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이재범 농구전문기자] 점프볼이 태어난 다음해인 2001-2002시즌부터 올스타전 베스트 5는 팬 투표로 결정되었다. 삼성 이상민 감독은 2002년부터 9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최고 인기스타였다. 이를 증명하듯 200호의 점프볼 세월 속에 가장 많은 표지모델로서 섰다. ‘영원한 오빠’에서 이제는 은퇴 후 코치를 거쳐 ‘이 감독’이 익숙할 정도로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단의 감독을 3년째 맡고 있다. 이 감독이 코트를 누비던 시절에는 언제나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던 맞수, 라이벌이 있었다. 그들의 대결이 농구 인기의 비결이었다. 점프볼이 태동하기 이전 이 감독이 경험한 라이벌간의 경기, 그리고 200호 이후 이 감독의 발자취를 예상해볼 수 있는 감독으로서의 지론을 들여다보았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이상민 감독이 경험한 라이벌 경기
수원대 조성원 감독은 삼성 이상민 감독의 홍대부고 1년 직속 선배다. 조 감독은 “키는 작았는데 잘 했다. 고교 시절 누구보다 더 열심히 끝까지 버텼다.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며 이 감독의 고교 시절을 떠올렸다. 성북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찮게 농구를 시작한 이 감독은 성실성에 고교 시절 쑥쑥 자라난 신장까지 더해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 3때 홍대부고를 최강의 자리에 올려놨다. 이 감독은 지금은 없어진 대회인 동국대총장기쟁탈 고교농구대회 결승에서 송도고를 상대로 32점 12어시스트 6스틸을 기록하며 우승을 안겼다.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상을 덤으로 챙겼다. 쌍용기 전국남녀고교농구대회에서도 우승을 맛봤다. 최고의 활약으로 고교 생활을 마친 이 감독은 잘 알려진 대로 학교에서 추천했던 고려대가 아닌 자신이 원하던 연세대에 입학했다. 연세대(-고려대)를 시작으로 현대(-삼성), 삼성(-KCC) 등 한국농구를 이끈 라이벌의 팀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은퇴한 A선수는 “정기전을 뛰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정기전은 다른 이들도 꼭 뛰어보고 싶은 라이벌 대결이다. 이 감독은 연세대 입학 후 3학년까지 정기전에서 모두 이겼다. 입학하기 전 3연승까지 더해 6연승을 달렸다. 4학년 때 국가대표 차출로 출전하지 못했다. 그 때 연세대는 정기전 7연승에 실패했다. 6연패를 끊을 때 고려대 신입생이었던 인천 신한은행 신기성 감독은 “코트에 처음 들어섰을 때 수많은 사람과 분위기에 긴장은 아니지만 약간 들뜨는 그런 기분을 처음 느껴봤다”고 정기전 코트를 처음 밟을 때를 떠올렸다.
고려대를 중퇴한 주희정은 원주 나래(현 동부)에서 1998-1999시즌에 삼성으로 이적했다. 농구대잔치 시절 맞수였던 삼성과 현대는 프로 농구 출범 이후에도 그 라이벌 의식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주희정은 “현대와의 경기에선 인센티브가 걸려있었고, 자존심 대결이었다. 경기 당일 몸 풀 때 다른 경기보다 더 소리를 지르며 정기전을 치를 때 기분으로 경기에 임했다”며 “삼성에 와서 현대와 경기할 때 (정기전을 좀 더 경험하지 못한) 그 기분을 느끼며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꼭 이기려고 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청주 KB스타즈 안덕수 감독은 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해 현대와의 라이벌 대결을 경험했다. 일본에서 오랜 기간 코치로 생활한 안 감독은 일본 농구의 라이벌에 대해서 들려줬다. “동경과 오사카는 일본의 제1,2 도시다. 오사카 사람들은 동경 사람을 보면 건방지고, ‘촌놈’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저런 애들에게 지면 되겠나’라고 여긴다. 오사카와 동경에 있는 팀은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우리나라의 연세대, 고려대와 비슷한 게이오, 와세대 대학은 응원문화가 대단하다. 여자농구는 샹송화장품이나 JX가 항상 결승에 올라가기에 라이벌 의식이 어마어마하다. 그 두 팀이 붙으면 각 지역에서 경기 개최를 서로 하려고 한다. 남자농구도 도요타와 아이싱이 오랫동안 라이벌로서 맞붙고 있다.”
