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구의 DEBUT] 등장만으로도 모두를 설레게 한 ‘김군’ 김정은의 데뷔

민준구 / 기사승인 : 2020-05-01 15: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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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프로에서 뛰고 있는 모든 선수들은 대부분 학창 시절 이름을 날린 ‘인싸’들이었다. 각 학교의 에이스들이었으며 미래에 한국농구를 빛낼 것이라고 기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많은 선수들이 월담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지만 인생은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단 한 경기 만에 프로 무대를 들썩거리게 한 사람이 있었으니 침체기에 접어든 한국여자농구를 부흥시킬 것이라는 기대까지 받았다.

온양여고 시절 김정은은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이미 온 천하에 알리고 있었다. 짧게 자른 헤어 스타일에 탄탄한 체격, 불도저 같았던 돌파와 여자 선수들에게 쉽게 볼 수 없는 원 핸드 슈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모습을 온양여고 시절에 보였다.

너무도 대단했던 탓에 온양여고 1학년 때부터 붙여진 것이 ‘제2의 유영주’. 한때 아시아 최고의 포워드였던 그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평가가 내려진 것은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김정은은 모두가 주목하는 초대형급 예비 신인이었고 그 실력 과시는 청소년 국제대회에서도 이어진다.

김정은은 2004년 중국에서 열린 U18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팀의 에이스 역할을 도맡으며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한동안 세계 대회에 나서지 못한 설움을 씻어 낸 결과. 1년 뒤 2005년에는 튀니지에서 개최한 U19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 세르비아, 푸에르토리코, 콩고를 차례로 꺾고 8강에 진출하기도 했다(한국의 최종 성적은 6위, 8강에서 만난 중국에 패했으며 순위 결정전에서 1승 1패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었던 김정은의 WKBL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은 당연한 일과 같았다. 당시 김정은의 온양여고 시절을 회상한 정인교 숭의여고 코치는 “일단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파워 플레이는 당시 고교 선수들에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김)정은이는 골밑 위주의 플레이를 선호했는데 포지션 대비 신장이 조금 작은 편이었는데도 상대를 압도했다. 181cm의 신장에 잘 달리고 잘 넣는 선수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2005년 11월 9일, 태평로 삼성생명 빌딩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6 WKBL 신인 드래프트의 주인공은 단연 김정은이었다. 신세계는 순위 추첨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고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이름을 이야기했다.

정인교 코치는 “그 드래프트는 정은이 말고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 전체 2순위로 지명된 이경은부터 최희진, 고아라, 염윤아 등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정은이는 대단히 빛난 선수였다”라고 밝혔다.

김정은과 신세계의 첫 대면은 반전 드라마와 같았다. 코트 위에서는 야생마와 같았지만 이후의 시간 동안은 다른 사람이었다고.

당시 김정은과 한솥밥을 먹었던 정진경 해설위원은 “정은이는 신기하면서도 대단한 선수였다. 신인이라면 굉장히 떨리고 힘들었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팀이었던 것처럼 뛰더라. 처음 만났을 때도 이제 고등학생 티도 벗지 않은 아이가 원 핸드로 3점슛을 던지는데 너무 신기했다(웃음). 코트 위에서는 쌩쌩 잘 달리더니 숙소에서는 되게 얌전하고 착하더라. 그때 (정인교)감독님께서 ‘방졸’로 정은이를 보내주셨는데 대만에서 오래 지낸 내가 한국식 선후배 관계에서 자유롭다 보니 서로 편하게 지냈다”라고 추억했다.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많은 언론사들이 김정은에 대해 ‘10년에 한 번 나오는 선수’라는 평가를 전했고 그로 인해 잠시 멈춰 있었던 한국 여자농구의 세대교체도 성공적으로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모든 부분에서 찬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플레이 스타일의 한계, 신장에 대한 아쉬움 등 만족을 모르는 평가도 존재했다. 온양여고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김정은은 주로 센터 포지션에서 뛴 만큼 외곽슛에 대한 활용도는 높지 않았다. 또 181cm의 신장은 센터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작은 편. 마지막으로 초고교급 신인이라 할지라도 당장 프로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자신의 데뷔 시즌인 2006 겨울리그, 그것도 첫 경기에서 모든 의문 부호를 사라지게 했다.

