 전 경기에 출전, 평균 24분 27초 동안 5.5득점 2.5리바운드 3.5어시스트로 건재를 과시했다. 이전 시즌과 비교하면 모두 2배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 삼성 역시 5시즌 만에 5할 승률을 달성했고, 플레이오프에도 올랐다.
2016-2017시즌
2016년 12월 23일, ‘제2의 전성기’를 달렸던 친정팀을 상대로 마침내 1,000경기를 달성했다. 대기록인 만큼, 이상민 감독은 모처럼 주희정을 선발로 내보내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줬다. 삼성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주희정은 “홈에서 달성하지 못해 아쉽지만, 안양 구단이 많은 준비를 해주신 것 같아 감사드린다. 지금이 신인상이나 MVP로 선정될 때, 어떤 기록을 쌓았을 때보다 기쁜 순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후 1,500스틸을 달성했던 주희정은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활약, 변치 않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정규리그 동안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도 농구를 놓지 않고 있었다. 플레이오프에서 기회가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 준비를 했고, 그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우리 팀의 선수들 장단점에 대해서도 계속 연구를 했다.” - 4강 플레이오프 2차전 후 인터뷰 中
KGC인삼공사와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은 주희정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가 된 그는 삼성 구단과의 이야기 끝에 은퇴를 결정했다. 여전히 마음은 1년이든 2년이든 더 뛸 수 있는 몸이지만, 그렇기에 팬들은 많이 아쉬워하고 있지만 지난 ‘봄 농구’는 ‘주희정은 이런 선수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프로농구선수로서 박수와 찬사 속에서 은퇴를 알릴 수 있다는 것 역시 흔치 않은 일. 그렇기에 20년간 열심히 질주해온 주희정의 커리어는 더 대단해보인다.
# 사진=점프볼 DB(문복주, 유용우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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