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L은 1998년부터 국내선수 드래프트를 실시하고 있다. 매년 20여명의 신인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들어선다. 각 구단마다 15명 내외의 국내선수들로 한 시즌을 치른다. 프로 무대에서 출전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는 자연스럽게 신인 선수 숫자만큼 은퇴해야 한다.
기량을 갖추고 있어도 부상이나 젊은 선수들에게 밀려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나온다. 이와 반대로 적은 출전 기회에서도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며 코트에 나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인내한 끝에 빛을 발하는 선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선수를 꼽는다면 김건우(SK)다. 김건우는 2012년 1월 드래프트 19순위로 서울 SK 유니폼을 입었다. 2순위에 지명된 최부경과 입단 동기다.
김건우는 동국대 재학시절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볼을 다룰 줄 알면서도 슈팅 능력까지 갖춘, 농구를 알고 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지만, 대학 3,4학년 때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이런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뒤늦게 뽑혔다.
드래프트 지명순위와 출전 기회는 반비례한다. 빨리 뽑힌 선수는 그만큼 더 많은 출전기회를 받고, 늦게 뽑힌 선수는 코트에 나설 기회조차 받기 힘들다. 김건우는 2012~2013시즌 1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3~2014시즌과 2014~2015시즌에는 16경기와 21경기로 늘었지만, 평균 출전시간이 5분을 넘지 않았다.

김건우는 사회복무요원으로 2년이란 시간을 보낸 뒤 복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출전 기회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김건우는 2017~2018시즌에도 17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SK는 2012~2013시즌부터 3시즌 동안 1위와 3위, 3위를 차지했고, 2017~2018시즌 챔피언에 등극했다. 김건우는 SK가 가장 강할 때 4시즌을 함께 했다. 우승에 도전하는 SK는 강했지만, 김건우에겐 출전 기회가 적을 수 밖에 없는 팀이었다.
데뷔 후 4시즌 동안 출전경기수 55경기, 그리고 두 번째 찾아온 FA. SK는 챔피언에 등극하는 최고의 기쁨을 누렸지만, 김건우는 은퇴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2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김건우는 마침내 2018~2019시즌 존재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데뷔 후 가장 많은 43경기에 출전한 뒤 2019~2020시즌에는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고 43경기를 모두 뛰었다. 이 덕분에 이번 FA 계약에선 앞선 1년과 2년이 아닌 계약기간 3년에 도장을 찍었다. 보수도 전 시즌 대비 42.9% 오른 1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SK 관계자는 “김건우가 (처음 왔을 때) 수비에서 단점이 있고, 변기훈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출전선수 명단에 들지 못해도 팀 훈련할 때 슈팅 능력에서 돋보였다. 우리 팀에선 어느 정도 경기를 뛰는 선수가 정해져 있고, 건우가 처음에는 팀 내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다”며 “그래서 앞선 FA 계약을 할 땐 짧게 계약했다. 슈터의 가능성이 있었는데 지난 시즌에 그 가능성을 끌어올린 거다(최근 두 시즌 3점슛성공률 40.4%, 41.9%). 수비력이 올라오고 팀 공헌도도 높아지며 팀 내 비중이 올라가서 이번에 3년 계약했다”고 김건우와 FA 계약을 돌아봤다.
김건우는 “다른 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가 의리가 있다(웃음). 의리를 떠나서 SK에서 은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힘든 시간을 보낸 뒤 빛을 발해서 저에게 SK가 크게 다가왔다”고 SK와 3번째 FA 계약을 맺은 소감을 전했다.
데뷔 시즌 1경기 출전했던 선수가 데뷔 6번째 시즌 만에 전 경기 출전한 뒤 FA 계약에서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다. 김건우는 이렇게 인정받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을 듯 하다. 김건우와 전화통화를 하며 데뷔 후부터 이번 FA 계약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건우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일단 선수 구성이 좋다는 걸 저도 알고 있었다. 박상오 형, 김동우 형이 있었고, 박승리도 들어왔다. 선수가 좋다는 걸 인지하고 경기를 못 뛰어도 항상 열심히 하고, 힘들지만 이겨내려고 했다. 그 속에서 상오 형의 도움이 컸다. 주위의 형들에게 코트 안팎에서 여러 가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동국대 재학시절 부상 때문에 많이 못 뛴 편이었다.
대학 때 부상이 많았지만, 큰 부상은 아니고 자잘한 부상이었다. 대학에는 트레이너(2~3년 전부터 대학마다 트레이너 도입)가 없었다. 프로에 와서 트레이너 형들을 만나니까 제 몸에 잔 부상이 없어졌다. 몸 관리 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데뷔 초기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제 몸을 충전할 수 있었다. 그게 선수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트레이너 형들에게도 고맙다.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하고 첫 번째 FA를 맞이했다. 또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 때를 되돌아본다면?
이대로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 성적은 좋았지만, 제가 보여준 게 적었다. 그래도 제가 성실하게 운동했고,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 감독님, 코치님께서 ‘군 복무 마치고 와서 다시 해보자’고 말씀을 해주셨다. 제가 못하고 있고, 보여준 게 없었더라도 ‘잘 할 수 있다. 그만두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을 했다. 군대 가기 전이나 갔다 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하면서 나름대로 운동을 열심히 했을 거 같다.
