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최창환 기자] “징계를 내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재발하지 않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전현직 프로선수들의 승부조작 및 불법스포츠도박으로 프로농구계가 시끄러운 가운데, 오랜 기간 활약했던 전 프로농구선수 정락영(40)이 남긴 글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정락영은 지난 9일 KBL 홈페이지에 프로선수들의 승부조작 및 불법스포츠도박과 관련, 장문의 글을 남겼다. “프로농구선수 출신으로서 현 상황이 부끄럽기 그지없다”라고 말문을 연 정락영은 “대한농구협회와 KBL이 제대로 된 징계와 팬 여러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락영이 남긴 글 가운데 눈길을 끄는 구절은 “징계와 자격박탈로 모든 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후 구구절절 써내려간 문장이다. “다시는 재발하지 않게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중략)땜질처방이 아닌 스포츠선수가 가져야 할 도덕적 책임과 의무에 대한 방안을 심사숙고해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락영의 말이다.
또한 선수들이 죄 의식 없이 불법도박에 손을 대는 데에는 한국농구의 태생적 한계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락영의 견해다. 그는 “한국은 (학창시절)공부를 전혀 할 수 없는 구조 속에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안에서 수양이 덜 된 어린 선수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는 수많은 잘못된 정보는 독이 되고, 지금과 같은 사태의 불씨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락영은 이어 대한농구협회 및 KBL을 향해 “부디 앞으로는 타 종목의 모범이 되고, 국민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는 프로선수라는 직업이 되도록 결단력 있는 행동과 솔선수범한 마음으로 이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길 기원한다. (중략)내 자식과 수많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프로선수였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라며 글을 끝맺었다.
한편, 한양대 출신 정락영은 1998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5순위로 대구 동양(현 고양 오리온스)에 지명됐다. 이어 부산 KTF(현 케이티), 서울 SK를 거치며 11시즌 동안 정규리그에서 총 477경기를 소화했다. 늘 밝은 웃음과 친절한 팬서비스 덕분에 ‘락사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8-2009시즌을 끝으로 SK에서 은퇴했다.
정락영이 KBL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 전문
제목 : 아픈 마음으로 몇 자 적어봅니다.
프로농구선수 출신으로서 현 상황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농구판이 이렇게까지 망가졌을 줄 몰랐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질책하고 분노하시는 부분이 솔직히 전부 이해되진 않지만, 많은 부분 공감하며 한때 프로농구선수로서 가지고 있던 자부심이 많이 훼손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시는 분노와 질책이 한때는 열렬한 관심과 성원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 대한농구협회와 KBL은 제대로 된 징계와 팬 여러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결정으로 팬들에게는 사과와 후속 조치를, 많은 전현직 농구인들에게는 (선수가)또 다시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격한 심정으로 무조건적인 자격박탈과 징계를 외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허나 저는 징계와 자격박탈만 한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재발하지 않을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보여주기식 또는 현 상황의 회피용이 아닌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말하는 겁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KBL과 대한농구협회가 분열하지 않고 화합해야 하고, 땜질 처방이 아닌 스포츠선수가 가져야 할 도덕적 책임과 의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심사숙고하여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뼈와 살을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어린 선수들이 통제되지 못하는 인터넷 및 SNS를 통한 수많은 잘못된 정보를 여과 없이 보고 듣고 자랍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격적 형성이 덜 된 어린 선수들이 수많은 정보의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농구협회는 초·중·고·대학 선수들의 올바른 교육에 앞장서야겠고, KBL은 프로선수로서의 교양과 도덕적 의무 및 책임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번에 모든 걸 이룰 수는 없습니다. 성급한 마음에 허점투성이의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하나 바꾸고 변화시킨다는 생각으로 대책을 세워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미국과 비교를 많이 하시는데, 한국의 실정상 미국의 시스템을 따라가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는 교내에서의 인성교육 및 교과를 이수하지 못하면 운동 자체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학교 내에서 충분하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 성인으로서 필요한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됩니다. 물론 프로에 진출해서는 더욱 더 엄격하고 체계적인 전문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은 공부는 전혀 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 안에서 인격적인 수양이 덜 된 어린 선수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는 수많은 잘못된 정보는 독이 되고, 지금과 같은 사태의 불씨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는 도덕적 교육 및 인격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선수 스스로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하는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농구가)앞으로는 타 종목의 모범이 되길, 또 많은 국민들에겐 프로선수가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결단력 있는 행동과 솔선수범한 정신으로 이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농구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첫사랑처럼 제 가슴 한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디 이 어려운 난국을 잘 마무리 지어서 내 자식과 수많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프로농구 선수였다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힘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믿겠습니다.
저 또한 부족한 사람이지만,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장문의 글을 남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사진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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