2005년 12월 21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김정은의 데뷔전이 열렸다. 이날 김정은은 선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는 현재까지 몇 안 되는 사례이기도 하다(지난 하나원큐 2019-2020 여자프로농구에선 신한은행의 신인 김애나가 데뷔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그보다 더 이전에는 박혜진이 데뷔전 선발 출전의 기쁨을 누렸다).

당시 신세계는 WKBL을 지배했던 시기에서 벗어나 점차 하향 곡선을 보이고 있던 상황. 정인교 코치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재도약을 향한 첫 시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은은 새로운 신세계의 구축을 위한 핵심 옵션이었다.

“과거 신세계는 굉장히 강한 팀이었다. 정선민, 양정옥(현재는 양선애로 개명), 장선형, 이언주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을 때는 우승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정은이가 들어온 시기에는 조금 약해진 상황이었다. 리빌딩의 시기였고 정은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면서 성장시켜야 하는 때이기도 했다.” 정인교 코치의 말이다.

김정은의 데뷔전 기록은 굉장했다. 연장전까지 이어진 승부에서 무려 44분 47초 동안 출전했으며 16득점 9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벤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시간은 불과 13초. 김정은의 출전 시간은 신세계와 삼성생명 통틀어 가장 길었다.

이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김정은의 16득점이 외국선수를 제외한 국내선수 최다 득점이라는 것. 엘레나 비어드(34득점)와 탄젤라 스미스(31득점)을 제외, 국내선수들 중에서는 김정은보다 많은 득점을 해낸 선수가 없었다(박정은은 15득점, 변연하는 13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형 신인의 데뷔전은 승리가 아닌 패배의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연장 종료 직전, 변연하의 패스를 받은 스미스가 골밑 득점에 성공하며 82-80, 삼성생명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역량을 모두 발휘했음에도 패하면서 웃지 못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데뷔전에 대해 “겁 없이 뛰었던 기억이 있다. 오히려 농구를 배우면서 소심해졌다고 보는데 그때는 앞에 2~3명이 있어도 달려들었다. 신인이니까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이 컸다”라고 회상했다.

다사다난했던 김정은의 첫 시즌은 기쁨과 아쉬움으로 나뉘었다. 인생에 있어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상을 품에 안았지만 신세계의 꼴찌 추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개인 기록은 20경기를 모두 출전해 평균 35분 45초 동안 11.7득점 4.8리바운드 1.9어시스트. 팀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선수 개인으로서는 만족할 수 있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던 김정은의 데뷔 시즌은 그렇게 흘러갔다. 자신에 대한 만족감으로 우쭐해질 수도 있었던 시기. 그러나 김정은은 자신의 약점에 대해 보완하기 위해 정인교 코치와 함께 특별 훈련을 가졌다.

정인교 코치는 “그때는 다른 장비들이 발전하지 않은 시기라서 캠코더를 들고 정은이의 슈팅 자세를 교정해줬다. 점프슛까지는 준수했는데 3점슛이 전혀 안 되었던 만큼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 1년 반~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3점슛은 정은이의 또 다른 강점이 됐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 짧은 시간 동안 하나의 공격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정은이는 만족을 몰랐고 항상 발전하는 것에 신경 썼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최고의 선수가 아닌가. 앞으로 이런 선수가 다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15년 전 김정은은 미완성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빛난 보석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은 34살(한국나이)의 고참임에도 최고 연봉을 받는 완성형 선수로 올라섰다. 지금도 여전히 최고라는 평가를 받으며 말이다.

# 사진_점프볼 DB,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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