그 때는 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숙소 근처 구청에서 근무하며 새벽과 야간에는 운동을 했다. 지루하긴 했지만,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감독님께서 저에게 ‘네가 어떻게 몸을 만들고 오더라도 부상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다. 2년 공백을 가진 뒤 팀에 합류해서 시즌 준비를 하면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트레이너 형들과 코어 운동 등 기초 운동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그 덕분에 복귀했을 때 부상도 없었다. 대학 때까지 부상이 많다는 꼬리표가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다. 몸 관리 방법을 알게 된 게 엄청 큰 도움이 되었다. 제 장점이 슛이라서 야간에 슛 연습도 소홀하지 않았다. D리그 선수들과 시간이 맞으면 같이 훈련도 했다.
어떻게 보면 2017~2018시즌은 은퇴의 기로에 놓인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17경기만 뛰었다. 그 시즌이 기억나나?
챔피언에 등극해서 너무 좋았다. 제가 플레이오프나 챔피언결정전 때 조금이라도 뛰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걸 빨리 떨어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우승 뒤풀이를 갔을 때였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간 정재홍 형, 제가 경기를 못 뛰었다. 감독님께서 저희가 있는 자리로 오시더니 ‘경기를 못 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감독님께서 저희에게 미안하다고 하실 게 아니라 저희가 더 열심히 해서 뛰었어야 하는 건데 감독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서운함이 사라졌다.
그렇게 두 번째 FA 계약에 임했다. 어쩌면 진짜 은퇴 위기였다.
그 때도 똑같았다. 자신감이 있었는데 선수들이 좋아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래도 항상 제 스스로를 놓지 않았다. 언젠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감독님, 코치님께서 제가 코트에 들어가서 한 방을 넣어줄 수 있는 걸 좋게 보신 거 같다. 성실하게 노력한 것도 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 같다.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전 화려한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력하고 성실하게 하려고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부족할지 몰라도 팀으로 봤을 때 팀에 공헌할 게 있다고 여겼다. 계약 기간이 중요하지 않았다. SK라는 팀의 선수들이 좋고, 팀 자체를 좋아해서 팀에 공헌하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했다.
2018~2019시즌 들어 그렇게 받은 기회에 보답했다. 출전시간은 길지 않아도 43경기에 나섰다. 어떤 부분이 좋아진 건가?
확실히 선택과 집중을 했다. 가지치기라고 해야 하나? 감독님, 코치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잘 받아들였다. 모든 걸 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가지치기를 하니까, 부족한 건 채우려고 하고, 잘 하는 건 더 잘 하려고 하니까 프로 선수답게 좀 더 올라설 수 있었다. 그 시즌에는 팀에 부상 선수도 있었다.
수비가 좋아졌다고 들었다.
맞는 말이다. 김기만 코치께서 많이 알려주셨다. 전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라서 수비의 맥을 짚으려고 했다. 코치님께서 그런 부분을 항상 많이 말씀해주셨다. 눈을 떴다는 말도 들었다. 수비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가졌다.
2019~2020시즌에는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코트를 밟았다.
비시즌 준비를 항상 열심히 했다. 쉰 적이 거의 없었다. 이번 시즌을 뛰면서, 코로나 때문에 빨리 끝나서 아쉽지만, 한 경기 한 경기 뛸 때마다 마음가짐이 달랐다. 제가 10분 이상 뛰는 선수는 아니지만, 전 경기 출전이 남들과 다른 느낌이었다. 참고, 인내했던 것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받은 느낌이다. 노력을 엄청 하는 선수도 기회를 받지 못하고 은퇴할 수 있는 곳이 프로다. 그런 걸 생각하면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FA 계약에서 1년, 2년에 이어 이번엔 계약 기간이 3년이다. 보수 1억 원도 돋보이지만, 3년이란 계약 기간도 굉장히 만족스러웠을 거 같다.
3년 계약해서 좋았다. 사실 계약 기간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팀에서 당연하다는 듯 3년이라고 하셨다. 가만 생각해보니까 팀에 고마웠다. 이전에 1년, 2년 계약을 했던 선수가 나이를 먹었는데도 3년 계약을 한 것 자체가 팀에서 인정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SK에서 힘든 시간 견뎠다. 다른 팀에 있었어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수 있다. 어느 팀이든 장단점이 있을 거다. 그래도 감독님께서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신다. (이런 사실을) 다른 팀 선수들도 알 거다. 감독님께서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시는 게 좋다. 믿음을 주실 때 허투루 듣지 않고 책임감 가지도록 동기부여도 확실하게 주신다.
앞으로 출전시간을 더 늘려나가야 한다. 어떻게 준비해서 2020~2021시즌을 맞이할 건가?
우승했던 그 때(2017~2018시즌) 우승해서 좋았지만, 다음 시즌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우승할 때 제가 공헌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43경기를 다 뛸 때 감독님께서 (경기 중 벤치에 앉아 있을 때) ‘건우 나와’ 이 말씀을 하시면 기분이 좋았다. 이 말이 많이 나올수록 저에게 기회가 많은 거다. ‘건우 나와’ 이 말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게 제 목표다. 그럴 수 있도록 당연히 제 장점인 슛을 더욱 준비해야 하고, 수비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더 잘 하고 싶기 때문에 수비도 더욱 파보려고 한다.
#사진_ 점프볼 DB(문복주, 유용우, 윤희곤 기자)
점프볼 / 이재범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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