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2019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나오는 예비 프로들이 쓰는 취업이력서. 스물 네 번째 주인공은 연세대에서 농구를 하다가 3x3은 물론 사회경험치까지 쌓고 온 김훈(F, 193cm)이다. 남들보다 한해 늦게 프로무대에 도전한 만큼 이력서도 꽉찼다. 우여곡절 가득한 김훈의 프로무대 도전기를 들어봤다.
김훈이 농구부에 들어간 출발점도 드라마틱 하다. 학원에 있다가 원장 선생님께 불려가 ‘농구하러 간 친구를 데리고 와라’라는 말을 듣고, 체육관으로 갔다. 그렇게 발을 디딘 천안 봉서초. 마침 운동 신경이 좋더라라는 소문(?)을 듣고 김훈을 스카우트하러 찾아 헤맨 천안 동산초 코치와 마주하게 됐고, 결국 농구공을 잡은 순간 재미를 붙였다.
육상을 하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일까. 운동신경이 있던 김훈은 금세 골 넣는 맛을 들렸고, 이왕 시작하는 농구, 큰물에서 시작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서울행을 결정했다. 때마침 대경중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와 형들이랑 훈련을 시작했다.
마침내 ‘운동부’에 들어선 그는 지옥의 체력 훈련(?)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장기였던 김훈에게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냈던 건 무리였을까. 김훈은 “대경중에 가서 힘들게 운동은 했는데, 개인적으로 발전하는 게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위에 궤양이 생기면서 몸이 약해졌었죠”라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소풍을 다녀왔는데, 그때 마침 가족들이 모두 서울에 올라왔어요. 동생이 학교를 서울에서 다닌다고요. 제가 졸업을 앞둘 때가 운이 좋은가 봐요(웃음). 마침 그때 코치님이 변처운 코치님이 오셨는데, 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운동을 따라가다 보니 키가 컸고, 몸도 가벼워지고 하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농구부 생활을 이어간 김훈은 용산고로 향하려다 낙생고를 거쳤고, 홍대부고 이무진 코치의 부름을 받는다. 더 나은 친구들과 하고 싶어 용산행을 택하려다 훈련량에 혀를 내둘렀고, 낙생고로 향해 조우현 코치로부터 ‘너는 최진수(오리온)처럼 성장해야 한다’는 말을 들고 슛 훈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삼일상고에 송교창이 등장(?)하면서 욕심이 생긴 김훈은 이무진 코치의 콜에 OK를 보내며 홍대부고로 전학을 갔다.
‘농구선수’ 김훈으로부터의 인생은 지금부터. “변청운 선생님을 안 만났더라면 이무진 선생님을 못 만났고, 그럼 연세대도 못 갔을걸요?”라고 웃어 보인 김훈은 이무진 코치를 제2의 아버지라고 소개했다. “그때 홍대부고로 전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제가 프로 무대에 도전하고 있지도 못했을거에요. 취미로 농구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죠. 덕분에 팀에서 우승도 해보고, U18 청소년 대표팀에도 선발될 수 있었어요.” 슛과 스피드를 갖춘 포워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훈은 청소년 대표팀 선발은 물론 중-고등학교 농구부 학생들이 꿈꾸는 연세대의 입학에 성공했다.
# 수상내역
- 2011년 협회장기 남중부 감투상
- 2014년 협회장기 남고부 수비상
- 2014년 연맹회장기 남고부 미기상
# 경력사항
- 2015년 U19 대표팀

연세대를 향한 것에 대해서는 동기인 전현우(전자랜드)의 이야기를 꺼냈다. “현우나 (박)준영이가 워낙 잘하던 선수들이었어요. 저도 고려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입학을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현우는 제게 동기부여가 되는 친구였어요. 무룡고 시절에 울산 폭격기로 불렸잖아요. 저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죠. 그래서 라이벌인 연세대를 생각했었어요. 아마추어 선수들의 로망이기도 하잖아죠.”
목표를 이루는데 성공했지만, 김훈은 끝내 졸업장을 받진 못했다. 연세대에서 만난 라이벌이자 선배인 정성호, 안영준과 함께 출전 시간도 제법 부여받았지만, 그는 2016년 5월 2일, 명지대전을 끝으로 농구부를 떠났다. 급작스럽게 그만둔 농구.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돼 갖가지 루머가 돌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모델 일.
“농구부를 그만두고, 모델 일에 관심이 생겨 학원을 다녔어요. 알려진 것과는 달리 모델을 하려고 농구를 그만둔 건 아니에요. 농구를 그만둔 날은 정말 속상하고, 많이 울었죠. 제 결정에 아버지도 그간 받은 상패도 버리셨으니까요." 농구공을 놓은 그의 삶은 어땠을까. ”가장 크게 느낀 건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어묵도 팔아보고, 시멘트도 날라보고, 식당에서 접시도 닦아보고, 서빙, 발렛파킹 등 안 해 본 일들이 없어요. 그때 느꼈죠. 내가 거만했구나.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방황하던 그를 다시 붙잡은 건 지난 해 신인드래프트. 프로무대에 나서는 강바일(삼성)을 위해 그곳을 찾았다가 다시 그는 ‘마지막 한 번 더’를 결심하게 된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데, 꾸미고 온 제가 그렇게 싼티나 보이고, 쪽팔릴 수가 없더라고요. 무능해 보이기도 했거요.” 고민의 시기는 길었지만, 실행으로 옮기고, 준비하는 과정은 빨랐다.
“다시 목표가 생기면서 준비를 하는데, 3x3 인기가 점점 올라왔죠. (김)태삼이 형이 (곽)희훈이 형이 있던 닥터바스켓을 소개 시켜주고, 그러면서 3x3 농구를 시작했어요. 제겐 기회였죠. 운동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GP&B에서는 (양)승성이 형이 기술적인 것이 부족하다 싶을 때 운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고, 컨디셔닝도 할 수 있도록 DSB 형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특히 (박)래훈이 형이요.”

최근 U23 3x3 국가대표까지도 차출돼 커리어를 쌓아온 김훈. 먼 길을 돌아 결국 프로무대 도전 앞에 선 그는 한층 더 성숙된 모습이었다. “3x3이 몸싸움이 치열하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쫄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당연히 위축은 됐죠. 그런데 210cm가 넘는 선수들 앞에서 슛을 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라고 의지를 보인 김훈. 잠시 쉼표를 찍었던 그는 다시금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았다.
“후배들과 같이 나가잖아요.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돌아가는 상황인데, 이 시간들이 ‘인간’ 김훈으로서도 성숙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큰 길을 돌아온 만큼 누구보다도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이에요”라고 속내를 전한 김훈. “나중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김훈이 인성도 바르고, 소신이 있는 친구네’란 소리를 듣고 싶어요. 남들이 봐도 존중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는게 제 꿈입니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하고, 관리해야할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앞을 내다봤다.
베일에 쌓여있는 김훈의 플레이. 5대5를 궁금해 하는 팬들을 위해 김훈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준비했다. 바로 홍대부고가 2012년 이후 2년만에, 그리고 2014년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2014년 종별선수권 대회. 명지고와 맞붙은 김훈은 18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MVP를 차지했다. 최근 밟은 3x3 무대는 물론 일반인 실기테스트까지. 11월 4일 드래프트 디데이에 시선을 두고 있는 김훈의 플레이를 살펴보자.
# 사진_ 점프볼 DB
# 영상_ 김남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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