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라운드 신인왕 #주연보다 빛난 조연 #1년간 주부선언 #인천 전자랜드
[점프볼=강현지 기자] 화려함보다 궂은일로 KBL 무대를 누볐던 이현호(36, 前 인천 전자랜드)가 코트를 떠난 지 어느덧 7개월이 지났다. 은퇴식 당시 ‘주부가 되겠다’고 선언했던 이현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최근 만난 그는 “게으른 주부이자 하늘고의 코치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 2라운드 신인왕
개구쟁이 이현호가 농구공을 잡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중학생이던 형의 담임선생님 눈에 띄어 농구선수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힘든 훈련 때문에 거절했다. 하지만 이현호의 부모님은 학생 신분으로는 쉽게 살 수 없었던 장난감으로 이현호를 유혹했다. 결국 흥정(?)에 넘어간 이현호는 농구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후 삼성중-경복고-고려대를 거친 그는 2003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8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했다.
“드래프트 당시 거만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경기에서 잘 뛰지도 않고, ‘그래도 저 선수보다는 앞 순위로 뽑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었는데, 제 순번이 많이 밀렸어요.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죠. 솔직한 마음으로는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어요.”
간신히 턱걸이로 입단했다는 사실에 1주일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농구를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수십 번. 삼성 코칭스태프의 설득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이현호의 마음을 돌린 건 부모님의 한마디였다.
“부모님이 ‘조금만 시간을 달라’로 말씀하셨어요. 그때 집안 사정이 힘들다는 것을 처음 알았죠. 일 년만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죠.”
강도 높은 훈련 덕분에 기량이 발전하긴 했지만, 이현호는 같은 포지션에 버티고 있던 서장훈의 그늘에서 가려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적은 출전시간이었지만, 이현호는 코트에 나서면 외국선수와의 몸싸움을 마다치 않았고, 궂은일을 도맡으며 입지를 넓혀갔다.
무명에 가까웠던 그가 이름을 알린 건 5라운드 초반. 서장훈이 허리부상으로 결장하면서부터였다. 서장훈이 자리를 비운 8경기에서 이현호는 평균 8.8득점 2.2리바운드 1.5어시스트를 올리며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당시 활약 덕분에 이현호는 김동우(울산 모비스), 옥범준(부산 KTF) 등을 제치고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평균 3.1득점 1.7리바운드를 기록한 이현호에게 신인상이 주어지자 여론으로부터 ‘역대 최약체 신인왕’의 쓴 평가를 받았다. 당시 눈에 띄는 대어가 없었고, 1라운드 두 선수는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게다가 18표가 무효표 처리가 되었다. 오히려 신인 때 받은 혹평이 이현호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14시즌을 치르며 코트를 떠난 이현호는 ‘최고의 수비수’라는 타이틀을 바꿔 달며 농구인생을 마무리했다.
“운 좋게 신인상을 받아 기쁜 마음 반, 창피한 마음 반이었어요. 이후 운동을 열심히 안 했더라면 KBL을 사랑하는 농구팬들뿐만 아니라 농구인들에게도 ‘괜히 (신인상을)줬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을 거예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어 더 열심히 했죠. 실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라도 해야 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죠.”
#주연보다 빛난 조연
농구 인생을 되돌아보며 이현호는 “벼랑 끝에 서면 기회가 왔다”라고 표현했다. 일 년만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신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삼성은 이규섭이 군 제대로 팀에 복귀하며 이현호의 입지가 좁아졌다. 평균 9분 이상의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던 신인 시즌에 반해 점차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고, 심지어 3년차에는 3분 초반대로 뚝 떨어졌다.
‘프로 생활이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느낄 때쯤 안양 KT&G(現 KGC인삼공사)에서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2006-2007시즌을 앞두고 KT&G는 센터 송태영을 삼성으로 보내고, 이현호를 데려오는 1대1 트레이드를 시행했다.
당시 이현호는 삼성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이)규섭이 형과 장훈이 형이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해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당시 KT&G에는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된 선수가 아무도 없었어요. 동일 포지션에 선수들도 많았고요.”
새롭게 둥지를 틀어 적응하던 중 그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김상식 감독대행의 자리에 유도훈 감독이 정식 부임한 것이다. 그때부터 둘의 인연이 시작됐다.
“유도훈 감독님은 제 농구 스타일을 바꿔놓으신 분이에요. 변화없이 계속 농구를 했더라면 전 서른 살 전에 은퇴했을 거예요. 외국선수와 빅맨만 수비하던 저에게 ‘방성윤을 막아라’라는 특명이 내려졌고, 신기성과 전태풍을 막아봤던 것이 저의 무기가 된 것 같아요.”
이현호는 KT&G 시절의 농구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골밑 전담이었던 그는 자신이 새로운 공격 옵션이 된 것도 즐거웠고, 그로인해 자신보다 작은 매치업 상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희열도 느꼈다고 한다.
