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L은 2002~2003시즌부터 외국선수를 2쿼터에 1명만 출전하는 걸로 바꿨다. 이때부터 외국선수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췄다. 2011~2012시즌에는 10개 팀 모두 한 명의 외국선수만으로 한 시즌을 치렀다.
대신 외국선수가 보여주던 화려한 농구와 경기 수준을 유지할 방법을 찾았다. 국내선수 드래프트 참가 자격을 2005년부터 확대한 것이다. 4년제 대학 3학년 이상 수료, 2년제 대학 수료, 고교 졸업 후 1년이 지난 선수에게 주어지던 드래프트 참가 자격을 고교 졸업 예정자까지 범위를 넓혔다.
여기에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해외에서 자란 해외동포(부모 혹은 선수 본인이 국내 국적을 획득했던 기록이 있는 선수)에게도 문을 열었다. 대표적인 해외동포 선수는 김효범과 한상웅이다.

박태양과 원하준은 1시즌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고, 박승리는 서울 SK에세 3시즌 동안 153경기에 출전했다.
이승준은 동생 이동준과 함께 올스타전에서 맹활약했다. 두 선수는 올스타전 MVP와 덩크왕에 모두 올랐다. 특히 이승준 덕분에 외국선수보다 국내선수 덩크슛 콘테스트가 더욱 화려하고 수준 높았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으면 더욱 펄펄 날아다닌 이승준이기도 하다.

또한 문태종은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의 주역이기도 하다.
전태풍은 전주 KCC에서 데뷔한 뒤 고양 오리온, 부산 KT, KCC, SK 등 여러 팀에서 활약했지만, KCC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KCC의 마지막 챔피언 등극의 주역인 전태풍은 FA 자격을 얻었을 때도 창원 LG가 아닌 KCC를 선택하기도 했다.

FA 자격을 얻어 힘겹게 SK로 팀을 옮겼던 전태풍은 2019~2020시즌 중에도 은퇴할 의사를 밝혔다. 한 때 외국선수를 따돌리고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문태영은 이번 FA 시장에서 모든 팀에게 외면 받았다. 은퇴를 하지 않았을 뿐 다시 돌아오긴 힘들다.
귀화선수들이 KBL 무대를 누빌 땐 이들이 활약한 팀이 챔피언에 등극하거나,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섰다. 귀화선수들의 시대가 이제는 끝났다.
#사진_ 점프볼 DB(유용우 기자), KBL 제공
점프볼 / 이재범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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