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구의 DEBUT] 질풍노도의 시기 이겨낸 박상오, 처절했던 프로 데뷔

민준구 / 기사승인 : 2020-05-15 14: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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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박상오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프로 데뷔 후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그는 이미 ‘예비역’ 신분으로 KBL에 데뷔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만 해도 농구를 그만두려 했을 정도로 처절했던 박상오의 인생. 프로 무대에 서기까지 그의 삶은 질풍노도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박상오는 광신정산고(현 광신방송예술고) 시절 누구나 아는 특급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탄탄한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한 파워 플레이는 중앙대 김태환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충분했다. 결국 3학년 때 중앙대 입학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중앙대는 대단한 선수들이 득실거리는 대학 최강의 팀이었다. 송영진, 김주성으로 이어지는 빅맨들이 버티고 있었고 박상오의 출전 시간은 보장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스카우트한 김태환 감독이 LG로 떠난 것. 그렇게 박상오는 점점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중앙대 입학 확인서에 도장을 찍었다. 신입생 신분이지만 경기에 많이 뛰게 해주신다는 말을 듣고 중앙대에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태환 감독님이 2000년 4월에 갑자기 LG로 떠나셨고 내 멘탈은 붕괴되고 말았다. 중앙대에 좋은 선수가 많았고 또 매해 고교 무대에서 내로라하는 신입생들이 들어오면서 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적응에 실패했고 도망도 많이 갔다. 그러다가 결국 군대에 가게 된 것이다.” 박상오의 말이다.

김태환 감독이 떠난 중앙대는 용산고의 대부라고 불리는 양문의 감독이 새로 부임했다. 박상오의 말로 표현하자면 당시 용산고는 해병대 스타일의 훈련을 했다고. 양문의 감독은 부임 직후 중앙대를 강한 훈련으로 무장시켰고 박상오는 부적응자가 되고 말았다.

박상오는 “당시만 해도 나는 힘을 이용한 농구보다는 기술 농구에 재미를 느꼈다. 물론 새로 오신 양문의 감독님이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웃음). 건들거린다, 건방지다 등 그때는 내가 하는 농구가 그렇게 표현됐다. 사실 훌륭한 선수는 감독님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빨리 적응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실패한 선수였고 그래서 군대로 도피하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25개월의 긴 세월을 아무런 보장 없이 보낸 박상오. 그동안 농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그에게 전역 후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단 하나, 군대에서 얻은 인내심과 적응력은 다시 농구공을 잡게 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박상오는 다시 중앙대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광신정산고 장덕영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셨다. 다시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또 중앙대에 계셨던 강정수 감독님께서는 다시 중앙대 농구부에 테스트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아마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토록 오래 농구를 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풍운아 박상오의 중앙대 복귀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강정수 감독은 일주일의 테스트 기간을 제시했고 만약 눈에 들지 않으면 다른 말 없이 나가라는 엄명을 내렸다. 박상오는 “오기가 생겼다. 내게 주어진 일주일이 농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운동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내보낼 생각은 없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때 (윤)호영이가 1학년이었을 때였는데 일대일 연습 상대로 붙이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대학 동기들은 이미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당시, 박상오는 대학 무대를 평정하고 있었다. 적수가 없었던 중앙대는 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라이벌로 꼽힌 연세대와의 대결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박상오는 함지훈, 윤호영과 함께 중앙대 골밑을 책임졌고 졸업 후 ‘황금 드래프트’로 꼽힌 2007 세대에서 1라운드 후보로 평가받게 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이겨내고 올라선 신인 드래프트 무대. 2007년 2월 1일,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2007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는 박상오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전체 1순위의 주인공은 의심의 여지 없이 김태술이었다. 이후 이동준, 양희종, 정영삼이 차례로 불리며 황금 세대의 등장을 알렸다. 이후 전체 5순위 지명의 순간, 박상오는 KTF(현 KT)의 지명을 받게 된다.

“정말 몰랐다. 그때 ‘KTF는 중앙대학교’라고 말하길래 함지훈이나 허효진, 정병국인 줄 알고 있었다. 근데 ‘박’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어리둥절했다. 나이가 있어서 2라운드 초반이나 중반을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빨리 호명돼 기쁘기도 했다.”

박상오의 생각과는 달리 당시 KTF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추일승 감독은 전체 5순위 지명권을 두고 걱정이 컸다. 그는 “우리한테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활력이 넘치고 체력 조건이 좋아 미스 매치를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물론 포워드가 많았던 시절이었지만 박상오를 놓칠 수는 없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추일승 감독의 선택은 미래 KTF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얼떨떨하게 흘러간 신인 드래프트를 끝낸 후, 박상오는 함께 지명된 허효진, 남정수와 함께 앞으로 함께 할 선수들과 첫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2007-2008시즌을 대비하는 비시즌 훈련은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박상오는 “사실 프로에서의 첫 훈련은 조금 이상했던 것 같다. 비시즌 훈련을 하면서 ‘운동량이 너무 적은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러다가 살이 찔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중앙대 시절에 운동량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게 프로에서의 훈련인 건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려고 노력했고 그때 깨달을 수 있었다. 주어진 훈련 시간 외에 개인이 알아서 운동량을 키우는 게 프로라는 것을 말이다”라고 말했다.
 

환경의 차이는 분명했고 박상오는 더 큰 발전을 위해 적응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은 쉴 때 홀로 운동을 하면서 기량을 발전시켰고 그 모습은 추일승 감독, 그리고 신기성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신기성 감독은 “(박)상오에 대한 첫인상은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대학 때와 프로에서의 훈련 강도 차이는 분명히 있는데 적응하지 않고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더 채워 넣으려는 의지가 있었다. 상오가 꽃을 피운 시기는 2000년대 후반부터였지만 밑바탕이 만들어진 건 데뷔 때였다”라고 이야기했다.

묵묵히 자신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박상오는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상대는 이상민, 이규섭, 이정석, 강혁, 테렌스 레더 등 프로 최상위권 전력을 보유한 삼성. 2007년 10월 20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의 데뷔전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코트에 첫발을 디디게 된 건 1쿼터 종료 1분 46초 전. 박상오는 양희승과 자리를 맞바꾸며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1쿼터는 무득점으로 그쳤지만 이후 꾸준히 공격적인 모습과 적극적인 리바운드 및 수비를 보여주며 추일승 감독으로부터 ‘특급 칭찬’을 받기도 한다. 이날 박상오의 데뷔전 기록은 23분 14초 출전, 10득점 7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 KTF의 승리(96-90)와 함께 빛났다.

박상오는 “오래 전 일이지만 정확하게 기억한다. 삼성이 멤버가 굉장히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레더였는데 그때는 진짜 막을 수가 없었다”라며 “1쿼터 후반에 교체 출전한 이후로 10득점 7리바운드 정도 했을 거다. 나름 성공적인 데뷔전이 아니었나 싶다. 엄청 떨리기는 했는데 끝나고 ‘배포 좋네’ 이 한마디를 듣고 모든 긴장이 싹 녹아내렸다. 잘했다는 칭찬도 같이 들으니 그때 데뷔전이 끝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기억했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 데뷔에 성공한 박상오는 이후 KTF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비록 남들보다 뒤늦게 시작한 프로 생활이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누구보다 성실히 운동하면서도 동료를 챙기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었던 그는 성공의 길을 걸으며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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