농구 실력을 떠나 고교무대부터 남녀 농구까지 확실한 라이벌이 있는 건 부럽다. 언론에서 KBL 라이벌을 만들려고 해도 “우리가 무슨 라이벌이냐?”라는 인식 때문에 힘들다. 안 감독은 “샹송화장품에서 9년 동안 코치를 했는데, 도요타나 덴소와 달리 JX와 경기를 하면 회사 분위기부터 다르다”며 “선수들도 언론과의 이야기할 때도 ‘오늘만큼은 최고의 기량으로 임해야 하는 특별한 경기다’, ‘이런 멋진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해서 회사의 이름을 드높여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우리나라와 다른 일본 여자농구의 뿌리깊은 라이벌 의식을 설명했다.
진정한 라이벌이 되기 위해서는 모기업부터 시작해 두 팀의 전력, 그리고 오랜 역사와 전통까지 견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KBL은 어느 한 팀에서만 더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두 손이 마주치지 않으니 소리가 나지 않는다. 주희정은 예전 삼성과 현대가 라이벌 의식을 가졌을 때 “관중들도 더 재미있게 봐주신 거 같다”고 했다. 신 감독은 “TG삼보(현 동부)에 있을 때 KCC, KTF(현 케이티)에 있을 땐 SK를 라이벌로 여겼다”며 “라이벌이 생겨야 하는데 좀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안 감독은 “라이벌이 팀 내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서로 강해야 한다. 사실 스페인 프로축구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 두 팀을 위한 리그처럼 보이듯 일본농구도 그렇다. 서로 좋은 선수를 뽑으려는 경쟁이 있어야 하고, 프랜차이즈 좋은 선수를 다른 팀에 안 내보내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KBL은 어쩌면 라이벌을 만들기 힘든 리그일지도 모른다.
Q. 감독님께서는 고교 시절 키가 크면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하셨는데요. 어릴 때 닮고 싶거나 목표로 삼았던 선수가 있었나요?
홍대부고가 가끔 두각을 나타내던 해가 있었지만, 다른 명문고와 달랐거든요. 고교 1학년 때 172cm밖에 안 되었는데 고 3때 182cm까지 자랐죠. 고1 때 172cm면 여자선수 정도인 작은 편인데 당시 코치님이신 김진수 선생님께서 절 귀엽게 봐주셨나 봐요. 작은 애가 쉬지도 않고 악바리같이 운동을 해서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요. 그 때부터 경기를 뛰면서 두각을 나타낸 거 같아요. 경기를 뛰고 안 뛰고 차이가 나잖아요. 늘 이야기하지만, 중학교 때 (유)재학이 형 농구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죠. 키도 작은데 농구를 정말 잘 했기에 키가 작은 저도 저렇게 잘 하고 싶어서 ‘연세대에 가고 싶다’는 꿈을 갖게 해준 분이죠. 중학교 1학년 때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정기전을 딱 1번 보고 그 뒤로 (유재학 감독의) 경기를 본 적은 없어요. 그만큼 그 경기가 굉장히 기억에 강하게 남았죠.
