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ACH STORY] 동부 코치, 이세범&표명일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배승열 / 기사승인 : 2016-12-07 0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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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배승열 인터넷기자] 필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향 원주를 연고로 하는 농구팀 덕분에 자연스럽게 농구팬이 됐다. 나래와 TG삼보 시절을 거치며 통합우승 2번, 챔피언결정전 우승 3번, 정규리그 우승 4번 등 ‘원주의 농구팬’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순간을 함께 만끽했다. 그 중심에서는 김주성이 큰 역할을 해왔지만, 그를 도운 동료들의 공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소개할 두 인터뷰이도 원주 농구 전성시대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다. 이제는 지도자로써 동부와 함께 하고 있는 이세범, 표명일 코치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희와 인터뷰 하신다고요? 기사가 될까요? 선수들 인터뷰가 낫지 않을까요?” 인터뷰 시작도 전부터 이세범 코치는 걱정이 많았다.


표명일 코치는 한술 더 뜬다. “저 말고 이세범 코치님 위주로 써주세요.”


인터뷰에 앞서 걱정부터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인터뷰를 진행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첫 질문이 주어진 순간부터 그들은 엄살을 내려놓고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로 변신했다. 이제는 필자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


Q. 함께 김영만 감독을 보좌하고 있지만 현역 때는 ‘적’으로 만난 날이 더 많았잖아요. 두 분의 현역 시절은 어땠나요?


이세범_ 저는 감정에 큰 변화는 없었어요. 어느 한 선수와 대결한다는 생각보다는 ‘팀과 팀’에 집중하려고 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표명일_ 개인적으로는 코치님과는 함께 일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저희는 평소에도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눠요. 상의도 자주 하고요. 현역시절에 저는 와일드한 스타일이었지만, 이세범 코치님은 부드러운 스타일이었어요. 제가 갖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조언을 많이 받았어요.


Q. 각자의 장점을 공유하고 배우려 하셨군요.


표명일_ 네 맞아요. 제가 선수시절에도 코치님께 조언을 많이 듣고 그랬어요.


이세범_ 저희가 선수로 뛸 때만해도 아파트를 숙소로 썼어요. 저랑 표 코치, (김)주성이가 같은 숙소였죠. 그때 농구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경기 중에 보지 못한 부분, 제가 놓쳤던 부분을 많이 물어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런 게 잘 이뤄져 좋은 경기를 했던 것 같아요.


Q. 앞서 각자 플레이스타일이 달랐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선수 시절 스타일과 습관들이 코치 생활에서도 비슷하게 나오는지, 아니면 코치로서 경험하고 배우면서 달라졌는지 듣고 싶어요.


이세범_ 내가 했던 것을 선수들에게 똑같이 하라고 할 수가 없어요. 지금 이 선수들과 팀 사정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죠. 대신 제가 선수 시절에 경험을 했던 것 중에서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알려주고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 잘 안됐을 때 저희의 경험을 알려 주는 거죠. 하지만 저희도 계속 농구를 연구하며 배우고 있어요. 선수들에게도 배우고 있고요.


표명일_ 저는 아직 코치 경력이 짧아요. 그래서 이 코치님의 노하우를 옆에서 많이 듣고, 배우고 있죠.


Q. 두 분 다 포지션이 포인트가드였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스타일은 상반되었는데요. 그렇기에 두 분이 생각하는 포인트가드의 덕목도 다를 것 같아요.


이세범_ 저는 포인트가드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해력’이라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해력’을 통해 우리 팀 선수들과 게임을 파악해야 해요. 코트에서 템포를 조절하면서 교통정리를 해줄 수 있어야 하죠.


표명일_ 저도 비슷해요. 일단 저는 식스맨으로 뛰다가 동부에 온 뒤에야 많이 뛰었어요. 그 전에 강동희 전 감독님, 이상민 감독님과도 있어봤는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경기 중에 어느 한 선수가 컨디션이 좋고 감이 좋다고 해서 그 선수에게만 자꾸 공을 줘서는 안 된다는 거죠. 다른 선수들도 1~2번씩 공을 만져보면서 모두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렇게 공을 배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어요.