KT&G에서 두 시즌을 함께했던 유도훈 감독은 2009년, 인천 전자랜드로 팀을 옮겼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인연이 또다시 이어졌다. 유 감독이 전자랜드 사령탑 부임 직후 이현호의 트레이드를 강력히 요청한 것. 전자랜드는 라샤드벨, 이현호, 김상준을 영입했고, 크리스 다니엘스와 김성철을 KT&G로 보냈다.
“안양에서 농구하는 게 너무 즐거웠거든요. ‘잘 보여야지’라는 생각보다 즐기면서 농구를 했던 것 같아요. 출전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났고요. ‘KT&G에 있으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어요. 그런데 전자랜드에는 장훈이 형이 있었어요. 제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죠.”
당시 유 감독의 선택에 구단도 물음표를 내놓았다. 당시 트레이드 상대였던 김성철은 평균 7.6득점 2.4리바운드로 제 몫을 해주던 베테랑이었다. 트레이드된 해 팀 성적(9위)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현호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특유의 강한 근성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내 입지를 굳혔다. 이듬해 정규리그 2위로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데 일조하며 두 번째 정규리그 수비5걸상을 수상했다. 코트를 누빈 14시즌 동안 이현호는 우수 수비상 3회, 식스맨상 1회를 받는 족적을 남겼고, KBL 최고의 블루워커로 인정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했다.

# 1년간 주부선언
이현호는 2월 21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울산 모비스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계약 기간이 1년 남았지만, 무릎 부상 탓에 더는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다소 급작스럽게 발표했지만, 그는 2015-2016시즌 시작 전부터 선수로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시즌 준비를 하면서 5월 달쯤 오른쪽 무릎을 다쳤어요. 3년 전에 다친 부위였는데, 또 다치면서 4개월을 쉬어야했죠.”
시즌에 맞춰 복귀는 했지만, 무릎 통증이 계속됐다. 결국 그는 17경기밖에 나서지 못했고, 1.5리바운드 0.5어시스트로 시즌을 마쳤다. 팀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전자랜드는 플레잉코치를 맡아왔던 이현호에게 정식 코치를 제의했지만, 이현호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가장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그리고 그는 “1년간 주부로 살겠다”라고 선언했다.
공약을 잘 실천하고 있냐는 질문에 이현호는 “게으른 주부로 살고 있어요. 그동안 집에도 자주 못 갔지만, 지금은 딸과 매일 같이 잠도 자요”라고 답했다. 축하할 소식도 있었다. 은퇴 이후 둘째 이유준 군이 태어난 것. 인터뷰 당일 78일째였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로서 뿌듯한 순간도 경험했다. 유준이가 태어나 집에 오기 전까지 집의 먼지란 먼지는 다 청소한 것. 이현호는 “아들과 첫 만남을 준비하면서 집안 먼지를 싹 다 제거했어요. 아빠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전자랜드와의 인연
은퇴를 했지만, 이현호는 전자랜드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근에는 전자랜드와 꾸준히 교류해 온 하늘고등학교를 찾아 농구클럽 코치를 맡았다. 7월 20일 인천교육감기 농구(남고)대회를 앞두고 3주간 학생들의 농구지도를 맡은 것이다. 현재 이현호와 학생들은 인하부고-검단고-제물포고를 물리치고 조1위를 따내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사무국에 놀러 갔다가 권유를 받았어요. 선뜻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 쉽지만은 않았어요. 오히려 엘리트 체육 학생들이면 제가 배웠던 것을 가르쳐줄 텐데….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잘해야 한다’라고 강요할 수가 없더라고요.”
기본기는 부족했지만, 농구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 아침 일찍 등교해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훈련을 소화했고, 점심 시간에도 짬을 내 체육관에 모였다. 학생들의 열정을 알아챈 이현호도 욕심을 부렸다. 대회를 앞두고 방학을 맞이하자 연습시간을 늘린 것. 이현호는 “팀으로 승부를 봐서 좋은 결과를 거뒀으면 좋겠다. 파이팅!”이라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한편 수상 스포츠에 푹 빠져있다는 이현호는 전자랜드 팬들에게 받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팬들과의 만남을 추진하는 계획도 짜고 있다. “한강에 파라솔을 쳐놓고, 수상스키, 땅콩 보트도 즐기고 짜장면을 시켜먹는 자리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대신 전자랜드 시즌권을 꼭 구매하셔야 하겠죠?”라고 재차 강조했다. 농구계를 떠났어도 전자랜드와 농구사랑은 여전했던 이현호였다.
포워드, 1980년 4월 21일생, 192cm, 95kg, 경복고-고려대, 2003년 데뷔(삼성), 2016년 은퇴(전자랜드)
#사진_신승규, 한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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