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식서스 팬들은 ‘과정’을 신뢰한다!

이호민 기자 / 기사승인 : 2016-12-02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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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필라델피아/이호민 통신원]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 얼마 전 끝난 대입 수능시험을 예로 든다면, 학교에 진학해서 교과과목을 학습해야 하며 방과 후에도 시간을 투자하며 준비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혹자에게는 가슴 아픈 예일지 모르겠지만 결과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과정’만 있다면 어떨까. 수백시간을 독서실에서 졸음과 싸워가며 자습을 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없는 돈을 투자해서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는데 대학교에 진학할만한 충분한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조금 더 근접한 예시를 들면 재정상황이 어려운 회사를 사모펀드가 인수하고 잔인할 만큼 치열한 구조조정 끝에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데, 연말 보너스만 바라보며 일하던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 월급과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공지하면 어떠한 반응이 나올까. NBA에도 몇 년째 ‘절차’와 ‘과정’만이 있는 팀이 있다. 그 팀이 바로 필라델피아 식서스이다.

필라델피아는 2011-2012시즌에 동부 컨퍼런스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나서 1번 시드 시카고 불스를 4승 2패로 꺾은 바 있다. 데릭 로즈가 부상으로 나서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그들은 1번 시드를 1라운드에서 꺾은 역대 5번째 8번 시드 팀이 되기도 했다. 이후 리빌딩을 선언한 필라델피아는 에이스였던 안드레 이궈달라(Andre Iguodala)를 4자 트레이드를 통해 내보내며 안드류 바이넘(Andrew Bynum)을 영입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부상이 바이넘의 커리어를 앗아가자 대실패로 끝나게 된다. 분위기 쇄신을 꽤하던 식서스는 결국 2013년 5월 11일에 프랜차이즈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인사 결정을 단행하게 된다. 바로 휴스턴으로부터 샘 힝키(Sam Hinkie)를 GM으로 영입한 것이다.

샘 힝키는 혁신적인 인사정책을 도입시키는데, 단기적인 성공을 위한 평균 이상의 베테랑, 혹은 전성기를 맞은 스타를 비싼 값을 주고 영입하는 통상적인 선수영입플랜이 아닌 대대적인 ‘탱킹’을 시도하게 된다. 뉴욕 닉스와 같은 구단이 다닐로 갈리나리(Danilo Gallinari)와 같은 젊은 유망주를 내보내고 아마레 스타더마이어(Amare Stoudemire)와 카멜로 앤써니(Carmelo Anthony)와 같은 대형스타를 영입하던 당시의 흐름에 역행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힝키 체제가 확립되고 진행된 첫번째 대형 트레이드는 기존의 올스타 가드 드류 할러데이(Jrue Holiday)를 널렌스 노엘(Nerlens Noel)과 결국은 다리오 사리치(Dario Saric)가 된 2014년 픽과 맞바꾼 것이었다. 그나마 보유하고 있던 자원들조차도 모두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2014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이전에 그나마 제몫을 하고 있던 스펜서 하스(Spencer Hawes), 에반 터너(Evan Turner), 라보이 알렌(Lavoy Allen)을 모두 방출하거나 트레이드 시킨 것 또한 예로 들 수 있다.

필라델피아는 2013-2014시즌을 19승 63패로 마무리, 안타깝게(?) 꼴찌의 불명예를 밀워키 벅스에게 내주며 2014 드래프트 순위도 밀려서 3순위를 지명하게 된다.

앤드류 위긴스(Andrew Wiggins), 자바리 파커(Jabari Parker)에 이어 지명된 선수는 바로 캔자스 대학 출신의 센터 조엘 엠비드(Joel Embiid)였다. 당장 지명되어도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유력하며 NBA에서 선수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지만, 잠재력만큼은 언젠가 하킴 올라주원(Hakeem Olajuwon)급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선수였다. 사실, 엠비드의 지명은 다가오는 2014-2015시즌을 ‘한 번 더’ 포기한다는 간접적인 선언을 한 셈이다. 이와 같은 무언의 메세지를 실현시키며 또다시 18승 64패의 성적으로 다시 한 번 높은 드래프트 순위를 확보하게 된다.

식서스의 지난 4시즌 성적:
2012-2013 시즌: 34승 48패
2013-2014 시즌: 19승 63패
2014-2015 시즌: 18승 64패
2015-2016 시즌: 10승 72패