이세범_ 어쨌든 제일 중요한 것은 기본기에요. 배워야 할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힘들어지거든요. 농구 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아요. 기본기가 튼튼하면 문제가 생겨서 막히더라도 풀어 낼 수 있어요. 하지만 기본이 없으면 잠깐은 버틸 수 있지만, 금방 막히고 오래 가지 못해요. 어느 포지션이든 다 같지만, 공격이든 수비든 기본 훈련을 할 때는 지겹고 따분할 거예요. 하지만 그게 잘 되어야 경기에서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Q. 동부 가드진은 세대교체 과정에 있잖아요. 그런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나요?


이세범_ 본인들이 노력을 많이 해요. 저희가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고 훈련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도 있어요. 중, 고등학교 시절에 감독이나 코치 선생님들께 농구를 배우는 것도 있지만, 선후배들과 숙소생활을 하면서 배우는 부분도 있다는 거죠. 저희도 어렸을 때 형들에게 농구를 배웠어요. 직접적으로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옆에서 보면서 느끼고 배운 거죠. 지금 (두)경민이가 그래요. 형들에게 찾아가서 물어보고, 이야기 들으면서 배우고 있더라고요.


표명일_ 저희는 선수들에게 코트 비전을 넓히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패스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경기 흐름을 볼 수 있는 비전 말이죠. 여유를 갖고 경기 시간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요. 수비 할 때도 반대편에 있는 24초 계시기도 확인해가면서 수비하고, 공격할 때도 시간을 확인하라고 많이 강조했죠.


이세범_ 저희가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농구에 대해서도 들어봐야 한다고 말해줘요. 요즘에는 개성 강한 선수들이 많잖아요. 복잡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 이야기하면서 알아가는 것을 ‘일상’처럼 생각한다면 쉬워질 거예요.



Q. 표명일 코치는 동부에 합류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연수를 했는데요.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요? (표명일 코치는 2012년 은퇴 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2년간 농구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표명일_ 제가 선수를 직접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나 수비할 때 패스를 해주면서 가까이서 보고 배웠어요. 미국 선수들은 항상 질문을 많이 해요. 어떤 훈련을 하면, 손을 들어서 이 훈련은 왜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어요. 사소한 거 하나까지도 물어보더군요. 코치들도 설명을 해주면서 도와주는 그런 모습들이 좋았어요. 한국에서도 질문을 하지만 보통 코치들이 이렇게 해보라고 주문하면 “예”라고 대답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미국은 선수-코치간의 소통이 많아 대화가 되는 모습이 좋았어요. 아무래도 한국은 아직 수직적인 관계와 문화 차이로 조금은 어렵지만, 요즘 어린 선수들은 질문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해요. 특히 (서)민수가 그래요.
또 농구하는 인구, 자원이 다르다보니 운동하는 분위기도 달라요. 미국도 수직적일 때는 우리보다 더 엄하더라고요. 운동 시간에는 딱 정해진 룰 안에서 엄격하게 하고, 어긋나면 그대로 아웃시키죠. 룰에 어긋난 행동을 한 선수가 있으면 감독이 그 선수를 빼고 훈련하기도 해요. 그만큼 자원이 많다보니 코치들도 아쉬울 것이 없는 거죠. 예를 들어 선수 한 명이 “저 오늘부터 농구 안하고 공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미국은 “어 그래, 공부해” 이런 분위기 인데 우리는 “너 왜 그래, 계속 농구하자”라며 어르고 타이르는 경우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훈련 자세도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3시 반에 훈련을 시작한다고 하면 미국은 3시부터 나와서 각자 스트레칭하고, 슈터들은 공을 던지거나 센터들은 포스트 업으로 몸을 풀며 훈련 준비를 해요. 그리고 3시 반이 되면 다함께 본격적인 팀 훈련을 하는 시스템이에요. 하지만 한국은 3시 반에 훈련이면 3시 반에 나와서 그때부터 다 같이 몸을 풀고 시작하죠. 미국은 확실히 조금 더 농구를 즐기면서 하는 것 같았어요.


