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영등포/송현일 기자] 아버지의 못다한 꿈을 아들은 이룰 수 있을까.
휘문고 박준영. 오래된 농구팬이라면 그의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1973년생으로 고교 시절 경복고 전희철(현 서울 SK 감독), 용산고 김병철(전 고양 오리온스 코치) 등과 함께 동 나이대 최고 기대주로 꼽힌 인물이다. 포워드 랭킹 1위였다. 195cm 장신에 뛰어난 운동 능력으로 코트를 지배했다.
1992년 셋은 나란히 고려대에 입학했다. 1995년 대학 무대 전관왕과 1995~1996시즌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전승 우승을 합작했다. 실업농구 시절인 1996년 대구 동양(현 고양 소노)도 창단 멤버로 함께 입단했다.
그러나 다른 두 명에 비해 지금 박준영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부상이 발목을 잡은 케이스다. 폭발적 탄력을 신체가 감당하지 못해 대학 진학 후 점점 경쟁력을 잃었고, 결국 동양에서 1997~1998시즌을 끝으로 짧은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선수로 대성하진 못했지만 그의 남다른 운동 신경은 여전히 회자될 정도다. 그래서인지 농구인들 중에선 간혹 그의 이른 은퇴를 지금까지도 아쉬워하는 이가 있다.
그런데 최근 그와 똑닮은 외모의 한 초등학생이 농구판을 휘젓고 있다는 소식이다. 길쭉한 체형과 통통 튀는 탄력까지 서로 판박이다. 그의 아들인 서울대방초 6학년 포워드 박윤성(175cm) 얘기다.
박윤성은 올해 독보적 기량으로 초등농구 랭킹 1위를 차지한 대형 유망주다. 최근 몇 년간을 통틀어도 같은 나이대 기준 압도적 재능이라는 말이 나온다. 과장이 아닌 실제 현장 평가다. 9월 강원 태백에서 열린 2025 전국 추계 한국초등학교농구연맹전 태백대회 때는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 등 개인상을 모두 휩쓸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를 지도하는 서울대방초 윤보웅 코치(68)는 "지도자 생활을 정말 오래해 왔지만 이런 선수는 흔치 않았다"면서 "딱 동 나이대 여준석(시애틀대)이 떠오른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기능이 아주 좋다. 키가 큰 편인데도 몸이 정말 부드럽고 빠르다"며 박윤성을 극찬했다.
윤 코치는 1976년 장안초를 시작으로 덕성여중, 선일여중, 신광여중 등을 거친 뒤 2000년 지금 학교에 부임했다. 2020 도쿄 하계올림픽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전주원(현 아산 우리은행 코치) 등이 그의 제자다. 이런 베테랑 지도자가 보기에도 박윤성의 잠재력은 눈에 띄었다.
박윤성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엘리트 농구에 입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농구 선수였던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이 내용을 꽁꽁 숨겼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자식이 농구공을 잡는 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 박윤성은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어릴 때부터 농구를 즐겼고 주말이면 프로농구 경기를 보러 가자며 떼 썼다. 설마 했는데 어느날부터는 농구 선수의 꿈까지 홀로 키우고 있었다. 당연히 반대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박준영 씨는 "아들이 농구 선수가 되지 않길 바랐다. 힘든 길이다. 그래서 내가 농구를 했다는 사실도 아들이 절대 모르게 했다. 티도 낸 적 없다. 그런데도 대뜸 농구를 하겠다고 하니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허락했다"며 웃었다.
박 씨와 그의 아들은 서로 얼굴과 체격이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또한 박 씨를 기억하는 농구인들은 하나같이 박윤성의 농구 스타일과 슛 폼이 아버지와 똑같다며 신기해한다. 정작 박윤성은 아버지에게 농구를 배운 적 없다. 유전의 힘은 강했다.
윤 코치는 "(박)준영 씨 초등학교 때 얼굴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농구를 정말 잘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오히려 전희철보다 존재감이 컸다. 운동 능력이 워낙 좋아서 그냥 밀고 들어가기만 하면 상대가 다 비켜주는 느낌이었다. 힘과 속도를 살린 드리블과 돌파에 아주 능했다. 그런데도 성품이 워낙 순해서 이타적인 플레이까지 곧잘 했다. 그런데 지금 (박)윤성이가 딱 그렇다"고 말했다.
동양에서 박 씨와 한솥밥을 먹었던 전병준 한국 여자3x3농구 대표팀 감독(52)도 박윤성이 “현역 시절 아버지와 스타일이 매우 닮았다”며 “아버지 쪽의 운동 능력이 정말 뛰어났는데, 아들도 그 부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슛 폼까지 비슷하다”고 밝혔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만큼 진학할 학교에도 관심이 모인다. 윤 코치에 따르면 중등농구 3대 명문으로 꼽히는 용산중·휘문중·삼선중은 물론, 전국 주요 강팀들까지 모두 박윤성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소식이다.
박윤성은 양정중으로 향한다. 휘문중-휘문고 출신인 아버지와는 다른 행보다. 윤 코치는 "양정중 진상원 코치가 준영 씨와 꽤 끈끈한 사이로 알고 있다. 같은 휘문 출신인 데다, 과거 준영 씨가 휘문고 코치를 할 적에 A코치가 진 코치였던 걸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박 씨는 "내가 휘문 출신이다 보니 아들을 모교에 보내기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나 때문에 학교나 윤성이에게 피해가 가게 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아들이 농구하는 것을 그토록 반대했던 박 씨지만, 지금은 어느덧 박윤성의 1호팬이 됐다. 그는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잘하라는 게 아니다. 부상 없이 농구를 하는 동안 아들이 늘 행복하길 바란다. 나는 비록 선수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아들은 좋아하는 농구를 오래 할 수 있길 응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력보다 성품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됐으면 한다. 아들에게 평소 간섭을 잘 안 하는 편인데 한 가지만큼은 꼭 강조하는 말이 있다. 이타적인 플레이를 잘해야 한다. 그래야 지도자들에게도 더 인정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가치관마저도 비슷한 부자다. 박윤성은 "내가 초등 랭킹 1위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부족한 점이 정말 많다.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겠다. 앞으로도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모자란 부분을 차츰 채워가며 즐겁게 농구 하겠다. 아버지 말처럼 코트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밝혔다.
#사진_영등포/송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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