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곽현 기자] “우리은행은 내 운명!” 2015년 WKBL 외국선수 드래프트가 있던 날,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2라운드 지명을 앞두고 왠지 모를 민망함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가 누구를 지명할지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바로 우리은행의 지난 2시즌 우승을 함께 한 사샤 굿렛(25, 191cm)이었다. 그렇게 굿렛과 우리은행의 인연은 1년 더 이어지게 됐다. WKBL이 단일시즌으로 바뀐 후 한 팀에서 3시즌을 연달아 뛴 외국선수는 굿렛이 처음이다. 이쯤 되면 ‘운명’이 아닐까 싶다. 혹독하기로 유명한 우리은행 훈련과 생활방식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외국선수. 이제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WNBA 못지않게 중요해졌다는 굿렛을 만났다.
# 본 기사는 2016년 점프볼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말 오기 싫었던 한국?
“처음 한국에 올 때 많이 긴장 했어요. 처음 뛰었던 외국리그가 중국이었는데, 중국은 재미가 없었죠. 원래 생각했던 아시아가 아니었어요. 한국은 제발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운이 좋게도 한국은 달랐죠. 다른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물어보면 사람들이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고 얘기해줘요.”
굿렛이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팀은 우리은행이 아닌 KB스타즈였다. 2012-2013시즌 리네타 카이저의 교체선수로 한국에 처음 오게 됐다. 당시 굿렛은 엄청난 덩치를 자랑했다. 정확한 체중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지금보다 적어도 10kg 이상은 더 나갔을 것이다.
“처음에 정말 오기 싫었어요. 제 몸이 준비가 안 돼 있었거든요. 중국과 프랑스에서 뛰었는데, 외국리그와는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처음 제의가 왔을 때는 안 간다고 했어요. 또 다시 연락이 왔을 때, 아무도 못 찾으면 그땐 제가 가겠다고 했죠. 근데 저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외국생활을 그만두려고 하던 때인데, 좋은 기회를 얻었던 것 같아요. 다시 농구를 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죠. 중국에서 기억이 왜 안 좋았냐고요? 거긴 인터넷도 안 됐고, 가족을 만나기도 어려웠어요. 음식도 잘 못 먹고요. 하얼빈에 있었는데, 정말 추웠어요.”
이 정도면 우리은행 명예사원
굿렛에게 위성우 감독이 그녀의 이름을 호명할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2라운드에서 지명순서가 2번째였던 위 감독은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 채 굿렛을 선발했다. 현장의 취재기자들도 그 표정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굿렛의 심정은 어땠을까?
“처음에 에이전트가 착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보고 KB에 갈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페이스 북을 보니 팬들로부터 온통 우리은행에 온 걸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와있었죠. 제 커리어는 우리은행에서 마감하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굿렛의 지명 소식에 팬들은 ‘우리은행 명예사원 시켜도 되겠다’는 말도 꺼냈다. 2년간 함께 정상을 밟았고, 또다시 팀과 함께 하게 됐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팬들에게도, 굿렛에게도 우리은행에서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한국은 저에게 의미가 큰 나라에요. 매번 올 때마다 제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죠. 지난 시즌보다 더 레벨업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리그에요. 또 한국 선수들은 다 착하고 좋은 것 같아요. 이번에도 우리은행에 지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말해서…. ‘그 훈련을 어떻게 또 하지?’하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하지만 얼마 안 가 ‘열심히 해서 또 좋은 시즌을 보내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래도 지명을 받았으니까 행복했어요.”
훈련 열외? 꿈도 못꾸죠!
올 시즌 굿렛은 지난 시즌보다 체중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좀 더 날렵해진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2~3kg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지난 시즌이 105kg 정도였고, 지금은 103kg예요. 체중은 큰 차이가 없어요. 단지 체지방이 빠지고 몸이 좀 탄탄해진 것 같아요. 좀 더 근력을 키우려고 노력했거든요.”
특별히 몸을 만든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몸을 만들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운동이 다 안 끝났는데 저만 죽어갈 순 없으니까요(웃음).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몸을 만들었죠. 훈련을 해보니까 몸이 안 돼 있으면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느꼈거든요.”
우리은행은 훈련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굿렛의 말에 의하면 국내선수와 차이는 있겠지만, 외국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외국선수들도 훈련은 다 참여해요. 감독님은 같은 팀이지 않냐고 하세요. 가끔씩 숙소에 같이 안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외국선수들은 숙소 근처의 아파트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다). 만약 숙소에 살았으면 야간훈련도 같이 하지 않았을까요? 감독님이 약간씩 조절해주기도 하세요. 다르다는 걸 인정해주시는 거죠.”
하루 1번 운동에 익숙해있던 WNBA 출신 선수들은 오전, 오후 훈련을 하는 한국의 훈련 방식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외국선수들은 오전 훈련을 빼주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위성우 감독은 일체 그런 게 없다고 한다.
“혹시 국내선수들이 불쌍해 보인 적은 없나?” 필자의 질문에 굿렛은 “솔직히 말하면 국내선수들이 우리를 더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웃음). 우리은행은 굉장한 팀인 것 같아요. 팀을 위해 이렇게 희생하는 선수들은 본 적이 없어요. 어린 선수부터 고참까지 모두 열심히 하죠.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부으려고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덩달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우리은행에서 매년 배워가요!