Q. 그렇다면 미국에서 배웠던 것들을 한국에서 시도한 적이 있나요?


표명일_ 아직 제가 코치 경력도 짧고, 감독님이 계시기에…. 하하.


이세범_ 저는 표 코치가 잘 배우고 왔다고 생각해요. 배워온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그런 부분을 잘 녹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감독님과 미팅 때 표 코치가 배우고 온 것을 이야기해서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표 코치도 그렇겠지만, 배우고 느껴왔던 것들이 명확히 자리를 잡으면 새로운 것을 또 시도할 수 있겠죠.



5차 연장전? 죽는 줄 알았어요!
농구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대화주제는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었다. ‘코치’로서의 이야기만큼이나 선수시절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지금은 정장을 입은 채 벤치에 서있어야 했지만, 그들에게도 유니폼을 입고 원주치악체육관을 누비며 팬들 환호를 받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Q.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뽑자면 2009년 1월 21일에 있었던 5차 연장 경기가 아닌가 싶어요. KBL 최초였잖아요. 당시 두 코치님도 ‘선수’로서 현장에 있었고요.


표명일_ (웃으며) 네,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2차, 3차 연장전까지 가니까 선수들이 이제는 승부욕보다는 다들 지치고 힘들어서 얼른 끝나기만을 바랬어요. 아무래도 (윤)호영이가 많이 고생했죠. (김)주성이가 부상으로 빠졌던 경기였고, 삼성과의 앞선 3경기를 모두 진 상태였기에 꼭 이겨야 하는 경기였거든요.


이세범_ 저도 그 경기 잊을 수가 없죠. 그런데 저는 어느 한 경기 뽑기가 너무 힘들어요. 다른 이유는 없고 어느 한 경기를 뽑으면 다른 경기들한테 미안하더라고요. 하하. 모든 경기가 다 소중해서 그런 것 같아요.


Q. 그런데 제가 이 코치님에 대한 기억으로는 상대 지역방어를 깰 때 주로 코트 위에 계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이세범_ (멋쩍은 듯 웃으며) 그랬었나? 하하. 지난여름에 팀 운동을 하는데 지역방어 깨는 연습을 했어요. 인원이 부족해서 저랑 표 코치가 공격을 도와줬는데 저희가 지역방어를 다 깼어요. 그랬더니 (서)민수가 놀래서 물어보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깼냐고. 그래서 말했죠. 내가 패스하기 편한 곳을 찾아서 미리 자리를 잡으라고요. 다음 동작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로 가라고 말했죠. 제가 쉽게 톡, 톡 넣는 패스만 했거든요. 반대로 지역방어도 잘하려면 공격자가 편안한 자리에 못 서게 만들라고도 말했던 기억이 있네요. 저는 선수 시절에 좋은 선수들과 같이 뛰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삼성에 있을 때는 서장훈이라는 좋은 선수가 있었고, 동부에서는 김주성 선수가 있었죠. 모두 특출난 선수였기에 도움이 됐죠. 둘 다 항상 패스주기 좋은 자리에 있었어요. 그게 제게는 큰 복이고 행운이었죠.


Q. 표 코치님은 코트 위에서 외국선수들과도 기싸움에서 피하거나 밀리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표명일_ (크게 웃으며) 하하하! 로드 벤슨이 저한테 ‘또라이’, ‘크레이지’라고 했었어요. 제가 부산 kt에서 뛸 때 벤슨이랑 붙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서로 기싸움을 펼쳤죠. 몇 년 지나 미국에서 벤슨을 만났을 때 서로 그때 사건을 기억한다며 웃었죠.


