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구의 DEBUT]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았던 양동근의 데뷔전

민준구 / 기사승인 : 2020-04-04 1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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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시작이 없는 끝은 없다. 그동안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대한민국 농구 역사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들 역시 어느 누구와 같이 설레는 첫걸음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설렜으며 누군가에게는 떨림으로 찾아온 데뷔전. 과연 슈퍼스타들의 생애 첫 프로 경기는 어떻게 치러졌을까.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난 KBL의 ‘GOAT(Greatest Of All Time)’ 양동근이다.

양동근은 사실 아마추어 시절 크게 알려진 선수는 아니었다. 대방초 5학년부터 농구를 시작했으며 삼선중, 용산고 재학 시절만 하더라도 그저 그런 수비형 식스맨으로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1년 후배 이정석이 주전으로 뛸 때 양동근은 벤치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용산고 입학 당시, 양동근의 신장은 168cm. 그러나 양문의 용산고 전 코치의 격려로 인해 간신히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용산고는 지금도 체력 훈련이 혹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체력과 근성, 투지로 설명할 수 있는 용산고에서 양동근은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한양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故김춘수 전 한양대 감독은 그동안 주전을 뛰지 못한 신입생 양동근을 중용했다. 미래 KBL 최고의 선수로 올라설 그의 잠재 가능성을 미리 알았던 것일까. 당시 대학농구에서 약체로 평가된 한양대는 2년의 담금질 후 조금씩 강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양동근이 있었으며 강은식, 조성민 등이 합세하며 전력 역시 더욱 강해졌다.

대단한 체력, 파워풀한 돌파 등 이미 프로 스카우트의 시선을 사로잡은 양동근에게 대학 무대는 좁았다. 4학년이던 2003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에서 한양대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득점상, 어시스트상, 수비상 등 3관왕에 올랐다. 이어진 2003 농구대잔치에선 강은식, 김성현과 함께 최강 연세대를 예선에서 꺾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연세대는 에이스 방성윤을 중심으로 하승진, 이정석, 이광재, 김태술, 양희종, 전정규 등 역대 최강 라인업이 포진하고 있었으니 대단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약체 한양대가 대학농구에서 강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양동근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故김춘수 감독의 용병술과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선수들을 보유하면서 강팀의 반열에 올랐지만 화룡점정은 단연 양동근이었다. 2002-2003 농구대잔치, 2003 농구대잔치에서 어시스트상을 휩쓴 양동근은 다가오는 2004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비 신인으로 대서특필됐다.



당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전주 KCC는 2003-2004시즌 도중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위해 울산 모비스와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R.F. 바셋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모비스에 양도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은 두 팀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2004년 2월 4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2004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의 주인공은 양동근이었다. 전체 1순위로 지명된 그는 KCC 유니폼을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했지만 모비스로 곧장 향했다.

※ 양동근은 한양대 출신으로서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전체 1순위로 남아 있다. 그동안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가 나눠 가진 최고의 신인 자리를 차지한 것. 이후에도 한양대 출신 전체 1순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김시래가 명지대 최초로 같은 위치에 선 적은 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는 조금 달랐다. 조기프로진출을 선언하며 전체 2순위로 지명된 이정석이 양동근보다 우위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김동우 해설위원은 “(양)동근이도 자신이 이정석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동근이만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겨냈지만 말이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든 해야 할 것에 대해 놓치지 않는 선수다”라고 이야기했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신인 및 후보 선수들을 주축으로 치른 시범경기에서 양동근은 펄펄 날았고 발목 부상으로 기회를 잡지 못한 이정석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그동안 슈팅 가드 또는 포워드로 뛰어왔던 그에게 유재학 감독은 포인트가드라는 중책을 맡겼고 그 결과, 대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범경기를 통해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확고히 한 양동근은 2004년 10월 3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KBL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상대는 지난 2003-2004시즌 4강에 오른 서울 삼성. 주희정, 강혁, 이규섭, 서장훈이 버틴 초호화 군단이었다.

신인선수가 데뷔전에서 선발 출전, 그것도 주전 포인트가드로서 오랜 시간 코트에 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동근은 삼성과의 데뷔전에서 33분 42초 동안 13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 국내선수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코트에 서 있었다. 모비스는 70-77로 패했지만 양동근의 성공적인 데뷔전 마무리에 만족해야 했다.

양동근의 스피드, 그리고 화끈한 돌파는 분명 통했다. 특히 4쿼터 중반, 적극적인 수비에 이은 리바운드, 속공으로 69-67까지 앞선 것은 양동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서장훈에게 34득점을 허용하며 패했지만 전체 1순위 신인의 첫 프로 경기는 인상적이었다.



이후 양동근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과시하며 52경기 출전 평균 33분 10초 동안 11.5득점 2.8리바운드 6.1어시스트 1.6스틸을 기록,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모비스는 전 시즌 최하위에서 7위까지 상승하며 양동근 효과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양동근의 첫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투박했지만 스피드와 돌파, 그리고 수비는 신인 선수의 것이 아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신인상을 차지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만족을 몰랐다는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단했던 첫 시즌을 보낸 양동근은 2005-2006시즌 인생 최고의 동반자를 만나며 첫 MVP 및 정규경기 1위를 차지하게 된다.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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