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버드‧조던, 커리 이전 NBA 혁명가

김종수 / 기사승인 : 2021-12-17 21: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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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스테판 커리(33·190.5cm)는 ‘혁명가’로 불린다. NBA 역사에서도 많지않은 프랜차이즈 왕조의 기둥이라는 점도 높이 살만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트랜드가 되어있는 3점슛, 스페이싱 농구의 변화를 가져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화려하고 운동능력 좋은 선수도, 커리어에서 대등 혹은 앞서는 선수도 있음에도 전 세계가 유독 커리에게 주목하는 이유다.


온갖 천재, 괴물들이 모두 모인 NBA라는 거대한 리그에서 흐름을 바꾼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역대로 수많은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활약했지만 커리처럼 트랜드에 직접적으로 변화를 준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때문에 그러한 혁명가에게는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후대에도 계속해서 회자 될 수밖에 없다.


NBA 역사상 트랜드를 바꿨다고 할만한 선수는 손에 꼽힐 정도다. 그렇다면 커리 이전에는 누가 있었을까. NBA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80년대부터 되짚어보면 몇몇 선수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팬들도 많을 것이다. 세기의 라이벌로 불리며 NBA 인기에 불을 붙였던 어빈 ‘매직’ 존슨(62·206cm)과 래리 버드(65·205cm) 그리고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58·198cm)이 바로 그들이다.

NBA 인기에 불 붙인 최고의 라이벌

NBA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라이벌을 꼽으라면 단연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를 꼽을 수 있다. NCAA 시절부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그들은 이후 NBA에 입성해 본격적인 대립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들이 입단한 LA 레이커스(매직)와 보스턴 셀틱스(버드) 자체가 전통의 라이벌인 상황에서 흑인과 백인, 테크니션과 파이터 등 여러 가지 팽팽한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가며 선수 생활 내내 치열하게 경쟁했다.


매직과 버드의 라이벌 구도는 NBA 역사를 크게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들의 경쟁은 미국 현지는 물론 해외 팬들의 관심까지 끌어 모았고 NBA가 세계적 리그로 도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보스턴 셀틱스(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쉬)와 LA 레이커스(매직 존슨, 제임스 워시, 카림 압둘 자바)의 경쟁은 그야말로 매 경기가 관심거리였다.


이전까지 NBA는 수준은 높았지만, 그 높은 수준에 맞는 인기로까지는 이어가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부터 화제를 끌기 시작해 인기의 중심에 서게 된 매직과 버드의 라이벌 구도는 지금까지도 사상 최고로 꼽히고 있다. 한 시대에 한명의 지배자도 나오기 쉽지않은 상황에서 무려 2명이 등장해 경합했던지라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버드의 셀틱스와 매직의 레이커스는 각각의 팀 색깔도 뚜렷했다. 1980년대 미국 정부에서는 흑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우대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시대에 맞는 좋은 과정이라 할 수 있었으나 백인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살던 가난한 백인층에게는 불만을 사기도 했다. 특히 당시 보스턴은 백인우월주의가 상당했던 도시였다. 그런 팀에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월등한 기량의 백인선수가 들어오자 지역 팬들은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더불어 가난한 시골 출신이라는 배경도 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버드의 셀틱스가 첫 우승을 달성했을 당시 단체 사진을 보면 흑인선수보다 백인선수가 더 많았다. 매우 드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반면 매직이 활약하는 LA는 그 어떤 도시보다도 개방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인종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사는지라 가장 먼저 인종차별의 벽이 깨진 지역 중 하나였다. 매직을 중심으로한 ‘쇼타임 농구’와 아주 잘 어울렸다. 이같이 양쪽의 색깔은 확연하게 달랐던지라 보스턴, LA와 큰 관련이 없는 다른 도시 팬들도 성향에 따라 나뉘어 매직과 버드를 응원했다.


둘은 플레이 스타일 적인 부분에서도 좀처럼 나오기 힘든 타입의 선수들이었다. 1979년 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 매직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사이즈만 놓고 봤을 때는 포워드 혹은 골밑자원까지 그려졌던 선수다. 놀랍게도 그의 포지션은 1번 포인트가드였다. 180cm대 1번들이 무수한 상황에서 무려 20cm가량 큰 선수가 동 포지션에서 경쟁한 것이다. ‘거대한(?) 선수도 포인트가드가 가능하다’는 이른바 포지션 파괴의 선두주자였다고 볼 수 있다.


진짜 무서운 점은 매직은 사이즈만 큰 것이 아닌 순수한 기량 자체에서도 단신 테크니션 1번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매직의 최대 무기는 노룩패스로 대표되는 환상적인 패스 센스다. 큰 사이즈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코트를 오가며 광각렌즈 같은 시야로 동료들의 찬스를 봐줬다.


