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2007년 2월, KBL은 전국의 키 큰 어린 학생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학년별로 신장 기준을 정하고, 기준에 맞는 학생이 정식 농구선수로 등록하면 농구용품과 훈련 지원금을 지급하는 장신자 발굴 프로그램을 위해서였습니다. 선수를 발굴한 지도자에게도 지원금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혜택으로 총 76명의 선수를 발굴했습니다. 송교창, 양홍석, 박준영 등 KBL 유망주부터 2016 U-17 세계청소년대회 8강의 주역인 신민석과 양재민 등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2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장신 선수를 발굴하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스포츠토토 기금 용도를 바꾸면서 유망주 발굴에 투자가 어려워졌고, KBL은 새로운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리그의 흥행을 위해서는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이 많아야 하고, 선수 육성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유망주의 조기 발굴과 육성은 리그 흥행을 위한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 장신자 발굴 프로그램이 중단되었을 때 많은 농구인들과 농구팬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이유입니다.
2019년 5월, KBL은 유소년 농구의 전문성 강화 및 체계적인 선수 양성을 위해 유소년육성팀을 신설했습니다. 유소년 육성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판단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7년 만에 장신 선수 발굴 사업도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9월 10일, 1호 선수가 탄생했습니다. 만 12세의 에디 다니엘 이파니추쿠(이하 다니엘)입니다. 농구가 싫었던 소년입니다. 처음에는 야구를 좋아했다 마음이 변해 축구를 좋아했던 소년입니다. 그런데 훈련하면서 팀원들과 친해졌고, 농구도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열심히 해서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라는 당찬 포부를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습니다. 무더위도 지쳐 발걸음을 돌린 가을 저녁, 다니엘이 살고 있는 분당을 찾았습니다.

SK 분당 팀씩스 다니엘입니다
Q.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분당 늘푸른초등학교에 6학년 다니엘입니다. SK 유소년 클럽 팀씩스에서 농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Q. 장신 선수 발굴 사업이 뭔지 알아요?
네. 초등학생은 180cm 이상 클럽 선수를 뽑아서 엘리트 선수를 하게 되면 지원해주는 거예요.
Q. 어떤 계기로 지원했어요?
처음에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용산중 신석 코치님이 추천을 해주셨어요. 제가 직접 듣지는 않았고요, 엄마에게 전화로 말씀하셨어요.
(엄마) 신석 코치님이 좋은 제도라고 한 번 시도는 해보자고 말씀하셨어요. 처음에 운동을 시작할 때는 취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름 전부터 다른 학교 코치님들의 연락을 받았어요. 이왕 하는 거 엘리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용산중으로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신석 코치님은 그렇게 인연을 맺었어요.
Q. 7년 만에 부활한 장신 선수 발굴 프로그램의 첫 등록선수가 됐어요. 신장 측정이 끝났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기분이 좋기는 했는데, 묘한 느낌도 있었어요. 신장을 측정하기 2주 전에는 1cm가 모자랐거든요. 그런데 그동안 자라서 묘한 느낌도 있었고, 그래서 더 좋았어요.
Q. 향후 3년간 지원을 받아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정확한 지원내용은 모르고 있어요. 그래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죠. 지금까지는 제가 용품을 사서 했는데 이제는 굳이 제가 살 필요가 없잖아요. 농구화를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신는 것 같아요. 무릎 보호대 같은 장비도 필요하고, 엄마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팀원들과 친해지면서 농구가 좋아졌어요
장신 선수는 100만 원의 장학금을 받고, 총 36개월 동안 30만 원의 훈련지원금을 받습니다. 연간 4회의 체력 측정을 받고 캠프에도 참가합니다. 작지 않은 혜택이죠. 그런데 정작 이 혜택의 1호 수혜자는 농구를 싫어했습니다. 엄마는 취미로 여러 가지 운동을 해보기를 원했고, 농구는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농구는 재미가 없었고, 그래서 클럽에 가는 것도 싫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떤 과정을 통해 농구에 흥미가 생겼는지 궁금했습니다.
Q. 언제 농구를 시작했어요?
2017년 7월에 엄마가 클럽에 등록을 시켰어요. 하기 싫었는데 여러 가지 운동을 해봐야 한다고 등록을 시켰죠.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어요.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데 농구보다 야구가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축구가 더 좋아졌고요. 작년 12월에 축구 테스트를 하러 갔는데 (농구) 클럽 선생님께서 ‘너는 농구를 해야 한다’고, 엄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엄마) 선생님 말씀이 다니엘은 신체조건이 농구래요. 한 달 넘게 계속 연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클럽 대표팀에 일단 넣어보는데 아이가 재미없다고 하면 뺀다고 약속하고 보냈어요.
Q. 그런데 농구선수의 길을 선택했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두 달 만에 전국 대회에 참가했는데 굴욕만 당하고 왔어요(웃음). 주전으로 뛰었던 친구들이 미국으로 놀러 가서 큰 점수 차이로 졌죠. 당시에는 팀에 대한 애착도 없고, 이기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훈련하면서 팀원들과 친해졌고, 팀원들과 친해지면서 농구도 재미있어졌어요. 지금은 많이 이기고 싶어요. 올해 6번 우승했고, 최우수선수상도 두 번 받았습니다.
Q. 농구를 해보니 어떤 점이 좋아요?
다른 종목보다 지루함이 없어요. 야구는 자기 타석이 돌아올 때까지, 수비할 때에도 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축구도 공을 만질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농구는 계속 공이 오고, 제가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해요. 득점도 많이 하고요.
