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통역] ③ “열정의 아이콘” 대구 한국가스공사 변영재

최설 / 기사승인 : 2021-10-27 06: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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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하나로 일을 시작해 어느덧 12년 차 베테랑 통역사가 된 대구 한국가스공사(전 인천 전자랜드)의 만능 조력자. 변영재(42) 씨.

통역뿐 아니라 미래 한국 농구의 인기와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싶다는 그다.

지난 2016년 SNS을 통해 농구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다양한 콘텐츠까지 제공한 변영재 씨는 자칭 스포츠계 1호 크리에이터다.

열정 없이 못 산다는 변영재 씨의 농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Q.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열정이라고?
맞다. 캐나다 유학 시절 처음 배운 단어가 ‘열정(passion)’이었다. 이 단어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굉장히 존경했다. 암 투병 중에도 학생들에게 항상 좋은 메시지를 전달해줬다.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를 굉장히 아꼈다. 그때부터 매사 열정적으로 살자는 것이 내 인생의 모토가 됐다.

Q.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이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좋은 기회가 생겨 보름 정도 영국서 공부한 적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외국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상의한 후 캐나다 유학을 결정했다. 이민은 아니었고 나 혼자 갔다.

Q.캐나다 고교생활은 어땠는지?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나면 클럽활동이 있었다. (내가) 워낙 운동을 좋아해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고교 시절 축구팀 주장도 해봤고 미식 축구도 했다. 그 밖에도 육상, 멀리뛰기, 3단 뛰기 학교 대표로 활약했다. 그중 농구는 겨울 스포츠로 즐겨 했다.

Q.농구로 입학 제안까지 받았다고?
캐나다에서 농구 잘한다는 고등학교 팀과 한번 맞붙은 적 있었다. 그때 내가 상대 에이스를 틀어막으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됐다. 유학 목적이 공부였기 때문에 공부에 전념하라는 뜻을 전했다. 그렇게 일반 학생으로 토론토대에 진학해 경제학을 전공했다. 회계학이 부전공이었다.

Q.어떻게 농구 통역을 시작하게 됐는지?
대학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와 악기 수입ㆍ수출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창원) LG에서 통역을 구한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라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바로 면접을 봤다.

Q.직업을 바꾸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학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3~4시간 체육관에서 농구만 했다. 가장 관심이 컸던 종목 중 하나였다. 항상 농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공고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고민 없이 바로 지원했다.

Q.(2010-2011시즌 창원 LG로) 첫 입사 후 애로사항이 있었을 것 같다.
단순히 농구 용어를 통역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외국선수를) 관리하는 게 힘들었다. 선수들마다 성향과 생각하는 것이 다른 데 (그들을) 대하는 게 어려웠다. 앞으로 일어날 문제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은 눈빛만 봐도 얘네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지만, 초창기에는 전혀 몰랐다.

Q.도중에 잠시 통역 일을 그만뒀다고?
아무래도 연고지가 창원이다 보니 집안일 돕기가 힘들었다. 당시 아내가 육아로 많이 힘들어했다. 어쩔 수 없이 2시즌을 하고 나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집 근처 영어 학원에서 강사를 하면서 지냈다.

Q.어떻게 다시 농구 통역으로 돌아오게 된 건지?
비시즌을 그렇게 보내다가 시즌 때가 되니 올라오는 농구 기사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다시 농구판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 지인이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통역 자리가 공석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일단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했고 아내도 그 점을 이해해줘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Q.그렇게 유도훈 감독과 처음 만났다. 유 감독의 첫인상은?
(유도훈 감독은) 기본을 굉장히 강조했다. 국내외 선수 구분 없이 그 기본을 벗어난 행동을 하면 호통을 쳤다. 인상적이었다.

Q.10년간 옆에서 지켜본 유 감독은?
단수가 매우 높은 감독? 장기나 바둑을 두면 보통 2~3수만 예상하고 끝내는데 (유 감독은) 10수 정도를 내다보고 계산한다. 그걸 맞추기 위해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해야 했다. 지금의 나로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한 가지 더. 유 감독이 항상 (스태프에) 하는 말이 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해결하는 것보다 터지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것이 더 나은 관리자의 자세라고 강조한다. 덕분에 (스태프) 모두 긴장하고 조심한다. 전자랜드 선수 중 큰 사고를 친 선수가 없지 않은가? 그 부분만큼은 관리가 철저한 감독이다.