길고 짧은 패스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반 박자 빠르게 전해주는지라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언제 어디서 허를 찌르는 어시스트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패스만 신경 쓰기도 어려웠다. 매직은 어지간한 2~3번을 맞아서도 자유자재로 포스트업 공격을 성공시키고, 상황에 따라 센터나 파워포워드 역할까지도 가능한 선수였다.


수비의 시야가 자신의 패스에 몰릴 때는 팀 내 주포로 빙의해 다득점을 올릴 때도 적지 않았다. 그야말로 매직의 경기는 한편의 '마술쇼' 같을 때가 많았다. 이름보다도 훨씬 유명해진 '매직'이라는 닉네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였다.


1978년 NBA 신인 드래프트 6순위 출신 버드는 '백인은 농구선수로 최고가 되기에 한계가 있다'는 이전까지의 통념을 과감하게 깨트려버렸다. 단순히 잘하는 백인선수가 아닌 리그 최고의 스타로서 한 시대를 지배했다. 농구라는 종목에 있어 흑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백인들 입장에서 버드의 등장은 자부심과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탄력, 운동능력 등만 놓고 따졌을 때는 아무래도 정상급 흑인 선수들에게 밀렸던 것이 사실이지만 탄탄한 웨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승부근성, 빼어난 테크닉과 센스 등을 앞세워 정상권에서 군림했다. 항상 솔선수범하고 늘 결과로 보여줬기에 소속팀 선수들은 흑인, 백인을 가리지 않고 일찌감치 그를 캡틴으로 인정하고 따랐다.


버드는 골밑과 외곽에 모두 강했다. 주포지션은 스몰포워드지만 파워포워드까지 가능했다. 포스트에서 거구의 흑인 선수들과 전투적으로 싸우면서 리바운드와 골밑득점을 올리면서도 외곽에서 찬스가 오면 적중률높은 슛을 주저 없이 던졌다. 팀 보스턴의 리더답게 게임을 읽는 시야가 넓어 리딩에 참여하면서 좋은 패스를 넣어주는데도 매우 능했다. 오죽하면 가장 완벽한 농구 선수는 '흑인 래리 버드'라는 말까지 있었겠는가.
 


센터농구 깨고 스윙맨 시대 가져온 농구황제

매직과 버드가 NBA를 세계적 리그로 알렸다면, 마이클 조던은 높아진 위상에 쐐기를 박아버린 인물이다. 이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시카고 불스는 조던의 등장과 함께 왕조를 구축하며 일약 NBA를 대표하는 명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조던 시대 이후 불스는 우승을 추가하지못했지만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농구 황제'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던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다. 이전까지만 해도 역대 NBA 최고 선수 논쟁이 일어나면 매직 존슨, 래리 버드, 카림 압둘 자바,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 등이 치열하게 경합했다. 어차피 모두 동시대에 뛴 것도 아니고 포지션도 다른지라 명확한 답은 없겠으나 현재는 조던을 1인자로 평가하는 의견이 대다수다. 외려 조던을 제외한 2인자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조던이 어떤 선수였는지는 파이널 기록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다수의 득점왕, 정규리그, 올스타전 MVP 등 정규리그에서도 최고의 기록을 남긴 조던이지만 그는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 더욱 강해졌다. 파이널에 6회 진출해 모두 우승을 차지하고 파이널 MVP 역시 쓸어 담았다는 것은 이른바 마지막 순간에 절대적으로 강했음을 증명한다. 간혹 나오는 르브론 ‘킹’ 제임스와의 비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더욱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는 것은 조던이 이룬 모든 업적은 특별한 외부 전력 보강 없이 스카티 피펜 등 팀 내 동료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며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2차 왕조 시절 호레이스 그랜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데니스 로드맨의 영입 정도가 예외에 속할 수 있겠으나 당시 로드맨은 전성기가 지난 시점이었고 특유의 기행으로 인해 각 팀들로부터 다루기 힘든 악동으로 혹평받았다. 조던의 카리스마가 아니었다면 로드맨은 통제 자체가 안되었을 것이다는 의견이 많다.


조던이 뛰던 당시 리그 각팀에는 걸출한 1번, 5번 자원이 많았다. 하지만 조던은 단 한번도 해당 포지션의 특급 선수와 뛰어본 적이 없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조던 시대에는 특히 걸출한 센터 자원이 많았다. 이른바 4대센터로 불리는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페트릭 유잉, 샤킬 오닐을 필두로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브래드 도어티, 릭 스미츠, 숀 브래들리, 블라디 디박 등 센터 전성시대였다.


그럼에도 조던은 상위 클래스 센터의 도움없이 6번의 우승을 만들어냈다. 2번째 3연패를 함께했던 호주 출신 백인 센터 룩 롱리는 리그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빅맨 자원이었으나 조던은 개의치않고 자신만의 농구를 통해 쟁쟁한 높이의 팀들을 박살내나갔다. 농구는 무조건 높이의 스포츠라는 편견을 깨고 스윙맨 중심으로도 얼마든지 왕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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