이세범_ 저희는 또 레지 오코사와도 한 팀에 있을 때 싸웠었어요. 연습경기 때였는데, 오코사가 공을 달라고 자꾸 밖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때 표 코치가 계속 들어가라고 해도 안 들어가자 공을 오코사에게 집어 던졌죠. 당시 전 감독님이 타임을 부르더니 둘이 뭐 하는 거냐며 소리 지르며 혼내셨었어요. 그리고 또 제가 공 잡고 있을 때 오코사가 또 그러기에 저는 공을 안 넣어주고 계속 공을 잡고 경기를 멈췄어요. 그랬더니 또 감독님이 경기를 멈추더니 이번에는 오코사에게만 뭐라고 하셨죠. 가드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런데 오코사가 나중에 그랬어요. 감독님이 자기를 김주성 다음으로 사랑 하는 줄 알았다고. 하하하.


Q. 그렇다면 코치님들과 손발이 가장 잘 맞았던 외국선수는 누구였나요?


이세범_ 현재도 그렇고 과거에도 잘하는 외국선수가 많았어요. (표명일 코치를 바라보며) 넌 누구냐? 민렌드?


표명일_ 찰스 민렌드는 본인이 잘했고…. 내가 공을 넣어주면 화려하게 내리꽂던 선수는 찰스 로드?


이세범_ 찰스 로드?


표명일_ 재밌게 농구했고, 정규리그 우승도 했었으니까요. 여기(동부)에서는 오코사와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세범_ 삼성에 있을 때 네이트 존슨하고도 잘 맞았어요. 사실 제 기준에서 저와 잘 맞는다는 의미는, 제가 어떤 의도를 갖고 지시하면 그걸 빨리 캐치해서 그 자리에 가있던가, 달리는 선수에요. 그게 네이트 존슨과 오코사였어요. 둘은 제가 신호를 보내면 패스구나, 혹은 (서)장훈이나 (김)주성이 공격을 시키려는구나라는 것을 빨리 캐치했어요. SK 시절 로데릭 하니발도 그랬고, 올루미데 오예데지도 좋았어요.


표명일_ 돌이켜보면 지금 언급되는 선수들이 모두 성적을 냈던 선수들이었어요.


이세범_ 벤슨도 영리한 선수에요. 예전에 오전에 패턴 연습, 오후에도 패턴 연습하는데 황진원이 깜빡, 깜빡하는 걸 벤슨이 다 잡아주고 그랬었어요.



Q.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자라는 유망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표명일_ 선수들이 기본기부터 충실히 연습했으면 좋겠어요. 드리블, 패스, 슛 등도 중요하지만 수비의 기본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중, 고등학교 연습경기를 보러 가면 신체능력도 좋아지고 화려해졌지만, 다들 수비를 안 하려고 하더군요. 수비 훈련이 정말 하기 싫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충실히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승부욕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경기에 지면 왜 졌는지, 뭐가 부족한지 돌아보는 부분은 부족하더군요. 제가 신인일 때 허재 감독님과 기아에서 한 팀이었어요. 당시 허재 감독님은 경기에서 지면 분해서 술을 그렇게 드시고도, 새벽에 혼자 나와 드리블이나 슛 연습을 하곤 하셨어요. 허재 감독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런 승부욕을 갖춘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세범_ 저도 마찬가지로 기본기를 강조하고 싶어요.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야 다음 단계를 할 수 있거든요. 수비 자세, 스텝 등 그 나이대에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해요. 그렇지 않고 프로에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습관들을 갖고 프로에 와야 해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각각 배워야 할 단계가 있는데 그것들을 대충하고 프로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죠. 프로는 배우는 곳이 아니에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에요.


프로필_


표명일_
1975년 12월 23일생, 182cm, 양정고-명지대, 2012년 은퇴


이세범_
1974년 8월 20일생, 180cm, 용산고-중앙대, 2009년 은퇴


사진_문복주,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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