어떤 이들은 외국선수들이 오히려 한국에서 농구를 배워간다고 말한다. 선뜻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세계 최고 리그인 WNBA 선수들이 한국에서 농구를 배워간다니 말이다. 그런데 굿렛은 이에 격렬(?)하게 동의했다.
“맞아요. 확실히 실력이 늘고, 기술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특히 수비에서 많이 배워가요. 제가 미국인이고, WNBA에서 뛰었다고 해서 농구를 다 아는 건 아니니까요. 어느 팀을 가든 그 팀에서 원하는 부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해요.”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굿렛의 마인드는 굉장히 좋았다. 그녀에게 이제 WKBL은 WNBA만큼이나 크고 중요한 무대가 되어 있었다. 지난 시즌에도 시카고 스카이에서 방출된 뒤 타 팀 오퍼를 거절한 채 몸만들기에 열중했다.
“시즌 중간 빅 트레이드가 있어서 로스터를 원래대로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못 뛴 것도 있었죠. WNBA가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거든요. 다른 팀에서도 콜이 왔는데, 그 곳에서 맞춰가기보다는 한국에 와서 잘 하고 싶었어요.”
하은주와 첼시 리
올 시즌 WKBL의 화두는 ‘센터’다. 하은주(신한은행)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첼시 리(KEB하나은행)도 등장해 굿렛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4년 연속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굿렛이 하은주, 첼시 리와의 매치업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 굿렛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하은주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하은주는 굉장히 좋은 선수에요. 경험이 많은 선수죠. 키도 크지만 영리하게 할 수 있는 선수에요. 하은주와의 매치업은 힘들어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올 시즌이 더 잘 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하은주와 경기를 하면서 저도 좀 더 영리하게 플레이하는 것 같아요. 제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절 뛰어넘을 수도 있으니, 더 힘줘서 하는 것도 있어요.”
혼혈선수 첼시 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시즌 첫 맞대결에서 우리은행은 62-63으로 패한 바 있다. 첼시 리도 15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굿렛 입장에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는 선수다. “첼시도 좋은 선수에요. 스토리가 있는 선수니까 이슈가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첼시 리 한 명 덕분에 KEB하나의 색깔과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아요. 굉장하죠. 제가 처음 봤던 KEB하나은행은 단지 어리고 재능 있는 팀이었는데,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마치 우리은행이 바뀐 것처럼 말이죠. 열심히 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굿렛 팬 화나게 한 위성우 감독의 샤우팅
우리은행이 홈으로 쓰고 있는 춘천 호반체육관에 가면 굿렛을 부르는 위성우 감독의 샤우팅(?)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사-샤!”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위 감독의 이 외침은 굿렛을 부추기는 일종의 독려다. 그런데 위 감독의 그 의도가 제대로 전달 안 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한 팬은 위 감독의 샤우팅에 대해 SNS를 통해 항의하기도 했다.
“한 번은 제 팬이 페이스북에 글을 썼어요. 감독님이 제 이름을 크게 부를 때 진짜 화난다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해명했죠. 감독님은 열정적이신 분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요. 다 제가 잘 되라고 하시는 거니까요. 감독님이 아마 소리를 안 지르면 이상할 것 같아요.”
굿렛은 위 감독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감독님은 코트 위와 코트 밖, 두 사람으로 나뉘어요. 코트 위에서는 ‘여긴 전쟁터’라고 강조하시죠. 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굉장히 나이스하고 스위트(?)하신 분이에요.”
내친 김에 위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이제 한국 선수가 다 됐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답변이 들어왔다. “감독님, 저희를 이렇게 이끌어 가시는 감독님만의 스타일을 존경해요. 저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팀에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BONUS ONE SHOT
퀸·샤데·스트릭렌, 3인 3색 파트너들
굿렛은 우리은행에서 3시즌 간 뛰면서 매번 다른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첫 우승 당시에는 노엘 퀸이 파트너였다. 득점력이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성실하고 궂은일을 도맡아했던 선수였다. 2번째 우승에는 샤데 휴스턴이 함께 했다. 노엘 퀸과는 여러모로 성향이 정반대였던 선수였다. 노엘의 키워드가 ‘묵묵함’이었다면, 휴스턴은 ‘화려함’이었다. 헤어스타일부터 플레이까지, 조용한 우리은행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휴스턴 역시 위 감독 시스템이 훌륭히 녹아들며 우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쉐키나 스트릭렌이 가세했다. 지난 2년간 우리은행과 결승에서 만나 고배를 마셨던 선수였다. 굿렛에게 지금껏 함께 해온 파트너들에 대해 물었다.
“노엘 퀸은 굉장히 조용한 선수에요. 퀸이나 저나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그건 비슷했어요. 반면 샤데는 굉장히 활발한 스타일이에요. 저와는 정반대죠. 늘 행복함을 가지고 다니는 선수에요. 같이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죠. 스트릭렌은 장난꾸러기에요. 제가 ‘구피’라고 불러요. 원래 스트릭렌과는 아는 사이였는데, 그리 친하진 않았어요. 그냥 인사만 하는 정도였죠. 지금은 함께 뛰면서 굉장히 가까워졌어요. 자매 같은 느낌이랄까요? 서로 괴롭히기도 하고 말장난도 하죠(웃음). 동갑이라 더 쉽게 가까워진 것 같아요.”
# 사진=문복주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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