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곽현 기자] 누구나 머리로 생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한 걸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어려운 문제다.
이번 시즌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은 확실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 이 팀은 이미선(36, 174cm)의 팀이었다. 외국선수가 있긴 했지만, 국내선수 중 이미선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한데 이번 시즌은 이미선의 색깔이 짙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예년에 비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평균 30분을 넘게 뛰었던 이미선의 이번 시즌 출전 시간은 18분여에 불과하다.
여자농구 최고참인 그녀지만 기량이나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시즌 어시스트 전체 1위, 스틸 2위에 올랐을 만큼 여전히 리그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시즌 새로이 삼성생명에 부임한 임근배(48) 감독은 시즌 전부터 이미선에 대한 비중을 줄일 것이라 밝힌바 있다. 이미선의 비중을 줄이는 이유는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말이다.
이미선이 앞으로 3~4년을 더 뛸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이미선 은퇴 이후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젊은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려야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사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선수들의 기량을 키워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감독의 입장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농구는 고참 선수와 후배 선수의 기량 차이가 크다. 밑에서 팍팍 치고 올라오는 남자농구와는 다르다. 때문에 실전에 들어서는 고참 선수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임근배 감독의 의도대로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도 결국 급하면 이미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임 감독은 시즌에 들어서 자신의 계획을 그대로 실천 중이다. 이미선의 출전시간을 20분 이하로 확 줄이면서 4쿼터에 들어서도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 않았다.
임 감독은 시즌 전과 마찬가지의 이유를 댔다. “어린 선수들이 중요한 순간에 많이 뛰어봐야 실력이 늘 수 있습니다. 많이 뛰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삼성생명은 개막과 동시에 2연패를 당했다. 이미선의 출전시간은 적었고, 젊은 선수들이 많은 시간을 뛰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임 감독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이 들 만 했다.
하지만 임 감독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받은 느낌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이번 시즌은 성적을 포기하고 리빌딩(Rebuilding)을 하는 단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팀과 조율을 끝내고 새판 짜기에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감독님, 마치 승패를 초월하신 느낌이 듭니다?”
“아유, 그럴 리가요. 저도 이기고 싶죠.” 임 감독은 그럴 리가 있냐며 웃었다. 그러면서 “감독이나 선수나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근데 그런 생각이 있어요. 저도 농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받은 혜택에 보답하기 위해서, 여자농구가 잘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은 생각입니다.”
아마추어 농구팀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여자농구는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되지는 않고 있다. 수많은 유망주들이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 하고 1~2년 만에 은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선 여러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그 요건 중 하나가 바로 감독의 마인드 변화일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성적을 우선시하는 국내 풍토상 당장의 성적을 챙기지 않고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 감독의 결정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임 감독은 부상으로 재활 중인 김한별의 출전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완벽하게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다음에야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적을 생각한다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외국선수 선택도 그랬다. 철저히 국내선수의 역할을 침범하지 않는 선수를 선발했다. 1라운드 선발한 키아 스톡스는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다. 앰버 해리스도 그렇고 둘 모두 빅맨이다.
커리나 스트릭렌처럼 득점원을 선발하지 않은 데에는 국내선수의 비중을 우선시하기 위해서였다. 임 감독은 “외국선수가 주가 되는 농구는 하고 싶지 않다. 어찌 됐든 국내선수들이 주축이 되는 농구를 해야 보는 입장에서도 재미가 있지 않겠나. 국내선수들을 도울 수 있는 선수들을 선발했다”라고 이유를 전했다.
이상향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국내농구이기에 국내선수들이 중심이 되는 농구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임 감독은 그러한 부분을 유지하면서 팀의 미래까지 재건하고 싶다는 각오다.
외국선수들에 의해 경기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팀원의 일부로서 국내선수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그가 몸담았던 모비스의 색깔과 흡사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임 감독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낼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현재 삼성생명의 성적은 4승 5패로 6팀 중 5위에 올라 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패한 팀에겐 이유를 불문하고 냉정한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져도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야 미래를 보며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한편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의 변화를 시도한 삼성생명. 그들의 농구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사진 -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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