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을 대표하는 그 숫자! WKBL 최고의 등번호는?④

진채림 / 기사승인 : 2015-12-23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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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진채림 기자] 유니폼에 이름보다 크게 자리 잡은 숫자. 그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서 있는 선수들에게는 어쩌면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름만큼이나 팬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이 숫자는 그 선수를 대표하는 번호가 되기도 한다. 여자농구에서는 어떤 선수가 이름만큼이나 이 특별한 숫자, ‘등번호’로 기억되는지 알아봤다.


NO.8
선수, 지도자, 해설가 다 된다? ‘유영주’

등번호 8번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은 명실상부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파워포워드인 유영주다. 유영주는 남자 선수들 못지않은 힘으로 인사이드를 장악했고, 골밑 돌파와 함께 먼 거리에서 던지는 3점슛도 일품이었다. 덕분에 1990년대 농구대잔치부터 2000년대 초반 프로에 이르기까지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유영주는 1990년 SK증권 입단과 함께 인성여고 동기인 정은순과 농구대잔치 공동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선수생활의 서막을 열었다. 최우수선수상에도 숱하게 올랐고, 7년 연속 베스트5에 선정되기도 했다. 개인 성적과 함께 팀 성적에도 큰 몫을 했다. 그녀는 SK증권에 3번의 농구대잔치 우승을 안겼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SK증권은 1997-1998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차지한 직후인 1998년 2월, 갑작스럽게 팀을 해체했다. 선수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팀의 해체를 알아야 할 정도였다. 이후 해체된 선수들을 모아서 드래프트를 진행했고, 유영주는 삼성생명으로 건너가 정은순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유영주는 길지 않은 시간에도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국제무대에서도 이름을 떨치기는 마찬가지였다. 1990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유영주는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997 방콕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대회와 1999 시즈오카 대회까지 대회 2연패에도 성공했다. 특히, 1997년 방콕에서의 활약이 눈부셨다. 대회 득점왕에 오른 것은 물론, 정은순과 공동으로 MVP에 선정되며 아시아 최고 선수로서의 영광을 누렸다.


유영주는 은퇴 이후에도 레전드다운 길을 걸었다. 2001년 은퇴한 후,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간 유영주는 KB국민은행에서 코치를 거친 후 WKBL 최초로 선수 출신 감독대행을 맡기도 했다. 이후에는 해설자로 변신해 특유의 입담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2013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DB생명의 코치로서 감독을 도와 팀을 지도했다.


지난 시즌 등번호 8번의 주인공을 보면 김민정(KB), 양인영(신한은행), 노현지(KDB생명) 등 젊은 선수들이 많았다. 퓨처스리그를 통해 가능성을 입증한 이들이 유영주만큼의, 유영주를 뛰어넘을 만큼의 활약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NO.4’
대륙도 호령했던 ‘총알낭자’ 김영옥

등번호 4번을 생각 하면, ‘총알낭자’라 불렸던 가드 김영옥이 떠오른다. 김영옥은 별명처럼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다. 또, 168cm의 작은 신장에도 누구보다 큰 열정으로 한국 여자농구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김영옥은 프로 통산 425경기에 출장해 평균 14.5점 2.7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98년 현대(현 신한은행)의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한 그녀는 팀에서 주득점원 역할을 했다. 이후 2005년, 춘천 우리은행으로 이적해 타미카 캐칭, 김계령 등과 함께 팀에 2번의 우승을 안겼다. 본인도 MVP 2연패라는 영광을 얻었다.


우리은행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FA 최대어’로 꼽혔던 김영옥은 2007 겨울리그를 앞두고 당시 최고 연봉이었던 2억 1000만원에 KB로 둥지를 옮겼다. KB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지만 2010-2011시즌 이후 아쉬움을 남기며 은퇴했다. 마지막 시즌까지도 김영옥은 득점상과 3점슛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기량이 출중했다.


은퇴 후 김천시청을 통해 농구 인생을 이어갔던 김영옥은 당시 중국여자프로농구(WCBA) 베이징 그레이트워(수강장성)의 눈에 띄어 중국에 진출했다. 김영옥은 2011년 중국리그 진출과 동시에 주로 중위권에 머물렀던 팀을 단숨에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다. 한국나이로 30대 후반의 노장이었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던 것이다. 당시 김영옥은 팀 내 득점 2위,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 3점슛 성공률은 리그 1위를 달렸다. 김영옥의 중국리그 활약은 당시 수강장성의 감독의 말을 들어보면 가늠할 수 있다. 감독은 3시즌을 뛴 후 “아이를 갖겠다”며 한국으로 돌아가던 그녀에게 “혹시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한 시즌 더 뛰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현재 여자프로농구에서 등번호 4번을 달고 있는 선수 중에는 최윤아가 그 뒤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최윤아 역시 168cm의 크지 않은 신장임에도 안정된 패스로 팀을 이끌었다. 최윤아는 2004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현대에 입단 후 전주원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가드로서의 노하우를 배워나갔다. 전주원이 은퇴를 한 후 2012-2013시즌에는 생애 최초로 어시스트 1위에 오르며 본인의 기량을 인정받았다.

국제 대회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을 8강으로 이끌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최윤아는 당시 세계랭킹 4위였던 브라질과의 예선전에서 승리의 선봉장에 서며 8년 만에 한국에 올림픽 승리를 안겼다. 이 경기에서 최윤아는 26분 동안 팀 내 최다득점인 19점을 올렸고,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리바운드도 7개나 낚아챘다. 최윤아의 활약 속에 패배의 쓴맛을 봤던 브라질 감독도 그녀를 칭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최윤아는 전성기 대신 부상과 마주치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최근까지도 무릎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그녀이지만 코트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만큼은 변함이 없다.

사진_문복주 기자, 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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