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맹봉주 기자] “경기할 때 상대가 무서운 게 아니라 우리가 무서워요. 상대보다 우리를 더 신경 쓰다가 실책이 나와 무너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실책을 줄이려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성균관대 4학년 이헌(23, 197cm). 대학무대에서 그보다 더 많은 패배를 경험한 선수가 또 있을까 싶다. 이헌이 1학년으로 첫 출전한 2013 대학리그에서 성균관대의 성적은 16전 16패. 다음해인 2014 대학리그에선 4승을 거두는데 그쳤고 지난 시즌엔 다시금 16패를 거두며 전패를 당했다.
대학 3년 동안 4승 44패. 떨어지는 전력과 접전인 상황에서의 집중력 부재, 선수단에 짙게 깔린 패배의식이 계속되는 연패에 가장 큰 원인이었다. 올해 4학년에 들어서며 성균관대 주장을 맡은 이헌은 “조금만 집중하면 잡을 팀은 잡을 수 있어요”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성남중 시절 팀을 전국대회 2연패로 이끌며 중등부를 지배한 이헌이지만, 이후 배재고, 성균관대로 진학하며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Q. 대학에 들어와서 시즌 전패를 두 번이나 경험했어요.
“네, 지금 생각하면 1학년 때 참 멋모르고 농구를 한 것 같아요. 제가 1학년 때는 (김)만종이 형의 부상이 컸어요. 팀이 만종이형을 중심으로 돌아갔거든요. 3학년 때는 팀의 에이스가 없었어요. (이)한림이 형이 잘했지만 뒤를 받쳐줄만한 멤버가 부족했죠. 전력이 많이 약했어요. 특히 작년엔 쉬운 슛들을 많이 놓치면서 전패를 당했다고 생각해요.”
Q. 이정도면 패배 트라우마가 있을 것 같은데.
“경기에서 계속 지면 정신적인 타격이 클 수밖에 없어요. 올해는 지난해보다 승수는 많지만 지금도 작년 생각이 많이 나요. 작년에도 이런 기분이었어요. 뭔가 하려고 하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거 에요. 충분히 몇 경기는 더 이길 수 있었는데 우리끼리 실책하다 진 경기가 많아요. 한번 실책하면 전부 공을 피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팀원들이 실책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플레이가 소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생각대로 플레이가 안 되니까 우리가 점수를 벌려야 할 타이밍에도 오히려 쫓기는 입장이 되고요.”
Q. 올 시즌 성균관대는 3승 10패를 기록하며 지난 시즌과 비교해서 분명 달라졌지만 시즌 전 MBC배 준결승에 진출하며 큰 기대를 모은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인 것도 사실이에요.
“제 잘못이 커요. 제가 4학년이자 주장으로서 좀 더 듬직한 모습을 보여줘야 저학년 선수들이 저를 믿고 플레이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다보니 자기들이 해결하려 하는 부담감이 심한 것 같아요. 우리 팀 고학년이 다른 팀과 비교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잖아요. 저학년들이 이를 메우려다보니 실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Q. 그래도 고교 최고의 빅맨으로 평가받은 이윤수(20, 205cm)가 신입생으로 들어오며 전력이 한층 강해졌다는 평가에요. 이윤수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어땠어요?
“에이 설마 (이)윤수가 들어올까 생각했죠. 윤수는 진짜 성실해요. 특히 하나라도 더 배워보려고 하는 열정은 정말 칭찬해주고 싶어요. 키도 크고 힘도 있어서 잘만 다듬으면 4학년 때 쯤엔 충분히 로터리 픽 후보로 뽑힐 것 같아요. 또 다른 신입생인 (이)재우도 빼놓을 수 없죠. 재우는 한마디로 똑똑해요. 아직 1학년이다 보니 무리할 때가 있긴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해요. 지금까지 재우처럼 똑똑하게 농구한다고 생각한 선수는 연세대의 (천)기범이 정도를 제외하곤 없었어요.”
Q. 배재고 시절까지만 해도 팀 공격을 도맡아하는 적극적인 선수였는데 대학 와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어요.
“제가 나온 사진을 보면 공을 뒤로 뺀 모습이 자주 잡히더라고요.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저 자세에서 도대체 어떤 공격이 나올까’하고 한숨을 쉬죠.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경기 중에 슛하는 게 좋을까, 돌파하는 게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보니 공격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더라고요. 처음부터 공격적인 자세로 임해야하는데 실책할까봐 저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Q. 성균관대 김상준 감독님께 이헌 선수에 대해 묻자 한 마디로 답하시더라고요. “너무 여리다”라고요.
