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민준구 기자] 17년 전 한국농구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슈퍼 팀’이 탄생했다.
KBL은 NBA와 달리 슈퍼 팀이 탄생하기 어려운 조건을 갖추고 있다. 외국선수 의존도가 높고 그에 따른 제도 역시 해를 거쳐 바뀌기 마련이다. FA 보상 제도 역시 슈퍼 팀 탄생의 걸림돌이 된다. 정말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스타 선수들이 3명 이상 모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17년 전인 2002년 6월 27일, KBL 팬들은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전희철 코치가 이상민, 추승균, 정재근의 전주 KCC로 이적한 것이다.
전희철 코치는 2001-2002시즌 대구 동양의 통합우승을 이끈 에이스 오브 에이스였다. 김승현과 김병철,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 등 황금 멤버가 자리했지만 전희철 코치가 없었다면 통합우승 역시 꿈꾸기는 힘들었다.
동양의 초창기 멤버였던 전희철 코치는 1997년 KBL 출범 이후 대구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 그가 새로운 도전을 이야기했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란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전희철 코치는 “이런저런 말이 있었고 동양과의 갈등도 있었다. 통합우승 이후 정해진 샐러리캡 내에서 선수들의 연봉을 올려줘야 했기 때문에 고액 연봉자였던 나와 구단의 갈등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별을 선택했다”라고 설명했다.
2002-2003시즌 당시 KBL의 샐러리캡은 11억 5천만원. 직전 시즌까지 전희철 코치의 보수는 1억 9천만원으로 팀내 1위이자 KBL 7위였다. 통합우승을 이끌었던 만큼 보수 상승이 불가피했고 동양과 전희철 코치는 고민 끝에 결국 이별을 선택했다.

전희철 코치의 다음 행선지는 KCC였다. 2001-2002시즌 정규리그 3위에 그친 KCC는 이현준+현금 6억원이라는 비싼 값을 지불하고 무너진 왕조 재건을 꿈꿨다.
언론에서는 이상민, 추승균, 전희철을 두고 ‘이·승·철’ 트리오라며 대서특필했다. 또 정재근, 표명일 등 벤치 자원까지 든든해 1998-1999시즌 이후 4년 만에 정상을 탈환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의 영광 이후 팬들의 시선은 KCC로 집중됐다. 호화 라인업을 구축한 신선우 감독의 ‘토탈 바스켓’이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러나 KCC는 첫걸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재계약이 유력했던 재키 존스가 마약류인 해시시 복용으로 영구 퇴출됐다. 외국선수 선발에 차질이 생긴 KCC는 디미트리스 몽고메리, 벤 퍼킨스를 영입하며 급한 불을 꺼야 했다.
부산아시안게임 여파 역시 KCC의 큰 약점으로 자리했다. 여름 내내 대표팀 훈련으로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고 간간이 휴가를 나와 훈련하는 정도였다. 추승균 감독은 “(전)희철이 형이 처음 오고 난 후 같이 훈련할 시간이 적었다. 대표팀에서의 훈련과 KCC에서의 훈련은 분명 다르다. 아무래도 여름 내내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다 보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표명일 코치 역시 “희철이 형이 올 때는 언론에서 이미 우승했다는 내용으로 기사가 많이 나왔다. 근데 불안감도 있었다. 형들 모두 대표팀에 가다 보니 훈련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 좋은 선수들이 많아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운동을 같이 못 하다 보니 힘들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KCC에 불어닥친 불안함은 시즌까지 이어졌다. SBS와의 홈 개막전 승리 이후 내리 9연패 수렁에 빠졌고 이후에도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였다. 계속된 연패 속에 순위는 바닥 쳤고 끝내 20승 34패, 9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원조 슈퍼 팀의 부진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외국선수의 기량 미달 및 잦은 교체, 둘째는 야심 차게 영입한 전희철의 부진이다.
추승균 감독은 “외국선수들의 기량이 굉장히 떨어졌다. 당시만 해도 외국선수들의 존재감이 엄청 컸다. 이전 시즌까지 보더라도 현대, KCC는 외국선수 문제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02-2003시즌은 득보다 실이었던 선수들이 많았다”라고 기억했다.
전희철 코치 역시 “내가 부진했던 것과 더불어 외국선수들의 부진이 컸다. 그러다 보니 부담감도 심했고 다른 팀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꼽았다.
믿었던 전희철 코치의 부진도 KCC의 끝없는 하락의 이유였다. 당시 전희철 코치는 51경기에 출전해 평균 10.0득점 2.9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데뷔 이후 가장 부진한 결과를 낸 것이다.
전희철 코치는 “현역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신선우)감독님의 생각과 내 플레이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았다. 고려대, 동양 시절 때까지 내외곽을 오고 가는 플레이를 즐겼지만 KCC에선 슈터로서 한정된 플레이를 해야 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이었고 갈등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KCC의 토탈 바스켓은 끝내 무너졌고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슈퍼 팀은 2003-2004시즌까지 이어졌지만 전희철 코치가 조성원 감독과 트레이드되며 해체하고 말았다. KCC는 5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전희철 코치는 없었다.
표명일 코치는 “희철이 형이 SK로 떠나기 전날 소주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까지 이적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이 돼 알게 됐다. 선수들 모두 깜짝 놀랐고 아쉬움을 남겼다”라고 전했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뒤 신선우 감독과 전희철 코치는 SK에서 지도자로서 한솥밥을 먹게 된다. 전희철 코치는 “감독님을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감독님 역시 이해해주셨고 그동안 쌓였던 아쉬움을 풀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희철 코치는 “지도자가 된 후 그때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선수라면 감독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감독 역시 선수가 무엇을 잘하는지 파악하고 자신의 전술에 맞춰야 한다는 걸 알 수 있게 됐다”라며 “덕분에 (김)선형이나 (김)민수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게 됐다. 선형이는 볼을 다룰 때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었고 민수는 자유도를 높여주는 게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의 아픔이 지금에 이르러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KBL의 원조 슈퍼 팀은 아쉽게도 쓰디쓴 결과를 낳았다. S급 선수들이 모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성적이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17년이 지난 현재 또 다른 슈퍼 팀이 탄생해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정현, 이대성, 송교창, 라건아, 찰스 로드로 구성된 역대 유례없는 최고의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12일 DB 전에서의 패배만 보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슈퍼 팀은 오히려 무기력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도 했다.
과거의 아픔은 현재의 교훈이 될 수 있다. 과연 KCC는 17년 전 자신들의 과거를 현재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까?
#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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