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구’ 없는 농구선수 이야기
허일영+30+결혼=?
[점프볼=김선아 기자] 사람은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내가 본 허일영(30)도 그랬다. 신인시절 기억은 수줍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식당에서 본 허일영은 굉장히 말이 많고, 활발한 사람이었다. 인터뷰하며 만난 허일영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모든 말에 고민하고 생각한 뒤 입을 뗐다.
### 난 왼손잡이야
허일영은 왼손잡이다. 스포츠에서 왼손잡이는 귀한 자원이다. 야구선수가 됐다면 더 큰 사고(?)를 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릴 때는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왼손잡이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Q. 선수가 아닌 허일영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 같은가?
체육 선생님이 아니라면 평범한 회사원이었을 것 같다. 아버지가 체육 교사다. 옆에서 보면서 ‘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야구 선수가 꿈이기도 했는데, 농구대잔치와 마지막 승부를 보면서 농구도 좋아하게 됐다. 농구를 하는 곳이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꼭 보러 갔다. 그렇게 장래희망이 농구선수로 바뀌었는데, 현실이 됐다.
Q. 지금도 야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야구에 관심이 많다.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 투수를 해봐서 공도 잘 던질 줄 안다. 대학교 때와 상무 때 친한 후배들이 ‘왜 야구를 안 했느냐’라고 물었을 정도다. 신체 조건도 좋다고 하더라. 어떤 야구 해설위원이 말했는데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라고 하는 왼손잡이가 바로 나다. 내 키에 손도 크다. 야구하면 잘했을 거라는 말을 정말 자주 들었다.
Q. 어렸을 때 왼손을 사용하면, 주변에서 잔소리가 많았을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1학년 때 선생님도 ‘왼손을 사용해도 된다’라고 하셨다. 지금은 글씨 쓸 때와 밥 먹을 때 오른손을 사용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이 드신 선생님이 나를 지도하셨는데 ‘외국사람도 아니고, 글씨는 오른손으로 써라’라고 말씀하셨다. 나 때문에 친구들이 집에 늦게 가야 하기도 했다.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면 느려서 말이다. 선생님이 안 볼 때는 왼손으로 빨리 글을 썼다(웃음). 대학 때는 (건국대)황준삼 감독님께서 ‘밥 먹을 때는 오른손으로 먹어라’라고 했다. 이때는 농구할 때 양손을 사용하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오른손으로 농구는 못한다.
Q. 말을 할 때 굉장히 신중하다. 우연히 식당에서 허일영 선수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테이블이 굉장히 시끄러웠다. 허일영 선수도 말이 많았던 것 같다.
밖에서는 재밌는 말도 많이 한다. 친구들도 말이 많다. 운동할 때는 진지해진다. 처음에는 다들 못 다가온다. 잘 안 웃고 어색해하는 모습 때문이다. 다가오면 받아준다. 그래도 웃음이 헤프지는 않다. 원래는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운동하면서 굉장히 밝아졌다. (Q. 후배들한테 잔소리하며 장난치는 모습도 많이 봤다)할말은 하는 성격이다. 잔소리보다는 필요한 말만 한다. 다 큰 성인들이지 않는가.
Q. 휴식이 생기면 무엇을 하는가?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많지 않다. 잠을 많이 자고, 맛있는 거 먹고, 많이 돌아다닌다. 가볍게 술도 한 잔 한다. 실수하지 않는 선에서 술을 마신다. 프로 선수이기 때문에 몸 관리는 알아서 한다. 술을 마시는 것으로 (선수가 좋다 안 좋다)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기가 판단하는 것이다. 나는 나쁘지 않게 즐긴다.
#### 허일영 품절남 된다!
30살에 접어든 허일영이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2016년 품절남이 되는 것. 이 소식을 점프볼이 가장 먼저 전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고민하며 뱉던 말도 여자친구 이야기가 나오자 속도가 붙는다. 이날 입은 옷도 여자친구가 골라준 것이라고 한다.
Q. ‘30’이라는 나이에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둔다. 정말 달라지는가?
아직은 모르겠다. (Q. 체력적 어려움이라도?)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지금은 몸이 좋다. 그래도 꼽으라면 조금씩 아픈 게 잘 안 낫고 오래가는 경향이 있다.
