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팀](3) 1998-1999 챔피언 대전 현대

손대범 / 기사승인 : 2016-05-27 0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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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6주년기획 | 역대 최고의 팀 ③
최초의 챔프전 2연패
1998-1999 챔피언 대전 현대



[점프볼=손대범 기자] 1998-1999시즌의 챔피언은 대전 현대다.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7차전 끝에 허재의 기아를 따돌렸던 그들은 1년 전보다 더 성숙하고 강해진 경기력을 보였다. 변수가 꽤 많았던 시즌이었음에도 불구, 마치 예상했다는 듯 문제를 풀어가며 정상에 섰다. 한국농구연맹(KBL) 창립 10주년이었던 2006년, KBL이 진행한 ‘KBL 10년 최고의 챔피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이유였다.


1998년 11월 8일 개막하는 프로농구는 전 시즌 챔피언결정전 러닝메이트였던 기아와 현대가 유력한 2강으로 꼽혔다.


‘갖출 건 다 갖췄다’는 평이었다. 허재가 이적한 나래, KBL개막을 앞두고 열린 농구대잔치 예선서 현대를 꺾었던 대우 등 ‘복병’도 많았지만 단기전에서는 기아-현대를 넘을 팀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새 시즌을 앞둔 두 강팀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다. 기아는 ‘농구대통령’ 허재가 결국 트레이드 됐다. ‘사랑의 3점슈터’ 정인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현대는 제이 웹이 떠나고 외국선수 드래프트(2라운드 11위)서 재키 존스를 새 식구로 받았다. “제이 웹도 못 하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팀 전체 비중이 조니 맥도웰에게 쏠리다보니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더 이상 (현대에서) 뛰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보였죠.” 이상민(현 삼성 감독)의 말이다.


201cm의 존스는 수비와 외곽슛이 좋았고, 농구를 잘 알고 했던 선수였다. 또, 패스가 좋았다. 재키 존스와 뛰어본 이들이 가장 먼저 꼽는 장점은 바로 패스였다. “아웃렛 패스 한 번이면 속공이 끝났어요. 그때 엄청 달렸죠(웃음).” 조성원(현 수원대 감독)의 회고다.




1라운드 버티고, 2~3라운드는 만회?


1998-1999시즌은 개막을 앞두고 큰 변수가 ‘예고’됐던 시즌이기도 했다. 바로 방콕아시안게임 때문에 대표선수 8명이 11월 15일부터 ‘프로농구 휴업’이 예정됐던 것. 현대에서는 이상민과 추승균이 단 2경기만 치르고 선수촌으로 향했다. 그 외 강동희(기아), 현주엽과 서장훈(SK), 정재근(SBS), 문경은(삼성), 이은호(대우) 등이 자리를 비웠다.


이에 신선우 감독(현 WKBL 총재)는 당시 “1라운드는 (공백을) 버티고, 2~3라운드는 까먹은 승수를 만회하고, 4라운드에 치고 올라가 5라운드에 굳히겠다”는 계산을 밝힌 바 있다. 당장 이상민과 추승균이 빠지긴 하지만, 주전급 가드였던 유도훈과 우승주역 조성원이 있고, 두 외국선수가 버티기에 분위기만 잘 유지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봤던 것.


그러나 현대는 이상민과 추승균이 빠진 직후 대우에게 82-83으로 졌다. 5일 뒤에도 현대는 삼성에게 1점차(83-84)로 격침을 당하면서 불안한 행보를 이어갔다. 1라운드부터 2라운드 초까지는 3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들이 예선 첫 경기를 치를 무렵, 현대는 7승 5패로 4위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 현대를 다시 수렁에서 올린 주역은 역시 이상민이었다. 복귀전은 마침 12월 25일. 안양 SBS전에서 화려하게 돌아온 이상민은 이후 현대의 4연승을 주도했다. 1월 2일 삼성전에서는 29분 동안 어시스트 14개를 기록하며 분투했고, 12일 뒤 SK를 맞아서는 40분 풀타임을 소화한 끝에 어시스트 16개를 기록했다. 이는 1998-1999시즌 한 경기 최다 어시스트로 남아있다. 이상민은 바로 다음날 열린 LG전에서는 단 한 골(2점)만을 넣었는데 그 한 골이 결승골이 되면서 현대의 5연승을 주도했다. 그렇게 현대는 2라운드 6연승, 3라운드 5연승을 발판으로 19승 8패라는 좋은 성적으로 3라운드를 마쳤다. 이상민 복귀 후에도 한동안 2~3위를 오르내리던 현대의 3라운드 종료시점 순위는 1위였다.