Q. 고려대 유니폼을 입을 뻔 하다가 연세대로 입학하셨어요? 지금보다 당시 양교의 맞대결은 더 뜨거웠을 거 같은데, 어땠나요?
고려대와의 경기는 늘 치열하죠. 다른 팀과의 경기와 다른 거 같아요. 정기전이나 비정기전이나 고려대를 만나면 늘 치열했던 시기였고, 재학생들도 늘 관심이 많았죠. 고려대 갈 뻔 한 건 비화인데, 그렇다고 경기 때 다르지 않았어요. 5개 운동부가 모두 정기전 하나에 목숨 걸고 하는 데다 연대를 결정한 뒤 고대 간 선수도 있었고,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했어요.
Q. 최근 연세대가 고려대와의 정기전에서 5연패를 당하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데, 감독님께서는 3학년까지 연승을 달리다가 4학년 때 졌더라고요.
그 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갔어요. 지금은 협회에서 배려를 해주지만, 우리 때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참가로 출국하는 당일에 정기전이 열렸어요. 농구가 1차로 선발대로 가요. 그래서 ‘후발대로 가면 되지 않나’라고 물었는데 농구협회에서 안 된다고 했어요. 연대에서는 나와 (서)장훈이, 고대에서는 (전)희철이와 (현)주엽이가 빠졌죠. 고려대는 그 둘 빠져도 워낙 멤버가 좋았어요. 그 때 히로시마 국가대표 소집을 너무 일찍 해서 연세대는 마지막 대학농구대회에서 우승을 못 했으면 농구대잔치 참가를 못 했을 거예요. 당시에는 모든 대학이 참가하는 게 아니라 1년 성적 점수가 높은 4팀 정도 참가했어요. 흥행에 필요한 연세대 농구대잔치 출전이 걸려있어서 협회에서는 비상이었어요. 그 때 결승에서 고려대와 붙었는데 정기전에서 졌었기에 박살을 내버렸죠.(당시 농구대잔치에는 6개 대학이 출전했다. 연세대는 전국대학농구 가을연맹전에서 예선 탈락해 3차 대학연맹전에서 명지대에 3등 이상 앞서야 농구대잔치 출전티켓을 딸 수 있었다. 연세대는 4관왕을 노리던 고려대를 65-40으로 대파하며 우승을 차지, 자력으로 농구대잔치 출전권을 따냈다. 명지대는 5위에 머물렀다.)
Q. 농구대잔치 시절 현대와 삼성은 라이벌이었어요. 감독님께서 상무에서 제대한 뒤 복귀하셨을 때 프로에서도 라이벌이었나요?
대학 졸업하며 제주도에서 열린 코리안리그를 현대 유니폼 입고 잠시 뛰고 4월 13일에 상무에 갔어요. 제대한 뒤에도 확실히 있었죠. 그 때 삼성은 모르겠지만, 현대는 승리 수당을 걸었어요. 아마추어 때 라이벌 형성이 된 게 프로까지 계속 영향을 줬죠. 프로 첫 해(97시즌)에 꼴찌와 꼴찌 바로 위 순위를 다툰 관계가 있었고. 상무에 있을 때였는데 ‘죽어도 삼성이 꼴찌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주영 회장님께서 계속 관심을 가지셔서 그 때까지 라이벌 관계였는데, KCC로 바뀌면서 없어졌어요. 정확하게 언제까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성을 만나면 더 이기려고 했어요. 수당 같은 게 걸리면 확실하게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죠. 그런데 요즘은 모르겠어요. 우리도 지난 시즌 모비스와의 첫 경기에 (인센티브를) 걸었어요. 그런데 18점 이기다가 져버린 거예요.
Q. 현대와 기아의 경기도 재미있었는데, 라이벌이었기에 그랬던 건가요?
기아는 왕국이었고, 현대는 떠오르는 샛별 같은 존재였는데, (강)동희 형과 저의 라이벌 관계도 형성했고, 우리가 또 쭉 올라갔기에 관심을 많이 받았죠. 당시 부산 사직도, 중립경기를 하던 잠실실내체육관도 관중들로 가득 찼죠. 기아와 붙으면 경기가 재미있었는데, 그 뒤 서장훈, 현주엽을 함께 보유한 SK도 이슈로 올라왔고요. 사실 기자분들이 라이벌 구도로 만들어요. ‘내일의 빅 매치, 신구 가드의 대결’ 이런 식으로. 동희 형의 기량이 줄어들자 (김)승현이와 저를 또 만들었죠. 그렇게 하면서 팬들에게 흥미가 생기는데, 선수들은 형들을 상대론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하는 거고, 승현이도 그런 기분으로 나를 상대했을 거예요.