Q. 그러면 ‘20’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10대 때 20세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이 꼭 있지 않은가.
나는 운동을 했기 때문에 무조건 운동을 잘해서 서울로 진학하는 게 꿈이었다. 운동을 안 했다면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그런 걸 못해봐서 아쉽다. 대학 생활의 로망이 있지 않은가. 잔디밭에 누워서 쉬고, MT, OT에 가고, 미팅도 그렇고. (Q. 체육과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미팅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생각보다 많이 하지 않았다. 몇 번 안한 것 같다. 하긴 했지만 기억이 거의 없다.
Q. 곧 인생에서 다른 전환점에 들어선다.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년 4월에 결혼할 생각이다. 여자친구와는 2013년 7월에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상무에 있을 때였고, 벌써 만난 지 2년이 넘었다. 만나면서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말 하나하나에 신중하게 고민하며 전했지만, 말이 한 템포 빨라졌다) 처음에 사람이 확 좋다 보면 질릴 수 있는데, 만날수록 좋아지는 사람이더라. 또 나를 형식적인 말로 이해해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해준다. 처음 만날 때 내가 누군지도 몰랐다. 지금은 농구를 하나도 모르던 사람이 관심도 가진다. 이런 사람은 다신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며,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첫인상은 그냥 ‘예쁘다’였는데 말이다.
Q. 프러포즈는 했는가?
고민하고 있다. TV에서 너무 화려하게 프러포즈하는 장면만 많이 나오더라. 그런 건 부담스럽다. 그런데 여자친구만 좋아한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언제 할지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크게 해야 감동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데 하하. 알아서 잘하겠다.
### 남자의 자존심
허일영이 10월 2일 덩크슛에 성공했다. 데뷔 후 6시즌 만에 처음이다. 농구 이야기를 안 하기로 했지만, 소재로 곁들이기에는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남자의 자존심으로 말이다.
Q. 농구 이야기를 안하려고 했는데, 내가 궁금하다. 덩크슛은 남자의 자존심이라고 하던데.
신인 때 전자랜드와의 홈 개막전에서 우리가 전반에 20점 정도를 지고 있었다. 전자랜드 슛이 다 들어가더라. 그때 내가 스틸에 성공했는데,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덩크슛을 시도했다. 원핸드, 투핸드 고민하다가. ‘원핸드는 티도 안 난다’고들 하길래 투핸드로 림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공이 림을 튕겨 나갔다. 긴장해서 인지 어깨가 축 처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때부터 충격을 받아서인지 덩크슛 시도 자체가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야지’ 하다가도 생각이 많다 보니 레이업만 하고 마쳤다. 그러다 이번에 기회가 있어서 덩크슛했다. 이슈가 될지는 몰랐다. 사실 덩크슛과 레이업 모두 같은 2점이다.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 덩크슛은 기회가 될 때는 보여주려고 한다. 다들 내가 점프가 없는 줄 아는 데 나쁘지 않다. (여자친구의 반응도 궁금하다) 많이 웃었다더라. 처음 봤으니까.
Q. 허일영 선수가 생각하는 남자의 자존심은 무엇인가.
머리다. 여자는 화장발이라고 하지 않는가. 남자는 머릿발이다. 머리에 관심이 많다.(실제로 허일영은 처음 인터뷰 현장에 와서 앞 유리를 거울삼아 머리를 꾸준히 다듬었다) 원래 머리는 생머리인데, 관리가 힘들어서 항상 파마한다. 4년 동안 같은 분한테 머리를 하고 있다. 갈 때마다 내 스타일을 아니까 알아서 잘해준다. 스타일을 바꾸고 싶다고 해도 알아서 해준다.
Q. 조단 11 로우 조지타운을 신고 있다. 조단 매니아인가?
수집은 아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산다. 5~6개 정도 있다. 충식이 형이라고 대구에 있을 때부터 농구화를 구해주신 분이 있다. (농구할 때)신는 신발이 있는데, 매번 부탁해서 구했었다. 지금도 하나씩 구해주신다.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Q. 조단 신발은 신을 때도 아껴 신는 신발이 아닌가?
나처럼 조단을 막 신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 한 번씩 닦아 주기는 한다. (조단 신발은 커플로 많이 신더라) 여자친구가 운동화를 안 좋아한다. 키가 175cm로 크고 회사원이라 운동화를 신을 일이 없다. 나만 자주 신고 있다. 같이 신으려고 생각하는 신발은 있다.