“저도 그런 말 많이 듣는데 바꾸려 해도 잘 안되더라고요. 코트 위에 나서면 제가 가지고 있는 반도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해요. 그래도 요즘엔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감독님이 물 흐르듯 플레이를 하라고 주문하셨거든요. 잘하려 하지 말고 상황에 맞게 움직이면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를 살리기만 하면 된다고요.”
Q. 중, 고등학교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중학교 때는 센터였어요. 센터는 포스트 업을 기반으로 플레이를 하는데 지금은 스몰포워드를 보면서 페이스 업을 하잖아요. 페이스 업을 한 상태에서 공을 뺏긴 적이 많아서 불안감이 있어요. 등지고 하는 플레이는 자신감이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요즘 드리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요.”
Q. 잠시 성남중 얘기를 하자면, 그 당시 성남중은 신생 팀이었음에도 빠른 시간 내에 강팀으로 자리 잡았어요.
“원래 성남중은 농구부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약체 팀이었어요. 하지만 우리 동기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될 때쯤에 맞춰 팀 정비를 정말 잘했어요. 고교 팀이랑 동계훈련도 가고 연습도 많이 하면서 서서히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냈죠. 아무것도 모르고 농구만 하던 시절이었어요. 지금도 그때 친구들과는 자주 만나요.”
Q. 춘계대회와 종별선수권에 우승하며 전국대회 2연패에도 올랐잖아요.
“이기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어요. 진적이 거의 없으니 농구하는 게 재밌었죠. 경기에 나가기 전 ‘오늘은 몇 점 차로 이길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런 기억으로 고등학교에 갔다가 큰 코 다쳤죠.”
Q. 큰 코 다쳤다는 게 무슨 소리에요?
“고등학교 때 많이 졌어요. 중학교 때는 이기는 게 당연해서 계속되는 패배를 인정하지 못했어요. 패배의식이라는 게 무시 못 하는 거더라고요. 경기를 잘하는 날도 지니까 힘들었죠. 그 때부터 잘 안 풀린 것 같아요(웃음). 대학에 오자마자 전패하고 3학년 때도 전패하고요.”
Q. 그래도 매년 개인기록은 꾸준히 오르고 있어요. 올 시즌 평균기록이 14득점 6리바운드로 모두 팀 내 2위에요.
“개인 기록은 좋지만 자존감은 떨어진 상태에요. 우리 팀이 고학년이 잘해서 성적이 잘 나온 게 아니라 (이)윤수 같은 신입생 영향이 크잖아요. 자연스레 스포트라이트도 신입생들에게 가있고요. 4학년이고 팀의 고참으로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죠.”
Q. 이제 신인 드래프트가 3개월 남짓 남았잖아요. 부담감도 클 것 같아요.
“네. 정말 프로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보여준 게 별로 없으니까 답답한 마음이죠. 저 스스로를 냉정히 봤을 때 몇 순위에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프로에 지명되느냐 마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이번 4학년 선수들을 다 새보니 34명이더라고요. 한 팀에서 두 명 내지 세 명을 뽑는다고 하면 스물 몇 명만 프로에 간다는 계산이 나오잖아요. 특히나 이번 드래프트에는 잘하는 선수가 워낙 많아서 제가 그 안에 들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요.”
Q. 프로팀들에게 어필할만한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꾸준히 열심히 하는 거 하나는 정말 자신 있어요. 지금까지 농구를 할 수 있는 원동력도 여기에 있거든요. 처음 농구 할 때만 해도 줄넘기 하나 못 넘고 운동장 한 바퀴를 못 뛰었어요.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편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팀에서 줄넘기를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요. 주위에서도 ‘정말 열심히 한다’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시죠.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제 실력이 터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웃음).”
Q. 4학년이고 팀의 주장으로서 팀에게 바라는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팀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요. 강팀만이 갖는 분위기라는 게 있어요. 강팀들은 연습할 때도 서로 뭔가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죠. 또 팀 훈련이 끝나도 서로 몰래몰래 개인 연습을 통해 실력을 키워요. 경기 중에 실책이 나와도 서로 박수쳐주고 다음 공격 때는 더욱 자신 있게 하죠. 우리도 이런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고 싶어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큰 결실을 맺을 날이 오지 않을까요?”
Q. 마지막으로 [미생인터뷰]를 통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학 와서 처음 드래프트 현장을 갔을 때 꼭 1라운드에 뽑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저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님께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4학년이 되고 현실과 맞닥뜨리니 1라운드에 뽑히기엔 조금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웃음), 이렇게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라도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그동안 가능성만 보여줬지 진짜 실력은 아직 못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남은 경기 동안 열심히 해서 프로에도 통할 수 있다는 걸 꼭 증명하고 싶어요.”
사진_신승규 기자,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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