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구를 좋아하는, 그것도 한국농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김학섭이란 세 글자를 모를리 없다.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 김학섭 코치가 바닥을 내리치면 어김없이 역전극이 펼쳐졌다는 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김학섭 코치는 한때 한국농구 역사에 있어 천재의 계보를 이을 존재로 평가받았다.
몸을 다루는 데 재능이 있었던 김학섭 코치는 10살 때부터 육상부 소속으로 운동 선수의 길을 걸었다. 이미 180cm의 신장을 자랑했던 김학섭 코치는 당연한 듯 농구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결국 육상이 아닌 농구를 선택하게 된다.
또래에 비해 신체 조건이 좋았던 탓에 김학섭 코치의 농구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더불어 탄탄한 기본기, 대담함, 그리고 승부사 기질은 전주남중 시절부터 전국의 농구계가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김학섭 코치는 “전주남중 때부터 전주고 시절은 정말 재밌었다. 내 마음대로 농구할 수 있었고 성적도 좋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연맹회장기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었다. 그때 홍대부중과의 결승에서 39득점을 한 기억이 있다(웃음)”라며 “2015년에는 코치로서 연맹회장기 우승을 차지했다. 무언가 모를 감정이 생기더라. 너무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라고 이야기했다.
전주남중 졸업 이후 전주고로 진학한 김학섭 코치는 조성민, 박범재와 함께 3인방으로 불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그러나 조성민과 박범재는 조력자에 가까웠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다). 김만진 당시 전주고 감독의 특급 조련까지 이어지며 전국체전 3연패를 이루기도 했다.
김만진 전 감독은 “그때는 (김)학섭이가 최고였다. 재능도 좋았고 여러 대학에서 학섭이를 데려가려고 난리를 치던 시절이었다. (조)성민이와 (박)범재도 운동을 잘했는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이 못했다기 보다는 학섭이가 너무 잘해다. 당시 고등학교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였으니까”라고 회상했다.
김학섭 코치는 이미 「민준구의 DEBUT」를 통해 수차례 언급된 제16회 FIBA U18 대회 우승에도 기여했다. 당시 방성윤, 정재호, 김일두, 정상헌 등 3학년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김학섭 코치는 2학년임에도 큰 역할을 해냈다.
이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김학섭은 겁이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결승에서 만난 중국의 장신 센터를 상대로 과감히 돌파를 시도하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말이다.
김학섭 코치는 “아마 중국이랑 치른 결승에서 내가 엄청 많이 넣었을 거다. 근데 5반칙 퇴장을 일찍 당해서 금방 코트에서 사라졌다(웃음). (방)성윤이가 그때 MVP에 선정됐는데 퇴장만 안 당했어도 내가 받지 않았을까. 하하.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시절이었다. 어떤 걸 하더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마냥 행복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완벽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는 이른바 ‘업둥이(스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해당 학교의 다른 선수까지 데려오는 것)’로 불리는 편법이 김학섭 코치를 흔들리게 했다. 대부분의 스타 선수들이 대학 진학 과정에서 겪은 문제였고 김학섭 코치도 피할 수 없었다.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은 한양대와 고려대. 김학섭 코치는 “나는 그저 중고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같은 곳에 가고 싶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두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모두와 함께 농구하고 싶었고 그래서 한양대에 가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아쉽게도 김학섭 코치의 한양대행은 앞으로 있을 비극의 시작과도 같았다. 그동안 탄탄대로를 걸었던 김학섭 코치의 농구 인생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한양대는 대학농구 무대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양동근이란 미래의 KBL 전설이 존재했지만 그 역시 성장해가고 있었던 시기. 그런 상황 속에서 김학섭 코치의 가세는 반전의 신호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故김춘수 감독은 김학섭 코치를 그저 벤치에 앉혀두기만 했다. 반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조성민을 중용했다. 두 선수의 농구 인생이 180도 바뀌는 상황이었다.