Q. 삼성, 현대, 기아에서 주축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이제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SK 문경은 감독, KCC 추승균 감독, 동부 김영만 감독 모두 감독 데뷔 첫 해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것과 달리 이 감독님과 한 발 뒤에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구단이나 선수들의 마인드가 예전과 달라졌어요. 옛날과는 다르게 변화를 주려고 하는데, 제 나름대로 끌고 가는 거예요. 구단에서도 변화에 대해서 공감과 믿음을 주시고, 그런 말씀도 먼저 해주시니까 저도 변화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거죠. 미국이나 타 리그를 참고해서 제가 생각하는 것과 접목해서 잘 되면 좋은 거고, 내가 한 시스템이 안 되면 오히려 팀이 안 좋아질 수 있고, 그렇게 하다 보면 좋은 성적이 나는 거죠. 내 동기나 후배들이 우승을 했다고 해서 어떻게 운동을 하는지 참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나도 이기기도, 많이 져보기도 했지만 우승이라는 게 실력과 운도 많이 따라야 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우승할 수 있는 거예요.
Q. 농구가 인기를 끌려면 스타 선수도 나와야 하지만, 라이벌이 생겨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배구와 농구의 차이 중 하나는 확실한 라이벌의 유무이기도 하고요. 감독님께서 한 번 라이벌 좀 만들어주세요.
기자분들이 서울 라이벌, 전자 라이벌 다 만드시잖아요. 지난 시즌에는 모비스에게 워낙 많이 져서 미디어데이에서 모비스에게 이기고 싶다고 말을 한 거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선수들에게 부담을 준 거 같아요. 현대 시절에 경기에 나가면 진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5점을 지건, 10점을 지건, 15점을 지건 이 경기에서 언제나 이긴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럴 걸 볼 때 모비스는 (삼성을 상대하면) 마음이 편했을 거예요. 우리는 쫓기는 마음으로 꼭 이겨야 한다는 다급함이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 거고…. 그래도 1차전에서 졌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리곤 마지막 경기에서는 모비스에게 최소 득점까지 안기며 그런 마음을 떨쳤죠. 지난 시즌에 아쉬운 건 아깝게 진 경기가 3~4경기가 되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도 정규리그 우승 경쟁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경기를 하면 감독도 배우고, 선수들도 느낀 게 많을 거예요. 저도, 선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선수들이 큰 경기를 치를수록 긴장감이 줄어드는데, (주)희정이와 (문)태영이 빼고는 큰 경기 경험을 가진 선수가 적어요. 우리 대학 때는 삼성, 현대, 기아라는 하늘같은 형들과 뛰어봤어요. 고3 때 농구대잔치를 밟았는데, 어릴 때 봤던 아저씨들을 상대하는데 ‘할 만하구나’, ‘내가 조금만 노력하고 부족한 부분만 채우면 무섭지 않겠구나’라고 여겼어요. 우리 선수들도 그런 마음을 먹고, 조직력을 다듬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감독의 작전도 중요하지만, 결국 들어가는 선수들이 잘 해야 하니까요.