Q.LG 시절 함께한 두 감독(강을준, 김진)의 얘기도 하자면?
강을준 감독은 선수단 분위기를 즐겁게 해줬다. 음지에서 고생하는 통역, 매니저, 트레이너들까지 세심히 챙겨줬다. 김진 감독은 농구에 진지했다. 끊임없이 공부했다.

Q.통역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신뢰감과 유대감이다. 외국선수가 얼마만큼 감독을 믿고 신뢰하는지 매우 중요하다. 감독이 꾸짖어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유대감을 심어 줘야 한다. 그래야지만 코트서 좋은 경기력이 발휘된다.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 먼저 (그들과) 신뢰를 쌓고, 그다음으로 주체가 감독이란 걸 확실히 인식시켜 준다.

Q.(외국선수들에게) 신뢰를 얻는 노하우가 있다면?
노하우는 없다. 단순히 농구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면 된다. 내가 이만큼 농구를 좋아하고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면 된다. 예를 들어 경기 중에 (외국선수가) 이해 못 하는 패턴이 있으면 다른 (국내) 선수들의 위치까지 설명해주면서 (외국선수의) 움직임을 자세히 알려준다. 그러면 굉장히 고마워한다. 그러면서 신뢰가 쌓인다.

Q.노력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작전만큼은 적어도 외국선수보다 더 많이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정확히 알고 있어야지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수 있다. 경기 중 전술을 이해 못 했다 싶으면 끌고 와서라도 다시 알려주고 코트로 내보낸다.

Q.올 시즌 새롭게 합류한 앤드류 니콜슨의 활약이 좋다. 그의 한국 적응은 어떤지?
한국 생활을 잘하고 있다. 우선 한국을 높게 평가한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다. 깨끗하고 존중해주는 문화를 좋아한다. 또 (니콜슨이) 먹는 것에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웬만한 음식은 한국에서 다 구할 수 있어 만족해하고 있다.

Q.주로 어떤 음식을 찾는지?
생전 듣지도 못한 것들이다(웃음). ‘밀삭’이라고 들어봤는지? 채소의 한 종류인데 그걸 간 분말 가루를 아침마다 음료에 타 마신다. 밀가루도 ‘글루텐프리’ 제품으로만 찾아 먹는다. 우유도 그냥 우유는 안 마시고 오트밀 우유만 마신다. 파는지도 몰랐는데 다 팔더라. 그만큼 몸 관리가 철저하다. 최근에는 소금 전등까지 샀다. 소금 덩어리인데 켜놓고 있으면 공기가 좋아진다고 하더라.

Q.최애 음식도 있는지?
찜닭도 좋아하고 건강에 좋은 꼬리곰탕이나 도가니탕을 좋아한다. 한국에 와서 음식을 추천해 달라길래 도가니탕을 소개해줬다. 자기 무릎에도 좋을 것 같다며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찾는다. 니콜슨을 위해 경기 끝나고 선수단이 자주 곰탕집에 간다.

Q.클리프 알렉산더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클리프) 알렉산더가 많이 따르는 편이다. 주스를 마시려다가 니콜슨이 “그거 몸에 안 좋아”라고 하면 바로 물로 바꿔 마신다. 조금씩 배우고 있다(웃음).

Q.니콜슨 외에도 그동안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선수가 있었는지?
대부분의 선수가 높은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니콜슨이 최고이긴 하지만 더 꼽자면 LG 시절 올루미데 오예데지와 전자랜드 때 자멜 콘리다. 오예데지는 내가 초창기에 만났던 친구인데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모습이 신선했다. 방출되는 날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콘리는 온전치 않은 몸을 이끌고 운동량 하나로 버텼다. 그런 정신력과 인성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최근 일화인데 선수는 아니고 선수의 아내가 기억난다. 지난 시즌 전자랜드에서 뛰었던 데본 스캇의 아내 키오나 스캇이다. 엄청난 현모양처였다. 스캇의 뒷바라지를 정말 열심히 해줬다. 하루는 연패에 빠져 가라앉은 선수단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싶었는지 파티를 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불가능했다. 대신 집에서 직접 만든 쿠키와 사탕, 음식 등을 빵이랑 같이 포장해서 전 직원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모두 감동받았다. 지금껏 그런 경우가 없었다.