“돌아가신 분인 만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속상했었다는 짧은 말로 모든 걸 표현하고 싶다. 어떤 이유도 듣지 못했다. 내가 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면 바뀌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알고 있었다. 뛸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러나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김학섭 코치의 말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학섭이가 전화해서 하는 말이 자기를 왜 한양대로 보냈냐고 하더라. 울면서 악을 쓰는 제자의 목소리를 듣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앞으로 열심히 해서 기회를 얻으라는 평범한 말만 해줄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재능을 지닌 선수라 할지라도 기회를 받지 못하면 정체되기 마련이다. 농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 세계에서 통하는 상식이다. 전주고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천재라는 수식어가 이상하지 않았던 김학섭 코치는 한양대에서 고통스러운 4년을 흘려보내야 했고 팀 이탈이라는 최악의 경험까지 하게 된다.
김학섭 코치는 “신입생 때부터 3학년 때까지의 농구 기록이 거의 없다. 4학년 때도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는데 병원에 갈 기회가 없어서 치료가 늦어졌다. 결국 무단 이탈로 이어졌고 그렇게 농구와 인연을 끊는 듯했다. 너무 힘들었다. 20살 때 만난 지금의 아내가 없었다면 많이 삐뚤어졌을 수도 있다. 또 예전에 개그맨을 하셨던 김영삼 박사님께서 전주고 출신이신데 남 몰래 많이 도와주셨다. 여러모로 너무 힘겨웠던 4년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프로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양대로 돌아갔고 농구대잔치에서 4강에 올랐다”라고 말했다.
당시 한양대는 양동근 졸업 이후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었다. 종별선수권대회에서 만난 2부 대학 팀에 패하는 등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변의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1부와 2부의 차이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었다. 故김춘수 감독 역시 계약 마지막 해였던 만큼 눈에 띄는 실적이 필요했고 그동안 외면했던 김학섭 코치를 불러들였다. 그렇게 농구대잔치 4강이라는 성적을 냈음에도 두 사람의 마지막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김만진 전 감독은 “선수는 감독을 잘 만나야 하는데 학섭이의 경우 그렇지 못한 케이스가 됐다. 아직도 그 아이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라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2006년 1월 20일,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 서울 교육문화회관은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선수들부터 감독, 가족, 기자, 관계자 등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인 드래프트를 위해 자리했다. 당시 KBL은 대학 감독들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홍보할 수 있도록 응원 영상을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故김춘수 감독과 김학섭 코치의 불화설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대부분의 대학 감독님들은 자신의 선수를 프로에 보내기 위해 없는 것도 만들어서 장점으로 포장하셨다. 물론 프로 관계자들 역시 모아 놓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의미가 있는 이벤트였다. 근데 그 분(故김춘수 감독)께서는 나에 대해 언급할 때 뽑지 말라는 식으로 깎아 내렸다(웃음). 모두가 황당해하더라. 지금 생각해도 참…. 만약에 KBL에서 이 영상을 가지고 계신다면 꼭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김학섭 코치의 말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모두에게 통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모비스에 입단하게 된 김학섭 코치는 2006-2007시즌 통합우승에도 웃지 못했다. 정규경기 MVP에 빛나는 양동근이 같은 포지션에 버티고 있었고 포인트가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故크리스 윌리엄스가 존재했다. 김학섭 코치의 데뷔 시즌 성적은 46경기 출전, 평균 13분 9초 3.1득점 1.6리바운드 2.0어시스트. 과거의 명성에 어울리지 못한 초라했던 데뷔 시즌이었다.
한양대에서의 아픔이 너무도 컸던 탓일까. 아니면 운이 없었던 것일까. 모두가 기대했던 김학섭 코치의 프로 생활은 큰 임팩트 없이 막을 내렸다. 2011-2012시즌 오리온스에서 유니폼을 벗으며 현역 생활을 끝낸 것이다. 기대했던 것이 있기에 너무도 아쉬운 마무리였다.
이제는 전주남중의 지도자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김학섭 코치. 그는 열악했던 전주남중 농구부를 하나씩 바꾸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청춘을 다 바치고 있다.
“내가 겪은 설움, 그리고 아픔을 가르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겪지 않도록 하려 한다. 내가 아파봤으니까 우리 애들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이랄까. 깊게 관여해서는 안 되지만 먼 발치에서 제자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 내 상처도 치유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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