△ 이상민 감독이 말하는 감독론
남녀 프로농구 감독을 경험한 뒤 현재 상명대를 이끌고 있는 이상윤 감독은 “감독은 CEO와 같다”며 “선수단 구성을 포함해 팀 전체 운영을 하며 어떻게 훈련을 할지 계획을 짜고, 스태프를 활용하고, 선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고민하고, 결정적일 때 결정을 내리는 자리”라고 감독을 정의했다. 역시 남녀 농구팀에서 감독을 역임한 바 있는 MBC Sports+ 김태환 해설위원은 “지도자는 다 똑같다. 사람 다루기를 잘 해야 한다. 소통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선수들의 심리를 잘 파악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감독의 성공 조건으로 선수들과의 관계로 꼽았다. 김 해설위원은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을 잘 다뤄야 능률적으로 일 처리를 할 수 있다. 감독도 기술이나 전술을 가르쳐야 하지만 선수들의 학습효과를 배로 늘리려면 선수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그런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여서 설명했다.
남자농구에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있다면 여자농구에는 아산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이 있다. 위 감독은 신한은행에서 7년 동안 코치를 역임한 뒤 2012년부터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다. 우리은행 부임과 함께 통합 4연패를 이뤘다. 위 감독은 “신한은행에서 우승을 했기에 처음엔 그대로 했는데 우리은행에서 다 실패했다. 그래서 초반에 힘들었다. 2~3개월을 그냥 날렸다”며 “멤버 구성이 다르니까 우리 팀만의 특별한 걸 뭔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부딪히면서 다시 시작했다”고 처음 부임했을 때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이어 “가장 큰 게 훈련 방식이었다. 신한은행에서는 간단하게 설명하면 되는 거였는데 여기서는 아무리 해도 안 되었고”고 답했다. 국가대표 주전들이 모여 늘 우승만 하던 신한은행과 최하위에서 맴돌던 우리은행의 기량의 차이였다.
위 감독은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은행의 패배의식을 없애고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강한 체력 훈련을 시켰다. 여기에 세세한 부분까지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우리은행 골밑을 지키는 양지희는 “감독님을 만나고 나서 몸싸움부터 하나하나, 박스아웃을 못 하면 혼을 내는 게 아니라, 스텝과 몸 부딪히는 것을 세세하게 다 가르쳐주셔서 농구가 정말 많이 늘었다”고 고마워했다. 위 감독도 “운동 시간이 길 수 밖에 없는 게 설명을 하나하나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서울 SK가 변형된 3-2 지역방어로 정규리그에서 우승하자 대학농구에 이 수비가 유행했다. 어느 팀이 성적을 내면 그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KBL에서도 다른 팀과 확연히 구분되는 팀 색깔을 찾기는 쉽지 않다. 비슷비슷하다. 더구나 시즌 끝나면 최대한 빨리 소집해서 오랜 시간 강한 훈련으로 몰아붙이며 시즌 개막을 기다린다. 삼성은 조금 다르다. 훈련량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삼성 내에서는 코트 안에서의 훈련 강도가 다른 팀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이상민 감독은 조금은 다르게 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 삼성으로 복귀해 이 감독과 한 시즌 호흡을 맞춘 주희정은 “이상민 감독님은 5명이 움직이면서 가드가 경기를 풀어줄 수 있는 농구, 재미있게 하는 농구를 추구하신다”며 “여러 감독님들은 자신이 선수 시절 잘 했던 걸 선호하시는데, 이상민 감독님은 자신이 하지 않았던 거라도 선수들에게 원하시는 거 같다”고 다른 감독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설명했다.
Q. 2년 전 감독으로 취임하실 때 “빠르고 재미있는 농구, 수비보다 적극적인 공격 농구를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원하시던 방향으로 삼성이 나아가고 있나요?
그렇게 가면 좋죠.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있고, (주)희정이와 또 (김)태술이가 왔어요. 연습할 때도 선수들에게 자신있게 하라고 해요. 스킬 트레이너 코치와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선수들이 이렇게 안 되는 거 같다”고 이야기를 나눈 뒤 그에 맞춰서 훈련을 하고 있어요. 선수들이 굉장히 주저해요. 감독이 바뀌면 그 때는 저렇게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하니까 적응 문제도 있는 거 같아요. 올해는 또 달라질 거예요. 수비 농구도 중요하지만, 제가 공격 스타일이기에 빠른 농구를 하고 싶어요.