Q.고양 오리온의 머피 할로웨이와도 각별한 사이로 알고 있다. 자주 연락하는지?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얼마 전에 본인 마음속의 NO.1 통역은 여전히 나라고 문자가 왔다. 뿌듯했다. 가끔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보고 싶다고 먼저 연락 온다(웃음).

Q.할로웨이와 만나게 된 스토리가 궁금하다.
2018년이었다. 플레이 영상을 보고 KBL에서 무조건 통할 거로 생각했다. 유 감독한테도 강력히 추천하고 당시 뛰던 이스라엘로 찾아갔다. 이스라엘에서 몇 년간 활약하며 안주하고 있었던 터라 (할로웨이의)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한국에서 새 인생을 살아보자고 대학교 때 몸으로 돌아와 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 뒤에 다시 만나보니 기대 이상으로 몸을 만들어왔다. 바로 계약했다. 이후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이가 돈독해졌다.

Q.NBA 스타 스테판 커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커리와 만남을 추진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먼저 팀으로서는 굉장히 안타까운 시즌이었다. 정규리그도 채 끝나기 전에 꼴찌가 유력했다. 자연스럽게 (개인) 시간이 많아졌다. 농구인으로서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 잉글리시(Sports English)’라는 코너를 운영했다. NBA 하이라이트 영상을 자막과 함께 올려주면서 그 안에서 쓰인 재밌는 표현이나 단어들을 설명해주는 거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동시에 (스테판) 커리 열풍도 대단했는데 당시 커리가 중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다음 스케쥴로 일본도 들린다는 소식도 있었다. 거기서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중국과 일본은 가는데 왜 한국은 안 들려?’라는 생각했다. 그때부터 한국을 알리겠다고 커리에게 편지도 써서 보내고 팬들의 힘을 빌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응원 사진과 문구를 꾸준히 모아 지속적으로 어필했다. 애초에 커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건 아니지만 결과가 좋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부터 관람 초대권까지 받았다. 정작 커리와는 만나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Q.당시 SNS을 통해 스포츠 팬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생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자랑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이미 SNS을 활용한 마케팅과 엔터테이먼트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NBA가 젊은 팬들을 끌어모으는데 SNS 마케팅 효과가 제일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에도 그런 문화를 전파하고자 나만의 페이지를 열었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1인 카메라를 들고 방송하는 게 드물었다. 적어도 스포츠 쪽에서는 크리에이터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내가 현장에서 영상을 찍고 업로드하면 많은 조회 수가 나왔다. 당시에는 설레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이후 전자랜드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 등 SNS 마케팅 기반을 내가 다 다져놨다. 아마 10개 구단 중 전자랜드가 SNS 마케팅을 제일 먼저 시작한 거로 안다(웃음).

Q.그리고 결국 2017년 커리와의 만남이 성사됐다. 한국을 방문한 커리의 통역을 맡았다. 그때 기억은?
내 활동 덕분에 커리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웃음). 그래도 기회가 생겨 통역을 맡게 돼 영광이었다. 통역을 하면서 내가 본 커리는 단 1초도 팬들 앞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짜 프로라고 생각했다. 행사가 진행되다 보면 잠깐 끊길 때가 있는데 그 시간이 30초라 할지라도 자기가 공백을 메워줬다.

Q.이제 SNS는 운영은 안 하는 건지?
그때 이후로 잠시 멈췄던 게 지금까지 멈추게 됐다. 바빠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다시 활동할 예정이다. 페이지도 아직 살아있다.

