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D-28 : 커리의 키워드_ 무명의 유망주

점프볼 기자 / 기사승인 : 2017-06-29 02: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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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편집부] 2015년 5월 4일,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2014-2015 NBA 정규시즌 MVP로 등극한 날이다. 생애 첫 MVP였다.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그는 아버지 델 커리를 보고 울컥함을 감추지 못했다. 함께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고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샬럿 크리스천 고등학생 시절부터 커리는 슛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의 꿈은 아버지처럼 버지니아 공대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버지니아 공대는 물론이고, 평소 꿈꿔왔던 강팀들은 커리를 외면했다. 왜소한 체격에 작은 키, 슛 외에는 뛰어날 것이 없었던 기량 때문이었다.


결국 커리가 진학한 학교는 데이비슨 대학이었다. 1969년 이후 NCAA 토너먼트에서 단 1승도 못 거둔 학교였다. 개교 이래 배출한 NBA선수도 겨우 6명. 그나마도 10년 넘게 뛴 동문은 1960년대에 뛴 딕 스나이더라는 선수 1명 뿐이었다.


무명의 학교에서 커리는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다. 신입생 때 3점슛 113개를 넣으며 학교 기록을 세웠고, 팀도 NCAA 토너먼트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08년 토너먼트에서는 학교에 큰 선물을 안겼다. 1969년 이후 NCAA 토너먼트 첫 승을 선물한 것이다. 상대는 곤자가 대학. 커리는 3점슛 10개 중 8개를 꽂으면서 40득점으로 활약, 팀의 승리(82-76)를 이끌었다.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 아버지도 희열을 느꼈다. NBA를 대표했던 명슈터, 델 커리는 한때 “잘하면 대학 1부 리그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 무렵, 그러니까 커리가 토너먼트에서 펄펄 날며 학교 기록을 세워갈 이 시점에는 "NBA는 갈 수 있겠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커리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지 않나. 나도 아버지의 발자취를 쫓고 싶었다. 사실, 대학교 2학년이 되고, 좀 더 구체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내가 실제로 NBA 선수가 되리라는 건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성장해 갈수록 나도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하지만 스테판 커리는 단순히 ‘NBA 선수’에만 머물길 원치 않았다. 그는 전문가의 평가 중 나온 단점들을 극복하며 조금씩 자신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키가 작아서 슈팅가드로 뛰기는 애매하다”
“몸이 왜소해서 수비가 거칠게 붙으면 고전할 것”
“운동능력이 떨어져서 기회를 얻기 어려울 것”


데이비슨 대학을 나올 무렵, 그래서 NBA 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유니폼을 입게 될 무렵의 커리는 더 이상 고교시절의 그가 아니었다. 키도 훌쩍 자라 190cm를 넘겼고, 자신이 슛만 아니라 패스도 가능한 선수임을 보여줬다. 그 노력은 프로에서도 이어졌다.


스킬스 챌린지, 3점슛 대회 등에서 우승하고, 장점인 슛은 갈고 닦아 자유투 90%, 3점슛 40%가 가능한 슈터로 거듭났다. MVP가 된 2014-2015시즌에는 상대의 집중견제도 이겨낼 줄 아는 ‘기술자’가 되어 있었다.




“내 선수인생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단지 내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싶었다. 매일 열심히 훈련한다면 누구든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MVP가 된 뒤 또 한 번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커리.


28일 뒤인 오는 7월 27일, 팬들과 함께 할 ‘스테판 커리-라이브 인 서울’에서도 그가 가져온 영감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사진=언더아머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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