Q. ‘어떡하면 좋은 리더가 될까?’에 대한 고민도 하셨어요. 2년 동안 좋은 리더이셨나요?
아무리 좋고, 잘 해줘도 좋은 감독이라는 말을 듣기 힘들 거 같아요. 못 해주면 못 해주는 대로 불만이고, 지도자는 좋은 소리를 못 들어요. 계속 불만이 나와요. 그런 것보다 제가 있는 동안 선수들이 성장하고, 많이 배우면 좋을 뿐, 존경을 바라지도, 그렇게 만들지도 않을 거예요. (김)준일이, (임)동섭이, (이)동엽이가 삼성을 앞으로 이끌어나가야 하기에 이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태영이, 희정이, 태술이와 후배들을 잘 조합한다면 구단도, 저도 기대를 하는 대로 잘 할 거라고 생각을 해요. 하다 보면 되는 거죠.
Q. 삼성 안준호 감독 시절 작전 시간에 감독님께서 작전지시를 하셨던 영상이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데요.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어요.
가끔 했죠(웃음). 저는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경기 중에) 자꾸 저만 쳐다보는데, 지난 시즌에 (주)희정이에게 “네가 해라, 날 쳐다보지 말라”고 했어요. 저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패턴을 어떻게 매번 지시를 해요. 처음에 왔을 때 매번 뭘 하라고 불러줬어요. 그러다 안 불러 준 적이 있는데, 그럼 코치들이 안 불러주면 안 된다고 해요. 그리고 안 불러주면 똑같은 패턴 하나 밖에 안 해요. 계속 하나만 불러요.
Q. 선수시절 근성과 승부욕으로 유명했어요. 감독 생활 2년 동안 가장 욱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한 두 번 이겠어요? 아쉬운 순간은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 생각이 나잖아요. 작년 제 생일날(11월 11일) 창원에서 0-21이었던 건 황당하죠. 고등학교에서도 나올 수 없는 득점이에요. 그 때 LG는 하위였고, 우리는 상위권이었는데 그 경기를 졌어요. 또 30~40점 질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때 너무 힘들어요. 시소 경기를 즐기는 스타일이고, 그 때 지면 ‘다음에 이렇게 한 번 해볼까?’ 이런 게 있잖아요. 선수들도 ‘그냥 쏠 걸, 왜 치고 들어가서 실책을 했을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20~30점 차이로 지잖아요? 다른 감독들도 다 그렇대요. (유)재학이 형도 “그렇게 지면 뭐가 있어? 가만히 있는 거지! 그럴 때 아무 생각도 안 나. 다 똑같아”라고 하더라고요. 옛날에는 20점 뒤져도 뒤집어요. 제가 선수 시절 제일 많이 뒤집은 건 32점이에요. 정주영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뒤 회장이 되신 정몽구 회장님께서 경기장에 오신 거예요. 근데 SBS(현 KGC인삼공사)에게 전반에 32점을 뒤졌어요. 회장님께서 전반 끝나 뒤 다 데리고 그냥 나가셔서 그걸 다 따라잡았어요. 역전까지 시켰지만, 1점 앞서다 10초인가 남았을 때 (이)상범이 형에게 3점슛 거리 두 발 정도 더 먼 곳에서 성공해서 역전 당했잖아요. 요즘은 15점, 20점 뒤지면 못 쫓아가요.