▶변영재 통역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assionitself
▶변영재 통역 네이버 블로그 – blog.naver.com/youngjaebyun

Q.다시 일 얘기로 넘어와 통역 일을 하다가 스카우팅 업무까지 병행하게 됐다고?
유 감독이 과제처럼 내줬다. 영어가 되니 에이전트랑 자주 연락을 해보라면서 권유했다. 과거에는 에이전트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점점 앱과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온라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인데 점차 나도 가능해져 전문적으로 하게 됐다. 현재 스카우팅 업무는 내가 전적으로 맡고 있다.

Q.코로나 시국 스카우팅 업무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선수들의 체격이라든지 근육 크기, 신장과 관련된 디테일한 부분을 직접 못 본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장 크게 우려되는 부분은 그들의 현재 몸 상태다. 지금 운동이 되어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일종의 도박처럼 그냥 데리고 와야 한다. 도착해도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태서 팀에 합류하게 된다.

Q.신인선수 감별사라고 들었다. 팀에 들어오면 변 통역과 1대1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고?
선수들끼리 신인이 들어오면 “영재 형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농담 식으로 말한다. 올 시즌에는 (신)승민, (김)진모, (최)주영이가 팀에 새롭게 들어왔는데 아쉽게도 신고식을 아직 못했다. (내가) 최근 발목이 다쳐 운동을 못 하고 있다. 행운아들이다(웃음).

Q.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경기는 아니고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전자랜드 입사 첫해였다. 그날 경기 마지막 작전타임이었다. 유 감독이 마지막 패턴을 지시했다. (이)현민이가 공을 잡으면 당시 선수였던 강혁 코치에게 패스를 주고 그다음 강혁 코치가 돌파하면서 코너에 있는 (리카르도) 포웰의 기회를 엿보는 것이었다. 그럼 포웰이 마지막 슛을 던지는 거로 약속했다. 결국 그렇게 해서 그날 승리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 언어를 통해 전달되고 완벽하게 이뤄져서 게임에서 이긴다는 게 짜릿했다.

Q.가장 힘든 순간이 있다면?
외국선수를 교체해야 하는 시점이다. 부상 또는 적응 문제로 팀을 떠나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인간적으로 슬프다. 정이 든 선수에게 (나는) 통보를 해야 하고 그 대체 선수를 내가 또 (내가) 찾아야 한다.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 그렇게 떠나보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가끔 울기도 한다.

Q.농구 통역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열정이다. 자기 시간이 없고 팀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정성이 따라 줘야 하는 일이다. 그런 에너지를 선수들이 다 받는다. 농구뿐 아니라 어딜 가든 스포츠가 정말 좋아서 해보고 싶다면 도전해보겠다는 열정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경험과 노하우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Q.시즌을 앞두고 연고지고 인천에서 대구로 바뀌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행히 자식들이 어느 정도 커서 입사 초기 때처럼 그만둘 일은 없다. 연고지가 바뀐 만큼 나부터 적응하고 알아가는 중이다. 시간이 되면 대구 주변 환경을 알아보러 다닌다. 그래야지만 외국선수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대처가 가능하다. 또 선수들도 새로운 마음가짐이다. 경기서 지든 이기든 새로운 홈팬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눈빛이 달라졌다.

Q.인천과 대구 팬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대구에서 올 시즌 첫 홈경기를 가진 이후 외국선수들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예전 (인천) 팬분들이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 준 것 같다”고. 팀에 새롭게 합류한 외국선수들도 그렇게 느낄 정도였다. 새삼 인천 팬분들의 사랑과 애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잊지 않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또 대구 팬분들은 벌써 우리를 알아보신다. 한 식당에 갔는데 귀한 손님이 왔다고 반겨주셨다. 꼭 사인 한 장 해달라고 부탁까지 하셨다. 두 도시에서 이렇게 사랑받고 더 받을 사랑이 있다는 게 축복이라 생각한다. 경기력과 성적으로 보답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Q.통역 그리고 개인으로서 앞으로 꿈이 있다면?
사실 우리 직업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감독이 들어오거나 상황이 바뀌면 교체될 수 있다. 얼마나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는 것 보다 지금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나도) 처음엔 통역 일만 하다가 지금은 스카우팅 업무까지 맡고 있다. 내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농구 인기가 지금 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글_최설 기자
#사진_점프볼 DB(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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