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대회 경기 성적을 알고 있기에,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진짜 가볍게 툭 물어봤다.
“이번 대회 목표는 어느 정도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마치 짠 것처럼 한결같다. “우승이요” 간혹 “3위 이내에 들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선수들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이 정상에 서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전라남도 해남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여기 우승을 해도 본전으로 보이는 팀이 있다. 바로 하늘색 유니폼의 용산고등학교다. 워낙 선수 면면이 화려하고 어떻게 보면 전국구 정상급 선수들의 집합체이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용산고의 쇼 타임을 보면서 이런 말까지 나왔다. “여준석 이런 선수들 있었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지금은 약과에요”
맞다. 여준석이 있었을 당시, 용산고는 여준석을 중심으로 왼쪽엔 신주영, 오른쪽엔 박정환 트리오를 구축해 5관왕 위업을 달성했다. 용산고를 향한 높은 기대치는 선수들이 이겨내야 하고, 짊고 가야 할 숙명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용산고가 2023년 시작선에서 뒤늦은 출발을 보였다. 제임스 하든, 클레이 탐슨을 떠올리게 하는 이관우와 김승우, K-듀란트 이유진에 장혁준이라는 멤버를 갖췄음에도 거듭 좌절할 뿐이었다.
“코트 위 5명의 선수가 각각 개성이 뛰어나다 보니 처음엔 어려웠다. 선수들의 장점을 경기 내에서 잘 녹여내면서 어우러지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부분이 좋은 결과로 이뤄진 것 같다” 이세범 코치가 말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연맹회장기, 종별 선수권 대회, 왕중왕전까지 집어삼킨 용산고는 끝끝내 추계연맹전까지 석권하며 4관왕에 올랐다. 그리고 팀을 이끌었던 이유진이 2023년도 전반기와 후반기를 비교하면서 짧은 멘트를 건네왔다.
“수비와 동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아쉬웠어요”
이어서 “지금은 팀워크도 많이 좋아졌어요. 오늘 경기(결승전)처럼 힘든 날엔 수비 먼저 풀자고 그러거든요. 수비가 되면 공격은 자연스레 된다고 생각해요”
용산고의 추계연맹전 예선 첫 경기부터 결승까지 평균 득실 편차는 자그마치 +29.5점이다. 결과는 모두 대승이었지만, 용산고에도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등장한 소방수와 해결사가 이유진이었다.
이젠 말하기도 입 아플 정도지만 이유진은 평균 23.3점 8.5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남고부 최우수 선수로 등극했다.
특히나 200cm 신장에서 나온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정확한 슛, 유연성에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가 일품이었다. 이세범 코치도 이유진을 현 NBA 선수 케빈 듀란트에 비유한 적이 있다.
구글에 케빈 듀란트 페이드 어웨이를 영어로 검색하면 이게 이유진인지, 듀란트인지 헷갈릴 정도로 똑같은 폼의 사진이 등장한다. 그 정도로 비슷한 유형의 플레이를 매 경기 보여줬다. 진정한 데칼코마니다.
당연히 해남 현장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찬사가 매일같이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한때 이유진에게는 얼리 엔트리로 드래프트에 참가하나?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하지만 고등학생 이유진의 선택은 확고했다.
“아직 한참 부족해요. 대학교에서 피지컬, 경기를 보는 시야, 슛 등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계속해 이유진에게 물어봤다. “최준용의 뒤를 이어 한국의 듀란트라 불리는데, 듀란트 플레이를 코트에서 머릿속으로 그리는지요?”
이유진은 웃으면서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유진은 지난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듀란트의 플레이를 따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추후에 이유진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이 부분에 대해 다시 물어봐야겠다.

결승전뿐만 아니라, 모든 예선에서 이유진은 중요한 득점을 성공하면 수비수를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치열한 접전을 즐기는 슈퍼스타의 자질이 언뜻 보였다.
워밍업까지만 하더라도 생긋생긋 웃던 그도, 경기에만 들어서면 날카롭고 비장한 표정을 곧바로 장착한다.
“상대 팀 선수와 너무 친해서 그런 거예요(웃음), 다른 의미는 없어요”
추계연맹전에 참가한 남고부 팀은 총 24팀이다. 각 팀마다 한두 명의 에이스들을 하나씩은 꼭 보유 중이다. 용산고도 똑같다. 그럼에도 용산고가 매년 대회를 휩쓸며 강호로 이름을 휘날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수비에요, 강력한 수비”
‘수비’라는 두 글자를 강조해 말하며 시상식 사진을 찍으러 갔던 이유진. 필자가 체육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유진이 헐레벌떡 뛰어와 말을 걸었다.
“기자님, 용산고는 다른 팀들보다 연습도 더욱 많이 하고요,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있어요”
팀 에이스가 자부할 정도로 방대한 연습의 양, 그랬기에 용산고는 시즌 초 부진을 겪었음에도 다시 후반기 왕좌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었다.
“사실 MVP 받을 줄 몰랐어요. 감독님과 동료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용산고로 시작해 용산고로 제53회 추계 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 해남대회가 막을 내렸다. 무엇보다 큰 부상 없이 항상 명승부를 연출하기 위해 10일간 노력한 71개 팀에 박수를 건넨다.
또, 아마추어 최초로 4K를 도입하며 더욱 생생함을 전달하고자 힘썼던 한국중고농구연맹 측. 꾸준히 현장에서 좋은 모습으로 다가가려고, 발전하고 힘쓰는 만큼 그에 비례해 한국 농구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_점프볼 DB(배승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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