Q. 대외적으로 삼성의 연습량이 많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팀이 얼마나 시키는지 모르겠지만 선수들이 힘들어해요. 시즌 때는 많이 안 해요. 챔피언결정전까지 가면 약 70경기를 하는 건데, 경기 때 힘을 써야지 연습할 때 힘을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건 최희암 감독님께 배웠어요. 대회 일주일, 10일 전에는 8시간씩 훈련하던 걸 한 시간으로 줄여요. 확 떨어뜨려요. 정기전 전에는 일주일 전부터 30분만 훈련해요. 물론 그 전에는 새벽부터 야간까지 죽죠. 10일 전부터 줄이고, 일주일 전부터는 간단하게 전술 훈련만 하고 끝이에요. 오히려 최 감독님께서 선수들 비위를 맞춰 주세요. 그런 면이 있었어요. “문띵(문경은 감독), 간식 안 먹어? 뭐 사다 줘?” 이렇게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맞출 수 있게 해줬어요. 사실 성적이 안 좋을 때 새벽 운동을 시켜봤지만, 그거 한다고 슛이 들어가나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Q. 비시즌 훈련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시나요?
체력 트레이너에게 맡겨놔요. 대신 “선수들의 체력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 그만 둘 생각을 하라. 뭘 시키든지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죠. 체력 트레이너에겐 체력을 맡겨 두고, 의무 트레이너에겐 “어느 선수가 조금 아프다고 쉰다는 말을 나에게 하지 말라”고 했어요. 운동선수가 조금 안 아픈 선수가 어디 있나요? 조금 아프면 저쪽에 앉아 있어서 (의무 트레이너에게) “뭐냐?”고 물어보면 운동하다가 갑자기 어지럽대. 그래서 “너희(의무 트레이너)가 판단해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으면 강하게 시키라”고 주문하죠. 요즘 선수들은 예전 우리처럼 놀지도 않아요. 준일이는 어떻게 놀지 모른대요. 술도 안 마시고 노는 방법을 몰라. 동섭이, 동엽이, 준일이는 3주 쉬고 들어와서 재활 시작했어요. 특히 준일이는 (이)승현이가 잘 되니까 훈련 30분 전부터 나와서 제일 열심히 해요. 운동 많이 하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선수들에게 재미있게 새로운 걸로 가르쳐주고 싶어요. 운동을 29년 했는데 매일 반복되면 지겹죠. 스킬 트레이닝도 매번 다른 걸 하죠. 3~4년 동안 얼굴 쳐다본 사람이 가르치는 것과 새로운 사람이 와서 가르치는 게 선수들의 집중력이 다르거든요.
Q. 이번 시즌이 딱 우승할 기회이지 않나 싶은데요.
선수 구성은 나쁘진 않아요. (김)태술이가 들어왔는데, 몸 상태가 100%가 아니라서 예전 기량의 80%만 찾았으면 좋겠어요. KCC에서는 너무 하는 게 없었죠. 본인도 많이 고생했고. 멤버가 나쁘지 않은데 가드가 취약점이었으니까 태술이가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거예요. 3점슛이 아니더라도 2점슛이 정확한 선수들이 많기에 올 시즌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선수 시절 점프도 잘 되고 몸이 좋은 날, 오히려 경기에선 잘 안 되더라고요. 마음먹고 하려고 하면 더 안 되는 거 같아요. 이번에는 멤버가 좋으니까 ‘한 번 해볼까’ 이런 욕심보다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야 해요.
Q. 우승을 제외하고 올 시즌에 감독으로서 이루고 싶은 게 있나요?
선수들에게도 목표를 물어보면 동섭이는 부상없이, 준일이는 커리어 하이 득점과 리바운드로 세워놨어요. 저도 목표치를 개인적으로 세워놓고, 우승도 중요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려고 하고 있어요. 매번 생각하면 부족해서 조금씩 배워가는데, 제 스타일대로 하고 싶어요. 감독으로서 부족한 건 많아요. 오래 있었던 감독은 경험이나 여유가 확실히 있어요. 저는 아직도 경기를 (선수로) 뛰는 기분이 들고, 감독으로서의 여유가 조금 없어요. 성격이 급한 편이라서 그런 경험과 여유가 있어야 상황에 맞는 판단을 빨리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좋은 작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_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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