지난 3시즌을 형편없이 보낸 식서스는 2015 드래프트에서 또 한 번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이미 널렌스 노엘과 조엘 엠비드라는 젊은 빅맨 유망주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듀크 대학 출신 센터 자릴 오카포(Jahlil Okafor)를 지명한 것이다. 2015-2016시즌에 식서스는 탱킹의 끝을 보여주는데, 10승으로 두자리수 승수를 간신히 챙기며 72패를 기록하는 민망한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힝키가 사퇴한 2016년에 식서스는 드래프트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1순위 지명권을 얻게 되는데,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와 매직 존슨(Magic Johnson)의 재림이라고 불리는 루이지애나 주립 대학교 출신의 새내기 벤 시먼스(Ben Simmons)를 품에 얻게 되었다. 이제서야 프랜차이즈가 상승곡선을 그리나 싶었는데 9월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벤 시먼스가 발목골절로 시즌아웃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필리 수뇌부(정확하게 말하면 힝키 체제의 열매를 수확하려했던 콜란젤로 체제)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뉴스였을 것이다. 아무리 계산적으로 데이터에 입각해서 분석을 하고 결정을 내린다고 할지라도 NBA에서의 성공은 보장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측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며, 심지어는 ‘운’도 상당부분 개입한다는 것을 엠비드와 시먼스의 경우가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과정을 신뢰하라(Trust the Process)”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팬들을 설득했던 필라델피아는 결국 그 과정을 오랜 인고를 통해 견디며 기다려온 팬들에게 결과로 보상하는 것을 매년 ‘연체’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필라델피아 지역 팬들의 반응, 즉 필리민심(?)이 어떤지 궁금했다. 11월 19일 피닉스 선즈, 11월 25일 시카고 불스와의 홈경기에서 많은 팬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현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족히 20명이 넘는 팬들을 인터뷰했는데, 하나같이 소위 말하는 ‘Process’에 찬성한다는 입장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마지못해 수긍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를 하면서 확신에 찬 열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어서 신기했다.


+ 사진 설명 : 자신들이 "Process"에 세뇌당한것 같냐며 되물었던 필라델피아 팬들. 몇년 후 동부지구를 석권하는 필라델피아의 미래를 그려보며 필자를 설득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

최근 몇 년 동안 리그의 바닥을 쓸고 있는 순위를 기록해왔고, 당장 몇 년 앞을 내다보더라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설득시켰던 것일까.

‘The Process’라고 이름을 새긴 식서스의 져지를 입고 있었던 지역주민 코리(Cory)에게 물어보니 “어차피 워낙 오랫동안 못해서 당장의 저조한 성적은 크게 상관없고, 성적이 나쁠 것이라면 차라리 극단적으로 나빠서 드래프트를 통해서 자산을 취득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노엘, 엠비드, 오카포와 신장으로는 장신으로 분류되는 시먼스까지) “빅맨만 너무 선발한 것은 아니냐”고 되물으니, “결국 트레이드를 통해서 몇 명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인정했다. 코리의 말을 들으니 필리의 수뇌부가 일종의 ‘정신승리’를 팬들에게 주입시킨 것 같기도 했다.

71년간의 오랜 기다림 끝에 올해 우승한 MLB의 시카고 컵스가 수십년을 안타까운 패배자로써의 정체성을 구축하며 팬들을 하나로 운집시키며 모성애를 자극했듯이 측은지심 혹은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덴티티가 생겼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좋고, 지더라도 리빌딩 중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낙심하는 것 자체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던 것은 식서스 팬들 모두의 자부심이었다. 현상만을 바라보는 패배의식이 아닌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오스틴 말론(Austin Malone)은 “우리가 세뇌당한 것 같냐”고 오히려 되물으며 르브론 제임스의 기량이 퇴보할 때 즈음이면 식서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도 예언했다.

“언제쯤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은가”라고 물어보니 “2020년쯤은 돼야 할 것”이라며, 벤 시먼스를 비롯해서 영건들의 건강이 모두 회복되면 무시무시한 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나스 안젤리라(Nas Angjeli)라는 또 한명의 ‘Process 예찬론자’는 식서스와 아이버슨의 조지타운 져지를 입은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애틀랜타 호크스와 같이 매년 평범하고 적당한 성적을 올리는 팀은 되기 싫다”면서 결국 탱킹을 해야 가장 실력이 좋은 최고 선수들을 선발할 수 있음을 강조했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친구는 과정을 신뢰하지 않는 팬이 무슨 필리팬이냐고 되물었다 (“If you don't trust The Process, what kind of Philly fan are you?”).

시즌권을 팔기 위해 플레이오프 진입권 성적을 유지해야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베테랑들을 영입하며 성적을 유지하는 다른 팀들과는 달리 대담하게 (혹은 겁없이) 탱킹을 시도하는 당당한 뻔뻔함이 팬들을 매료한 것으로 보였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험난한 과정을 동반하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다는 것을 필라델피아 팬들은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 어떠한 결과도 보장되는 것은 없으니, 그들의 맹신에 대한 보답과 보상이 있을지는 차차 지켜보도록 하자.


+ 사진 설명: 최하위권 성적에도 불구하고 식서스 팬들로 가득 찬 웰스 파고 센터. 시카고 불스 팬들이 절반은 넘는 것처럼 보였던 네츠의 홈구장 바클레이스 센터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추억의 레전드 닥터 제이 쥴리어스 어빙, 스틸 귀재 모리스 칙스, 리바운드 제왕 (故)모제스 말론, 아이버슨을 비롯해서 떠오르는 신예 조엘 엠비드, 벤 시먼스의 져지를 입은 팬들이 경기장을 파랗고 붉게 물들였다. +

# 사진=이호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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