이상민은 대표팀 복귀 후 현대 전력에 대해 “정말로 질 것 같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


이상민이 돌아오면서 수혜(?)를 입은 쪽은 존스였다. 평균 점수는 떨어졌지만 폭넓게 활동할 수 있었다. 2대2, 속공, 포스트, 또 본인이 좋아하는 3점슛도 던졌다. 많게는 7~9개까지 시도했던 그는 2월 18일 기아와의 4번째 맞대결에서 3점슛만 5개를 넣었다. 이날 그가 기록한 어시스트는 8개였고, 블록슛도 2개나 거들었다. (존스는 블록슛 부문에서 2.2개로 1위에 올랐다. 3점슛 성공 부문에서도 2.24개로 현대 선수 중에서는 가장 많았다.)


‘Black Pearl(맥도웰의 별명)’ 맥도웰도 신나긴 마찬가지. 존스가 빼주는 베이스볼 패스는 물론이고, 본인이 막힐 때는 안심하고 빼줄 수 있으니 옵션이 늘었다. 이상민과 추승균이 빠진 동안에는 집중견제를 당해 승부처 골을 실패한 적이 많았던 맥도웰이었다. 2월 28일 SBS전에서 맥도웰은 4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45득점 17리바운드라는 엄청난 성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날 맥도웰의 활약은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불행히도 같은 날 동양이 나산을 상대로 32연패에서 탈출했기 때문이다.)


현대는 2월 25일 LG를 꺾으면서 사실상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너무 조급한 나머지 맥없이 3패를 추가하기도 했지만, 끝내 기아를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최종 성적은 33승 12패. 신선우 감독은 당시 “우승이 유력해지면서 빨리 확정짓자는 욕심에 오버페이스를 했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농구대통령’과의 재회, 문제없었다


현대의 4강 상대는 4위 나래였다. 기아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은 허재가 에이스였다. 평균 20.9득점 4.6리바운드 5.4어시스트로 변치 않는 기량을 과시했다. 특히 5라운드에서는 현대를 상대로 38득점을 퍼부었고, 친정팀 기아를 상대로도 33점 맹폭을 가하면서 상대를 잔뜩 긴장시켰던 터였다. 나래는 6강에서 5위 LG를 3경기만에 스윕(sweep)시켰다. 그러나 현대를 넘진 못했다. 나래는 1,2차전에서 내리 102점씩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백투백으로 열린 탓에 체력적인 부분에서 현대를 쫓아가지 못한 탓이다. 현대는 3차전도 97-93으로 제압했다. (당시 4강전은 5전 3선승제로, 1차전은 상위팀 홈에서, 2차전은 하위팀 홈에서 열렸다. 3차전부터 최종전까지는 잠실중립경기로 열렸다.)


4강 시리즈 주역은 조성원이었다. 시리즈 3경기에서 3점슛 14개를 꽂았다. 4강 평균 득점은 22득점. 이상민 역시 득점은 최대한 절제한 채 공격 조율에 힘쓰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4강 3경기 평균 어시스트는 8개였다.


이제 팬들의 관심은 챔피언결정전 리턴매치에 쏠렸다.