Q. 엘리트 선수가 되는 것은 큰 변화일 수 있어요. 두려움과 설렘, 어떤 감정이 더 커요?
설렘이 더 커요. 두려움은 별로 없어요. 어차피 해야 할 건데 두려워하기보다 즐겁게 하는 것이 좋아요.
Q. 농구는 키가 크면 유리해요. 그런데 키만 크다고 잘하는 운동은 아니에요. 코치님은 본인의 장단점을 뭐라고 말씀하세요?
단점은 기본기가 약하고, 장점은 운동능력이 좋다고 말씀하세요. 키가 크고 점프를 잘해서 리바운드를 잘 잡아요. 슛은 습득력이 빠른 것 같지는 않아요. 공을 다루는 재주도 아직 미숙하고요. 아직은 신장이 커서 농구를 할 수 있지 키를 빼면 다른 친구들보다 나은 점이 없어요.
Q. 신석 코치님이 특별히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중학교 오면 중학교 방식대로 코칭을 해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부상만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한국말은 잘하는데 영어를 못 해요
다니엘은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름은 평범한 한국 사람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런 점이 농구를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불편함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다니엘의 생각은 성숙했습니다.
Q. 이름이 특이해요. 이름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힘들거나 상처받지 않았어요. 팀원들 중에 외국인학교 학생도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한국인처럼 생겼고 이름도 한국 이름인데, 한국 국적이 아니고 한국말에 능숙하지 않아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한국말을 잘 하죠. 대신 영어를 못 해요(웃음). 한국 사람이 한국말만 잘 하면 되잖아요.
Q. 한국 사람이 한국말만 잘 하면 된다는 건 나와 생각이 같네요(웃음). 엄마에게 질문 하나 할게요. 다니엘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개명을 고려하고 있나요?
SK에서 개명하는 곳을 소개해 준다고 했어요. 저는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데 다니엘은 원치 않네요.
(다니엘) 전 지금 이름이 좋아요. 음…. 그래서 이 동네를 떠나기 싫어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저를 잘 아니까요. 다른 동네에 가면 사람들이 물어볼 거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요.
Q. 공부는 잘하는 편이에요?
잘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아요. 그냥 딱 가운데 같아요. 선행학습을 안 해서 6학년 2학기 수준. 그래도 점수는 무조건 상위권이에요(웃음).
Q. 다시 농구 얘기로 돌아와서, 엘리트는 훈련의 양이나 강도가 클럽과 많이 다를 수 있어요. 걱정이 되지는 않나요?
클럽과 운동량이 달라도 지금처럼 했던 것처럼 즐기면서 할게요. 해야 하는 거니까. 그거 못하면 농구선수 못하잖아요.
Q. 농구선수가 된다면 어떤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제1의 다니엘이 되고 싶어요. 마이클 조던은 농구를 모르는 사람도 이름을 다 알잖아요. 저도 ‘다니엘’하면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원하는 포지션이 있어요?
하고 싶은 포지션은 포워드에요. 지금은 센터 농구보다 가드 농구가 대세잖아요. 그런데 가드를 하기에는 리딩이 많이 부족해요. 안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고 밖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 포워드가 좋아요.
Q. 롤 모델이 있다면?
밀워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요. 농구는 마이클 조던이 제일 유명하니까, 유튜브로 시카고 불스 영상을 찾았어요. 그런데 하필 그 경기가 밀워키 벅스와 시카고 불스의 경기였습니다. 아데토쿤보를 처음 봤는데 뭔가 귀엽고(웃음) 마음에 들었어요. 아데토쿤보의 플레이에 상대 수비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롤 모델이 됐어요.
Q. 미래의 팬들이 될 수도 있는데요, 마지막으로 점프볼 독자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SK 훈련하는데 가서 김선형 선수와 김민수 선수를 봤어요. 열심히 농구해서 저도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제2의 김선형과 충성도 높은 팬들
SK 소속 클럽 팀만 2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분당에는 팀씩스가 있고, 이 팀에는 전태풍 선수의 아들도 있다고 하네요. 전국 각지의 유소년 농구교실에서 수만 명, 어쩌면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농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 소년들은 대한민국 농구의 미래입니다. 이들 중에 제2의 김선형이 나오고, 제2의 김민수가 나옵니다. 제2의 김선형, 제2의 김민수를 응원하는 충성도 높은 팬들이 나옵니다.
이제 만 12세인 다니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시련과 좌절도 있을 겁니다. 고통을 이기는 인내의 시간도 필요할 겁니다. 그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따라 키만 장점이었던 선수가 될 수도 있고, 원하는 것처럼 ‘제1의 다니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대가 되는 점은, 다니엘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본인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친구라는 점입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즐기겠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KBL 류수미 유소년육성팀장은 “농구의 저변 확대와 엘리트 선수들을 조기 육성하기 위해 장신 선수 발굴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면서 “엘리트 선생님만 지정자를 발굴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클럽 선생님 등 발굴자 폭을 넓혔다”라고 했습니다. 폭을 넓히면서, 엘리트 선수들을 위한 체력 측정과 스킬 트레이닝, 부상 방지를 위한 운동 전후 스트레칭 교육 등 지원 프로그램의 깊이도 더했습니다.
KBL의 이런 변화는 긍정적입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코칭 방법입니다. 다니엘은 팀원들과 친해지면서 농구가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훈련의 강도가 세져도 즐겁게 운동하겠다고 했습니다. 팀원들과 친하게, 즐겁게 운동하는 것은 다니엘 혼자만의 노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장신 선수 발굴 사업의 성패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농구의 위기’라는 표현은 이미 진부합니다. 이미 진부한 표현을 계속 듣는 것은 농구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현장의 지도자와 학교, 대한민국농구협회의 지원과 노력이 함께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진_다니엘 본인 제공, 문복주, 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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