### 부산 사나이
허일영의 고향은 부산이다. 부산 중에서도 야구로 열기가 뜨거운 사직동에서 성장했다. 야구의 도시에 태어나 자연스레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됐고, 이는 농구선수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농구공을 내려놓은 뒤에도 그럴 것 같다.
Q. ‘부산 남자’는 마치 고유명사 같다. 부산 남자로서 이 단어를 직접 설명해 달라.
20년 동안 부산에서 살았다. 고향이 부산 사직동이다. 부산하면 야구고, 부산 남자는 성격이 좋고 화끈하다. 이거면 말 다한 것 아닌가. (타지역 사람들에게 부산은 로망의 도시다) 바다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은데,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에 안 간다.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타지역에서 오면 잠깐 놀러 왔다가 가는 거니까 무조건 바다는 들르는 코스 같다.
Q. 부산 토박이로서 가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을 소개해 달라.
회나 꼼장어를 먹으려면 자갈치 시장에 가고, 바다를 보려면 해운대나 광안리에 가면 된다. (그런 답은 누구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산 사람만 아는 이야기를 해 달라) 자갈치 시장에 '삼한수산'이라는 곳이 있다. 회와 꼼장어를 판다. 부산에 갈 때마다 가는 집이다. 정말 맛있고 양도 많다. 농구 보러 부산에 왔다면 사직동에 '주문진 막국수'라는 곳이 있다. 거기도 매번 가는 곳이다. 정말 유명한 곳이라서 여름에 가면 30분~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굉장히 맛있다.
Q. 허일영 선수를 본 장소가 곱창으로 유명한 집이었다. 평소에 맛집을 찾아다니는가?
친구 집에 있다가 곱창이 맛있는 집이 있다고 해서 나갔었다. TV에 나오거나 주변 친구들한테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는 데, 맛집만 찾아다니고 그렇지는 않다.
Q. 음식이 맛있는 집이다. 그러면 40분 정도라도 기다릴 수 있는가?
그 정도 가치가 있다면 가야 한다. 한 번쯤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먹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주변에 '일산칼국수'라는 집이 있는데 항상 30분 정도 줄을 서야 한다. 정말 맛있다. (김)도수 형한테도 추천했는데 맛있다고 하더라. 여자친구도 맛있다고 한다.
Q. 앞서 말한 대로 부산은 야구의 도시다.
부산은 정말 야구다. 그게 뭐라고 계속 응원하게 된다. 정말 큰 부분이다. 나는 롯데 어린이 회원 출신이다. 어머니가 사직동 먹자골목에서 가게를 하셨는데, 야구선수가 정말 많이 왔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을 거의 다 봤다.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고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주형광 코치님을 가장 좋아했다. 전준호, 자갈치 김민호, 지금 롯데 코치인 김응극. 그러고 보니 왼손잡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하하.
Q. 어머님이 식당을 하셨으면 손맛이 굉장할 것 같다.
기가 막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가릴 것 없이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다 맛있다. 휴가 때 집에 다녀오면 살이 쪄서 온다. 대학교 때 처음 서울에 온 1,2년 동안은 정말 어머니 음식이 그리웠다. 지금은 그리워할 시간은 지났다.
Q. 자신이 어릴 때 생각한 꿈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꿈을 이뤘기에 다음 다른 꿈도 꿀 수 있을 것 같다. 농구선수가 아닌 허일영이 하고 싶은 일이 궁금하다.
처음에 농구를 시작할 때 반대가 심했다. 농구는 내가 조르고 졸라서 하게 된 일이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 그 생각으로 독을 품고 참으면서 운동했다. 힘들어도 ‘힘들다’ 이야기 안 하고 참았다. 꾹 참고 이겨내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나.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다. 운동과 운동 외적인 부분도 많이 도와주셔 힘이 됐다. 선수 생활이 끝나면 야구를 하려고 생각 중이다.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공을 던졌을 때 120km까지 나왔다. 운동선수다 보니 그렇다. 생각보다 어깨도 좋다.
DATA 생년월일 1985년 8월 5일 신장 195cm 포지션 포워드 출신 학교 경남중-동아고-건국대 소속 고양 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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