상대는 버넬 싱글턴의 삼성을 뿌리치고 올라온 기아. 박인규 감독(현 KBL기술위원)은 “선수의 화려함은 예년만 못하지만, 조직력은 더 강해졌다”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KBL을 누구보다 잘 알던 클리프 리드-제이슨 윌리포드 콤비도 이를 갈았다. 두 선수는 리바운드부터 차단해 현대 속공을 봉쇄해야 한다는 가제를 안고 있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강동희와 이상민의 매치업, 김영만(현 동부 감독)과 추승균(현 KCC 감독)의 맞대결 등도 화제였다. 시리즈는 타이트하게 흘러갔다.


1~2차전은 두 팀 포인트가드들이 결정지었다. 1차전에서 이상민이 18득점 12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작성, 팀 승리(88-80)를 주도하자, 2차전에서는 기아가 짜릿한 1점차 역전승(81-80)으로 받아쳤다. 강동희가 승부를 결정지은 경기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아의 화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유택(오른쪽 발목인대), 윌리포드(왼쪽 발목인대) 등이 부상을 입으면서 기동력이 떨어졌던 것. 공격 구심점이 흔들리니 국내 슛쟁이들도 동반 부진할 수밖에. 현대는 3차전을 이긴데 이어 4차전에서도 전반 10점차 열세(44-54)를 뒤집고 승리(99-89)를 챙겼다. 사실상 우승의 팔부능선을 넘는 순간이었다. 기아는 초반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한 채 4쿼터 약 5분 가까이 무득점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현재는 5차전도 75-70으로 이겼다. 조성원은 챔프전 MVP가 됐다. 1년 전, ‘4쿼터의 사나이’로 등극했던 그가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올라선 것이다. 챔프전 평균 득점은 16.4득점(3점슛 46.2%, 경기당 3.6개)였다.


모두 언급되진 못했지만, 1998-1999시즌의 현대는 주전과 벤치의 조화가 이상적이었다고 총평할 수 있다.


주전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맥도웰, 존스에 유도훈과 김재훈, 이지승 등이 적시적소에 투입되어 활약해주었다. 또 내외곽, 리바운드와 속공 등 여러 면에서 농구의 매력을 잘 전달한 팀이기도 했다. 이 시즌의 평균 기록들이 잘 말해준다.


리바운드(39.3개, 1위), 어시스트(18.2개, 1위), 블록슛(4개, 1위), 3점슛 성공(7.3개, 2위), 실점(83.3점, 3위) 등 모든 면에서 상위권이었으니 말이다. 현대는 우승 결정과 동시에 신선우 감독과의 재계약을 결정했다. 이때만 해도 모두가 ‘현대 왕조’가 한동안 KBL을 지배할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기아의 이 패배는 ‘시대의 끝’을 의미하기도 했다. 박인규 감독은 시리즈 후 무섭게 경질됐다. 김유택은 은퇴했고, 리드와 윌리포드도 팀을 떠났다. 그 자리는 존 와센버그와 토시로 저머니가 대신했다.)







투표참여자
손대범, 한필상, 곽현, 김선아, 최연길(이상 점프볼), 김태환, 김동광, 현주엽, 정용검(이상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 및 캐스터), 조성원, 김기웅(이상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및 캐스터), 박상준(SBS 스포츠 캐스터), 조현일, 이재범(이상 월간 루키 기자), 김우석, 손동환(이상 바스켓 코리아 기자), 박상혁(더 바스켓 기자), 노주환, 류동혁(이상 스포츠조선 기자), 최용석, 정지욱(이상 스포츠동아 기자), 이웅희(스포츠서울 기자, KBL 인터넷중계 해설위원), 김동찬(연합뉴스 기자), 박세운(CBS 노컷뉴스 기자), 박지혁(뉴시스 기자), 우충원, 서정환(OSEN 기자), 서민교(MK스포츠 기자), 김진성, 최창환(마이데일리 기자), 주건범(네이버 스포츠), 이선영(다음 미디어), 이동환(팟캐스트 '버저비터' 운영자), 김승현(해설위원)


사진_문복주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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